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장 마성(魔性)의 시험 -7
차르륵-!
주머니 끈이 느슨해지며, 용안(龍眼)만한 야명주(夜明珠) 다섯 알
이 떼굴떼굴 굴러 나왔다.
다섯 개의 보주(寶珠), 그것은 패천전주를 죽이고 패천전주 노릇
을 했던 혈천수사가 광무군에게 바친 물건 중 하나다.
그는 보물창고 다섯 개를 갖고 있었다. 언제고 나타날 군림소야를
위해…….
그 모든 것은 무림일품부의 군자금이 된 상태였다.
서점 주인은 야명주 다섯 개를 보고 어처구니없어 했다.
"하나당 은자 이십만 냥(兩) 정도는 되겠구려? 하지만 팔고 사는
것은 노부의 뜻이오. 거두시오!"
"노인은 이 곳 주인과 어떤 사이요?"
"본인이오, 서생!"
"핫핫… 그럼 어서 여기 서명하시오!"
광무군은 다시 소매를 흔들었다. 이번에는 두루마리 하나가 굴러
나왔다.
<계약서(契約書)>
그것은 천문서각을 일품부주(一品府主)에게 판다는 내용이 적힌
명도증서였다.
"일, 일품부주?"
서점 주인은 광무군을 새삼 바라봤다.
"훗훗… 나는 이곳을 사기 위해 멀리서 왔소. 이곳을 사지 않고
는 떠나가지 않을 것이니, 그리 아시오!"
"모… 모를 일이군."
서점 주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끼익-!
돌연, 서가 하나가 옆으로 밀리며 두 사람의 건장한 젊은이가 달
려나왔다.
서가 뒤에는 비밀 석실이 있었다.
두 명의 장한은 광무군의 오만한 언행을 숨어 보다 못해 장도(長
刀)를 곧추세우고 뛰어나온 것이었다.
"어느 놈이 어르신네께 행패를 부리느냐?"
"요 오만한 놈! 이곳이 어디인 줄 알고 행패냐?"
두 사람이 바짝 다가설 때였다.
"핫핫… 성질이 급하시군. 핫핫! 서점을 인수해 운영하려면 점원
도 필요한 법이니, 너희도 취하겠다!"
광무군을 손가락을 가볍게 쳐 냈다.
두 명의 건장한 장한은 찬 기운이 피부 속으로 파고드는 것을 느
끼며 뻣뻣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거의 탄지지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서점 주인의 머리카락이 빳빳이 일어났다.
"절… 절세기인(絶世奇人)이시군?"
"핫핫… 일품서생(一品書生)이라는 사람이오."
광무군은 싱긋거리며 다가갔다. 하지만 그의 속마음은 전혀 즐겁
지 않았다.
'이 곳은 대광풍방이 광풍서생인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장소인데,
어이해 이렇듯 쓸쓸한 장소가 되었단 말인가?'
그는 답답한 마음을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이 바로 강호사절이 길러 낸 사람임을 밝힐 만한 입장이 아니
기 때문에 그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일품서생(一品書生)?"
"핫핫… 오늘부터 이곳의 주인이 될 사람이오!"
"……."
서점 주인은 볼을 실룩였다.
'기다리는 분은 아니 오고, 기청년이 오다니… 강호사절이 이십
년 전 약속한 것은 거짓말이었을까? 천문진인(天門眞人)이 말한
것이… 내가 주장한 것보다 현명한 판단이었을까?'
그는 광무군을 쓸어 보며 완강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나, 이곳을 팔 수 없소!"
"핫핫… 황금을 더 드리리다."
광무군은 다시 소매를 흔들었다.
팍-!
이번에는 용봉자소벽(龍鳳紫소碧)이라는 기진이보(奇珍異寶)가 소
매 속에서 튀어 나갔다.
황홀한 보광은 등불 빛보다도 밝았다.
"팔… 팔 수 없다지 않소?"
서점 주인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더 드리겠소!"
광무군은 다시 소매를 흔들었다.
스슥- 슥-!
열 장의 누런 종이가 소매에서 뿌려졌다.
그것은 아주 느릿느릿 서점 주인의 눈 밑으로 다가갔다.
열 장 모두 전표(錢票)인데, 거기 적힌 금액은 각기 황금 백만 냥
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용 좋은 연경(燕京)의 천지전방(天地錢房)에서
발행한 전표 열 장!
제 23장 마성(魔性)의 시험 -8
"으으, 누… 누구요? 무슨 소문을 듣고 왔소?"
서점 주인은 경악하며 광무군을 다시 바라보았다.
"얼마를 더 주면 팔겠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보시오. 나는 이
곳을 사야만 재촉하지 않을 것이니, 알아서 금액을 부르시오!"
"팔, 팔 수 없다고 하지 않소?"
"핫핫… 나는 살 수밖에 없다고 하지 않았소?"
누구의 고집이 더 센 것인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자다.'
서점 주인의 눈빛이 흐트러졌다.
그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말했다.
"사실… 이곳은 노부의 것이 아니오!"
"그럼?"
"이 곳은 광풍서생(狂風書生)이란 분의 소유지요."
"으으… 음!"
"그리 아시고 이제 떠나 주시오!"
"흠, 광풍서생은 어디에 사오?"
"그, 글쎄……."
"글쎄라니?"
"그… 그 분이 어디에 계신지는… 노부도 모르오."
"흠, 곤란하군. 하지만 귀하가 처음 이 곳의 주인이라 한 이상…
이 곳을 처분할 자격을 갖고 있지 않겠소?"
"할 수 없소……."
"핫핫… 거래에 능하시군."
"무슨 소리요?"
"가장 큰 대가를 받아 내는 재간이 있으시다… 하는 소리요."
그는 한 장의 종이를 꺼내 서점 주인에게 내밀었다.
"이 정도 대가면 팔겠소?"
"……?"
서점 주인은 입을 딱 벌렸다.
종이 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구파일방(九派一 )이 이십일 년 전, 서천쌍마에게 잃은 모든 것
을 반 년 만에 받는 조건으로 천문서각을 양도하겠음.>
종이 위에는 그런 글이 적혀 있었다.
구파일방이 진산비급(鎭山秘 )과 여러 신물(信物)을 명예와 함께
빼앗겼다는 것은 세인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었다.
한데, 그것을 찾아다 주겠다는 조건으로 서점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니…….
"핫핫… 어서 결정하시오!"
광무군은 다시 재촉했다.
그가 제시한 대금(代金)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바로 광풍서생으로서의 광무군이 행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하늘 같은 사람이다…….'
서점 주인은 무릎을 스르르 굽혔다.
"어… 어느 기인이십니까? 어이해, 실의에 잠긴 청삼생사판(靑衫
生死判) 화모(華某) 앞에 나타나시어 희망을 불어넣어 주십니까?"
그는 바로 화운비(華雲飛)였다.
"일품서생(一品書生)일 뿐이오."
"아아, 이 곳이 대광풍방의 비밀소굴임을 아시고 계셨군요?"
"그렇소. 알고 왔소!"
"그럼… 대광풍방이 미쳤다는 것도 아십니까?"
"미… 미치다니?"
"신무상(新武相)이 대권(大權)을 장악했습니다. 그는 힘으로 서천
마궁을 몰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 그럴 수가?"
"사실 노부는… 대광풍방에서 쫓겨 난 사람입니다."
"쫓… 쫓겨나다니?"
"화옥미(華玉美)라는 과년한 딸자식이 갑자기 패성(覇性)에 젖어,
천문진인이란 상고기인과 힘을 합해 대광풍방의 전 고수를 결사대
로 만들어서 서천마궁이 강호에 뿌린 마의 세력을 피로 끊어 버리
기 시작했소이다."
그가 하는 말은 정말 놀라웠다.
'이럴 수가? 대광풍방이 광풍서생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나서다니
…….'
광무군의 얼굴이 희어졌다. 그는 보이지 않는 손을 느꼈다.
선수(先手).
정말 뛰어난 누군가가 백도가 이십 년간 숨어 꾀했던 모든 것을
선수쳐서 훔쳐 가 버린 것이었다.
심기면에서 천세야옹을 능가하는 어떤 자!
그 자의 손이 유독 신비스럽게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