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多)작을 하는 연유 / 홍속렬
사람누구에게든 자기를 나타내려는 연극 본능이 존재하고 있다 “ 나”를 더 위대한 “나”로 나타내려는 본능, 그것이 연근본능이고 그래서 개인이나 사회가, 국가가 발전을 하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연극본능은 많은 잠재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내재돼 있는 에너지인 셈이다
창조력을 이끌어내는 동기 유발 쯤 되는 거다 내재돼 있는 에너지의 량에 따라 개인의 발전이 정해진다볼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전쟁으로 학교를 다닐 기회를 놓쳤고 그래서 초등학교를 4년에 마쳤다 제대로 공부한 건 중학교 3년뿐이다 나머지는 방송통신고등학교 3년 그리고 체육대학에서 2년 공부한 것이 내 학력의 전부이다
이렇게 공부한 것은 학력에 대한 켐플렉스 때문이 아니고 진정으로 공부를 하고 싶어서였다
육군 감독을 하며 수원에 있는 방송수성고등학교를 다녔는데 한 달 두 번 출석 수업을 하고 매일 방송 수업을 듣는다. 방송 시그널 음악이 롯시니의 “ 킹 소나타3번 ”이 나오면 수업이 시작 된다 그래서 롯시니의 음악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익었고 뒷바라지를 해 준 아내에게 고마운 맘을 금할 길 없다 당시 담임선생님이 동연 배 쯤 되었는데 우리 반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나를 많이 배려 해 주셨고 3년을 개근을 해 졸업 무렵엔 사모님이 우리부부를 초청하여 수원 갈비를 맘껏 사주였던 아름다운 기억을 갖고 있다
한 번은 수업 중에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남하해 비상이 걸려 군인인 나만이 부대로 복귀했던 일도 있었다.
나는 특별한 취미가 없다 있다면 영화를 보는 거 아무영화나 보는 게 아니라 골라보는데 명화가 아니면 안 본다. 그것도 내 기준에서 정해지는 거지만 엄정한 내 기준이 있다 가슴을 울리는 센체멘탈리즘이 있을 것. 교훈이 있을 것, 아름다워야 하고 … 등 등
옛날엔 그런 명화가 많았지만 요즘은 눈을 씻고 찾을 래 야 찾을 길이 없다 그만큼 좋은 영화를 찾기 힘들다는 얘기이다 책 읽는 것 글쓰기 이니 자연히 글을 많이 쓰는 다작에 몰입하게 마련이다 시간도 잘 가고 나 자신을 사랑하고 몰입해 자신을 찬찬히 되돌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 돼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극본능 말이 나와서 애긴데 나는 선수시절 관중이 많아야 경기를 더 잘 했다
남 앞에 서는 걸 좋아하고 칭찬을 해 주면 더 잘 했다 그야말로 감춰진 끼를 들어내는데 부족함이 없는 못 말리는 본능을 가진 사람이다
감춰진 끼…그걸 찾아내는 작업 곧 소질을 찾아내는 일인데 나는 운동 실력을 잘 찾아낸다. 잠재능력을 갖고 있는 선수를 잘 찾아낸다. 감춰진 끼 그야말로 사막에서 보석을 찾아내는 작업니다 난 이런 끼를 운동과 예술에서 갖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해 낸다. 노래할 때의 내 끼 못 말리는 끼를 스스로 갖고 있다고 생각하며 이 분야에서 활약을 했더라면 뭔가 이루어 낼 수 있이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마냥 아쉬워한다.
군인 선수시절 당시는 전 부대가 동원 돼 응원을 했다 사단 군악대가 나와 밴드애 맞춰 몇백명의 전우들이 응원을 펼치면 내 몸은 공중에 붕붕 뜨는 느낌이며 실제로 날아다녔다
우리 편이 지고 있으면 울며 뛰었고 기어코 이겨 승리를 우리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지휘관들은 나를 높이 평가하고 늘 좋은 보직 중요 보직에 기용하여 주셨다 책임감이 강하고 정직하게 업무를 수행 해 나가는 점을 높이 평가 해 주셨다 그래서 난 군대 사회가 참 좋다 있는 대로 수고하고 애쓴 대로 평가 해주며 오늘날의 나를 키워준 곳이 군대이기 때문이다 군대문화도 어떤 면에서 좋은 점이 많다
전역 해 나온 지 27년 그래도 난 여전히 군을 사랑한다.
관중이 없는데서 경기를 하는 건 불행한 일이다 선수끼리만 경기를 하는 건 동네 축구다
현재의 한국 프로 축구가 그렇다 관중이 없는 경기는 죽은 경기다 관중이 없으면 수입이 없고 수입이 없으면 흥행이 안 돼 팀을 운영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업이 하는 팀은 그런대로 깨진독에 물 붓듯 돈을 쏟아 부으며 운영을 하고 지차 체에서 운영하는 팀은 구걸을 해 가며 운영을 하는데 정상적 운영이라 볼 수가 없다 관중이 축구가 좋아서 또 생활화 되어서 축구장에 못 오면 못 살아갈 정도의 광 펜들이 있어야만 프로 축구가 운영되고 정상적 자리 매김이 될 것이다 그리되기 까지는 우리 국민들이 축구를 사랑하고 즐기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축구가 더 만이 발전하고 손흥민 같은 걸출한 선수도 배출이 가능하다 작은 체구의 동양인이 서양의 축구장을 마구 누비는 꿈을 구어 보라 동양인의 콤플렉스가 말끔히 씻겨져 나갈 것이다 그 통쾌함을 맛보시려거든 축구장을 찾으라.
1970년대 한국의 실업축구는 그야말로 운동장도 없고 관중도 없는 수유리 제일은행 맨땅 운동장에서 일 년 내 내 리그를 치룬 적이 있었다. 당시 FIFA규정엔 경기를 시작하기 전 심판은 볼을 점검하여 싸인을 하고 예비 볼 하나와 경기용 볼 하나를 달랑 갖고 들어가 경기를 운영 하겠끔 돼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실업 리그는 볼을 여럿 갖고 아웃 오브 풀레이가 되면 다른 볼을 투입 최대한 빠른 경기 운영을 시도 하였으니 많이 앞서간 것이다
당시 감독을 하시던 분들은 다 유명한 선수 출신이며 대한민국에서 가장 볼을 잘 찼던 분들이었고 내가 초등학교 시절 너무 축구를 좋아 해 라디오로 중계를 들으며 신화같이 여기던 분들과 어개를 나란히 함께 감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아 가끔은 내 살을 꼬집어보기도 했었다
나는 글쓰기 공부를 제대로 배워 본적이 없다 청주 충북 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임보 교수님에게서 배운 것과 요즘 음성에서 수필 공부를 하는 것 이외에 배운 적은 없다 그래서 가끔 띄어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때가 많고 고사 성어나 고문에서 인용하거나 할 때 나의 한곗점을 실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풀어 쓰거나 쉬운 우리말로 쓰게 된다.
그러면서도 정체돼 가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요즘은 많이 쓴다. 수필 공부를 하며 자신을 갖는 것은 나도 좋은 글을 쓸 자신이 생겼고 노력만 하면 넉넉히 좋은 글을 쓸 수 가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덴 진실이 우선 돼야 하고 사실에 연유하며 읽는 이에게 역사적 사실을 알리면 더더욱 좋은 길이 될 거라고 스스로 생각하여 내가 겪은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일리기 위한 노력도 포함돼 있다 1961년에 소년병으로 입대하여 우리의 역사적 세월을 살아온 노병이니 할 말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그 할 말을 이렇게 글로 써서 전하고저 하는 뜻도 담겨있다
문제는 얼마나 많은 독자를, 내 글을 읽어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가 문제다
좋은 글을 잘 쓰면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읽을 것이며 사랑해 줄 것이다
답은 내 안에 있다 나 스스로가 정직하고 역사에 맞는 증언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진실로 전하여 이 나라 이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사실을 리얼하게 전하는 일…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아름다운 글쓰기가 멀리 멀리 전하여지는 아름다운 파장이 긍정적 파장이 성층권 높이, 높이 까지 퍼져 올라가가를 염원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은 많은 소재를 갖고 있단 점이다
살아오며 겪은 일들 다시 말해 글감이 많은 거다 어떤 땐 생각이 앞서가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느려져 까먹을 때가 많다 순간 스쳐 가는 이미지를 밧줄로 매 놓을 수 도 없는 형편, 편지를 쓸 때도 손 편지 받은 사람은 내 글씨를 익혀 해독? 하려면 세 번 정도는 정독을 해야 독해를 하다 그만큼 나는 악필이다 그런데 손이 생각을 앞서 나가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생각은 빠른데 손이 따라가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써 놓고 자판을 두드리는 건 수정하기가 쉽지만 손으로 쓴 글은 지워야 하기 때문에 내 글은 손으로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아내는 손으로 쓴 편지를 많이 받아봐서 잘 읽는다. 그러면 서 어쩌면 그렇게 한 번 펜을 잡으면 쉬지 않고 한 번에 다 써 내느냐 고 혀를 찬다
다 작인 이유를 설명하면서 자기 자랑을 많이 한 것 같다 수필교실에서 내 작품을 평가 하며 자기 자랑이 지나치다 하는 평가를 받았다 난 진실을 사실에 접근해 썼는데 읽는 분은 그걸 자기 자랑이라 그렇게 받아드린 모양이다 사실 우린 나를 남에게 익히 알리려는 노력을 좀 소홀히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가끔은 자기를 높여서 자랑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생산적인 일이라 생각한다.
수필공부를 하며 개인의 모든 걸 글에서 밝히고 얘기하는 것이 좀 부담스러운지 부끄러워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집단을 이루고 살아가며 요즘 같이 안으로만 웅쿠리고 남을 이해 하려들지 않는 사회적 풍토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이해를 구하며 문학적 측면에서 솔직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어떤 면에서 대단히 좋은 커므니케션의 좋은 장을 마련하는 문화적 융합이라 말 할 수 있을 거라 서로를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해 잘 알아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리라 왜 ? 다작을 하느냐 ? 물으신다면 쓰는 게 좋아서 무조건 좋아서 라 대답을 한다
2008년부터 써 모은 글이 1500편이 된다. 이만하면 다작 중 다작이라 말 할 수 있을까?
근데 그 중에서 쓸만한 게 몇 개나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