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장(第四章). 의전사(醫戰士)라 불러다오!
하지만 잠시 후에 그는 드디어 그 해결책을 발견한 듯 크게 흐흐
흐! 하고 회심의 웃음을 터뜨린 후에, 몸을 일으키며 속으로 중얼
거렸다.
'과연 내가 곤륜삼성이 틀림없는 것일까? 어째서 아직 그런 훌륭
한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지? 흐흐흐, 이거야 말로 하나의
돌을 던져서 두 마리의 궁구가를 낚아 올리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냔 말이다......! 그런데 궁구가, 그 녀석은 대체 어찌 된 노릇일
까?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길래 아직도 찾아 오지 않고 있는 것일
까......? 어쨌든 지금은 그 녀석은 신경쓰지 말고 어서 은자나 버
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오후 무렵, 화전반점(和田飯店)의 뒷문이 열리더니 거대한 사두
마차 한 대가 좌우에 말을 탄 호위무사(護衛武士)들의 호위를 받으
면서 달려나왔는데, 금몽추는 마침 골목길에 앉아 있다가 급하게
큰 길로 나가는 바람에 그들과 정면으로 부딪치고 말았다.
비록 그 사두마차가 비교적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고는 해도 갑자
기 정지시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노릇이었기 때문에, 금몽추는
놀라 달려 드는 마차를 바라 보다가 한순간 으악! 하는 비명소리를
발하고 부딪쳐 뒤로 삼 장여나 날려갔다.
마부는 비교적 경험이 풍부하여 즉시 마차를 옆으로 몰면서 정지
시켰는데, 느닷없이 마차에 사람이 부딪쳐 크게 다친 듯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었기 때문에 즉시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하기
위해 몰려 들었다.
"빌어먹을, 무슨 구경거리가 났다고 그렇게 몰려드는 게야? 모두
들 저리 가지 못해? 당장 누구 하나 뒈지는 꼴을 봐야만 말을 알아
듣겠느냐?"
호위무사 하나가 화가 나서 그렇게 소리치자, 마차의 안에서 약
간 놀란 듯했지만 그러나 침착해진 음성으로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
다.
"대체 무슨 일이죠? 누가 다치기라도 했나요? 나에게 자세히 말
해줘요."
다른 호위무사 하나가 즉시 마차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왕소저(王小姐), 별로 신경쓰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으례 저런
쓰레기와도 같은 자들은 하등의 가치도 없는 목숨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오히려 천금(千金)과도 같으신 왕소저의 건강을 약간이라
도 해치게 된 것이라면 저런 자들은 살아 있다고 해도 이내 죽여
버려야 할 것입니다."
마차 안에 타고 있던 왕소저 왕산산(王珊珊)은 그 말에 다소 떨
리는 듯한 어조가 되어 말했다.
"누가...... 죽었군요.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사람의 목숨이란
누구나 다같이 소중한 거예요. 내 목숨이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들
의 목숨도 소중한 것이죠. 휴우......! 다 내 잘못이예요. 공연히
가만히 있지 않고 마중을 나오자고 한 것이 잘못이죠. 내가 잠깐
그 다친 사람을 봐야 하겠어요......"
금몽추는 일단 그렇게 비명을 질렀고 또한 그렇게 멀리 날려간
것으로 보아, 죽었거나 아니면 죽을 정도의 극심한 부상을 당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는 느릿하게 몸을 움직여 비스듬히 옆으로
누웠고, 이어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며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
"나를...... 나를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두시오. 나는...... 나
는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의원(醫員)이기 때문에 당연히...... 당
연히 나를 치료할 방법을 알고 있소. 이 금침(金針)을...... 금침
을 사용하면 금방 일어나게 될 것이오."
왕산산은 금몽추의 얼굴을 알아 보고는 다소 놀란 표정이 되어
소리쳐 말했다.
"아! 당신은 바로...... 바로 금공자(金公子)이시군요? 어마 이
일을 대체 어쩌죠? 많이, 많이 다치지는 않았나요?"
금몽추는 시선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쉰 뒤에 웃으며 말했다.
"왕소저, 당신이었군? 하하, 나는 보다시피 많이 다쳤소. 보다시
피...... 내가 의원이 아니었다면 이내 죽고 말았을 지도 모르는
일이오. 그러나...... 그러나 나는 의원이오. 무슨 말인 지 알아
듣겠소?"
"아아, 너무 말을 많이 하지 마세요. 제가 금방 좋은 의원을 불
러 드릴 테니 안심하시고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니오. 아니오. 보아하니 당신은 아직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
고 있는 것 같소. 내가 바로 천하(天下)에서 가장 훌륭한 의원이외
다. 그러니 어서 저 금침이나 나에게 집어 주도록 하시오. 그러
면...... 그러면 나는 금방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소."
호위무사들 가운데 하나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금침주머니를
집어 건네 주자, 금몽추는 즉시 그것을 받아 들고 금침들을 꺼내
자신의 몸에 여기저기 하나씩 꽂기 시작했다.
금침들을 모두 꽂고 나자 갑자기 그의 몸은 마치 학질에라도 걸
린 사람처럼 부들부들 떨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며, 이
윽고 잠시 후에 기이(奇異)하게도 그 금침들이 도로 하나씩 저절로
뽑혀 나가더니 즉시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이어 금몽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몸을 일으켜 바닥에 떨어진
금침들을 수습하더니, 왕산산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하 하 하, 그것 보시오. 내가 뭐라고 그랬소? 실로 이와 같은
위급한 부상이나 고치기 어려운 불치병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나의
전문(專門)이외다. 하 하 하...... 하지만 이번에는 도로 나를 치
료하게 된 것이니 절반쯤은 실수를 하게 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외다."
왕산산은 놀라고 크게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몸을 다시
한번 살피다가 말했다.
"어마, 정말로 이제 다 나은 것인가요? 다행이예요! 저는 당신이
이토록 대단한 의술(醫術)을 가지고 있을 줄을 몰랐어요."
문득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호위무사 하나가 다소 눈살을 찌푸리
며 그녀에게 전음(傳音)으로 말했다.
'왕소저, 제가 보기에 이 자의 이런 행동은 아무래도 이상합니
다. 세상에는 으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는 사기꾼들이 수
두룩한 법이지요. 그러니 왕소저께서는 일단 이 자의 수상쩍은 행
동에 대해서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금몽추는 옷의 먼지를 털어 내고 나서 그녀를 향해 웃으며 다시
말했다.
"하 하, 내가 이전에는 당신에게 나의 이 놀라운 의술에 대해서
미처 말해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하 하 하......! 이해하시오. 이
를테면 호랑이가 목표물을 발견하여 가까이 다가가기 전까지는 아
무래도, 아무래도 자신의 발톱을 감추게 된다는 것이오. 나도 바로
그와 비슷한 경우이기 때문이었던 것인데, 이해할 수 있겠소?"
왕산산은 맑은 두 눈을 빛내며 잠시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웃으
며 말했다.
"호호호, 그렇다면 당신은 환자를 대함에 있어서도 그와 같
이...... 그와 같이 신중을 기하게 된다는 말인가요?"
금몽추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천천히 내저으
며 손을 흔들었다.
"아니오. 아니오. 당신은 그저 절반 정도 맞춘 것이오. 나는 이
놀라운 의술을 시전함에 있어서 역시 환자라고 해도 하나의 목표물
로 생각하고 있소. 나는 이미 대단한 의술을 소지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하 하, 굳이 환자를 치료함에 있어서는 신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오. 나는 다만 치료할 환자를 선택함에 있어서 상당히
신중을 기하고 있소. 그 환자의 병이 위급하면 위급할 수록, 치료
하기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하! 하! 하! 나는 더 많은 은자(銀子)
를 벌게 되는 것이오. 오호라......! 세상이 험악하여 인생살이가
한바탕의 싸움을 벌이는 것과도 같으니, 나 역시 차라리 한 사람의
의전사(醫戰士)라고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오."
왕산산은 이내 까르르! 하고 파안대소(破顔大笑)를 터뜨리며 말
했다.
"정말 재미있는 말이예요! 나는 소위 전의(錢醫)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은 더러 봤어도 당신처럼 스스로 의전사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정말로 재미있어요!"
금몽추는 약간 심각해진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두루 주시하다가
이내 뒷짐을 지고 천천히 주위를 왔다갔다 하며 말했다.
"흐으험! 나는...... 나는 솔직히 나의 이러한 직업(職業)에 있
어서, 당신의 그러한 병(病)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소. 이건...... 이건 솔직한 나의 심정이외다. 당신에게는 이
미 깊어진 병이 있고, 게다가 아마도 잠시 후면 더욱 심한 질병(疾
病)이 덮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외다. 하 하 하...... 그것들은
오직 이 높은 경지의 의술에 도달한 나만이 고칠 수가 있을 것이
오. 따라서...... 나는 그 두 가지의 병을 치료해 주는 댓가로 아
주...... 아주 높은 수준의 액수를 제시하는 바외다."
호위무사들 가운데 하나가 그만 그것을 듣고 보다 못해 참을 수
가 없어서 달려들어 금몽추의 멱살을 잡고 당장에라도 내동댕이 칠
듯이 험악한 기세로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이...... 이 파렴치한 개 자식! 네놈이 감히 무슨 말라 비틀어
질 의원이란 말이냐? 이 뻔뻔스런 놈의 더러운 후레자식! 만일 소
저께서 이 자리에 계시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네놈의 혀를 뽑아 버
리고 입을 찢어 놓았을 것이다! 어서 꺼지지 못하겠느냐? 만일 네
놈이 이 자리에서 뒈지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라!"
"아, 머...... 멈춰요! 어서 그 분을 내려놓지 못하겠나요?"
왕산산은 미처 그와 같은 돌발적인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있다
가 크게 놀라고 당황하여 얼른 다가가 호위무사에게서 금몽추를 내
려 주며 말했다.
"미...... 미안해요! 나는 결코 이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나는
오히려 당신을 좋아하......, 정말...... 정말 미안해요! 어디 다
치신 곳은 없나요? 만일 당신이 저에게 화풀이를 하고자 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셔도 좋아요."
금몽추는 몹시 기분이 나빠진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목 부
위를 두어 번 어루만지더니, 이윽고 크게 조소(嘲笑)하는 듯한 어
조로 말했다.
"내가...... 하하하, 내가 어찌 감히 소저와 같은 천금지체(千金
之體)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겠소? 흐흐흐, 그건 오히려 아주 손해
를 보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할 수 있을 거외다. 이런...... 이런
일에 종사하다 보면 으례 이와 같이 될 수도 있는 법이지. 하하하!
하지만 당신들은 최소한 내가 천하제일(天下第一)의 의원이라는 것
을 알아야 할 거외다. 게다가 나는 아직 나의 한 가지 규칙에 대해
서 말해 주지 않았소. 누구라도 이와 같이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
람에 대해서는 나는 일단은 치료를 거부한다는 사실이오. 하하
하......! 나는 따라서 액수의 두 배를 주지 않는 한 소저를 치료
해 드릴 수가 없소이다."
그동안 주위에 몰려 들어서 구경을 하려던 사람들은 점차로 시시
해진 느낌이 들어서 거의 다 물러가 버리고 말았다.
왕산산은 내심 당황스러워져서 눈물마저 글썽거리다가 한숨을 내
쉬며 말했다.
"당신에게 저를 치료해 달라는 부탁은 감히 드리지 않겠어요. 다
만 기분이 풀릴 수만 있다면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한 무엇이든지
해 드릴 수가 있어요. 제발 저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나이 많은 호위무사가 크게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전음으로
말했다.
'소저! 저런 자에게 굳이 집착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소인은 강
호상(江湖上)에서 저런 자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었는데, 그 가운
데 정말로 대단한 녀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어서 그만 마차에 오
르시지요! 아마도 지금쯤 노야(老爺)께서 가까이 당도하셨을 지도
모르는 일이고, 또한 십중팔구 노야께서 이 광경을 보시게 되면 틀
림없이 진노하시게 될 것입니다.'
왕산산은 못내 안타까운 표정이었지만 호위무사들의 재촉에 따라
다시 마차에 올랐으며 그 일행은 다시 가던 길을 계속 달려 가기
시작했다.
금몽추는 잠시 길옆으로 피해서 그러한 광경을 바라 보고 있다가
이윽고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게 아니다. 이게 아니야. 어째서 이 일이 실패하고 말았을까?
혹시 나의 마각이 들통나기라도 한 것이 아닐까? 저 어리숙한 계집
아이를 상대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텐데 말이야...... 후후후! 히
히히!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직 완전히 실패한 것은 아니다. 물
론이지! 물론이지! 이 곤륜삼성(崑崙三聖)에게 있어서 실패라는 것
은 있을 수가 없을 테니까 말이야...... 나는 이미 그 준비로 미끼
를 던져 두었고, 따라서 이제 잠시 후면 그들이 제발로 나를 찾아
올 것이다. 으흐흐흐......! 이것은 그야말로 너무나도 쉽고 너무
나도 간단한 일이로군! 그럼 어서 자리를 이동하여 그들이 나를 찾
아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겠구나......'
잠시 근처의 허름한 주루에라도 들러 술이나 한 잔 하려고 생각
했으나, 이내 문득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말소리가 들려 왔으므로
금몽추는 부득이 방향을 바꾸어서 성밖으로 향했다.
곤륜삼성(崑崙三聖)이라는 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지금
으로부터 이십 년 전쯤의 일이었지만, 그 동안 누군가가 각 처에
삼성단(三聖壇)이라는 것을 세워 이제는 거의 그 곳들이 사람들이
곤륜삼성에게 소원을 비는 장소로 사용되고 있었다.
금몽추는 그리 바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느릿하게 걸어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무렵에 그 삼성단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
어섰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이 삼성단들은 곤륜삼성에게서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그 은혜(恩惠)를 갚기 위해서 지은 것들이라고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건물은 비록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매우 잘 지어져
서 외부에서 보기에도 단단하고 아름다왔고, 내부에서 보니 더욱
화려(華麗)하고 장엄(莊嚴)한 느낌을 주었다.
거의 같은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 삼성단들은 한
사람이 지은 것은 아닐 것이며, 마치 그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기라
도 하듯이 각기 모시고 있는 신상(神像)들의 숫자도 제각각이며 또
한 그 형상들도 거의 다 다른 편이었다.
금몽추는 안으로 들어 서서 제단위에 걸터 앉자 마자 다소 눈살
을 찌푸리는 듯하더니 주위를 둘러 보며 말했다.
"나는 지금 약간 피곤하고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므로 장
난을 할 여유가 없소. 그대들이 일단 나를 불렀으니 어서 나와서
무슨 일인 지 말을 해 보시오."
느닷없이 그의 전면(前面)에 홀연 흐릿하게 각자의 모습을 한 세
개의 투명체(透明體)들이 나타나더니, 일제히 그를 향해 공손히 읍
하며 말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소주인님! 일단 강호(江湖)에 나오셨는데
모든 일들이 생각하신 대로 되어 가는 것 같습니까?"
"호호호, 너무 저희들에게 화를 내지 마세요. 이건 의로(醫老)에
게 갑자기 의논드릴 일이 생겨서 소주인님을 뵙는 것이니까요."
"안녕하셨습니까, 소주인님. 예, 실로...... 실로 그렇습니다.
저는 바로 그 일에 대해서 의논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금몽추는 의로에게 시선(視線)을 돌리며 말했다.
"일단 말을 했으면 좀 더 분명하게 의사를 전달해야 할 것이 아
니오? 그 일이란 대체 어떤 일을 두고 하는 말이오?"
의로는 잠시 그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 왕금괴(王金魁)의 외동딸에 대해서는 이미 저희들이 치료를
해 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중이었습니다. 그 자는 비록 그저 평범
(平凡)한 인간(人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자의 외동딸은 성
품(性品)이 훌륭하고 또한 행동거지가 나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런데...... 보아 하니 소주인님께서도 이미 그 여자아이에게 관심
을 두고 계시는 듯하군요. 저희들로서는 일단 소주인님의 의중(意
中)을 알 수 없고, 또한 혹시라도 저희들이 소주인님의 일에 누를
끼치게 되지는 않을까 해서 이렇게 급히 뵙고자 한 것입니다."
금몽추는 더욱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을 굴리는 듯하
더니, 짐짓 탄식을 하며 말했다.
"물론...... 물론 나는 이미 그대들의 그러한 의도를 대강 알고
있었소. 하지만 이것은......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리
거나 지나치게 성화를 부리는 것이라고도 할 수가 있소. 의로(醫
老)! 그대는 곤륜삼성(崑崙三聖)인 이 나의 능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의로는 약간 어리둥절해 하는 듯하다가 말했다.
"그거야, 소주인님의 능력(能力)은 주인님으로부터 물려 받은 것
이니...... 저희들이 감히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금몽추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무거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두
손을 내젓더니 말했다.
"내 능력에 대한 그대의 그러한 말과 생각은 맞지 않는 것이지
만, 그러나 그대가 알 수 없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거의 잘 인
식하고 있는 것 같소. 즉 나는 당대(當代)의 곤륜삼성으로서, 자연
여러 가지 능력들을 두루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각각
의 방면에 있어서도 그대들이 알 수 없는 다른 힘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오. 따라서...... 이 의술 한 가지만 보더라도 내가 그대보다
더 능력이 우월하다는 것은 실로 자명한 일이 아니겠소? 이 말에
대해서 이의가 있소?"
"그럼...... 소주인님께서는 이번에는 손수 나서서 그 여자아이
를 치료해 주실 생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하! 하! 하!...... 그대들이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 여자아
이는 모든 조건들이 실로 곤륜삼성으로부터 도움을 받기에 거의 부
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소. 아니 그런 사람이라면 반드시 치료해
주어야만 하겠지. 만일...... 만일 그런 사람을 치료해 주지 못한
다면 결국에는 하 하, 이 곤륜삼성이라는 별호(別號)도 점차로 그
만 유명무실(有名無實)해 지게 되고 말 것이오. 그대는 지금 비록
그녀를 치료해 주겠다고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기실 정
말로 그녀의 병(病)을 완치시켜 줄 만한 자신이 있기라도 하다는
말이오?"
의로가 눈살을 찌푸린 채로 잠시 묵묵히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
고 있자, 금몽추는 문득 표정을 바꾸어 짐짓 안면 가득 엄숙한 기
색(氣色)을 지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표면상의 치료는 가능할 지 몰라도, 하하하...... 완전한 치료
는 불가능할 것이오. 실로 그러한 것이야 말로 그대들의 능력의 한
계(限界)인 것이며 동시에 폐단인 것이오. 그와는 반대로 나의 이
높은 의술(醫術)은 그 여자아이를...... 그야말로 우리가 나서서
치료해 주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훌륭한 그 여자아이를...... 하
하하! 자연 완치시켜 줄 수가 있소. 나는 바로 그와 같은 깊은 이
유에서 이번에는 내가 직접 나서서 그녀를 치료해 주려고 하는 것
이외다. 하 하 하......! 그 이외에는 사실 거의 아무런 사심도 없
다는 것을, 나는 지금 그대들에게 밝혀 두는 바이오......"
화로(花老)가 가볍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호호호, 그러니까 소주인님께서는 오로지 그와 같은 순수하고도
고상한 취지(趣旨)에서 손수 그 여자아이를 치료해 주고자 하는 것
이로군요?"
금몽추는 이에 순간 다소 붉어진 안색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보다가, 갑자기 기분이 더욱 나빠지고 크게 화가 난 듯 주먹으로
제단위를 쾅! 하고 세차게 후려치며 언성을 높여 소리쳤다.
"이건...... 이건, 그대들이 감히 나를 의심하겠다는 말이오? 감
히 자신들의 본분을 망각하고 반역(叛逆)을 도모할 작정이오? 곤륜
삼성인 나의 능력마저 의심하고, 나에게 쓴 맛을 봐야만 비로소 정
신을 차리겠다는 말이오? 나는 모름지기 그대들의 주인(主人)인 만
큼 일일이 모든 사항에 대해서 설명해 주어야 할 의무는 없소. 하
지만 나는 오직 만인(萬人)을 위해서 많은 일을 행하는 만큼 거기
에 무슨 사사로운 의도가 들어 있을 리가 없는 것이오. 물론 더러
내가 필요에 따라 약간의 융통성을...... 융...... 아니, 아니오!
모든 일이 다 나에게 있어서는 공평(公平)한 것이오! 그대들은 설
마하니 내가 그 못생긴 여자아이를 어떻게 해 보려고 그러는 것이
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으흐하하하, 게다가 만일...... 만일 내
가 약간의 은자(銀子)를 벌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하! 하! 하! 그것은...... 하하하! 그대들은 현명하니 절대로 그렇
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오! 실로 어떠한 일이 있다고 해도 그대들은
내가 오직 만인을 도와주기 위해서 고상하고도 순수(純粹)한 마음
으로 그러는 것이라고만 생각을 해야 할 것이오! 그렇지 않겠소?
그렇지 않겠소?......"
화로는 일순 놀랐다가, 다시 교소(嬌笑)를 터뜨리며 말했다.
"물론이예요, 소주인님! 저는 호호......!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말씀드린 것에 불과해요. 그러니 정말이지 제발 그렇게 오
해하지 마세요. 저희가 소주인님의 그 순수하신 마음을 의심할 리
가 있나요?"
금몽추는 당장이라도 폭발할 듯이 성난 기세로 그렇게 정신없이
떠들어 댔으나, 이내 그 말에 다시 표정을 바꾸어 정색(正色)을 하
고 그들을 바라 보더니, 약간 어색한 듯이 대소(大笑)하며 말했다.
"그렇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하하! 다행한 일이오.
하! 하! 하!...... 나는 그저 한 번 그대들을 시험해 본 것에 불과
하오. 그대들이 이미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다행한 일이오.
하하하......"
천로(天老)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바라 보고 있다가, 이윽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다.
"아시다시피 이 일을 제외하고도 우리는 이미 다른 많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혹시 나중에 다른 일들을 실행함에 있
어서도 역시 일일이 소주인님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생길
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예 지금 총괄적으로 그 일들의 전반에 걸쳐
서 지시를 내려 주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금몽추는 미처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못한 듯 잠시 염
두를 굴려 보다가, 이윽고 시선을 들어 다소 거만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하 하 하, 천로의 생각은 과연 현명(賢明)한 데가 있소. 하지만
사실은 나도 이미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것이오. 그래서 말인데...... 그러한 일들은 아무래도, 아무래도
앞으로는 어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대들이 도와주려는 사
람에 대해서 일단 나에게 보고를 하고, 또한 허락을 맡은 후에 실
행하는 것이 좋겠소. 하하하......! 내 말을 알아 듣겠소?"
의로가 심하게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만 참다 못해 입을 열
어 말했다.
"그건 일의 번거로움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사건건 보
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만 하니, 피로감만 더하게 되는 것일 뿐입
니다. 천로가 한 말의 요지를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신 것 같군요!
게다가 돌아가신 주인님께서도 그 일들에 관해서만은 전적으로 우
리들에게 모두 일임하셨던 것이므로, 그건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소주인님께서는 마땅히 앞으로의 사안(事案)들에 관해
서 우리들이 소주인님께 미리 의논을 드려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
지정을 하셔셔 그런 번거로움을 줄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금몽추는 몹시 무안을 당한 듯 갑자기 안색이 벌겋게 물들어서
의로를 노려 보다가, 이윽고 가볍게 조소(嘲笑)하듯이 말했다.
"흐흐, 그대는 과연 나를 쉽게 보고 있는 것이로군! 하 하, 내가
그렇게도 허술하게 문제를 생각하고 판단을 내렸으리라고 본다는
말이오? 흐흐흐......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하하! 그렇다면 차라리 그대가 나 대신 곤륜삼성이 되
어 보지 그래? 하 하 하......! 나는 이미 충분한 심사숙고 끝에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오! 또한 나는 곤륜삼성이므로 일단 그렇게
한 말에 대해서는 쉽게 번복하지 않소! 따라서 이 일은 이미 결정
되었으니, 만일 그대들이 다시 한번 더 이 일로 귀찮게 한다면, 나
는 즉각 이를 나 곤륜삼성(崑崙三聖)에게 공공연히 도전을 하겠다
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겠소!"
의로는 이에 크게 화가 난 듯 안색이 붉어졌으나 묵묵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화로가 가볍게 교소를 터뜨리며 대신 말을 받았다.
"호호, 그 일에 대해서는 너무 그렇게 신경쓰시지 마세요. 소주
인님이 일단 그렇게 정하셨다면 저희들이 거기에 따르는 것은 당연
한 일이겠지요. 사실 약간 번거롭기는 하지만, 저희들이 소주인님
을 뵙고 모든 일들을 의논드리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니
까요."
금몽추는 다소 기분이 좋아진 듯 입가에 득의의 미소를 떠올리며
화로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 하, 확실히 화로는 용모(容貌)도 대단히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그 지혜(智慧)에 있어서도 남달리 훌륭한 것 같소! 솔직히
나는 그러한 점에 있어서 이제까지 유독 화로를 좋게 평가하고 또
한 주시해 왔던 것이오! 하 하 하...... 그렇소! 그렇소! 이 일은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니 우리 모두가 더이상 신경쓰지 않는 것
이 좋을 것이오. 그리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서로가 마음 편하게
즐거운 기분으로 대화를 나누도록 합시다. 자 자 자, 나에게 더 해
야 할 말이 있소? 만일 더 할 말이 없다면 나는 이만 돌아 가도록
하겠소."
천로가 공손히 읍하며 미소와 함께 말했다.
"소주인님께서 이미 그렇게 정하셨으니 이제 저희들은 더이상 드
릴 말씀이 없습니다. 이제부터 저희들은 일이 생기면 수시로 소주
인님을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소주인님이 하시는
모든 일들이 뜻대로 잘 이루어 지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금몽추는 대단히 만족한 듯 짐짓 한 손을 들어 답례하고 말하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고맙소. 나도 역시 그대들에게 항상 좋은 일만 생기게 되기를
바라겠소."
금몽추가 밖으로 사라지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문득 아
직도 그 자리에 있던 삼로(三老)의 표정들이 가볍게 변하며 그 중
에서 먼저 천로가 입을 열어 말했다.
"자, 그대들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오? 아무래도...... 요즈음
들어 그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고 있는 것 같지 않소?"
화로가 눈빛을 싸늘하게 변화시키더니 가볍게 교소하며 말했다.
"그럼, 그가 벌써 우리의 일에 눈치를 채기 시작했다는 말인가
요? 호호,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가 지레 짐작하고 우리에게 그
처럼 까다롭게 나오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천로가 부드럽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다시 말했다.
"이를테면 화살은 이미 시위를 떠난 것이며, 이 일은 중도에 그
만둘 수가 없소. 어쨌든 이제 우리가 어떻게 하더라도 그 결과는
마찬가지가 될 것이오. 게다가...... 후후후, 나는 우리들 모두가
그렇게 무력하기만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소. 의선(醫仙)!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의선이라는 다른 호칭으로 불리운 의로(醫老)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내가 보기에는 역시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것 같소. 그는
필시 그저 자신의 그 무능(無能)함을 숨기기 위해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짓거리들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하오. 이는...... 이는
하하, 당신들이 조금도 염려할 바가 아닌 것 같소."
화로가 그를 향해 짐짓 화사(華奢)하게 웃어 보이며 위로하듯 말
했다.
"의선이 이번의 이 일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잘 알아
요. 하지만 그는 오히려 조금전에 당신에게 약간이라도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그 미련마저도 빼앗아 가 버린 듯하군요? 호호......,
만일 그의 능력이 그의 사부 만큼이나 정말로 대단하다면 지금 우
리의 대화를 알고 있을 것이고, 또한 그렇지 않다면 모든 일들은
앞으로 우리들의 뜻대로 되어 갈 거예요. 우리는 이미 정말로 오랫
동안 살 만큼 살아 왔죠. 하지만 진실로 어떤 추구해야할 가치가
없는 삶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길다고 해도 의미가 없을 거예요.
자!...... 따라서 우리는 벌써 미루어 왔던 일들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앞으로는 천하(天下)는 오직 우리가 원하는 대로 움직
여질 것이며, 거기에 어떤 실패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해요!"
천로가 다시 부드럽게 미소를 보인 뒤에, 일순 아주 무겁고도 득
의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실로 그렇소! 자, 우리는 계속해서 좀 더 적극적
으로 움직이도록 하며, 이러한 지침(指針)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
려주도록 합시다!......"
어느덧 서산마루에 해가 지고 사방에는 짙은 저녁노을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금몽추는 느릿하게 마치 산책을 하듯 주위를 둘러 보면서 성안으
로 향하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가 마악 성안으로 다시 들어 서려는
순간 갑자기 좌우에서 휙휙! 하고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와 함께
일단의 사람들이 달려들더니 그를 포위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미친 녀석아 멈춰라! 네놈은 대체 지금 어디로 갔다 오는 것
이냐? 설마하니 일찌감치 뒈지고 싶어서 환장이라도 했다는 말이
냐?"
금몽추는 처음에는 다소 놀라는 듯한 반응을 보이다가 이내 다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
"아니, 당신들은 바로 아까 보았던 그 사람들이 아니오? 헌데 내
게 무슨 특별한 볼일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나는 물론 두 다리가
멀쩡하게 붙어 있고 또한 남의 감시를 받는 입장이 아니니 마음대
로 돌아 다닐 수가 있는 몸이외다. 게다가 일찌감치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다니, 실로...... 실로 그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소리외
다."
다른 사람이 화가 나서 즉시 다가들어 그의 멱살을 움켜 잡고 눈
알을 부라리며 크게 소리쳤다.
"네놈이 우리 소저(小姐)께 어떤 수작을 부렸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따라서 네놈은 지금 다른 어떤 곳이라도 갈 수가
없다! 만일 이 사실을 확인하고 싶다면 당장이라도 네놈의 목을 부
러뜨려 주도록 하지! 흐흐흐, 정말로 우리가 그렇게 하지 못할 줄
로 아느냐?"
금몽추는 힘줄이 불끈불끈 치솟은 상대의 손아귀와, 그 험악한
태도로 보아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이 부러져 나갈 것 같은 데도 여
전히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알 수 없다는 듯이 다만 묵묵히 고개
를 가로 저었다.
그 왕산산(王珊珊)을 호위하던 왕노야(王老爺)의 호위무사(護衛
武士)들 가운데에서 그대로 가장 우두머리도 보이던 자가 나서서
멱살을 잡은 사람을 제지하더니 가볍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좋아, 자네는 비단 어느 정도 수작도 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제법 간담도 있는 편이로군 그래. 하하......! 기왕에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우리 서로의 이익을 위해 좀 더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세."
금몽추는 풀려난 멱살 부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두어 번 고개를
좌우로 움직여 보더니 짐짓 웃으며 말했다.
"하 하 하, 당신들이 이제 와서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니, 나
는 문득 당신들을 존경하고 싶은 생각이 드오. 솔직히 하 하 하,
나는 약간 특이한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일단 누군가를 존경하고
싶어지면 그 마음을 은자(銀子)로 표현하게 된다는 것이오. 이것
은...... 이것은, 그러나 만일 당신들이 나에게 어떤 수작을 부렸
다고 생각하거나 한다면 나는 도저히 당신들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
질 수가 없게 된다는 약점이 있소."
호위무사들 중의 일부는 그 말을 듣자 몹시 역겨운 듯한 반응을
보이며 소리쳤다.
"정말 더럽기 짝이 없는 개 자식이로군! 네녀석은 아마도 그 악
명(惡名) 높은 흑사방(黑沙幇)의 녀석들보다 더욱 더러운 녀석일
것이다!"
우두머리가 다시 손을 들어 그들을 제지하며 기이한 표정으로 금
몽추를 주시하더니 말했다.
"그럼 자네에게 그 자세한 내막을 가르쳐 주도록 하지. 우리 왕
소저(王小姐)께서는 아까 자네와 만나 대화를 나눈 이후에 갑자기
증세가 더욱 악화되셔서 지금 혼수상태나 다름없는 상황이시네. 자
네의 말은, 그러니까 자네가 그렇다면 우리 왕소저를 치료해 드릴
수가 있다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