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삶의 긍정적 인식과 서정적 자아 --최정은 시집『시간을 앞당긴 남자』 김 송 배 (시인, 국제펜한국본부 고문) 1. 삶의 긍정적 인식과 성찰의 탐색 현대시의 위의(威儀)에는 우리 인간들이 한생을 살아온 궤적(軌跡)이나 그 편린(片鱗)에서 새롭게 지향점을 탐색하는 가치관의 정립을 본령(本領)으로 삼는 시법이 대종(大宗)을 이루는 점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이러한 시 창작상의 흐름은 그 시인의 체험이 시적인 발상에서부터 이미지의 추출 그리고 주제의 투영까지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의식의 발현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 시인이 간직한 체험의 중심에는 그가 천성적으로 전승(傳承)되었거나 살아오면서 주변의 생활에서 체득(體得)한 상황들이 상상의 세계를 설정하는 등 인생역정의 표현이며 정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인들은 이와 같은 체험의 시학을 중시하는 경향을 엿볼 수가 있는데 이는 시적으로 생성하는 인간의 정(情)이 대체로 오욕(五慾)과 칠정(七情-희노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慾’)에서 인생관이나 가치관으로 승화하는 과정에서 분사(噴射)하는 정감이 바로 시적으로 형상화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여기 최정은 시인이 상재한 첫 시집『시간을 앞당긴 남자』에서 먼저 삶에 대한 체험요소를 상기하는 것도 이러한 체험에서 생성된 시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작품 「야그 레니저」중에서 읽을 수 있듯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 내 몸에 적신호가 왔다. / 왕진 온 의사가 몸을 갈라놓고 / 장기(臟器)하나를 갈아야 한다며 / 수입품이라 비싸다고 했다 / 빈 통장 들고 돌아서는 / 삶의 비탈은 가파르기만 한 걸까?’라는 삶의 현장에서 그 비애를 인식하는 과정이 바로 시적으로 화해하는 해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화들짝…! 야단치시던 그 모습이 홑청을 건네받는 순간 내 머리에 언뜻 스치는 아 – 내가 푸르던 날에는 그걸 몰랐었구나. 하루에 한번쯤은 나를 되돌아 볼일 --「당목홑청」중에서 여기에서는 앞에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 내 몸에 적신호가 왔다.’는 인식이 이제서야 진정한 성찰의 염원이 발현되고 있다. 그것은 ‘아 – 내가 푸르던 날에는 / 그걸 몰랐었구나. / 하루에 한번쯤은 / 나를 되돌아 볼일’이라는 어조(語調)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설정되고 있는 것이다. 최정은 시인은 이러한 자애(自愛)의 심적 변화는 외적인 사물과 내적인 관념의 융합에서 이미지를 창출하거나 시적인 상황을 전개하는 시법에서 그가 진정으로 염원하거나 희망하는 메시지는 작품 「질경이」중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삶의 길은 가파르다 했나요? / 햇볕은 일없다 / 축축한 아파트 뒤편 혹은 내 몸보다 / 수십 배 건장한 들풀 / 내가 오를 수 없는 저 높은 길은 / 길대로 맞닿아 이어지는 4월 / 나도 덩달아 낮은 곳에 피어나 / 파랗게 여린 꿈꾸고 있다.’는 ‘질경이’의 행색(行色)은 바로 ‘나도’라는 의인화가 자신의 내면에서 분출하는 진실과 상관성을 갖게 하고 있다. 그는 다시 작품「중년을 지나서」중에서 ‘잡을 수 없었던 사랑도 / 사무친 그리움에 울컥했던 / 서러운 날들의 연민도 / 붉은 노을 앞에 / 추억처럼 남아 있다 / 이 가을 끝자락 /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이 있어 / 내일은 더욱 아름다운 / 날이 오리라 믿고 싶다.’는 간절한 어조에서 이해할 수 있듯이 그의 심중(心中)에 충만해 있는 기원의 의지가 ‘중년’을 넘어서서 비로소 궁극적으로 발현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서울 속을 채우고 있는 국토의 심장부 전동차가 머무르고 잠시 쉬었다 가는 곳 삶에 지치던 여름 모든 맥을 이어가고 있는 거기에서 수족의 생활 터전을 찾았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어둠에서 숨죽이는 울음들이 있다고 했다 이제 기억 한 다발 가슴에 묻고 왕십리 역 만남의 광장 늘어 서있는 화폭들 옆에 내 남은 꿈을 세우고 싶다. --「왕십리」전문 그렇다. 최정은 시인은 ‘삶에 지치던 여름’ 어느날 ‘삶의 터전에서’ 직면한 ‘나보다 더 어려운 / 어둠에서 숨죽이는 / 울음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잡다한 실재(實在)의 삶 가운데는 스스로 자아들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그냥 타아(他我)로 어물쩡한 무위(無爲)의 존재로 안타까운 삶의 형태를 새롭게 접하게 된다. 그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하는 심경의 변화를 표출하고 있다. 바로 ‘내 남은 꿈을 세우고 싶다.’는 강렬한 어조로 기원의 의지를 표명하는 그의 심저(心底)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사모곡(思母曲)의 순정적 선율과 사랑 최정은 시인에게서 간절한 주제로 형상화하는 대전제가 바로 ‘어머니’라는 거목이 내면 깊게 버티고 있다. 그가 당면하는 실생활(real life)에서 상념(想念)하는 관념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그가 착목(着目)하는 모든 사물에서도 ‘어머니’와 상관하는 시적 형상화로 선명한 진실이 발현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다. 그는 ‘제 맛 찾아내지 못하는 / 감칠맛 없는 반찬 / 다지는 파의 독한 눈물 / 맛깔난 양념을 찾아 / 밤새 독백으로 / 닦달하고 깨트린 접시 / 먼 하늘 쳐다보는 / 들썽한 마음에 / 발 돋음 해도 잡히지 않는 / 둥근 쟁반 하나 / 어머니의 젊은 날 / 웃는 모습이 담겨 있다(「접시를 깨는 여자」전문)’는 사모곡의 선율에서 감응(感應)하는 것은 누구나 공통으로 간직한 사모(思慕)의 정감이 진솔하게 현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의 심중에는 ‘어머니’에 대한 회상(回想)이 바로 그의 시적 소재와 주제로 승화하면서 더욱 애절한 호소력이 가미된 시법의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최정은 시인의 사모곡은 대체로 ‘어머니’와의 교감에서 생성하는데 ‘어머니의 젊은 날 / 웃는 모습이 담겨 있다’거나 ‘명주두루마기에 묵은 얼룩들 / 폭마다 뜯고 다듬이질하여 / 결이 고운 창호지처럼 / 윤기 나는 조각들을 붙여 / 열 식구 가장의 입성을 / 땀땀이 꿰매던 그 정성 / 어머니의 고단했던 명절 / 전날이 내 일상에 포개졌다(「명절 전날」중에서)’ 그리고 ‘해질 무렵 지친 썰매 들고 / 오면 언 볼과 손을 문질러주던 / 어머니의 보드랍던 온돌은 / 추억이 되고 전기장판이 / 내 얼음장을 녹여주고 있다.(「어머니의 아랫목」중에서)’와 같은 순정적인 선율로 들려오고 있어서 감미(甘美)로운 흡인력을 배제하지 못하는 시적 마력을 발견하게 한다. 이 밖에도 그는 ‘멀리 가물거리는 수평선 / 그 너머를 바라보고 있는 / 솔밭에 등 굽은 해송 한그루 // 어머니가 아들의 만선을 / 기다리고 있(「마우스의 그림」중에서)’거나 ‘눈부신 가을 햇살처럼 / 푸근한 웃음 담아내던 어머니 / 새우처럼 굽은 등마루 / 닳은 연골의 저린 아픔이 / 새롭게 자라나고 있다(「새우젖과 어머니」중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의 재생은 어머니를 통한 그의 내면의식에서 발산하는 시적진실을 간명(簡明)하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순백의 찻잔에 마른 잎 애증(愛憎)으로 다시 피는 홍조 비탈진 산기슭에 세찬 비바람이 흔들어도 야윈 가지에서 곱게 피어났던 금빛송이 일곱 무지개 곱게 걸어두고 어릴 적 꿈 키우던 그 자리로 되돌아가신 어머니 고운 꽃잎 은근한 온기로 안개처럼 휘감아 돌아 내 속에 스며드는 쌉싸래한 산골 깊은 맛 --「국화차」전문 그렇다. 최정은 시인은 ‘국화차’ 한 잔을 마시면서도 ‘어릴 적 꿈 키우던 / 그 자리로 되돌아가신 어머니’와 만나서 대화를 한다. 찻잔 속의 ‘은근한 온기’에서 그가 감지하는 모정(母情)의 순도(純度)는 그의 속으로 스며들면서 ‘일곱 무지개’로 선명하게 현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모정은 이러한 단순형의 사유(思惟)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모정에서 재생하는 불망(不忘)의 이미지가 서정적 자아로 전이(轉移)하는 시법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그러하듯이 작품 「은방울 꽃」중에서 ‘겨울가지에 걸어놓은 / 삶의 여운을 / 기다려주는 은빛초롱 / 짙은 입술이 아니어도 / 열정의 방울소리 / 빛바랜 꿈 여물 때까지 / 어머니란 이름표를 달고 / 있어야할 당신입니다'라는 단정적인 어조로 ’어머니‘에 대한 존재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는 다시 ‘꽃잎 사이마다 / 은방울 구르는 소리 / 가르침의 / 꽃술로 담겨 있을 겁니다.’라는 그의 시적 진실을 명징(明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내 어릴 적의 꽃도 / 엄마의 코에는 냄새가 없었을까? / 그 의문을 풀기도 전 엄마는 / 당뇨에 떠밀려 먼 길 가셨다.(「애기똥풀」중에서)’거나 ‘그 날 이후 / 검불조차 비웃던 어머니를 두고 / 돌아서던 발등에 쇠구슬이 / 투덕투덕 떨어졌다(「딸이라는 이름」중에서)’는 어조와 같이 그가 지울 수 없는 사모곡은 지금도 그의 심저에서 울려퍼지고 있는 것이다. 3. 친자연적인 서정의 시간성 최정은 시인은 우리 주변에서 생성하는 일상의 생활 일부와 지천으로 널려있는 자연환경에서 영감을 얻거나 실제로 체험한 부분들이 작품으로 형상화하는 서정시를 선호하고 있다. 그의 주변 산야(山野)에서 흔하게 대할 수 있는 꽃들의 미적(美的) 이미지에 감응하면서 흡인하는 시법에 그는 매료(魅了)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선 꽃들의 잔치에서 자신의 지적사유를 투영하면서 미감(美感)의 선율에 감전(感電)된 듯한 그의 시적 상황 설정이나 전개는 친자연의 고즈넉한 풍경이 바로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고 있다. 이른 봄 물오른 가지마다 뾰족한 송곳니로 햇살 먹고 순한 바람에 온기 품고 막 깨어나 파닥이는 생의 날개 짓 갑자기 후두둑 때리는 굵은 빗방울에 젓는 노랑날개 시샘하는 꽃샘추위에 홍역을 앓고 있다. --「개나리」전문 친구네 마당 한 쪽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고목에 그네 타는 송아리들 달콤한 보라색 향기를 뿌렸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잔잔한 웃음으로 기다려주던 애잔한 수수꽃다리 봄의 향기 나누던 임을 닮았다 --「라일락」전문 이 두 편의 꽃에서는 지극히 안온한 최정은 시인의 순박한 정서가 넘친다. ‘개나리’나 ‘라일락’은 봄이면 화사한 맵시와 함께 그 향취(香臭)를 제공하고 있어서 계절의 이미지가 바로 시적인 향기로 온 세상에 번지고 있다. 대체로 자연은 시간성과 동행하게 되는데 4계절에 따라서 변화하는 양태는 많은 사유를 확산하면서 시적인 메시지로 소재와 주제를 감응시키고 있다. 그는 봄이라는 계절의 상징인 ‘개나리’에서 ‘순한 바람에 / 온기 품고 막 깨어나 / 파닥이는 생의 날개 짓’이라는 생명성의 강조를, ‘라일락’에서는 ‘애잔한 수수꽃다리 / 봄의 향기 나누던 임을 닮았다’는 어조가 시간과 삶과 자연이 동체(同體)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의 현상이 바로 그 속에 현현되어 있는 것이다. 다시 그는 작품「봄비」에서 ‘창문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 / 겨우내 녹여내지 못한 / 나의 눈물로 / 불같은 사내의 심상을 잠재우고 / 침묵이 깊어가는 밤’을,「백목련」에서는 ‘도시의 소음에 놀라 / 단아하게 떨어진 자리 / 녹물이 배여 들어 / 진한 그리움 새겨둔다.’는 봄의 이미지는 생명 탄생의 범주를 넘어 순정한 사랑의 언어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최정은 시인은 계절의 이미지를 고르게 응시하고 있는데 여름은 ‘그 무덥던 여름 / 비좁은 대문옥상 바닥 / 지루한 긴 장마에 / 웃자란 꽃대가 힘에 겨워 / 흐느적거렸다(「초롱꽃」중에서)’ 또는 겨울은 ‘겨우내 얼었던 마음도 / 고단한 내색도 없이 / 노란 웃음 잠시 왔다가는 / 애절한 봄의 노래(「복수초」중에서)’ 등에서 계절미를 재확인하고 있다. 그러나 최정은 시인은 가을을 가장 좋아한다. 그의 내면에 흐르는 의식은 바로 가을이 던지는 풍요와 결실을 찬양하고 있다.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단풍의 유혹이 / 너무 야했나 보다 // 가을비가 추적추적 / 발목을 잡는다. // 수많은 발 길에 / 상처 입을까봐 // 자연도 지레 겁먹고 / 눈물 뿌리나보다(「단풍의 유혹」전문) -논둑 콩대에 / 달려있는 콩깍지 / 펄펄 끓는 태양에 / 데인 입 벌리고 / 타닥타닥 / 밭머리 멍석에 / 널어놓은 산수유도 / 발갛게 제 몸 익혀가는 / 가을날 오후(「가을날 오후」중에 서) - 넓은 들 날빛에 / 누렇게 익은 벼 포기 / 고개 숙인 겸손함 / 가을걷이할 날 기다린다. (「벼꽃」전문) 이렇게 시적 정감은 우리 주변에 실재(實在)하는 사물과 관념의 교합(交合)으로 많은 사유와 정서를 제공하고 있어서 순정의 시적 공감을 흡인하게 한다. 고 김준오 교수의 『詩論』에 의하면 가장 전통적인 자연관은 자연이 그 존재 근거를 신이나 인간정신에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정서나 사회에 좋은 혜택을 주는 낙관론이 가능해진다. 이는 자연 그 자체보다도 자연에 대한 시인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진다. 감상적 오류라고 하는 자연의 인격화 거기에는 시인이 모든 자연을 자신 속으로 끌어와서 그것을 내적 인격화하는 동화(同化-assimilation)가 있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원리 곧 투사(投射-project)가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론에 따르면 최정은 시인의 자연관은 동화와 투사 그 두 원리에 합당한 자연관으로 시적 형상화를 탐색하고 있다. 그가 자주 취택하는 꽃들이거나 4계절의 변화에 명민(明敏)하게 반응하는 시법의 긍정적인 향취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시간을 앞당긴 남자’와 ‘침묵의 소리’ 최정은 시인에게서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사모곡에 이어서 생성하는 사부곡의 이미지이다. 이것이 어찌보면 한 가정사의 일상적인 스토리 같지만 깊이 있게 전체를 음미해보면 이러한 체험들이 재생해서 바로 시(詩)라는 결정체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의 밤은 열차나 고속버스 등받이를 빌려 몸을 맡기고 눈뜨면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고단한 낮달의 아버지가 되었다 마음대로 늘이지도 못하는 다리 발바닥은 덕지덕지 구두창이었고 한숨에 매달렸던 짐 보따리 하나 둘 내려놓으며 기지개 켰다 먼 여행 길 제 식구 남겨 놓고 감지 못한 눈 허공에 멈춰있고 쌓였던 휘파람 한 번에 토하며 그 먼 길도 불혹에 앞당겨 버렸다. --「시간을 앞당긴 남자」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된다. 여기에서도 ‘어머니’와 동일한 부정(父情)의 이미지가 행간(行間)에서 어른거리면서 ‘고단한 낮달의 아버지가 되’지만 이제는 ‘먼 여행 길 제 식구 남겨 놓고 / 감지 못한 눈 허공에 멈춰있고 / 쌓였던 휘파람 한 번에 토하며 / 그 먼 길도 불혹에 앞당겨 버렸다’는 허탈과 상심의 여로(旅路)를 떠나고 있다. 이러한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안타까움(혹은 슬픔)들이 모여 최정은 시인에게 인생 최대의 희망이 집결하는 「침묵의 소리」로 재생되었는지도 모른다. ‘적막이 내려오는 우울한 밤 / 빈 하늘 외로이 지키는 / 유난히 큰 별 하나 / 늦은 시간 잠 못 들고 / 서성이는 창을 두들긴다. / 돌이킬 수 없는 지난 날 / 차고 매운 아픔의 시간들을 / 켜로 쌓아 둔 빈항아리 / 여자는 그늘 바람꽃에 날려 오는 / 시를 주워 담는다’는 그의 잠재한 진솔한 심중의 시적원류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체험의 시학이란 말을 이해한다. 인생체험이 바로 시적 이미지와 상관하는 작품들을 이해한다. 체험에서도 직접 체험 즉 여기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부모와의 사별(死別)은 우리 시인들이 모색하는 소재나 주제의 근원이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최정은 시인의 체험은 시간과 공간의 현실적인 실생활을 통해서 우리 인간들의 애환(哀歡)을 적시하는 작품들을 많이 창작하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시적 여망은 다음과 같이 형상화하고 있다. 성동구청 작은 공원 마당 언저리 빛바랜 추억 같은 초가원두막 할머니, 할아버지, 옹알이 손자, 산들바람 나들이가 정답다 지붕에 호박, 박 넝쿨 얽혀 한낮 뙤약볕에 즐거운 일광욕 그늘 차양 막에 수세미의 쭉 뻗은 몸과 조롱박의 예쁜 몸 자랑하는 모델선발 대회가 무르익고 더위를 식혀주는 큰 나무마다 껍질처럼 달라붙어 여름의 절정을 노래하는 매미처럼 소나무그늘 밑에서 시 한 편 갈무리 하고 싶다 --「공원 풍경」전문 최정은 시인은 ‘주워담은 시’를 이젠 ‘갈무리 하고 싶다’는 기원의 의지로 현현되고 있다. 그가 응시하는 ‘성동구청 작은 공원’에는 다양한 외적 사물들이 그의 관념으로 형상화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거기에는 ‘빛바랜 추억 같은 초가원두막’이 있고 ‘지붕에 호박, 박넝쿨 얽혀’ 있는 ‘마당 언저리’에 ‘할머니, 할아버지, 옹알이 손자, / 산들바람 나들이가 정답’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전원적인 정경(情景)에는 그의 시각(視覺)에서 뿐만 아니라, 청각(聽覺)(‘여름의 절정을 노래하는 / 매미처럼’)까지도 복합적으로 시정(詩情)의 흥취(興趣)를 더해주고 있어서 그가 여망하는 ‘시 한 편’의 광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구멍 난 몸뚱이 / 허름한 문학사무실 벽 / 붙박이가 되어 / 가공된 두 팔로 시간 보채며 / 여물지 않은 시와 소설의 / 감성 일깨우고 있었다.(「꽹과리 시계」중에서)’는 정황(情況-situation)과 같이 그의 ‘시와 소설’ 등 문학적인 연민이 궁극적으로 시인으로 인생의 변모를 성취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최정은 시집 『시간을 앞당긴 남자』의 읽기를 마무리해야 한다. 그는 현실적 삶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그의 사유의 원천(源泉)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思考)는 자신의 인생 체험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그 사유의 지향점이 어디인가를 먼저 회고(回顧)가 필요하다. 이것은 ‘나’라는 자아의 인식과 성찰이 가장 중요한 관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아 인식은 바로 그가 주창(主唱)하는 사모곡이다.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존재의 의식이 중요한 명제(命題)로 남아 있겠지만 최정은 시인의 모정의 남다르게 부각하고 있음을 그냥 지마치지 못할 것이다. 그는 다시 외적 사물인 자연 환경에 대한 연민이 그의 시법에서 크게 작용하고 있다. 동화냐, 투사냐는 그가 앞으로도 분명한 시적인 지향점으로 발전해야 자연 서정에 대한 발원과 순정적인 시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가 ‘시간을 앞당긴’ 가족적인 외연(外延)이 그가 시적으로 승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일찍이 프랑스의 상징주의 비조인 C. P. 보들레르는 시의 목적은 진리나 도덕을 노래하는 것은 아니며 시는 다만 시를 위한 표현이라고 했다. 그리고 기쁨이든 슬픔이든 시는 항상 그 자체 속에 이상을 좇는 신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 ‘신과 같은 성격’이 바로 우리 시인들이 탐구하는 시적 진실임을 자각하면서 보다 지적으로 추구하는 주제의 투영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축하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