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디 바람을 막는 용도였으나, 넓은 화폭 가득 아름다운 그림이나 자수로 장식미를 극대화했던 병풍屛風…. 옛 선조들은 병풍으로 방 안을 아늑하게 장식해 멋과 여유를 누렸다. 짓궂은 아낙네들이 엿보는 것을 막기 위해 신방에는 원앙을 수놓은 병풍을 둘렀고, 안방에는 화려한 화조花烏 그림을, 사랑방에는 좋은 글귀를 담은 서화書畵 병풍을 펼쳐 손님을 맞았다. 고려 때 중국에서 들어와 조선 후기 크게 유행한 병풍은 그 인기가 영원할듯 보였으나, 서구 문화가 유입되면서 차츰 사라졌다. 사람들은 크고 무거운 병풍 대신 블라인드와 커튼 같은 실용적인 제품을 선호했고, 동양화보다는 화려하고 추상적인 현대미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창고 한구석에 있던 ‘골방의 유물’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일! 현대적인 주거 환경에 맞춰 병풍의 폭과 높이를 반으로 줄인 모던하고 세련된 병풍이 눈길을 끈다. LED TV에 움직이는 영상을 담은 ‘디지털 병풍’도 등장했다. 이른바 기존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자신만의 독특한 병풍을 만들어가는 세 명의 작가를 만났다. 한국화에 디자인을 더한 ‘모던 병풍’ 직헌直軒 허달재 작가“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청계산 가는 길에 위치한 허달재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 서자 백설희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진다. 코끝을 간질이는 먹물 냄새, 한쪽에는 반쯤 갈다 만 먹과 화선지가 널려 있다. 올해 예순을 맞은 허 작가는 조부祖父이자 한국 화단에서 명망 높던 고故 허백련 화백에게 그림을 사사했다. 여섯 살 때부터 고사리 같은 손에 붓을 들었으니 그 실력을 새삼 말할 필요가 있을까. “뭐가 그리 급혀? 차라도 한잔 마시면서 얘기하자고.” 그가 흰 수염을 쓸어내리며 남도 특유의 구성진 억양으로 반긴다. 병풍이라고 하면 TV 사극에서나 접하는 요즘 사람들을 위해 병풍의 유래와 종류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대부 가문뿐 아니라 일반 서민 가정에서도 혼례나 제사 때 병풍을 둘렀다. 민화부터 산수화, 화조 등 종류가 다양하다. 크기는 두 폭에서 열두 폭까지 짝수 단위로 구분하는데, 크게 제사나 혼례에 사용하는 대병大屛과 중병中屛, 잠잘 때 머리 위에 낮게 두르는 침병枕屛이 있다.”(왼쪽) 허 화백의 서울 작업실. “디자인하우스 이영혜 대표가 직접 디자인한 ‘모던 병풍’”이라며 6폭짜리 병풍을 등 뒤로 펼쳐 보였다. 허 화백은 전통을 고수하면서도 다양한 변화를 시도해왔다. 그가 설명을 위해 꺼낸 6폭짜리 병풍은 접으면 통기타 케이스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아담하다. “작품이 잘 보이도록 비단(그림이나 수를 놓는 부분)을 상단으로 올렸다. 동양화의 은근한 매력이 돋보이도록 병풍 종이도 수수한 색상을 선택하고…. 그랬더니 그림보다 병풍 자체가 예쁘다며 구입하는 이들이 생겼다. 자동차 볼 때도 기능보다 디자인을 고려하는 시대 아닌가? 트렌드에 맞추면 병풍도 얼마든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다.”허 화백의 병풍은 한옥이나 아파트 등 어느 곳에 놓아도 어울릴 만큼 세련되고 멋스럽다. 오래된 나무 식탁 뒤에 두르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활짝 펼쳐 침실 벽에 걸어두면 아늑한 느낌이 든다. 허 화백은 주로 8~10폭짜리 병풍을 그리는데, 훅 하고 불면 금방이라도 휘날릴 듯한 매화, 은근하게 물든 노란 국화, 무리 지어 늘어선 대나무를 주요 소재로 삼는다. 그 속에 자연이 있고 사람의 일생이 보이는 듯하다. “폭이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훨씬 깊고 풍성해진다. 예를 들어 4폭 병풍에도 사계四季를 담을 수 있지만, 8폭이나 12폭에는 더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다. 1~2월에 피는 매화와 3~4월 피는 도화꽃을 따로따로 담거나, 여름을 초여름과 우기雨期로 나누는 것이 가능하다.” 병풍 폭이 클수록 작업도 고되다. 병풍을 펼쳤을 때 각 그림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이다. “서로 마주 보는 폭끼리 조화를 이루도록 그리는 것이 핵심이다. 2폭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거다. 음과 양, 동과 서, 남과 여…. 병풍도 마찬가지다.”(오른쪽) 허달재 화백의 ‘6폭 병풍’에 담긴 이미지 끊임없는 노력 끝에 탄생한 허 화백의 ‘모던 병풍’은 국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제주도 박여숙 화랑에서 열린 <병풍>전은 뜨거운 관심 덕에 전시를 연장했고, 상하이 미술관에서도 초대전이 열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전통을 계승해야겠다는 사명감이 크다. 모두 외면한다고 나까지 손을 놓으면 영영 사라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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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 태생의 허달재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의재 허백련 선생에게 그림을 사사했다. 일찍이 ‘남도 산수화’의 적자로 50년 넘게 한국화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계승해왔다. 1985년 뉴욕 RHOC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으며, 특히 2008년 베이징 중국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개인전은 그의 한자 서예와 그윽한 동방 색채를 엿볼 수 있는 자리로 전 세계 미술 애호가의 주목을 끌었다. 오는 4월 25일까지 롯데갤러리 본점 에비뉴엘 전층에서 60여 점에 달하는 그의 매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뉴욕 스토니브룩 대학 객원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의재문화재단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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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풍 너머, 초현실 세계를 담다 남현주 작가 서래마을의 한 빌라, 지하실에 마련된 남현주 작가의 작업실은 이탈리아 가정집을 떠오르게 한다. 섬세한 장식이 돋보이는 고동색 앤티크 책상, 보라색 벨벳을 두른 의자가 시선을 끈다. 그 중후한 작업실 한쪽 벽에걸린 100호 크기의 작품은 ‘낙원을 꿈꾸며 II’. 텅 빈 의자 뒤로 펼쳐진 화려한 병풍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10여 년간 남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병풍을 그림에 담아왔다. 동양화를 전공하던 대학 시절, 선과 면을 사용해 경계를 나누기 시작한 작업은 언제부턴가 병풍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병풍을 담은 회화만 20여 점. 작품은 주로 공공기업이나 은행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메릴린치 증권, 기업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아트뱅크 등은 일찌감치 그녀의 재능을 알아본 곳이다. 지난해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초대로 로마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초현실적인 이미지를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을 얻었다.다양한 소재 가운데 유독 병풍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경계 나누기’는 내 작품의 중요한 화두다. 과거·현재·미래, 꿈과 현실, 동양과 서양…. 그 모든 경계를 구분 짓는 데 병풍만큼 매력적인 소재는 없다.” 남 작가의 병풍은 마치 만화를 보듯 비현실적이다. ‘낙원을 꿈꾸며’에는 4폭짜리 병풍에 매화와 나비를 담았는데, 원색을 사용해 살아 움직이듯 생생하게 묘사했다. ‘바라보다 II’는 병풍에 빨간 장미를 그려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원색에서 풍겨 나오는 오라 때문일까? 그녀의 병풍은 화려하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한 고혹적인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소재에 제한이 없다. 병풍 가득 붓과 술병, 서랍장, 복주머니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넣는가 하면(‘공존 IV’), 커다란 주사위도 얼마든지 병풍의 소재가 된다 (‘미술관 달팽이’). 고루하고 식상하다는 인식 탓에 병풍이 외면받는 요즘, 남 작가의 병풍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쯤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실재 병풍을 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 작품의 주제가 ‘경계 나누기’인 만큼 병풍 자체에 연연해선 안 될 것 같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개인전에 작품과 똑같은 병풍과 의자를 설치할 순 있을 거다.”(왼쪽) 남현주 작가의 서래마을 작업실. 100호 사이즈가 넘는 ‘낙원을 꿈꾸며 II’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은 ‘공존’ 시리즈. 창문처럼 열고 닫을수 있는 ‘문問’을 제작해 그 안에 그림을 담는다. 화폭 안에 병풍을 그리는것으로도 모자라 액자를 통해 또 한 번 경계를 나누는 것. 액자는 10~20호 사이, 그림은 15호 정도로 제작한다. 남 작가의 병풍은 유독 밝고 색감이 화려한데 그 비밀은 남다른 재료에 있었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그녀는 화구통 사이로 손을 뻗어 손가락 크기의 유리관을 꺼내 보인다. “채색할 때는 반드시 석채(돌가루)를 사용한다. 수천 년 전 인도와 이집트의 고분벽화가 아직도 그 색채를 유지하는 것은 자연 재료인 석채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색을 만들려면 일일이 돌가루를 물과 함께 개야 하고, 아크릴을 사용할 때보다 색을 말리는 데 수십 배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힘들게 완성한 그림은 절대 나를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은 선명한 색감을 자랑한다. “얇게 덧발라 서서히 채도를 높이는 그 ‘맛’을 포기하기 힘들다. 색을 한 번 덧칠하는 데만 5시간. 20~30회씩 덧칠해야만 원하는 색을 얻을 수 있다.” 남 작가의 눈동자에 장인에게서 볼 수 있는 자긍심이 스치고 지나간다. “대학 때부터 한국적인 그림이 무언지 고민해왔다. 일반적으로 대나무나 매화 작품을 떠올리지만 그건 ‘동양화’지 ‘한국화’는 아니지 않나. 박수근 작가의 작품처럼, 뭔가 정서를 건드리는 작품을 만들려면 병풍 하나에도 우리 색을 담아야 한다. 전통 오방색이나 보색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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