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경화씨가 중앙도서관을 오갈 때면 늘 마주쳤던 청소 아줌마가 있었다. 몽당 빗자루 만한 몸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오가며 청소하던 얼굴.....
개미 떼처럼 기미가 앉은 아줌마 얼굴엔 한 겨울에도 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청소부 아줌마는 바로 경화 씨 엄마였다. 대학 시절을 회상하던 경화 씨는 서둘러 엄마가 일하던 행정관 지하 보일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비좁고 궁색한 방 한 켠에서 낡은 수건을 줄에 널고 있었다.
"엄마 있잖아. 이제 이 일 그만하면 안되우?"
"뜬금 없이 그게 뭔 소리냐?"
"엄마 나이도 있고 허리랑 무릎도 자주 아프잖아요."
"몸 아픈 거 어디 하루 이틀이냐. 너 혹시 엄마가 여기서 일하는 게 남 부끄러워서 그러냐?"
"아냐, 엄마. 그런거 아냐....."
"청소 일 한지 벌써 30년이다. 너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내 뼈 마디 마디를 다 빼앗긴 곳을 떠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니. 아파 누워 있는 어린 너를 방에 혼자 두고 새벽 버스를 타고 나와야 하는 에미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는데.... "
"이제는 엄마가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잖아. 그리고 혼자 봉천동에 계실 게 아니라 이제 우리 집으로 오세요."
경화씨는 조금쯤 감추어진 속 마음을 차마 드러낼 수 없었다. 명색이 교수가 되어 엄마 허드렛일 하게 한다고 사람들이 수근댈 것 같다는 말이 경화씨 입에서만 깔끄럽게 맴돌았다.
"이 에민 30년 동안 쓸고 닦으며 늘 이렇게 생각했다. 남들 걸어가는 길 깨끗하게 해놔야, 내 새끼 걸어가는 길 순탄할 거라고 믿으면서....."
"엄마, 내가 괜한 말 했지?"
"아니다. 니 마음 내가 왜 모르겠니? 지난 번 교수 식당에서 너와 함께 밥 먹을 때, 너는 내가 음식 맛있어 코 박고 먹는 줄 알았것지만, 눈물이 나와 그랬다. 내가 평생 걸레질만 하던 곳에서 내 딸이 교수가 됐다는 것이 하도 고마워서 말이다."
경화씨는 엄마를 가슴에 꼭 끌어 안았다. 그리고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고마워. 엄마를 보면 늘 반딧불이가 생각나. 야윈 몸 한켠에 꽃등을 매달고 깜박깜박 어둠을 밝혀주는 반딧불이 말야. 엄마의 속 깊은 마음을 내가 어떻게 다 알겠어. 엄마 있잖아, 어제 우리과 교수님들 회식이 있었거든. 강남에 있는 일식집에서 했는데, 식사비가 얼마나 나왔는 줄 알아. 한 사람당 십만원해서 육십만원이 넘게 나왔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서럽더라구. 우리 엄마는 새벽 다섯 시 반이면 집을 나와, 삼십년 동안 눈비 맞으며 고작 받는 한 달 월급이 육십오만 원인데 하고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더라구. 그래서 엄마 한테 이런 말 했던거야, 엄마, 미안해."
"미안하긴 엄마가 너한테 늘 미안하지."
엄마는 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경화씨는 엄마 품에 안겨 말보다 더 아름다운 마음으로 소리없이 엄마에게 말했다.
'어머니, 당신은 삼십 년 동안이나 어두운 새벽버스에 지친 몸을 실으셨습니다. 당신은 내 마음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저를 밝혀 주셨습니다. 반딧불이 처럼 환한 불빛으로 반짝이고 싶어하는 철없는 딸을 위해 당신은 더 짙은 어둠이 돼주셨습니다.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이철환의 "반딧불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