조윤래
mycho339@naver.com
초등학교 교장퇴임
경남대학교대학원 교육학 박사과정 수료
진등재문학제 회원
백남오 수필교실 수강 중
<수상 소감>
사월에 찾아온 희소식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봄날과 함께 찾아온 수상 소식은 저에겐 정말 뜻밖이었습니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이 떨렸습니다. 일 년 중 연두 잎이 제일 예쁘다는 사월에 찾아온 희소식,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6.25 전쟁 중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54년 간을 배우고 가르치며 살아왔습니다. 퇴직 후 14년 동안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고 악기를 배워 보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불현듯 내가 살아온 지난날들에 대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늦은 나이에 백남오 교수님의 수필 교실을 찾았습니다. 늘 열심히 써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차곡차곡 쓰고 또 썼습니다. 글쓰기에 자질은 없지만, 여러 문우의 칭찬과 조언이 앞으로 계속 글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게 해 준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을 따끔하게 지적하면서 지도해 주신 지도 교수님이 계셨기에 신인상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신인상 작품>
진등재 문학제
조윤래
오늘은 제9회 진등재 문학제가 열리는 날이다. 나는 올봄에 진등재 문학회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 교수님으로부터 초청장을 받고는 무척이나 기뻤다.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비는 올똥말똥 하였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패딩을 입고 두꺼운 목도리도 했다. 바깥 풍경을 자세히 보려고 25인승 버스의 제일 뒷자리 앉았다. 엷은 안개가 자욱한 거리의 단풍들이 한결 고왔다. 달 같은 하얀 해가 차창 밖의 경치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군북 IC로 나가 의령 쪽으로 달렸다. 궁유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50여 년 전 초임 교사 시절 태산처럼 부른 배를 안고 이 길로 덜컹거리는 버스를 타고 함안 대산에서 합천으로 연수를 받으러 갔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권혜리 이정표를 보고는 권혜 묵방 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사랑에 빠졌다는 친구의 생각이 나서 가 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허허로운 빈 논과 집집마다 국화꽃을 피운 작은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물속에 가을 산을 품고 있는 저수지도 아름다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모롱이 또 한 모롱이 지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빨간 지붕을 이고 있는 백남오 교수님의 생가에 도착했다. 머릿골 어울림 마당에는 먼저 도착한 문우들과 회장단이 잔치 준비를 벌써 해 놓았다.
모든 게 놀랍고 생소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아니고 마당 넓은 집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초가삼간에서 나고 자라신 교수님을 이렇게도 훌륭한 분으로 키우신 부모님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척박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런 두메산골에서 문학제를 열려고 생각하신 교수님의 지극한 열정과 효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아마도 부모님의 효심을 본받고 조상님의 음덕을 입은 탓이 아닐까 싶었다.
합천수필문학회 회원님, 에세이스트 회장님을 비롯하여 외부 손님들이 많이 왔다. 손님 중에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한 동화 작가도 있었다. 출판기념식, 문학강연, 문학상 수여, 축하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가 진행되었다.
김정대 교수님의 <삶과 문학>이란 특강이 있었다. 문학은 인생의 총체적 학문이며 인류의 문명은 문학의 힘에 의하여 의존된다. 문학은 하나의 철학이요 종교이며, 모든 학문을 대표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하셨다. 김 교수님은 우리 교수님의 대학 1년 선배라 했다. 백남오 교수님이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에 김정대 교수님에게 보낸 우편엽서와 군대에서 보낸 편지 등 후배의 편지를 50년 동안 간직하신 인간적이고 존경스러운 분의 문학 특강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동료 회원 수필가의 다례도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는 진등재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진등재 문학상은 『아무 미련 없다』는 수필집을 낸 작가가 받았다. 상패와 꽃다발, 선물, 수상소감이 이어졌다. 멋지고 부럽기도 했다. 얼마나 열심히 했으면 이런 큰 상을 받을까 싶었다. 나에게도 저런 호사스러운 날이 올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수상작 낭독이 있고, 사무국장님의 ‘우리 소리의 흥과 풍류’ 축하공연이 있었다. 모두가 흥겨워 소리 내어 따라 하고 추임새도 넣었다. 공연 중에 교수님의 두루마기 옷고름이 헐렁한 걸 보고 다시 매 드리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행사가 끝나고 식사 시간이었다. 이런 오지에 뷔페를 부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다.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고 푸짐했다. 전문가라 잘 차리고 정리도 잘했다. 과일, 떡, 단술 후식까지 배부르게 먹었다. 새로 수리 중인 집 내부에도 들어가 보고 겹겹이 쌓인 산들을 바라보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옛날에는 모든 통로가 진등재라고 했다. 토요일이면 해 질 녘 진등재를 한없이 바라보면서 아들을 기다렸을 어머님을 상상해 본다. 이 오지에서 홀 시어머님을 모시고 딸 넷을 낳으신 어머님, 그 설움이 오죽했을까? 다섯 번째야 아들을 낳고는 얼마나 좋았을까?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으리라. 귀하고 귀한 아들을 맘껏 안고 으르기조차 눈치 보며 조심스러워했을 어머님을 생각해 본다. 이렇게 훌륭한 아들을 먼 하늘나라에서 내려다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실까?
진등재까지는 가 보리라 맘먹고 지팡이까지 챙겨 왔는데 빡빡한 시간이 여유가 없어 아쉬웠다. 나에게는 꿈이 있고 의미 있는 즐거운 축제였다. 희망과 행복을 한 보따리 안고 오는 차에 올랐다. 차창 밖을 보면서 먼 훗날 교수님의 생가가 문화유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등 여러 가지 상념에도 잠겼다.
내려오는 왼쪽 길에 하얀 눈을 덮어쓴 것 같은 나무를 자세히 보니 매화 같았다. 설마 이 늦은 가을에 매화꽃이 이렇게 활짝 피다니 눈을 의심했다. 문인들이 많이 모인다는 걸 미리 알고 봄은 아직 멀리 있는데 미리 환영의 인사를 하려 피었나 보다. 나는 보따리 속에 환희도 집어넣었다. 매년 빠지지 말고 진등재 문학제에 꼭 참석하라고 매화까지 응원해 주는 것 같았다. 너무나 보람되고 가슴 뿌듯한 진등재 문학제였다.
<심사평>
조윤래의 진등재 문학제
‘진등재 문학회’는 진등재를 넘어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리산 수필가’ 백남오 선생이 만든 문학회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 ‘진등재 문학제’를 개최하여 ‘진등재 문학상’을 수여한다. 이 글은 진등재 문학회의 정식 회원이 되어 백남오 선생의 생가에서 열린 ‘제9회 진등재 문학제’에 참석하여 보고 느낀 작가의 이야기다.
허허로운 빈 논과 집집마다 국화꽃을 피운 작은 마을을 지나 산속으로 들어갔다. 잔잔한 물속에 가을 산을 품고 있는 저수지도 아름다웠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 모롱이 또 한 모롱이 지나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빨간 지붕을 이고 있는 백남오 교수님의 생가에 도착했다. 머리골 어울 마당에는 먼저 도착한 문우들과 회장단이 잔치 준비를 벌써 해 놓았다.
모든 게 놀랍고 생소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아니고 마당 넓은 집도 아니었다. 보통 사람들처럼 초가삼간에서 나고 자라신 교수님을 이렇게도 훌륭한 분으로 키우신 부모님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척박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런 두메산골에서 문학제를 열려고 생각하신 교수님의 지극한 열정과 효심에 머리가 숙여졌다.
작가는 그날 하루를 상세하게 적어나가고 느낀다. 이러한 글쓰기는 자기 자신의 사유를 만족시키기엔 그만이지만 읽는 이들은 하나의 풍경을 따라가는 느낌이다. 필자가 누차 강조했던 말이지만 수필도 문학이어서 읽으면 감동의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늘 공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글을 쓸 때 그러한 점을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나의 작품을 쓰려고 했을 때 일어난 일 중에 감동을 일으키거나 마음을 젖게 하는 시선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많이 할애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래도 작가가 보내준 세 편의 글에서 생각하거나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해 종종 사유하는 모습은 이야기꾼으로 태어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김종완 발행인은 『에세이스트』 113호 권두수필에서 “수필은 서사다 아이러니다”라고 쓰고 있다. 소월의 「진달래꽃」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님에게 꽃을 깔아주며 어서 떠나라는 모순의 상황이 아이러니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러한 수필을 바로 쓰라는 건 아니다. 백남경 선생님이 밝힌 것처럼 작가로서 잠재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 살피려면 글 속에 ‘형상화가 구현되었는가’, ‘의미 있는 주제가 제시되었는가’ 하는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작가는 ‘진등재 문학제’에 가서 다채로운 행사를 보며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 출판기념식, 문학강연, 문학상 수여, 축하공연이 진행되고 식사도 한다. 진등재를 바라보며 백남오 선생 어머님의 어려운 삶을 그려보고 선생의 생가가 문화유산이 되었으면 하는 상념에 젖기도 한다. 그리고 희망과 행복을 한 보따리 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하여간 이러한 행사를 글로 표현하고픈 작가의 마음을 기꺼이 이해하며, 진등재 문학회 회원으로서 선생의 글쓰기 강연과 회원들의 다양한 글을 접하면서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리라 믿는다. 온통 사방이 꽃으로 가득한 이 봄날, 필자도 진등재를 가고 싶은 마음이 인다.
에세이스트 가족이 된 것을 축하드리며 작가가 수필 문단의 기둥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을 그려본다.
* 심사평/ 박석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