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제311호 겸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남산
2018.8.16
신라고도 경주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잠시 틈을 내어 남산 금오봉에 등산을 하고 왔다.
경주시 배동과 남산동 일대에 위치한 남산은, 신라의 왕도였던 서라벌의 남쪽에 솟아있는
금오산과 고위산, 두 봉우리를 비롯하여 도당산, 양산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를 통틀어 남산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다. 두 곳 모두 높이가 해발 5백 미터 이하로써
높은 편은 아니지만, 동서로 가로지른 길이가 약 4㎞,남북의 거리는 약 8㎞에 이른다.
신라가 불교를 국교로 한 이후 이곳은 부처가 머무는 영산으로 신성시 되었으며 수많은
불적들이 산재해 있다. 불교 관련 유적 외에도 남산에는 신라의 건국전설이 깃든 나정,
신라 왕실의 애환이 서린 포석정터, 서라벌을 지키는 중요한 산성인 남산신성등
왕릉과 무덤, 궁궐터 등을 망라한 많은 유적들이 간직되어 있다. 쁜만 아니라 남산에는
여러가지 전설과 설화들이 곳곳에 깃들어 있어 마치 야외박물관이라고도 할 만큼 신라의
예술문화가 살아숨쉬고 있는 곳으로,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주차장에서 금오봉 정상까지(2.6㎞) 이정표 겸 안내판
경주 배동삼릉
이곳에는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 곳에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아달라왕은 재위당시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으며
이에 백제가 화친을 오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또한 왜에서는 사신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선덕왕은 환강왕의 사위로 효공왕이 자손없이 죽자 사람들의 추재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중에는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은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두차례에 걸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굴식돌방무덤으로써 돌방 벽면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신라의 무덤으로서는 처음 발견된 것으로 주목된다.
경명왕은 선덕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동안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치기도 하였다.
삼릉곡 제1사지, 탑재와 불상
계곡에 흩어져 있던 것을 한곳에 모아 정비하였다.
앉은 불상은 약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상으로 보인다.
옷의 주름 조각양식 등으로 보아 9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제2사지 석조여래좌상
높이 1.6 미터, 너비 1.56 미터로 옆 계곡에 묻혀있다가 1964년에 발견되어 옮겨놓은 것임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남산에서는 보기드문 선각육존불이다. 두 개의 바위면에 새겨져 있다.
오른쪽 암벽 위에는 이들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당을 세운 흔적이 있다.
경주 남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남산의 삼릉계곡 중부능선에 자리하고 있는 이 불상은,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석불좌상으로. 불상은 불두돠 불신을 따로 제작하여 결합하였다. 발견 당시 얼굴의 파손이
심했기 때문에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 정비하여 뺨과 코 입 등 대부분을 복원하였다.
불상의 몸은 당당하면서도 안정감있는 신체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가사는 왼쪽 어깨에만 두르고 있고
정강이에서 발목으로 옷주름이 비스듬히 흐르고 있다. 이 불상은 풍만하면서 당당하고 안정감있는
신체표현, 대좌와 광배의 간결하면서도 섬세한 조각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제6사지 마애선각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터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뒤쪽 30여 미터 바위 절벽면에 얼굴부분만 선각된 마애불상이 있는데
훼손이 심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바위 절벽 중간에는 191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여래좌상이 있었던 터가 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남산에서 두번째로 큰 마애불상으로 9세기 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임
해발 468미터의 금오봉 정상
금오봉과 고위봉을 합쳐서 금오산이라 하는데 이곳은 그중 한곳인 금오봉 정상이다.
상사바위와 포석곡, 제9사지 석조여래입상
상선암 뒤로 높이 솟아 있는 깎아지른듯한 바위봉우리에 1856년에 새긴 '산신당'이라는 명문이 있다.
상심은신라49대 헌강왕이 포석정에 행차했을 때 왕 앞에 나타나 춤을 추기도 했었다.
바위 동쪽 면에는 남근석과 기도용 감실이 있는데 상사병에 걸린 사람이 빌면 영험이 있다고....
바둑바위
제9사지 선각마애불
바위면 전체에 균열과 마모가 심하여 세부 표현을 자세하지 않다. 10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임
비가 와서 올라가는 계곡 내내 폭포가 많이 형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