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 뮤지컬은 두편 보고 개봉관에서 영화는 날마다 봤습니다. 더 볼 수도 있었지만 다 봤어요. 더이상 볼 영화가 없었죠. 개봉관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영화를 다 봤어요. 무비꼴라주관까지 샅샅이 뒤져서 다 챙겨 봤습니다. 연휴 마지막 날인 어제 아침에 조조로 [다이하드5]를 본 다음 시내에서 친구를 잠깐 만났다가 사진관에서 사진 찍을 일이 있어 사진을 찍고 당연히 길어야 한시간이면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선불을 내는데 사진사가 글쎄, 5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네요!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무리 주문이 밀렸다 하더라도 그깟 반명함판 사진 여섯장 인화하는데 5시간을 기다리라고 하다니 황당했어요.
그래서 더 빨리 될 수 없냐니까 주문 밀려서 오후 5시 전엔 힘들것같고 자기네 사진관 영업 시간이 9시까지니까 여유있게 방문하라나 뭐라나, 그 사진관은 학생 때 학년 바뀔 때마다 자주 갔던 사진관이고 시내에서 사진 찍을 일 있으면 거기로만 갔는데 내 다시는 이 사진관 터를 밟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어쩔 수 없이 어제 상황은 수긍해야 했습니다. 사진은 이미 찍었고 돈까지 지불한 마당이라 남은 5시간을 죽일 곳이 필요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동네 사진관에서 해결할걸 그랬죠. 시내 나간 김에 한번에 볼 일을 해결 하려다가 낭패감을 맛봤습니다. 웬만하면 사진을 찾아서 귀가하고 싶었죠. 사진을 오늘 써야 했는데 사진관이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서 차 끌고 가면 분명 정차하기도 힘들것이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굉장히 번거로워지는 일이었거든요.
서울이면 어떻게 해결을 보겠는데 지역 시내라서 달리 할 게 없었어요. 친구랑 점심을 먹고 난 뒤에도 4시간이 남았죠. 시간은 겨우 오후 1시. 그 시간에 대체 어디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데 저는 당구도 안 치고 탁구도 안 하고 볼링도 안 굴리기 때문에 친구의 시간 때우기 제시안을 전부 거절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작성할 글감이 몇 개 있긴 했지만 피시방 가서까지 작문을 하고 싶진 않았고요. 그래서 우리는 오후 5시까지 술을 먹기로 결정했습니다. 술을 먹다 지루하면 노래방이나 가자는 결론이 나왔죠. 그런데 그 시간에 문을 여는 술집은 없습니다. 식당이라면 모를까 그 시간은 닭집도 영업을 안 하죠.
한참을 혹시나 문 연 술집이 없나싶어 홍상수 영화 속 찌질이들처럼 곳곳을 배회하다가 이건 원, 술 못 먹어 환장한것도 아닌데 차마 뼈다귀 해장국집까지 가서 소주를 들이키는건 또 내키지 않았고 그렇다고 노래방을 가자니 가요는 제대로 아는게 없고 제대로 아는 가요 수준이라는게 연가에 수록된 레파토리 히트곡들 수준이라 그 노래들은 부르기도 지겹고 팝송은 영어 따라 읽기 바빠서 부르는것 자체가 창피하고 잠깐 보려고 만났던 친구를 오후 5시까지 붙잡고 있기도 미안하고 그러나 얘는 제가 어제 도와준게 있다보니 지루한 내색은 못하고 있고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래 목욕이나 해야겠다고 갈피를 잡았지만 시내에 있는 일반 사우나는 시설도 열악하고 일용직 노동자들이 한달에 얼마씩 내고 고시원 생활하듯 상주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입장하면 심란하기만 하다는거죠.
어떻게 된 게 하나같이 문만 열었지 목욕 하려고 들어가면 영업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숙련된 때밀이 아저씨라도 상시 대기하고 있다면 몸이나 풀겸 오일 마사지나 받으면 좋으련만 꺼진 조명기구 투성에 탕 관리도 제대로 안 되어 있습니다. 활성화가 되다 말았으니 당연히 손님 받기 위해 대기중인 목욕관리사도 없습니다. 시대에 있는 사우나가 다 이래요. 그래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산책이나 하다가 날도 춥고 할 일은 없고 배는 안 고프고 죽치고 있기엔 오후 5시가 너무 멀고 결국 집으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죠. 재관람 유혹이 일만한 개봉 영화도 없었던데다 이미 오전에 조조로 [다이하드5]를 본 마당이라 이번 주 발렌타인 데이 전까진 볼 영화가 전멸해 버렸습니다. 친구는 보내고 저도 집으로 왔습니다. 며칠을 영화 보고 공연 봤더니 피곤했거든요. 낮잠도 필요했어요.
CGV무비꼴라주관에서 하는 다양성 영화들까지 볼 수 있는건 몽땅 챙겨 봤습니다. [베를린][7번 방의 선물]은 진작에 봤고 [남쪽으로 튀어][다이하드 : 굿 데이 투 다이][몬스터 호텔][뽀로로 : 슈퍼썰매 대모험][부도리의 꿈][더 헌트][여친남친][비스트][로마 위드 러브]도 다 봤네요. [다이하드5]는 역대 [다이하드]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가 딸렸지만 그래도 재미는 있습니다. 브루스 윌리스가 존 맥클레인으로 출연했다 뿐 이게 과연 우리가 아는 그 [다이하드] 맞나 싶을 정도로 엉성하고 단순하지만 계속해서 이어지는 액션의 짜릿함은 명절용 오락 영화로써 최적화 되어 있습니다.
[여친남친]은 진부한 설정과 뻔한 구성 방식이 식상했어요. 게이를 묘사하는 태도가 어쩜 그렇게 가볍고 전형적인지 따분할 뿐이었죠. 퀴어 코드가 이렇게 높을지는 몰랐는데 비중있게 다뤄지긴 하네요. [비스트]는 개봉관이 몇 관 없어서 어렵게 맞춰 봤는데 [더 임파서블]과는 다른 식으로 자연 재해가 안타까운 영화였습니다. 감독이 테렌스 멜릭에 많은 영향을 받은것같더군요. 이 말은 이 영화가 굉장히 지루하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확실히 아름다운 영화이건 사실입니다. 개봉관에서 못 보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알고 신경을 바짝 세웠고 압구정이나 대학로에서 볼까 하다가 [지킬 앤 하이드]보고 집으로 가던 중 오리CGV에 들러 저는 영화 보고 동행한 가족들은 쇼핑을 했습니다.
[더 헌트]도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현대판 마녀사냥의 이혼한 남자 편이라 할 수 있는데 심리적으로 견디기 힘든 작품이죠. 덴마크 소읍의 풍경이 예쁘더군요. 그 안에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은 섬뜩했지만. [남쪽으로 튀어]는 연출력의 한계가 느껴졌어요. 현재 [남쪽으로 튀어]는 망한 분위기인데 임순례 감독이 다음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손익분기점이라도 넘기면 좋겠지만 임감독의 연출력은 늘 미덥지 않았어요. 사람 자체에 대한 호감도가 높을 뿐 연출력은 발전이 없네요. 중견 감독들이 기회를 줬을 때 도약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니 투자를 꺼려하는거지 달리 이유가 있겠어요. 중견감독들 연출 기회가 없다며 투덜거리는건 불쌍합니다만 그들이 각고 끝에 연출한 신작들을 보면 어찌나 낡고 자기 고집으로 가득찬 기성품이던지 관람하는데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게 만듭니다.
[로마 위드 러브]는 우디 알렌의 범작이지만 무대 공포증이 있는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이 샤워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게 해주면 기가 막히게 잘 불러서 어느 곳, 어느 장소에 가도 샤워기를 설치하고 노래를 부르는 설정은 폭소를 일으켰습니다. [몬스터 호텔]은 그저 그랬고 [부도리의 꿈]은 국내 성우 더빙이 너무 엉망이라 원어판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내용이 좀 난해했고 결말은 의도는 알겠지만 느닷없었죠. 감독이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참고한게 아닐까 싶었던 장면 처리였습니다.
공연은 두편 봤는데 둘 다 재관람이었죠. [지킬 앤 하이드]서울 막공을 봤어요. 막공 날 1회차 공연을 봤으니 진짜 막공은 아니었고 양준모, 이지혜, 선민이 출연하는 막공이었죠. 할인률이 꽤 높았지만 좌석 배치도가 엉망이었고 정가가 높아서 40프로 스페셜 타임 할인을 해줘도 체감 할인률은 낮았습니다. 캐스팅도 약해서 브랜드 공연으로 자리 잡았음에도 예매율에 있어 탄력을 일으키진 못했죠. 서울에선 고작 한 달 공연한건데도 예매율은 처절하더군요. 그래도 자존심은 있는지 특가로 풀진 않았는데 제가 본 공연은 막공 날임에도 관객이 별로 없었습니다. 양준모 실력은 평범했습니다. 연기가 좀 더 섬세했으면 좋았겠단 생각이 들었고 이 작품이 뮤지컬 데뷔작인 이지혜의 엠마 연기는 발견이었습니다. 보컬 색깔이나 노래 부르는 스타일이 최현주 과네요.
[레베카]도 한번 더 봤습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작품은 한번은 더 봐야할것같아서 봤죠. 더블캐스팅 맞추기가 힘들어서 줄리앙 대령 역은 포기하고 선우재덕으로 맞췄는데 공연 당일 현장 가니 정의갑으로 바뀌었더군요. 덕분에 오만석 빼고 모든 [레베카]출연진의 연기를 다 봤습니다. 재관람하면서 놀란건 류정한이었어요. 정말 되게 못하더군요. 어쩜 이렇게 노래와 연기 어느 구석 하나 흡족하지가 않을까요? 그래도 류정한인데, 너무 못해서 놀랐어요. 류정한은 자신의 좁은 음역대를 인정하고 성량에 맞춰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어요. 늘 과욕을 부리다가 음이탈이 일어나거나 고음을 길게 빼낼 때 불안정해지죠. 관객을 불안하게 해요. 노래도 썩 잘 하지 못했는데 늘지 않는 연기력까지 더해져서 초짜 같은 모습만 보여주었습니다. 임혜영과 둘이 세워 놓으면 아주 볼만하겠다 싶을 정도로 저하된 상태였습니다. 류정한이 유준상보다 노래 실력이 별로로 느껴질거라고는 예상을 못했어요. 노래 한곡 끝날 때마다 박수와 환호가 나오면 뭐하나요. 일반 관객들은 쉬는 시간에 남자 배우 실력을 두고 수근수근 합니다
첫댓글 류배우님 엘리자벳 때 놀래서 이번엔 피해서 봤네요.. 연기는 몰라도 노래는 이분껄들으러 한번씬 챙겨보곤 했는데요...떱..
그래도 알차게 보내셨네요~ (리플이 너무 연속을 달려서 읽고 쓰나 싶으실수도 있겠지만 본문은 미리 읽었었는데 모바일이라 리플을 안달았어요.ㅋ) 저는 연휴내내 누워서 콜록거리면서 지냈네요. 예매한 공연도 아는 분 줘버리구요. 베를린 다이하드도 못봤는데 이걸 언제보나 난감할 지경이예요.
저랑똑같네요..ㅇㅎㅎ
전 지킬총막공이랑
그다음날 설날당일 레베카봤어요.
저는 레베카보고 지킬총막공봤었는데.. 류배우님 제가 공연은 제대로 한번도 안보고 맨날 깠는데 까더라도 한번은 제대로 공연보고 까야겠다싶어서 예매했는.. 데... 이후기를보니...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