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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성서 요약>
구약은 총 39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세부적으로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로 구성된다.
구약성서(또는 구약성경)는 원래 유대인의 경전으로, 유대교의 전승 및 영향을 받아 발생한 기독교에서도 또한 경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유대인의 성경은 대략 기원전 1500~400년대 사이에 오랜 세월을 거쳐 바빌로니아, 팔레스티나, 이집트 등의 지역에서 낱권들로 기록된 경전들을 모아 놓은 것으로서,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경전으로 받아들인 기독교에서는 오늘날 종파에 따라 다른 분류를 쓰고 있다.(개신교의 경우 총 39권, 로마 가톨릭 교회는 46권으로 분류하고 있다.)
창세기는 구약성서의 첫 권으로 ‘모세 5서(書)’ 또는 ‘율법서’라고 불리는 5권의 제1서로써 크게 2부로 나눌 수 있다. 1부는 만물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2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생애를 기록하고 있다.
출애굽기는 구약성서의 한 책으로, ‘모세 5경’ 또는 ‘율법서’의 제2서라고 하며, 내 용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기록이다.
레위기는 이스라엘인(人)의 종교의식 ·예배 ·일상생활 속에서 지켜야 하는 율법을 기록한 책.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땅을 향해 이동하던 시기의 내용이다.
민수기는 모세 5경(經)의 하나. 이스라엘인들이 시나이산을 떠나 모압평원에 이르기까지 겪었던 광야에서의 일을 담고 있다.
신명기는구약성서의 첫머리에 있는 ‘모세의 5경(五經)’ 중 마지막 책. 이스라엘인들이 가나안 땅에 도착하기 전, 모세가 야훼의 가르침을 마지막으로 전하고 죽기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여호수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호수아》의 중심인물로 본명은 호세아. 모세가 죽기 전에 모세의 승계자로 지명되어 이스라엘인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부터 바빌론 유수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를 개괄하는 예언서 가운데 첫 번째 책이다.
사사기는 구약성서에서 여호수아로부터 사무엘 시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한 책. 성경의 판관(현대의 재판관과 혼동되지 않기 위한 표현)과 그들이 고대 이스라엘을 통솔하는 동안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룻기는 헤브라이 원전에서는 ‘제서(諸書)’에 포함되어 중요한 축일(祝日)에 읽히는 5개 서(書)가 있으며, 이것을 메길로스(megiloth:두루마리)라고 하는데, 《룻기》도 그 중 하나로 5순절(五旬節)에 읽혔다. 저작 시기는 BC 4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타낙의 케투빔(Ketuvim)(“성문학(聖文學)”)과 구약성경의 성문학 가운데 하나이다.
사무엘 상,하는 구약성서 《사무엘》 등에 나오는 BC 11세기경 이스라엘 최후의 판관·사제·예언자이다. 성전에서 사제를 도와 헌신하다가 장성해서는 정치·종교의 지도자가 되어 이웃 강국인 블리셋 사람들의 압박으로부터 민족을 구해냈다.
열왕기 상,하는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 이스라엘의 역사서. 사무엘서 이후의 이스라엘의 역사, 즉 솔로몬으로부터 유다 왕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알리고자 함과, 하나님께 순종하면 흥하고 불순종하면 망한다는 사실을 왕국의 흥망성쇠를 통하여 알리고자 한 것이다.
역대 상,하는 2권으로 나뉘어 있으며, 헤브라이어 원전(原典)에서는 이 책이 권말에 수록되었다. 인류의 조상 아담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까지의 계보로 시작하여 바빌로니아 포로기까지의 신정(神 政)의 역사를 쓴 것이다.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본국으로 귀환하여 어떻게 성전을 재건하였는가를 쓴 것이다.
느헤미야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BC 5세기 중엽 유대교 재건의 기초를 확립한 인 물. 주된 내용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과 여호와 율법에 대한 믿음, 충성이다. 에스라를 통해 율법을 배워 실천하도록 강조한 내용이다.
에스더는 유대여성 에스더의 내용이며, 그녀를 인해 하느님의 인도와 보호하심 그 리고 섭리를 보여주며, 또 부림 절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근거를 제공 한다. 이 책은 바빌론 유수가 끝날 무렵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한때는 느헤미야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욥기는 욥의 고난을 통하여 하느님은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의 주(主)임을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한 구약성서의 한 편. 구약성서 가운데에 있는 지혜문학의 대표라고 할 시극(詩劇)이다.
시편은 구약성서 속의 대표적인 시가서. 헤브라이어로 tehillîm, 즉 ‘찬가’를 의미하며, 영어의 Psalms는 그리스어의 Psalmos에서 유래했는데, “현악기에 맞추어 노래하다”라는 뜻이다. 시편이 다윗 왕의 작품이라고 보고 있다. 시편은 5권 150편으로 나뉘어 있다.
잠언은 구약성서의 지혜문학에 속하는 책. 첫머리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금언 집'이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고대 이스라엘인(人) 사이에서 전해오던 교훈과 격언을 편집한 잠언집이다.
전도서는 솔로몬(기원전 4세기)이 그 노년기에 하느님과 인간의 근원적인 관계 회복에서만이 영원한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하여 기록한 구약성서의 한 책.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로운 삶을 강조하고 있다.
아가는 원제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뜻이다. 8장으로 된 짧은 시가서. 아가는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신학자 구미정은 술람미 여인을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의 시중을 든 궁중 여인 아비삭으로 추정한다.)에게 보낸 러브레터이다. 신부, 합창단, 신랑의 노래로 이루어져 있다.
이사야는 기독교 구약성서의 23번째 책으로, 총 66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전통적으로 이사야가 저자로 알려져 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하나님의 열방에 대한 심판/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말씀/바벨론 포로에 대한 위로의 말씀/종말에 대한 소망의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다.
예레이먀는 예언과 설교를 담은 예언서. 자신의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받고 박 해를 받으면서 기록. 자신의 설교들과 표적들을 통해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만이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선포.
예레미야애가는 애가는 성경의 구약성서 및 유대교 성서(타낙) 가운데 하나이며, 예레미야가 읊은 노래이다. 전통적으로 유대인은 예루살렘 신전의 파괴를 기념하는 단식일 티샤 바브에 이것을 읽는다.
에스겔은 구약성서 속의 한 책인 《에제키엘서》의 저자. '에제키엘'이라고도 한다. BC 597년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간, 많은 유대인 포로들의 신앙지도자 로서 신망을 한 몸에 지닌 사제에 관한 것. 에스겔/에제키엘의 예언을 모은 구약성서의 글 중 하나이다. 총 48장으로 되어 있다.
다니엘은 기원전 6세기에 살았던 선지자 다니엘의 행적과 예언을 기록한 선지서 로, 구약성서의 한 책이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저자는 다니엘이다. 유대 민족이 바빌론에 포로로 기원전 597년에 잡혀갔을 때 다니엘도 잡혀갔다.
호세아는 구약성서 12예언서 중 최초의 책. 이스라엘 북왕국의 예언자 호세아의 비극적 체험과 예언을 모은 것이다.
요엘은 구약성서의 12예언서 가운데 두 번째 책. 내용은 메뚜기 떼로 인한 재난과 회개의 촉구, 하느님의 동정과 약속, 거룩한 영의 부으심, 열국에 대한 심 판, 이스라엘에 대한 축복 등으로 되어 있다.
아모스는 시의 형식을 따라 아름다운 헤브라이어로 쓴 구약성서의 12예언서의 한 책. BC 8세기 중반 이스라엘의 예언자 아모스가 쓴 것으로 예언문학 중 가장 오랜 것이다.
오바댜는 오바댜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한 권. 12예언서의 하나로, 선지자 오바댜가 그의 예언을 기록한 것인데 에돔 족속의 오만한 죄에 대한 형 벌·에돔이 그 근친자에 가한 포학·이스라엘에 대한 회복의 약속 등을 내용으로 한다.
요나는 요나가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일과 고래의 배 속에서 기도한 일, 니느웨에 서의 전도와 니느웨 시민의 회개 따위를 기록하였다.
미가는 이스라엘 민족의 범죄와 이로 인한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그리고 그들의 회개와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을 기록.
나훔은 나훔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한 편. 니네베의 멸망을 예언한 것으로 문체가 아름답다.
하박국은 하박국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한 편. 하나님과의 대화 형식으로 쓰여 졌으며 신앙에만 의지하여 하나님의 구하심을 조용히 기다려야 한 다고 하였다.
스바냐는 스바냐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한 편. 유다의 타락과 유다 백성의 우상 숭배를 경고하고, 주(主)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주장하였다.
학개는 학개의 예언을 적은 예언서이다.
스가랴는 스가랴의 예언을 적은 것으로, 회개를 권하고 실생활에 있어서의 사랑과 진실, 평화를 설득하는 제1부와, 이방인 문제와 평화로운 메시아 상에 대하여 말한 제2부로 구성되어 있다.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들 가운데 순서상으로 11번째에 위치한다.
말라기는 말라기의 예언을 적은, 구약 성경의 한 편. 당시 사회도덕의 타락과 부 패를 비판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2예언서'로 알려진 작은 예언서들 가운데 순서상으로 가장 마지막에 위치한다.
<신약 성서 요약>
약속대로 신약은 新約, 새로운 약속으로 New Testament 라고 하며 구약의 약속대로 오신 예수님과 그분의 죽음, 장사, 부활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록하고 있는 27권(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목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으로 된 책이다.
마태복음은 왕국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며 구주이심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마태오 복음서라고도 한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노예이시며 구주이심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으며 마르코 복음서라고도 한다. 예수의 행적과 가르침을 담은 복음서이다.
누가복음은 죄 사함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시며 구주이심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생명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확장을 가져오신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심을 증명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사도행전은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승천 안에서, 그 영에 의해, 제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왕국인 교회들을 산출하기 위하여 번식되심을 담은 이야기이다. 또 루카 복음서를 편집한 루카가 사도 성 바오로를 옹호하기 위해서 편집한 신약성서이다. 1세기 교회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로마서는 하나님의 복음―죄인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만들어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여, 각지에 있는 교회로 표현되게 했다. 로마교회에서 유대기독교인들과 이방기독교인들이 서로 비판하는 문제를 해결하고, 로마의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제작한 사도 바울이 직접 쓴 일곱 개의 서간 가운데 하나이다.
고린전도서에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는 교회 안의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임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고린도후서에는 바울이 고린도 전서를 쓴 후 1년 후에 다시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와 새 언약의 사역과 그 사역자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갈라디아서에는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을 대치하시며, 종교와 전통에 상반되심과 바울이 그의 사도자격에 대해 유대주의자들에게 변호하고 복음과 유 대주의적 이단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며 이단을 강력히 비판하신 내용이 담겨 있다. 구원을 율법의 행위가 아닌 믿음 안에서 찾아야 함을 지적하시고 또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탈선의 기회로 삼아선 안 됨을 보여주신 내용이 담겨 있다.
에베소서에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비밀이요, 그리스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충만이 됨을 이야기 하고 있다.
빌립보서는 그리스도를 체험함과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활, 본, 목표, 능력, 비결로 취함. 복음과 기쁨이 핵심이며, 하나님과의 관계 뿐 아닌 다른 이들과의 관계에서도 복음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감옥생활의 고통에서 슬퍼하지 않고 성도들에게 기쁨을 보여주고 있다.
골로새서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비밀과 체현(體現), 교회의 머리와 조성, 성도들의 유업, 생명, 조성과 소망, 모든 적극적인 것들의 몸(실체)으로써 만유의 으뜸이신 만유를 포함한 분. 골로새서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보내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서신서이지만, 성서학자들은 바울의 제자들이 바울의 이름을 빌려서 쓴 위서로 이해한다.
데살로니가전서에는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고, 거룩한 생활을 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데살로니가후서에는 교회 생활을 위한 거룩한 생활에 관하여 격려하고 교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디모데전서에는 교회에 관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디모데후서에는 교회의 하락에 대한 예방 주사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디도서는 교회의 질서를 유지에 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다.
빌레몬서에는 빌레몬은 바울에게 전도를 받고 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노예 오네시모는 재물을 갖고 도주를 하다 바울을 만났으며 그는 오네시모에게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돌려보낸다. 그편지의 내용이 빌레몬서이다. 빌레몬과의 관계를 초월하여 형제로서 환영할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히브리서에는 그리스도는 유대교와 그것과 관련된 모든 것보다 뛰어나시며, 그분께서 완성하신 새 언약은 옛 언약보다 더 나음.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그리스도와 우리를 구원하심을 말하고 있다. 그 첫째는 예수는 완전한 대제사장이고 제물이다. 두 번째는 예수의 인성에 대해서 다룬다. 셋 째는 히브리서는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지만, 구원을 향한 인내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넷 째는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기꺼이 죽을 수 있는 것을 말하고,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기꺼이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
야고보서에는 야고보 서간은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디아스포라(해외거주 유대인)에게 쓴 편지로, 신약성서 중 한 권이다. 그리스도인의 실행적인 온전함. 격려. 잘못된 자세 시정에 관해 쓰여져 있다.
베드로전서에는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위로와 격려에 대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베드로후서에는 신성한 공급과 신성한 통치에 관한 이야기들이 쓰여져 있다.
요한일서에는 신성한 생명의 교통. 사도요한이 그노시스주의의 거짓을 논박하고 구원의 확신을 위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쓰여져 있으며, 첫 째로는 신성한 생명과 신성한 고통. 두 번째로는 기름을 부우심. 셋로 째로는 신성한 출생과 신성한 씨. 넷 째로는 하나님께로서 태어났으므로 악한 자가 만지지 못함에 대해 쓰여져 있다.
요한이서에는 이단에 참여하는 것을 금하고,기독교회의 전도방식으로 그노시스주의의 이들이 이단사상을 전파하는데 이에 협조하지 않도록 권면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요한삼서에는 진리 안에서 동료 일꾼들을 격려함. 디오드레베가 사도요한에게 도전하며 요한의 전도자들을 거부하였다. 이러한 디오드레베를 책망하기위해 기록되어 있다.
유다서에는 믿음을 위하여 싸움. 거짓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으로 교인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하였고 환상을 지나치게 의존하며 교인들을 타락시킴. 주된 내용은 이단이 받을 심판과, 교회가 이단을 배척하고 바른 신앙을 갖기를 훈계하는 내용이다.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따른 행정의 중심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궁극적 승리 제시를 통해 위로, 용기와 소망을 주려는 것이 목적이다. 제 1부는 예언자적 기질을 취하고 있으니, 약간의 서언이 있은 후에 하느님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들로 나타나고 제2부는 엄격하게 묵시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제 2부는 또 다음의 묵시적 주제별(최후의 심판, 아마겟돈, 사탄의 패배,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환상)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가 경험한 기독교에 관하여>
정말 누구나가 한 번쯤은 경험해 봤을 기독교의 전도력은 뛰어나다. 어릴 적, 아마도 유치원 혹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 일 것이다. 매일 일요일 아침이면 교회버스가 우리 동네에 와 교회에 다니는 친구들을 태워가곤 했다. 어린마음에 친구들과 더 놀고싶고 따라가고 싶어 버스에 올랐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화기애애한 그 분위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직도 느끼지만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특히 초등부 선생님들은 참 다정하고 심성이 착한 것 같다. 어찌 되었든 난 그 후 집과 가까운 한 교회에 도착하게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교회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예배도 드리고 식사도 하고 성경공부도 해보게 되었다. 그때는 성경의 내용이 마치 환상적인 마법과도 같게 들렸고 모두가 기도드리는 상황자체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목사님 한 분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여 예배드리는 모습이 말이다. 그 후로 계속해서 조그마한 교회버스에 몸을 싣고 교회에 다녔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면 너무나도 설레이게 했던 달란트시장이며 부활절에 나누어주는 예쁜 그림의 달걀들, 다 같이 큰소리로 부르는 찬양 또한 큰 매력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교회에 무언가 흥미를 잃은 것일까, 자주 교회 나가지 않게 되었다.
아마도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은 탓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교회에 중.고등부는 학생들은 예배가 끝난 뒤에 모여서 탈선의 행위를 한다거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교회를 식사하러 간다거나 서로 만남의 장소(미팅과 같은)로 생각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가 속된 말로 날라리처럼 들렸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들과 교회다니는 친구들에 대한 편견이 생겼었다. 더욱이 내 친구 중 한명이 결정적으로 왜 교회에 나가냐는 나의 질문에 잘생긴 오빠들이 많아서, 교회가면 맛있는거 많이 준다와 같은 정말 말 그대로 신앙적이지 못한 말을 해 주었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나의 편견은 굳어졌다. 금요일 혹은 토요일이면 방과 후에 학교 앞에서 기타를 들고 찬양하러 나온 교회 사람들을 보며 '저 들도 분명 내 친구와 같은 이유로 교회에 다니는 거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어 버렸고 명지고등학교를 나온 나에게 종교수업이란 무차별적인 전도행위로 밖에 받아드려지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계속 될 줄 알았던 어느 날 기독교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떨치게 해준 사건이 일어났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 날. 고등학교 3학년 4월이었다. 이 때 정말 나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아에 대한 고통을 격고 있었다. 고3이라는 엄청난 압박과 그에 따라 온 정체성 혼란이 정말 온 몸을 뒤흔들 정도로 복잡하게 엉켜 있었다. 이런 내가 의지 할 수 있는 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아닌 친구들이 었다. 그 중에 내가 말하고 싶은 친구는 '하나'이다. 그녀는 나와는 중학교친구로 고등학교는 따로 배정되었지만 가끔씩 연락을 해도 전혀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그런 친구 었다. 또 그녀는 절신한 기독교신자로 위에서 말한 그런 이유가 아닌 진심어린 신앙심을 가진 깨끗하고 너무나도 순수한 심성을 가진 친구이다. 나는 이런 카오스상태에서 벗어나길 원했다. 그래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오랜만에 거의 1년만에 전화한 탓인지 조금의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이야기를 하다 울음을 터트렸다. 그녀는 한걸음에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그녀는 많이 놀란 듯 해보였다. 그리고는 내이야기를 정말 놀랄 정도로 귀담아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기도에 집중하게 되었다. 하나는 하나님께 나에 대한 진심어린 구원을 바랬다. 내가 지금 격고 있는 혼란에서 구원하시길 간절히 기도 했고 그 외에도 나의 건강과 학교생활 그 밖에 자신이 모르는 나의 아픔까지도 말이다. 그렇게 둘이서 눈을 감고 20분 정도 기도 드린 것 같다. 20분의 시간이 정말 짧게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함께 울어준 그 친구의 기도는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마음은 평안을 얻었다. 다른 친구들과의 대화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 경험을 통해 바뀐 것이 있다면 기독교에 대한 내 오해와 편견이라고 하고 싶다. 그녀는 내게 그녀의 종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카톨릭신자인 나에게 적대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게 있어서 기독교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내 친구. 순수한 믿음과 강한 신앙심, 곧은 의지와 모두를 포용하는 사랑. 이것이 기독교라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서로 안에서 행복을 나누는 그들은 틀림없는 주님의 자녀들이다. 내가 만약 카톨릭신자가 되지 않았다면 분명 기독교에 입문하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독교만의 색깔은 뚜렷하다. 그들 중에는 앞서 말한 비신앙적인 이유로 교회를 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하나의 예일 뿐이다. 함께하는 기쁨을 아는 그들은 전도를 통해 많은 이들과 이를 나누려고 하고 누구보다 타인에 대한 애정 어린 눈길을 가진 사람들이다. 일요일이면 현실에서 벗어나 교회안에서 하나됨을 느끼는 그들의 소속감은 보는 이들 또한 안정감을 준다. 성경의 내용 뿐만이 아닌 삶속에서 느끼는 많은 감정들과 지혜를 공유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여기는 그들을 종교가 없는 사람들도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종교가 없는 사람들에게 기독교는 흔하지만 생소하고 거대한 집단으로서 조금은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여지고 있음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봐야만 한다. 신념을 가지고 믿는 이들에게 잘 모르는 것은 큰 영향이 없다. 하지만 틀리게 알고 있는 것은 그들에 대한 정신적인 공격과도 마찬가지이다. 나도 종교가 있기 때문에 알고 있다. 종교 대한 비판이나 잘못된 오해를 가지고 내가 가진 신앙심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정말이지 마음이 아프다. 내가 간절히 믿고 힘이 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이 것이 다른 이들에게 그런 식으로 밖에 보여지지 않는 것인가.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단기간에 그들의 오해를 풀 수 없는 것은 알지만 그들도 우리 종교인들을 조금은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럼 마지막으로 기독교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기독교란 같은 믿음,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의 행복을 함께하는 안식처이다. 그들 안에서 '기독교'란 단어는 그 자체로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고 의지할 수 있고 걱정과 근심을 사라지게 해주는 구원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로 하여금 사람의 성격도 온화하고 순수하게 바뀔 수 있으며 내게 큰 힘을 준 것처럼 누군가에게 희망의 빛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원의 매개체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이건 나쁘게 본다면 그 안에 감춰진 그들만의 색깔을 찾을 수 없다. 내 슬픔과 기쁨, 걱정과 행복을 나눌수 있는 친구와 같은 것이 종교, 기독교라고 생각하며 이상 레포트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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