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호
주름을 더듬었다. 멍든 눈동자에서 내가 쏟아졌다. 차곡차곡, 나는 눈둥자에 빗방울을 매달아 떠나보냈다. 전속력으로 사라졌다. 인중을 따라 베개 위에 하얗게 깎인 입술, 누워있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갔다.
낼름 목소리를 높여 읽어본다
낼름 밑줄을 쳐본다
낼름 배고픈 혀가 말의 눈을 감겨버린다
말이 밖으로 나갔다. 말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오지 않았다. 의문부호만큼 많은 시침을 가진 밤이 아직도 오고 있었다. 뒤뜰에서 떨어진 별들은 쓸데없이 목숨이 많았다. 몸부림 한번 치지 않던 전화기가 아가미를 열었다. 얼굴을 핥았다
일곱 살
아직 숲을 통과하지 못했다 사막 한가운데 모서리들이 모여 빈 방을 다발로 낳았다 크레파스로 그린 창살에 갇히기 위해, 빨강 파랑 노랑 채집된 지문은 둥글게 앉았다 오후 다섯 시부터 나는 바람으로 빚은 짐승, 지는 해를 먹고 나날이 자라온 나는 방으로 들어가 스케치북 위에 가지런히 놓은 코끼리를 하마를 사냥했다 이마에 새겨진 서로의 꼭짓점을 맹렬히 공격하며 등줄기를 횡단하던 식은땀 한줄기 햇볕에 볼록렌즈를 갖다 대고 숲을 몽땅 태워버렸다 어떠한 소문도 박수갈채도 참석하지 않았지만 동물들은 방 안에서 뜨겁게 소화되고 있었다 코를 흔들어대며 이름 대신 가죽 같은 재를 남기고 흙먼지를 뒤집어 쓴 손바닥 위로 뒤축을 구긴 신발이 달리고.
연습
밥 한 끼 먹자던 가벼운 약속처럼, 시간이 자리를 내어주면 우리는 비로소 체온을 잃지. 울창한 육체 사이로 마지막 잎새 같은 당신의 손바닥, 깍지를 끼고 날마다 빗금을 그으며 남겨진 날들, 접시 위에 살갗을 거슬러 절반의 옆모습 뒷모습을 포개어 두고 재회한 우리, 매 순간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전에 명복을 빌어. 우리가 즐겨했던 거룩하신 뜻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서, 반복되고 반복되는 오늘과 같이 벌거벚은 우리는 멀미를 하고 여전히 귓가엔 고백들이 방을 나서는 소리. 당신과 온 생애를 거슬러 마지막 음표를 마치고,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길. 당신이 끝끝내 가지고 돌아온 나는 이미 오래전 잊혀진 걸 알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는 연습을 할 테니, 당신은 오늘의 거짓말을 영영 들키지 말길
이소호:
1988년 전북 무주 출생.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동국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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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덩이가 보이는 첼리스트 잭슨의 정원 외
정선율
어제는 잭슨이 오기로 한 시간 나는 컵을 깨고 있다 향나무를 태운 정원사는 컵을 깨기 위해 남편을 만들고 마녀를 만들었다지('아 목동아'에는 몇 개의 프레이즈가 있습니까) 접시의 윤곽을 지우자 오늘 밤이 선명해진다 통조림은 틀린 것 같아 우린 같은 라면을 먹고 있다니까? 남은 변명이 없어서 여름이 지나지 않는다 나의 팔은 자꾸만 흘러내린다
그것은 아주 여리게, p보다 더 여리게 연주하라는 뜻입니다
우산은 내가 몇 번이나 떨어트린 컵을 받아주었다 너는 두 명이고 나는 한명이다 나는 세 명이고 너는 한 명이다 지금부터 나는 엄마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죽어가기로 한다 복부에서 펀치, 둔부에서 펀치, 정원사는 자꾸만 나의 자두를 숨겨놓는다
근음은 하행입니다 3음이 중복될 시엔 5음을 중복시킵니다
주3화음과 부3화음을 녕결시켜줍니다
기쁘지 않다고 말해야 자라는 새, 거품을 모았다가 거실에서 운다 새의 발톱으로 나는 미녀가 되는데 부모가 되기 위해 고아가 됐구나 정원사는 냄새를 흥얼거린다 속이 생기고 손이 생긴다 나초 젤리, 푸딩, 크린베리, 스프링, 우리는 서로를 들키기 위해 엄마를 만지기로 한다 변색되기 위해 길어지는 해
세 번 동작, 두 번의 달리기
세 사람이 끼어든다 변장에 성공하는데
다음날에 나를 데리러 오겠다는
레가토란 부드럽게 소리 내라는 활줄 활줄 활줄의 표시
하행진행을 유도합니다
엄마는 다리를 꼬지 않아도 팔을 잃을 수 있다니까?
스타카토보다 더욱 짧게
잃은 팔을 제거하면 몸이 불어난다 내가 들은 것은 너에게서 나왔다고, 결말이 드러난다 절반이 되기 위해 자라나는 팔, 나는 가려야 한다 흔들림 없이 일정하게, 미녀의 코끝을 가리키며 정원사는 두세번 세수를 한다
가볍게 팔을 교차합니다
한 손이 다른 손을 따라갑니다
앞니가 자란 정원사, 두 개의 팔이 자란 나의 속엔 가려운 곳이 많아진다. 내동댕이쳐진 자두, 우린 위로 올라간다 목이 젖도록 눈이 내린다
어딘가에 화를 내고 있는 것처럼
내가 창문을 열면 나와 헤어진 연인들이 다시 창문을 닫아준다
형은 접시 위의 자두로
신은 지우개의 모양으로
허리를 삼킨다
터지려는 듯
열쇠는 죄가 많아 애인을 형에게 준다
형이 나에게 오고
나의 애인이 형에게 가면
형은 나에게 오고
첼로케이스를 가지고 오고
나의 애인은 접시 위에 반쯤 깐 귤이나 되라지
신이 붓펜으로 변하듯이 형은 나에게 허리를 보이고
자두를 벗기고
처음 만지는 것처럼
창문이 열리고
형이 나에게 오고
그럼 나는 애인에게 갈텐데
코트를 꺼내서 주었다
어색하게 들려 커튼은 형을 보고 있다
주화음
형이 커튼을 보고 있다
5음의 생략
나는 애인을 보고 있다
구성요서
우리는 코트를 벗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창문을 닫아야 할까
본래의 이끔음
형은 자두를 지우고
새들은 볼륨을 줄이고 있다
새들을 쪼아 먹는 형
애인은 자두를 삼킨다
반음계적 반음계적
형은 등이 가렵다고 한다
약속을 했어야지
단조는 모두가 같은 성질
청문은 열두 번째 나의 애인이 가져온 거래
코를 쥐어뜯으며 내가 형에게 입을 맞추자
애인이 나에게로 온다
콜라를 흔들 거고
형은 나를 잊었다
정선율:
1985년 서울 출생.본명 정현아. 장편영화 <청개천의 개>. 단편영화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조연출. 단편영화 <이상한 나라의 도로시> 외 10연편의 영화음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