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
내동 종봉장 골짝엔 음흉한 계획이 꿈틀거렸다.
새벽 03:30분에 출발해서 종봉장에 도착하니
4시 좀 안된시각, 흐린날씨 때문인지 어둠이 물러나질 않았다.
그제 요절한 유회장 무덤이 아직 흙도 마르지 않은채 지켜보는데
캄캄한 어둠을 헤치고 슬금슬금 벌통앞을 기면서 소문막이 작업을 했고
뒤에서 누가 머리채를 당기는 듯 한 그 스잔스런 기분 !!
한 시간쯤 지났을까 소문막이 작업이 막 끌날무렵 채밀을 도와줄
동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날이 새면서 밤꿀 사냥에 들어갔다.
언제부턴가 잡화꿀, 밤꿀을 뜰때면 늘 전체 봉군에 소문을 막으면
도봉이 거의 붙지않고 아카시아 꿀 딸때와 비슷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 생긴 버릇이다.
지난해 밤꿀 뜰때는 스티로품에 들어있던 만상군의 소문을 막아
폭 삶은 아픈기억도 있지만...... 올해는 채밀전인 어제 만상군은
모두 분봉을 쪼갰기 때문에 잘 끝났다.
팔공산 자락에 쭈그리고 앉아 벌들이 물어오는 밤꿀을
넘보기 20여일째, 한 통에 1되 채 못되는 꿀이 모여져 있고
나는 오늘 아침에 이 꿀을 훔쳐야 했다.
훔친다기 보다는 강탈(强奪)에 더 가깝다.
기대치 이하의 흉밀 !! 조금 주심에도 또한 감사하며
주변 분들과 나눔 할 예정이다. 밤꿀이 적게(군당 1되)나온
원인을 분석해 볼 때 근본적으로 벌의 세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밤꿀을 받지않는 종봉군(왕대 생산군) 30통이 초 강군으로
한 봉장에 있으면서 역봉이 그 곳으로 쏠려서 밤꿀 생산군의
세력이 상대적으로 약해졌고 유봉을 붙어 봉판으로 분봉을
시켰기 때문에 내역봉마져 빈약했다.
결국 한 손에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한 내 욕심이 미련했다.
긴 장마를 예측한 꿀벌들은 식량 지키기에 안간힘을 다 쏟고,
나는 이 꿀을 빼앗아 팔아야만 밀린 월세 방값도 주고
너희들이 차지한 이땅의 세도 줄수 있잖니...
꿀을 뺏고 설탕물을 주다보면
종종 꿀벌들 한테 미안한 생각이 든다.
긴 장마 걱정마라 !
내가 꿀 많은 못하더라도 식량일랑 충분히 준비해 줄께......
계상군 한 통에 한 되도 채 안되는 밤꿀을 뺏은 미안한 마음과
축은함이 몰려오는데 채밀이 끝나갈 무렵 가랑비가 내렸다.
계상군 40통에서 4말이 조금 안되는 밤꿀을 강탈했다.
미케한 냄새의 밤꿀을 말통에 받아 양손에 들고 나오는데
벌통 옆 쳐진 나무가지에서 퉁소새가 비웃듯 올어댄다.
" 씹좇 씹좇... 씹좇좇... 씹좇... "
서방질하다 들킨 년처럼 게면쩍게 서있던 경산댁이
삭다리 나무가지 하나집어 휙 던져본다.
내일부터 계상을 단상으로 내리면서 저밀소비로 우선 식량을
보충하고 본격적인 사양 및 봉병 예방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 주일 정도 충분한 식량을 주고 진드기 박멸을 한 후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본봉작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 2011/07/03 양봉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