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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신위(神威) 초현(初現)
1
"가까이 오지 마라!"
양홍균이 호신용 장도(藏刀)를 뽑아들며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 기세가 하도 냉엄한지라 다가들던 마룡방 무사들이 한순간 주춤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흐흐, 위험한 물건은 버려야지."
휙― 탕―!
무사 하나가 비도를 날려 양홍균의 손에 든 장도를 퉁겨 냈다.
퉁겨진 장도는 바다로 빠져 버렸다.
"앗!"
양홍균은 다급한 외침을 흘렸다.
그나마 있던 장도마저 사라진 그녀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적들이 점점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을 바라보던 양홍균이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소매를 입가로 가져갔다.
찌이익!
돌연 소매가 여러 갈래로 찢어졌다. 그녀가 이빨로 소매를 찢어낸 것이다. 순식간에 찢어진 소매는 여러 개의 천 조각으로 변했다. 찢어진 소매로 인해 그녀의 백옥같이 투명한 팔이 햇살에 투영되듯 드러났다.
마룡방 무사들은 돌연한 양홍균의 행위에 멍한 표정이었다. 갑자기 자신의 옷을 찢어버리다니. 그러다 그녀의 하얀 팔이 모습을 보이자 무사들은 색욕이 가득한 눈빛을 발하며 뚫어질 듯 쳐다봤다.
찢어낸 천 조각을 손에 말아 쥔 양홍균은 싸늘한 눈빛을 발하며 손을 내쳤다.
파라라라……!
백옥의 팔이 눈부신 빛을 발할 때 그녀 손 안에 든 천조각들이 사방으로 날아갔고 이내 그녀를 중심으로 십개(十個)의 방위를 점해 버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라락!
양홍균이 섰던 자리에서 괴이한 것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의 연화(蓮花)였다.
양홍균은 어디 가고 그 자리에는 사방 일 장 크기의 거대한 연꽃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뭐야?"
"갑자기 웬 꽃이……?"
마룡방 무사들이 어리둥절하며 연꽃으로 다가왔다. 몇몇 무사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꽃에 손을 댔다.
파파팍!
돌연 연꽃이 회전했다.
"크아악!"
"악! 내 손!"
연꽃에 손을 댔던 무사들이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
아! 뒤로 물러나는 그들은 팔을 움켜쥐고 있었는데 그들의 팔에서는 피가 철철 흘러넘치고 있었다. 무사들의 손과 팔들이 날카로운 칼에 베어진 것처럼 잘려나간 것이었다.
"계집, 무슨 수작을 부렸느냐?"
"부숴 버리겠다."
잠시 어리둥절하던 무사들은 저마다 무기를 꼬나 쥐고 연꽃을 향해 공세를 펼쳤다.
츠츳! 파파파파!
날카로운 무기들이 연약한 연꽃을 난도질하듯 짓쳐 들었다.
연꽃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회전이 더욱 빨라졌고 무언가가 뻗어 나왔다. 그것은 꽃잎이었다.
회전하던 연꽃의 꽃잎이 떨어져 나가며 마룡방 무사들을 향해 날아왔다.
마치 반격을 하듯 꽃잎들이 비륜(飛輪)처럼 날아와 자신들을 공격하다니. 어이없었으나 그들은 일단 막고 봐야 했다.
카캉!
쇳소리가 들리며 무기들과 연꽃잎이 부딪쳤다. 연꽃잎이 무슨 힘이 있겠냐하는 생각을 가진 자들이 대부분이라 그다지 힘이 들어 가 있지 않았다.
허나 결과는 잔인했다.
"크악!"
"커억!"
연꽃잎은 그대로 무사들을 베어 버리며 그대로 뚫고 지나간 것이다. 앞의 무사들을 베어 버린 연꽃잎은 만음마룡에게까지 날아가고 있었다.
만음마룡의 눈이 번쩍였다.
"흐흐, 재롱을 피우는구나."
그는 간단히 손을 휘저었다.
파팟!
그에게로 날아오던 연꽃잎이 그의 손짓에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천 쪼가리! 진법이었단 말이지……?"
갑자기 나타나 수하들을 베고 만음마룡에게로 날아오던 연꽃잎은 천 조각이었다. 그는 그 천이 조금 전 양홍균이 이빨로 찢어 냈던 천 쪼가리임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다지문성의 동생이군."
감탄을 하던 만음마룡의 입가에는 조소가 맺혀 있었다.
"흐흐, 이곳은 선상이라 진법이 그다지 별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지. 안됐구나."
음소를 피워 물던 만음마룡이 다시 손을 휘저었다.
쾅! 쾅!
만음마룡의 장력이 연꽃 주위의 나무로 된 갑판들을 돌아가며 부숴 버렸다.
그러자 거대한 연꽃의 형상이 차츰차츰 엷어졌다. 진법의 발판이 되는 곳을 부숴 버리니 진법이 무너져 가는 것이었다. 연꽃의 형상이 흐릿해지자 연꽃 속에 자리한 양홍균의 모습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땅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무력하게 무너질 진법이 아니건만, 배 위에선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구나.'
탄식을 하던 그녀는 만음마룡을 한 번 돌아봤다. 그는 음욕이 가득한 눈빛을 던지며 자신의 전신을 훑고 있었다.
'헛물켜지 마라.'
냉랭한 눈빛을 던지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그녀의 오빠가 귀호마간을 상대하며 안타까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음울한 눈빛으로 오라비 양문룡을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이 번쩍였다.
그 눈빛을 본 양문룡이 다급성을 토했다.
"홍균아! 자결은 절대 안 된다. 이 오라버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널 구해 낼 것이다!"
양홍균의 눈빛에서 비장함을 읽은 것이다.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자진을 하겠다는 뜻임을!
"흐흐, 그럼 안 되지."
만음마룡은 우둔한 자가 아니었다.
특히 여인이 극한 상황에 처할 때 발작적으로 하는 행동을 놓치면 대해제일의 음마라는 말을 내 주어야 하리라.
그는 양홍균을 향해 지풍(指風)을 날렸다.
피핑―!
그의 지풍은 정확히 양홍균의 혈도를 스쳤다. 다음 순간 그녀는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만음마룡의 음소가 들려왔다.
"후후, 나는 살아 있는 계집을 원할 뿐이다."
"아아……."
양홍균은 절망했다.
혀를 깨물어 짧은 생애를 마감하려 했건만 그것도 이제 부질없는 짓이 되었다.
'나는 이대로 음적의 손에 유린당해야 하는 운명이란 말인가!'
그녀는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비단 금상이 깔린 침상도 아니요, 사랑하는 남자도 아니었다. 강제로 몸을 개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어찌 슬프지 않으리오.
그런데 절망 끝에 솟아오르는 이 나른한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만음마룡의 음침한 눈빛이 자신의 몸을 훑을 때마다 기이하게 퍼져 오르는 열기.
징그러운 벌레의 눈빛 같은 만음마룡의 눈빛. 의지와는 달리 그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더 훑어 주기를 바랐다.
힘이 빠졌다. 흐물흐물해진 몸을 그녀의 연약한 다리는 지탱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바닥에 주저앉을 때였다.
"흠! 아주 좋아!"
만음마룡은 쓰러지는 그녀를 향해 갈고리같이 움켜쥔 손을 뻗었다. 양홍균의 풍만한 몸은 만음마룡의 손아귀로 주르르 빨려 들었다.
'아, 안 돼…!'
급박하게 부르짖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 뿐, 그녀의 몸은 그녀의 이성의 끈을 놓게 만들며 만음마룡에게 쏠리고 있었다. 천음색혼심법이 무르익은 까닭이다. 만음마룡의 손짓 하나에 모든 이성이 무너지고 있었다.
"아……!"
양홍균의 눈빛에 초점이 사라졌다. 멍한 표정뿐이었다.
"흘흘흘……!"
만음마룡은 음흉하게 웃으며 다시 지풍을 발출했다.
쫘쫘짝―!
양홍균의 궁장 상의가 찢겨져 나갔다. 그러자 출렁! 도발적으로 양홍균의 젖가슴이 앞으로 돌출 되었다.
"음……."
만음마룡의 눈이 게슴츠레해 졌다.
선학(仙鶴)을 닮은 듯 한 희디흰 목덜미, 그 부드러운 선을 지나면 둥그스름한 어깨 밑으로 두 개의 융기가 솟아 있다.
서 있음에도 탄력을 잃지 않고 있는 양홍균의 젖가슴은 만지면 미끄러질 듯한 부드러움을 주고 있다.
그 젖가슴 위에 분홍빛으로 수줍게 물든 두 개의 열매가 태양 빛에 익은 듯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녀의 목에는 손바닥 크기의 특이한 목걸이 하나가 걸려 있었다.
사자(獅子) 한 마리가 포효(咆哮)하는 형상이 정교하게 새겨진 황금색 종(鍾)이었다. 여인의 장식품으로 여겨 만음마룡은 시선을 거두고 그 아래로 향했다.
양홍균이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거부의 몸짓은 아니었다. 몸속의 열기 때문에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는 그녀였다.
"명기(名器)로다!"
만음마룡의 눈은 진득한 욕정으로 물들었다.
"의외로 풍만하군."
만음마룡이 양홍균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손 안 가득 느껴지는 착 달라붙는 부드러움이다.
"아음!"
양홍균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녀의 백옥 같은 젖가슴이 만음마룡의 흉악한 손아귀에 제멋대로 주물러졌다. 십 구 년 동안 소중히 간직해 온 순결한 육체가 눈을 뜨며 반응을 일으켰다. 거친 손아귀 아래에서.
"이놈―! 당장 그 손을 떼지 못할까!"
양문룡이 핏발을 세우며 악을 썼다. 그러나 만음마룡의 귀에는 개가 짖어댈 뿐이었다.
"고것 참……!"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 맛이라는 것은, 무수한 여인을 섭렵한 그였지만 이런 젖가슴의 느낌을 선사한 여인은 양홍균밖에 없었다. 만음마룡은 바싹 타들어 가는 입술을 핥으며 욕심을 부렸다.
스윽!
한 마리의 뱀처럼 그의 손이 치마 속을 유린했다.
"하아아……!"
양홍균이 신음을 발하며 자신의 유방을 움켜쥐었다.
"홍균아―!"
양문룡이 피를 토하듯 동생의 이름을 불렀다.
냉철한 이성을 가진 그였지만 상황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 빠져든 것은 오히려 그였다.
마룡방이 황금해를 장악했다는 소식을 그의 지인(知人)들에게 들어 알고 있었으면서도 창랑선단에 오른 양문룡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지만 양문룡에겐 목적이 있었다.
그 첫째는 암중에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육로(陸路)로 광동성의 자하장으로 돌아간다면 그의 종적은 금방 탄로가 날 것이다. 허나 해로(海路)는 단순하지만 상대의 이목을 숨길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로라고 해서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마룡방이 창랑선단이 통과하는 황금해를 장악했다는 것을 출항 직전에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문룡은 배에 올랐다.
그가 믿은 것은 무적해룡 때문이었다. 그의 두 번째 목적 중의 하나가 무적해룡을 만나는 것이었다. 바다에서 위급함에 빠지면 언제나 무적해룡이 나타나 도움을 준다고 했기에 양문룡은 일면 안심했던 것이다.
허나 그는 지금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일은 생각 외로 급박하게 흘렀고 무적해룡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상황은 점점 양문룡의 목을 죄고 있었다.
쇄애액― 쇄액―!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리고, 무수한 무기들이 양문룡을 향해 짓쳐들었다.
귀호마간에 의해 진법이 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쓰악!
"크윽!"
진법을 뚫고 들어온 병기에 의해 양문룡의 왼쪽 어깨 부분에 긴 상흔이 그어졌다.
"으으……."
양문룡은 선혈이 낭자한 자신의 어깨를 도외시한 채 손에 남은 소기를 휘둘렀다.
그러자 진법에 또 한 번의 변화가 일며 그를 향해 달려들던 마룡방의 인물들 중 서너 명이 피분수를 뿜으며 나뒹굴었다.
"크허억!"
"커어헉!"
그러자 마룡방의 무사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이를 본 귀호마간이 불호령을 토했다.
"뭣들 하느냐? 간신히 서 있는 놈에게 겁을 먹다니?"
그의 명이 떨어지자 그들은 또다시 양문룡을 향해 다가들었다.
양문룡은 이를 악물었다. 진법을 만들던 소기들이 모두 떨어졌다.
'이제 남은 건 그 방법뿐이다.'
안색을 굳힌 양문룡은 품속에서 급히 무언가를 꺼냈다.
그의 손에 들린 물건은 사자의 형상이 새겨진 주먹만 한 황금종이었다.
만음마룡에게 붙잡힌 양홍균의 목에 걸린 종과 크기만 조금 다를 뿐 형태가 똑같았다.
종을 손에 쥔 양문룡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그것은 이제까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종을 든 양문룡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과연 그는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2
만음마룡은 양홍균의 가슴을 주물러 대며 한 손으로 치맛자락을 잡아 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양문룡이 눈에 핏발을 세우며 손을 기이하게 움직여 종을 때렸다.
뎅―! 데엥 !
종소리가 선상 가득 울려 퍼졌다. 산사(山寺)의 종소리처럼 깊고 맑은 소리였다.
금빛 종이 점점 커져 갔다. 마치 잔잔한 호수에 돌이 떨어져 물결이 넓게 퍼지듯 종의 모습이 커지는 것이다.
퍼져 나가는 종소리는 종의 형상(形象)을 이루고 있었다.
점점 커다랗게 형상을 이룬 종소리는 쇄도해 들던 마룡방 무사들을 스쳤다. 급변(急變)이 일어난 건 바로 그때였다.
"크윽! 내 고막(鼓膜)!"
"고막이… 터졌다. 크아악―!"
심장을 후벼파는 가슴 섬뜩한 비명들이 선상 위에 울려 퍼졌다. 갑자기 적들이 귀를 싸매고 괴롭게 나뒹굴었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혈맥(血脈)까지 터져 칠공(七孔)에서 피를 흘리며 선상에 나뒹굴었다.
양문룡의 두 눈에 어린 살기(殺氣)가 더욱 짙어졌다. 이어 그의 손은 다시 종을 때렸다.
쿵―! 쾅―!
종소리가 분명했으나 처음의 종소리와 엄청난 소리의 차이가 있는, 배를 뒤흔드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진 것이다.
처음의 소리가 잔잔한 파도였다면 이번에 울린 종소리는 폭풍이 인 듯한 소리의 대파랑(大波浪)이었다.
"커억―!"
"크아악―!"
난무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들의 신체가 종소리의 음파(音波)에 의해 거북 등처럼 쩌쩍 갈라져 버렸다.
선상은 순식간에 지옥의 아비규환에 휩싸였다.
어느 누구도 그 폭풍 음의 가공할 공명(共鳴)이 주는 힘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귀호마간도 예외일 수가 없었다.
양문룡의 진법을 파괴하며 천하제일의 두뇌를 비웃던 그의 신체도 종소리의 공명이 주는 가공할 음파에 휘말려 피를 토하며 쩍쩍 갈라지며 죽어 갔다. 실로 너무도 급작스런 죽음이다.
죽어나가는 것은 그 쪽만이 아니었다. 만음마룡 근처에 있던 마룡방의 인물들도 쓰러지고 있었다.
"헛!"
양홍균의 신체를 주물럭거리던 그는 경악하며 삽시에 양홍균에게서 떨어졌다.
놀랍게도 종소리는 양홍균에게서도 나고 있었다.
만음마룡은 급히 내공을 끌어 올려 음파에 대항했다.
멍한 표정으로 주저앉아 있는 그녀의 목에 걸린 세 치 크기의 종, 그것이 양문룡이 울린 종소리에 반응해 덩달아 울리는 것이다.
종소리로 인해 양홍균 옆에 서 있던 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주위에는 오직 만음마룡과 단 몇 명만이 서 있을 뿐이었다.
음파에 대항하는 만음마룡의 눈에 양홍균의 목걸이에 달린 황금종이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그는 두 눈을 부릅떴다.
"헉! 저것은……! 고금십병(古今十兵)의 양극사후종(兩極獅吼鍾)! 모두 백 장 밖으로 물러나라!"
만음마룡은 황급히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리며 자신도 뒤쪽에 있는 배쪽으로 몸을 날렸다.
삽시에 마룡방의 선박들은 양홍균, 양문룡 남매가 탄 배와 거리가 멀어졌다.
만음마룡의 얼굴은 경악에 휩싸였다.
"다지문성, 그가 양극사후종을 지녔을 줄이야."
그의 경악도 무리는 아니었다. 양문룡의 손에 든 아담한 크기의 종은 전설로 내려오는 고금십병 중 하나였다.
-유림제일병기(儒林第一兵器) 양극사후종.
무림사(武林史) 이래로 무적신병(無敵神兵)이라 전해지는 열 가지의 무기가 천하에 전해져 내려왔다. 그 고금십병 중 최강의 호신병기(護身兵器)로 일컬어지는 것이 양극사후종이다.
두 개가 한 쌍으로 되어 있는 종은 종속에 아홉 개의 작은 종이 겹쳐져 있어 아주 작은 소리의 울림도 몇백 배 커다랗게 증폭된다.
부리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가장 무서운 살상(殺傷)무기가 될 수 있는 것이었다.
만음마룡은 귀호마간 등 삼백여 명 수하들의 주검을 보고 경악성을 흘렸다.
"양극사후종의 현음(玄音)! 실로 무서운 위력이다."
양극사후종에는 천, 지, 현, 황(天地玄黃) 이렇게 네 단계의 종소리[鍾音]가 있고, 제일 약한 네 번째 황음(黃音)만으로도 일 갑자 내공을 가진 고수의 혈맥을 터뜨릴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
양문룡은 황음에 이어 세 번째 단계인 현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현음을 울리며 너무도 과도한 심력과 기력을 쏟은 그는 잠시 휘청였다.
그때였다.
"준비―!"
멀리서 악마의 음성이 먼저 터졌다.
양문룡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저것은 폭렬탄시(爆裂彈矢)―!"
양문룡의 얼굴이 삽시에 납빛으로 변했다.
만음마룡의 명에 따라 멀찍이 퍼진 마룡방의 배들 중 맨 끝에 자리한 배의 난간에 수십 명의 궁수들이 횡으로 도열해 있었다.
시위를 매긴 화살의 끝에 매달려 있는 작은 원통(圓筒)! 그 안에는 강렬한 화력의 화약이 들어 있어 웬만한 배 한 척은 산산조각 낼 수 있다는 위력의 폭렬탄시였다.
"쏴라!"
슈슈슈슉―!
무수한 폭렬탄시들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여기서 끝이란 말인가?"
그러나 양문룡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급히 폭렬탄시가 날아드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날려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때를 같이 해 폭렬탄시들이 배에 그대로 적중됐다.
콰콰쾅―!
엄청난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뿜어졌다.
대폭발!
엄청난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며 그가 타고 있던 배는 사방으로 파편을 토하며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폭렬탄시의 위력은 굉장했다. 폭발의 여력으로 양문룡의 신형은 물속임에도 불구하고 거세게 밀려났다.
그가 다시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을 때였다.
그를 기다린 듯 활시위들이 여지없이 당겨졌다.
피핑―! 피피핑―! 슈슈슈슈―!
날아오는 화살들을 보며 양문룡의 손이 급히 흔들려졌고 양극사후종의 두 번째 단계인 지음이 몰아쳤다.
와우우우웅!
굉렬한 괴음과 함께 대기가 몰아치고 근 백 장 근방의 바다가 격랑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날아오던 폭렬탄시들은 방향을 잃고 서로 부딪쳐 허공에서 터져 버리고 말았다.
콰콰콰쾅!
"우욱!"
이어 양문룡의 입에서 한 웅큼의 선혈이 토해졌다.
양극사후종의 세 단계를 급격히 뛰어넘은 부작용이었다.
입에서 단내가 흘러나오며 그는 눈앞이 점점 가물거림을 느꼈다. 더 이상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그를 향해 악마의 숨결 같은 화살들이 우박처럼 양문룡에게로 쏟아졌다.
실로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3
수백 발의 화살들이 양문룡을 꿰뚫어 버리려 할 때였다.
쿠아아아앙……!
돌연 바다를 찢는 듯한 굉음이 울렸다.
그것은 용(龍)의 울부짖음이었다. 그와 함께 저 먼 바다에서 용의 형상을 지닌 백색(白色)의 기운이 뇌전(雷電)의 빠름으로 날아왔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슈슈슈슈……!
백색의 용 형상이 날아오는 그 반대편 바다에서 또 다른 가공할 기운이 날아들고 있었다.
한 마리의 은색(銀色) 용이었다.
두 마리의 용이 동시에 양문룡 쪽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목적은 양문룡을 꿰뚫으려 하는 화살들이었다.
백색의 용이 빨랐다.
백룡은 간발의 차이로 양문룡의 몸을 관통하려던 화살들을 휩쓸고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직후 화살들을 집어삼킨 백용은 몸을 뒤집어 그대로 마룡선단으로 날아갔다.
그러자 뒤따르던 은용 형상의 기운 역시 급격히 고개를 틀어 마룡방의 배들을 향해 날아갔다.
쿠콰콰콰쾅! 콰쾅!
두 개의 용은 입을 쩍 벌리고 그대로 마룡방의 배를 삼키듯 작렬했다.
엄청난 굉음들이 터짐과 동시에 다섯 척의 배들이 종이배처럼 박살나 날아갔다.
"우우우우……!"
"우우우……!"
그때 하늘을 찢을 듯한 창룡후(蒼龍吼) 두 줄기가 바다를 할퀴고 지나갔다.
"컥!"
"크억!"
마룡방 무사들이 또 다시 피를 흘리며 갑판에 나뒹굴었다.
바다를 울리는 창룡후에는 가공할 내공이 담겨 있어 적들의 심맥들을 끊어 버렸다. 조금 앞쪽에 나와 있던 마룡방도들이 모두 피를 토하고 절명했다.
쉬이익! 휘이익!
서로 반대 방향에서 날아온 두 개의 인영이 한 지점에 만나 동시에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일남일녀(一男一女)였다.
나타난 두 남녀, 용해린과 해옥랑이었다.
그들을 향해 백색 용과 은색 용이 다가들었다. 용 형상의 기운들이 사라지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쇠로 만든 긴 철노와 깃대가 쇠로 된 커다란 깃발이었다.
휘류류류……!
두 개의 물건이 두 남녀의 손아귀로 빨려들 듯 쥐어졌다.
그와 동시에 용해린은 철노를 받아 들며 좌수로 허공섭물(虛空攝物)을 이용해 물 속에 가라앉으려던 양문룡을 배에 내려 줬다.
한순간 두 남녀를 확인한 마룡방도들의 입에서 경악성들이 터져 나왔다.
"창룡노(蒼龍櫓)―! 무적해룡이다."
"으아아! 무적해룡이다!"
"은룡쌍기(銀龍雙旗)―! 대해천봉 해옥랑이다!"
마룡방도들의 얼굴이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였다.
나타난 이들은 그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무적해룡.
―대해천봉.
한 명은 대해제일인이었고, 또 한 명은 그들에게 처음 패배의 쓴잔을 퍼부었던 해왕맹의 소종사였다.
용해린의 손에 쥐어진 철노, 앞부분에 용 한 마리가 비상하는 그림이 새겨진 철노는 고금십병의 말석을 차지하는 기병(奇兵)으로 대해제일인의 신물이었다.
창룡노(蒼龍櫓)가 출현하매 대창룡(大蒼龍)이 하늘을 날고, 바다의 그 무엇이 무적해룡을 막으리오!
대해무적풍 무적해룡, 그를 일컫는 말이었다.
바람처럼 언제나 행적이 묘연한 바람의 혼[風魂]을 지닌 사내 무적해룡 용해린, 그가 바로 무적해룡이었다.
해옥랑이 지닌 은룡쌍기, 이것 역시 고금십병의 하나로 그 주인은 아버지 해왕천사의 무명을 능가해 가고 있는 대해천봉 해옥랑의 절정무기였다.
마룡방도들이 경악할 때 용해린과 해옥랑은 서로를 주시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이 여인이 해옥랑이었던가. 대단하군.'
'역시 이 자가 무적해룡이었군.'
해옥랑의 눈빛이 묘하게 흔들렸다.
한 줄기 해풍이 해옥랑의 볼을 스치고 지나 용해린에게 불어 갔다.
사자의 갈기 같은 흑발이 휘날리며 호방하고 신비스런 용해린의 얼굴이 드러났다.
'제법 멋진 구석이 있어.'
그녀의 성격을 미루어 이것은 사내에게 할 수 있는 그녀의 최대의 찬사였다.
조금 전의 그를 잡아먹을 듯이 뒤쫓을 때의 감정은 어느 새 사라졌다.
4
사방을 둘러보던 용해린.
허나 주위에는 오직 양문룡 뿐, 아무도 없었다.
용해린의 안면 근육이 일그러졌다.
"장주, 장소단주는 어찌 되었소? 창랑검사들은……?"
응당 양문룡의 곁에 있어야 할 태인검 장소와 창랑검사들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양문룡의 모습은 불길한 그의 생각을 현실화시켰다.
대답대신 양문룡의 고개가 힘없이 좌우로 가로 저어졌다.
용해린의 눈빛이 무섭게 변했다.
콰드드득!
엄청난 분노의 불길이 그의 눈에서부터 일었다.
푸른 바다를 벌겋게 물들이며 둥둥 떠다니는 무수한 시신들, 그 중 푸른 청의를 걸친 시신들이 용해린의 두 눈에 아프게 쑤셔 박혔다.
용해린의 두 눈에서 광망(光芒)이 번뜩였다.
'모두…… 죽었다…….'
용해린은 고개를 돌려 만음마룡을 바라보았다.
"만음마룡……!"
분노에 짓눌린 음성이 용해린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양문룡은 느낄 수 있었다.
용해린이 얼마나 분노했고 그 분노의 표출이 얼마나 가공할 살풍(殺風)을 불러일으킬지를.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용해린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뭉클뭉클 피어올랐다.
북풍한설(北風寒雪)의 차가움을 가득 담은 지극히 찬 기운, 그것은 가공할 살기(殺氣)였다.
양문룡은 용해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숨이 막힘을 느꼈다.
'엄청나군.'
해옥랑조차도 그의 살기에 전신이 미미하게 떨렸다.
"무적해룡……!"
멀찍이 지켜보던 만음마룡의 입에서 신음 섞인 음성이 터져 나왔다. 그의 살기에 가슴이 섬뜩함을 느낀 것이다.
무적해룡이란 이름은 무수히 들어왔었지만 실제로 보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만음마룡의 얼굴에는 또한 불신의 표정이 가득했다.
'저렇게 어린놈이 무적해룡이란 말인가!'
그의 눈에 보이는 용해린은 이제 이십여 세의 새파란 애송이였다. 허나 그의 전신에서 흐르는 가공할 기도와 살기는 그가 가진 상식의 벽을 박살냈다.
그가 놀라고 있을 때 용해린의 신형이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촤아… 촤아아아……!
갑자기 하나의 거대한 기둥이 생성되더니 용해린을 싣고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갈수록 사람을 놀라게 하는데!'
해옥랑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용해린을 받치고 있는 기둥, 그것이 바닷물을 내공으로 형상화시킨 물기둥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 고도의 공력은 그녀 자신이라 해도 펼치기 힘든 것이었다.
물기둥을 타고 점점 다가오는 용해린을 보며 만음마룡은 양홍균에 의해 뜨거워졌던 피가 싸늘히 식는 것을 느꼈다.
그는 실로 생애 최대의 적수를 만나며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제길! 마종사뇌, 놈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다. 왠지 불안한 예감이 들더니만 이곳에서 무적해룡과 만나게 되다니."
해왕맹에 쫓겨 원래의 본거지를 떠났던 그는 황금해 동쪽 이천여 리에 위치한 제법 큰 군도(群島)에 정착했다. 그 일을 나서서 지지했던 것은 마종사뇌라는 인물이었다.해왕맹에 패퇴해 정처 없이 떠돌게 된 그에게 삼 년 안에 해왕맹을 누를 수 있는 힘과 백 명의 절세미인들을 보내 주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그런 마종사뇌의 요구 조건은 단 한 가지 다지문성 양문룡을 죽여 달라는 것뿐이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앞에 놓인 떡을 놓칠 수는 없다."
만음마룡의 눈이 번뜩였다.
그들이 대치하고 있는 바다 중앙의 배에는 소소선화 양홍균이 갑판에 누운 채 연신 괴로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음심이 그를 부추겼다.
이어 그는 용해린과 해옥랑을 돌아봤다.
'놈은 혼자, 더구나 해옥랑 저 계집도 혼자다!'
상대는 겨우 두 명 뿐.
숫적 우세(優勢)가 그의 전의(戰意)에 불을 당겼다.
'무적해룡이란 이름이 드높지만 저놈은 새파란 애송이, 소문은 종종 와전되고 부풀려지는 경우가 많지.'
생각은 길었으나 명령은 짧았다.
"두 년 놈들을 죽여라!"
그의 명에 따라 열 척의 배가 앞으로 쏜살같이 미끄러지며 더 많은 폭렬탄시들이 당겨졌다.
목표는 무적해룡 용해린과 해옥랑이었다.
슈슈슈슉―!
폭렬탄시들이 폭우가 쏟아지듯 용해린과 해옥랑을 향해 쏘아졌다.
순간 용해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류들이 폭사됐다.
쿠쿠쿠… 촤촤촤……!
용해린의 전신에서 흐르는 기운은 더욱 강해졌고, 주위의 파도가 기류에 휘말려들며 춤을 추듯 사방으로 비산했다.
동시에 용해린의 주위를 돌던 기류는 그의 손에 쥐어진 창룡노로 모아졌다.
가공할 회오리의 강기가 창룡노를 중심으로 휘몰아치며 빛살처럼 쏘아오는 폭렬탄시들을 향해 부딪쳐갔다.
콰콰쾅―!
폭렬탄시들은 한순간 허공에서 폭발하며 검은 구름을 만들어 냈다. 찰나지간 구름을 뚫고 용해린이 섬전처럼 나타났다.
"해(海)―룡(龍)― 출(出)― 현(現)―!"
장쾌한 폭갈이 터지며 창룡노에서 한 줄기 섬광이 용두(龍頭)로 화해 기쾌하게 뻗어나갔다.
그 가공할 기운은 그대로 세 척의 배에 작렬했다.
콰콰쾅―!
"으아아악……!"
요란한 폭음과 함께 배는 허리가 두동강이 나며 삽시에 침몰했다. 마룡방 무사들이 아우성을 치며 바다로 떨어져 내렸다.
용해린이 탄 물기둥은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얼쑤!"
돌연 바로 옆에서 탄성 같은 음성이 터졌다.
해옥랑!
어느새 그녀가 소선을 타고 그를 따르고 있었다.
"이 봐! 저들 중에 반은 내 꺼라구."
그녀는 한 번씩 웃고는 은룡쌍기를 양손에 하나씩 꼬나 쥐며 흔들었다.
용해린은 그런 그녀를 보며 목전의 적을 두고도 내심 실소를 머금었다.
'도대체 이 여인은……?'
그 사이 해옥랑이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 그녀의 앞을 다시 열 척의 배가 빠른 속도로 막아섰다.
"호오! 나를 막겠다? 어디 한번 받아 봐. 은룡쌍출(銀龍雙出)―!"
그녀는 손에 든 두 개의 깃발 은룡쌍기가 그녀의 손을 떠나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콰우우웅……!
웅장한 소성을 발하며 은룡쌍기는 은색의 강기( 氣)를 휘몰아치며 열 척의 배로 무섭게 쇄도했다.!
콰콰쾅!
굉음이 솟구쳐 오르며 배들이 박살났다.
해옥랑은 허공에서 손을 현란하게 교차시켰다. 그러자 은룡쌍기는 허공에서 춤을 추듯 휘몰아치며 닥쳐 들던 마룡방의 배들을 연달아 부숴 버렸다.
가공하게도 그녀는 이기어(以氣馭)의 기술로 어검술(馭劍術)을 쓰듯 은룡쌍기를 조종하는 것이다.
열 척의 배는 삽시에 바다 속으로 삼켜졌다.
"크악!"
"커억!"
인육과 박살난 배의 파편들이 분수처럼 비산했다.
개중 눈치 빠른 인물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옆의 배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하하하핫! 오늘로써 마룡방은 대해에서 사라지리라."
해옥랑은 날아오는 은룡쌍기를 받아 쥐며 대소를 터뜨렸다. 그녀의 배가 다시 만음마룡쪽으로 향해 나아갔다.
그때 그녀의 곁을 용해린이 스쳐갔다.
"만음마룡은 내 몫이오."
"……!"
말을 던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용해린을 보며 해옥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창랑무사들의 복수라…… 흠, 조금만 그에게 양보할까나?'
해옥랑은 조금 뒤처져 용해린을 뒤따랐다.
누구에게 양보한다는 것을 몰랐던 그녀였으나 용해린에게만은 그녀의 마음이 움직이고 있었다.
용해린이 탄 물기둥이 다가오자 그의 앞을 이십여 척의 배가 빙 둘러싸듯 포위했다.
용해린이 만음마룡을 보며 일갈했다.
"만음마룡! 명색이 한 문파의 우두머리인데 꼬리를 마느냐? 직접 나서라!"
하나 만음마룡은 고개를 저었다.
"흐흐흐, 먼저 본좌의 수하들을 꺾고 나서 얘기해라!"
만음마룡이 탄 배는 멀찍이 물러나고 십여 척의 배들이 용해린의 앞을 막아섰다.
5
용해린이 창룡노를 들어올렸다.
쿠콰콰콰 ! 콰우우우……!
강대무비한 기운이 창룡노에서 뻗쳤다. 그것은 용(龍)이었다.
두 개의 뿔이 달린 머리와 앞발 한 쌍이 달린 몸통을 지닌 백색(白色)의 투명한 용, 거선들보다도 훨씬 큰 용은 그대로 이십여 척의 배로 짓쳐 들었다.
"헉……! 대창룡(大蒼龍)!"
마룡방무사들이 부지불식간 헛바람을 들이켰다. 대창룡은 무적해룡의 상징으로 천하의 그 어떤 것이라도 부숴 버린다고 했다.
"막아라!"
맨 앞의 배에 탔던 오십여 명의 무사들이 일제히 검을 휘둘러 검기막(劍氣膜)을 형성해 용해린의 공세에 대항해 갔다.
그들의 검기막을 향해 용해린의 창룡이 부딪쳐갔다.
휘류류륭…! 콰콰쾅―!
강맹하기 그지없는 두 개의 거력이 부딪치며 굉음이 요란하게 터져 나왔다. 허나 창룡은 검기막을 그대로 찢어발겼다.
"크윽―!"
"컥!"
용해린을 막아섰던 자들은 모두 심맥이 파열되어 피화살을 뿜어내며 튕겨나갔다.
쿠쿠쿠쿠……!
창룡은 거침이 없었다. 그 어마어마한 기세 그대로 이십여 척의 배를 휘감아 버렸다.
쿠콰콰쾅! 쿠콰쾅!
굉음을 터뜨리며 이십여 척의 배가 차례를 지켜 낙엽처럼 잘게 부서져 버렸다.
그 어떠한 힘과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대한 대해의 힘, 그 대해의 힘의 정화인 대창룡의 당연한 결과였다.
"무적해룡―!"
만음마룡이 폭갈을 터뜨리며 용해린을 향해 폭사해 들었다.
뒤이어 용해린을 향해 섬뜩하고 가공할 도세(刀勢)가 밀려들었다.
줄곧 틈을 보고 있던 만음마룡이 이때다 싶어 애병 곤마도(棍魔刀)를 휘두르며 쭉 뻗어 나온 것이다.
"기다렸다!"
용해린이 번개같이 신형을 틀며 창룡노를 휘둘렀고, 창룡노에서 백색의 기운이 뻗치며 만음마룡의 도세와 충돌했다.
콰콰쾅―!
굉음이 터지며 두 사람의 신형이 퉁겨졌다. 그들의 신형이 허공에서 멈춰졌다.
'강하다!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만음마룡이 입술을 짓씹으며 내공을 추스를 때 용해린이 점점 만음마룡에게 다가왔다.
"만음마룡! 그대는 대 해인으로서 너무도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 그 죄는 오직 죽음으로만이 씻을 수 있다!"
"어린 놈! 네놈이 하늘은 아니다! 마룡일식(魔龍一式) 단혼마도(斷魂魔刀)―!"
파파팟―!
수십 줄기의 도세가 용해린을 난도질하듯 거세게 뿜어져 나왔다.
만음마룡은 그에서 멈추지 않고 또다시 도를 휘둘렀다.
"마룡광란(魔龍狂亂)! 마룡척천(魔龍剔天)!"
용해린의 눈빛이 반짝였다.
만음마룡의 독문도식인 마룡삼도식(魔龍三刀式)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었다.
가공할 도세가 확장되며 용해린의 전신을 압박해 들었다.
때를 기다린 듯 그의 곁에 있던 수하들 수십 명이 동시에 공세들을 펼쳐냈다.
감히 경시할 수 없음에 용해린 또한 혼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악인은 지옥으로! 창룡승천(蒼龍昇天)!"
또 다른 물줄기가 솟구치며 섬광이 치솟았다.
용형상이 쾌속으로 날아오르며 대해를 뒤엎을 듯 내리꽂혔다.
만음마룡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뿜어냈던 도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으으……! 해왕맹주 보다도 더 강하다. 마종사뇌, 놈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가 담을 수 있는 한계를 떠난 경악, 그것은 해옥랑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마룡방도 수십여 명이 합공하려 들자 용해린을 도우려 급히 다가들고 있었다. 허나 용해린의 전신에서 흐르는 가공할 기류에 밀려나야만 했다. 그리고 뒤이어 쏟아진 가공할 역도.
엄청난 거력을 자랑하는 태풍이 바다를 휩쓸었다.
꼬리를 물고 형용할 수 없는 대겁란이 비산했다.
폐부를 찢는 듯한 비명성, 박살나 날아가는 배들, 태풍 앞에 온전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바다는 이내 고요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빗자루로 쓸어낸 듯 바다 위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온전한 형상을 하고 있는 배는 단 두 척 뿐.
양문룡이 타고 있는 배와 지금도 욕정으로 몸부림치고 있는 소소선화 양홍균이 타고 있는 배였다.
긴 세월 대해를 피로 적셨던 마룡방, 그들의 최후는 그렇게 바다 위에 뿌려졌다.
바다를 주시하던 용해린의 얼굴은 어딘가 미진한 표정이었다.
'언제나 똑같다. 완전한 형상이 아닌 반쪽뿐인 용의 형상…… 구결은 완벽하건만 용은 완전해지지 않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용해린은 고개를 저었다. 그로서도 알지 못하는 난관이었다.
완벽하지 않은 용형상! 벌써 오 년 이상 그를 짓눌러 온 문제였다.
그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해옥랑은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무적해룡……! 그의 무공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그녀 스스로 직접 보았으면서도 아직 믿을 수 없었다. 단 한 수에 만음마룡은 물론 그의 수하 오백여 명과 거선 들을 박살내어 버렸으니.
하나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한편의 지옥도(地獄圖). 그것이 분명 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진다 해도 놀라지 않을 대해천봉 해옥랑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은 그녀를 경동시키고도 남을 일이었다.
용해린과 해옥랑이 저마다의 상념에 빠져 있을 때였다.
"아아… 으음……!"
돌연 들려 온 신음 소리에 용해린과 해옥랑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침몰하기 직전의 배 위에서 욕정에 몸부림치는 한 여인이 그들의 망막에 들어왔다.
반라의 여인, 출렁거리는 가슴을 보듬어 안고 꿈틀거리는, 더구나 끈끈한 신음 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지독한 음약(淫藥)에 당했는가 보군.'
용해린은 고개를 돌린 채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양홍균의 신형을 끌어 올려 곧장 양문룡이 있는 곳으로 인도했다.
"홍균아!"
양문룡이 그녀를 받으며 피에 절은 자신의 장삼을 벗어 그녀의 신체를 감싸 선상에 눕혔다.
이어 탈진한 듯 양문룡 또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양장주!"
내공이 없는 백면서생인 그가 지금까지 견뎌 온 것만으로도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해옥랑이 양문룡의 배로 날아가자 용해린도 그들의 배로 신형을 날렸다.
하나 그에게는 여난(女難)의 시초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헌데 그때였다.
바다 위에 널브러진 시신들 중 하나가 꿈틀거렸다.
그 인물은 마룡방도 중의 하나였다.
문득 입가에 피를 머금은 그는 두 눈을 번뜩였다.
그의 눈동자는 바다 위를 날아가는 용해린의 등에 박혀 사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돌연 그의 신형은 천천히 물속으로 잠겨갔다.
이어 소리 없이 바다 속을 가르며 용해린 등이 있는 곳과 반대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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