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全氏) 광장 | 화전가(花煎歌) - Daum 카페
‘화전가(花煎歌)’ 연구
상주향토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상주고등학교 교사 권택룡
목 차 Ⅰ. 서론․․․․․․․․․․․․․․․․․․․․․․․․․․․․․․․․․․․․․․․․․․․․․․․․․․․․․․․․․․․․․․․․․․․․․․․․․․․․․․․ 1. 연구의 방향과 방법․․․․․․․․․․․․․․․․․․․․․․․․․․․․․․․․․․․․․․․․․․․․․․․․․․․․․․․․․ Ⅱ. ‘화전가’ 가사 개관․․․․․․․․․․․․․․․․․․․․․․․․․․․․․․․․․․․․․․․․․․․․․ 1. 작품의 주제적 양상․․․․․․․․․․․․․․․․․․․․․․․․․․․․․․․․․․․․․․․․․․․․․․․․․․․․․․․․․ Ⅲ. 내용 및 표현상의 특징 고찰․․․․․․․․․․․․․․․․․․․․․․․․․․․․․․․․ 1. 서두․․․․․․․․․․․․․․․․․․․․․․․․․․․․․․․․․․․․․․․․․․․․․․․․․․․․․․․․․․․․․․․․․․․․․․․․․․․․․․․․․․ 2. 본문․․․․․․․․․․․․․․․․․․․․․․․․․․․․․․․․․․․․․․․․․․․․․․․․․․․․․․․․․․․․․․․․․․․․․․․․․․․․․․․․․ 3. 결미․․․․․․․․․․․․․․․․․․․․․․․․․․․․․․․․․․․․․․․․․․․․․․․․․․․․․․․․․․․․․․․․․․․․․․․․․․․․․․․․․․ Ⅳ. 결론․․․․․․․․․․․․․․․․․․․․․․․․․․․․․․․․․․․․․․․․․․․․․․․․․․․․․․․․․․․․․․․․․․․․․․․․․․․․․ 부록․․․․․․․․․․․․․․․․․․․․․․․․․․․․․․․․․․․․․․․․․․․․․․․․․․․․․․․․․․․․․․․․․․․․․․․․․․․․․․․ |
Ⅰ. 서론
1. 연구의 방향과 방법
가사(歌辭)는 여말선초에 정립된 문학 장르로, 조선 초기와 중기에는 양반 사대부들이 유교 이념과 자연 속에서의 풍류를 드러내는 작품을 많이 지었다. 그러던 것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박인로의 ‘누항사’와 같이 현실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작품으로 그 내용이 변화되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기행가사와 규방가사 등이 조선 후기 가사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의 가사를 근대가사라고 한다.
근대가사는 형식적으로도 많이 변모하였다. 초기에는 비교적 짧고 마지막 행은 시조와 같은 3․5․4․3의 음수율을 지닌 정격가사(正格歌辭)가 지어졌으나, 후기에는 매우 길고 마지막 행도 정격가사와 같은 음수율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게 되었다. 이를 변격가사(變格歌辭)라 한다.
필자가 분석한 ‘화전가(花煎歌)’란 작품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60년대에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화달2리 화룡(化龍)골 마을에 사는 전병규씨가 자신의 아내를 화자로 하여 지은 것이다. 화전가는 음력 3월 중순경에 꽃놀이를 위하여 교외나 야산 등지에서의 화전놀이를 소재로 한 규방가사로 ‘화류가(花柳歌)·화수가(花樹歌)·낙유가(樂遊歌)’ 등으로도 불린다.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절 등 봄에 일기가 좋은 날을 맞아 여인들이 잠시 시집살이의 굴레를 벗어나서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즐겁게 화전놀이를 하며 읊은 가사이다. 작품이 지어진 사벌 화룡골은 사서 전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학문과 예를 숭상하는 반가의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는 곳이기에 ‘화전가’ 같은 규방가사가 지을 수 있었다.
내용과 형식상의 특징을 자세히 살펴보았으며 마지막으로 이들 작품이 지닌 문학적 의의를 진단해 보았다.
이외 규방가사와 규방가사 연구의 방향과 방법, 연구사 등은 필자의 졸고 ‘현대규방가사연구(1)’(상주문화 24호)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Ⅱ. ‘화전가(花煎歌)’ 가사 개관
1. 작품의 주제적 양상
이 작품의 원본은 없고 채록본을 이 작품의 저자인 전병규씨의 조카인 전부엽 씨가 채록하여 지금에 전하고 있다. 전병규씨는 이 작품을 제외하고도 여러 편의 작품이 더 있었으나 지금은 멸실되었다. 전부엽씨의 자친은 전병삼씨로 형님이신 저자 전병규씨의 ‘화전가’를 민요경창대회에서 창(唱)하셨다.
가사 ‘화전가’는 저자 전병규씨가 자기 아내를 화자로 지은 가사이다. 먼저 젊은 시절에는 가난한 집안 살림 탓에 열심히 일만 하고 자식 교육에 골몰하였으며 남자와 달리 여행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한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으며, 본문에서는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경천대 등에서의 유람과 풍류를 표현하고 있다. 저자는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서 일과 자녀 교육 등 집안일에만 힘쓰고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내가 오랜만에 소풍을 즐기는 모습을 기념하기 위해서 이 작품을 지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고생만 한 아내에 대해 미안한 탓으로 아내가 즐겁게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저자에게도 큰 기쁨이었을 것이다.
저자의 조카인 전부엽씨와 한 시간이 넘게 작품 ‘화전가’의 내용과 표현 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Ⅲ. 내용 및 표현상의 특징 고찰
1. 서두
서두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두 부분에서는 젊은 날 즐기지 못하고 노년에 이른 자기 삶을 탄식하는 부분과 남자들과 달리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 여인으로서의 한, 그리고 이를 보상받고자 가까운 여행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하 세상 벗님네야 이내 말쌈 드러보소
청춘홍안 소시절은 빈부간 살림살아
잔자식 골몰중에 허송순간 다보내고
백발창안 그리되니 별 아니 무궁하오
어와 세상 벗님들아 이 나의 말씀을 들어보소
청춘홍안(靑春紅顔) 소시절(少時節)은 빈부간(貧富間) 살림 살아
작은 자식들 골몰(汨沒) 중에 허송(虛送) 순간 다 보내고
백발창안(白髮蒼顔) 그렇게 되니 특별히 무궁하지 않소
“어와(하) 세상 ~ 들어(드러)보소.”란 표현은 규방가사 서두의 상투적인 표현으로 여러 명이 함께 둘러앉아 구연(口演)하던 향유 방식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물론 글로 표현된 것을 혼자 읽을 때도 유용한 서두 제시 방식이다.
젊을 적 붉은 얼굴은 가난한 살림을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어린 자식들을 기르는 일에 온 정신이 팔리다 보니 어느새 흰 머리의 늙고 여윈 모습으로 변했다. 이와 같은 자신의 젊은 시절 삶을 돌이켜 보니 마음이 특별하게 무궁무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덕하신 남자들은 무삼 적션 하얏기로
남자 몸이 태여나서 일본으로 유람가며
만주로 여행하며 세계 각국 다녔건만
무심한 우리들은 심구에 깊이 앉아
가마니로 농사 삼고 주야로 치자 하니
경치가 무엇이며 학교가 무엇인고
유덕(有德)하신 남자들은 무슨 적선(積善) 하였기로
남자 몸으로 태어나서 일본으로 유람(遊覽) 가며
만주로 여행하며 세계 각국 다녔건만
무심한 우리는 심구(深溝)에 깊이 앉아
가마니로 농사 삼고 주야(晝夜)로 (가마니를)치자 하니
경치 구경이 무엇이며 학교가 무엇인가?
저자 부부(夫婦)가 살아가던 시기는 20세기 초․중반이다. 남녀가 유별하여 여성의 바깥 활동은 거의 금지되었던 시기이다. 상대적으로 남자들은 바깥 활동을 하는 것이 미덕이었고, 개화기와 근대화 시기를 맞이하여 국내의 여러 도시와 다른 나라를 다닐 수 있었다. 이는 여성으로서는 대단히 부러운 일일 것이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집안과 동네에만 머물며 농사일과 집안일에만 매여 있었기에 자유롭게 멀리 유람을 다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일본과 만주를 유람하는 남자들과 달리 깊은 도랑 같은 시골에 파묻혀 밤낮없이 가마니만 짜야 하기에 유람도 못 다니고 학교도 갈 수가 없다. 현재에도 남녀 차별은 있지만, 그때는 여자는 죄인이란 심정으로 체념했을 것이다.
앉아서 들어보니 상주에서 남장사와
상주 사벌 경천대는 경치도 좋다 하니
앉아서 들어보니 상주에서 남장사와
상주 사벌 경천대는 경치가 좋다고 하니
이제는 화자가 시집온 지도 30여 년이 흘러 아이들도 웬만큼 자랐고, 고생만 했던 청춘과 여성으로서의 고된 삶에 작은 위안이라도 받기 위해 유람을 떠나고자 하는 모습이다. 물론 유람할 장소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앞서 일본과 만주 등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 멀리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아직 여성으로서의 한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언급한 두 장소 중 상대적으로 화자의 집과 가까운 경천대를 선택한 것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필자가 경험한 1990년대만 해도 어른들의 여행은 마치 한풀이 같은 것이 있었다. 가난하고 얽매인 삶에 대한 억울함 같은 것이 여행을 통해 분출하였다.
2. 본문
본문은 서로 약속하고 경천대에 이르는 과정, 경천대에서 유람(游藍)하는 부분, 낙동강에서의 뱃놀이와 청룡사에서 유람하는 부분, 여행지에서 풍류(風流)를 즐기는 부분,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으로 나뉜다.
백사를 다 버리고 상하촌 통문하여
산천구경 가자서라 노구 하나 앞세우고
청년 하나 뒷세우고
신식 양산 빨지양산 해를 가려 높이 들고
노루장화 걸음 걸어 경천대를 다다르니
백사(百事)를 다 버리고 상하촌(上下村) 통문(通文) 하여
산천 구경 가자꾸나. 노구(老軀) 하나 앞세우고
청년(靑年) 하나 뒤세우고
신식 양산 빨지 양산 해를 가려 높이 들고
노류장화(路柳墻花) 걸음 걸어 경천대를 다다르니
모든 일을 다 멈추고 윗마을 아랫마을 연락을 하여 갈 사람을 정하고 경천대를 간다. 늙은 화자가 앞장을 서고 젊은 아낙들이 뒤에 선다. 신식의 붉은, 박쥐 날개 모양의 화려한 양산을 펼쳐 들고 가볍고 신나는 걸음으로 경천대에 이르고 있다. 온갖 꽃이 핀 새봄을 맞아 인근에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유람을 떠나는 화룡골 여성들의 밝고 들뜬 표정이 눈이 보일 듯하여 눈물이 날 듯하다.
우허로는 절벽이요 알로는 대강이라
뒤허로 돌아보니 이승버들 너른 골에
황봉은 노래하고 점도새 춤을 추니
그도 또한 경이로다
기묘한 대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밑으로 내려보니 선유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높이 떠서 노래 불러 왕래하니
골골이 구경이요 봉봉이 경이로다
심산궁곡 들어서니 송추중에 오작새는 수목 간에 날아들고
양류간에 앵무새는 경계상에 왕래하고
송이송이 꽃 가운데 슬피우는 저 두견아
그대도록 우지 마라 객의심이 산란하다
위에는 절벽이요, 아래로는 대강(大江)이라
뒤로 돌아보니 이승의 버드나무 넓은 골짜기에
황봉(黃鳳)은 노래하고 접동새 춤을 추니
그도 또한 경이(驚異)로다
기묘한 대(臺) 위에는 백화(百花)가 만발하고
밑으로 내려보니 선유(船遊)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높이 떠서 노래 불러 왕래하니
골골이 구경이요, 봉봉(峰峰)이 경이로다
심산궁곡(深山窮谷) 들어서니 송추(松楸) 중에 오작(烏鵲)새는
수목(樹木) 간에 날아들고
양류(楊柳) 간에 앵무새는 경계(境界) 상에 왕래하고
송이송이 꽃 가운데 슬피 우는 저 두견(杜鵑)아
그토록 우지 마라 객(客)의 심(心)이 산란(散亂)하다
경천대에 이른 화룡골 아낙 일행이 유람하고 있다. 먼저 전망대에서 위쪽의 기암절벽을 바라보고 그 아래를 흐르는 큰 강인 낙동강을 보고 있다. 또한 뒤쪽을 돌아보니 이승과 저승의 경계 같은 강가에 총총히 서 있는 버드나무가 있고 그 좌우로 넓은 골짜기가 펼쳐져 있다.넓은 골짜기에는 누런 봉황새가 노래하고 소쩍새가 춤을 추는 듯한 경이로운 소리와 모습이 펼쳐진다. 기묘한 바위 벼랑 위 넓은 돌 주위에는 온갖 꽃이 활짝 피어있고 강에서는 뱃놀이하는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골짜기마다 구경거리요, 봉우리마다 놀라운 경치의 연속이다. 경천대 깊은 산속에 들어가니 소나무와 개오동나무 가운데 까마귀와 까치가 날아들고 버드나무의 앵무새는 경천대와 낙동강 사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왕래하고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두견새가 슬피 운다. 두견새가 슬피 우니 나그네 마음이 어수선하다.
경천대 이곳저곳을 유람하고 있다. 아름답고 새로운 경치를 보고 좋은 생각만 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생에는 미진하고 슬픈 일들이 많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많다는 생각에 이승과 저승의 경계인 버드나무와 슬프게 들리는 두견새에 감정이 이입되었을 것이다.
이렁저렁 가는 길에 강변을 다다라서
배를 타고 높이 떠서 사방산천 둘러보니
청용사가 보이거늘 강변을 다다라서
청용사를 바래보고 누루장화 걸음걸어
청용사를 다다르니 홍산문 일류문과
산천경계 신령당과 선경채로 법당이며 차차로 구경하고
이렁저렁 가는 길에 강변에 다다라서
배를 타고 높이 떠서 사방(四方) 산천 둘러보니
청룡사(靑龍寺)가 보이거늘 강변에 다다라서
청룡사를 바라보고 노류장화 걸음 걸어
청룡사에 다다르니 홍살문 일주문과
산천경개(山川 景槪) 신령당(神靈堂)과 선경치(仙景致)로 법당이며
차차로 구경하고
본문 세 번째는 낙동강에서의 뱃놀이와 청룡사에서 유람하는 부분이다. 경천대 유람을 끝낸 일행은 경천대에서 본 선유객(仙遊客)처럼 그들도 선유객이 되어 낙동강에서 경천대 주위의 산천을 둘러보고 있다. 옛 조선의 선비들이 이곳에서 달밤에 돛배를 띄우고 시를 읊는 행사를 여러 차례 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경천대 일원의 낙동강은 낙동강 700리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일행은 땅과 물에서 진정한 경천대 유람을 즐기고 있다. 배는 자연스럽게 하류로 흘러 중동 비봉산 가에 이르니, 깎아지른 바위 벼랑 위에 청룡사가 보인다. 배가 중동 쪽 강변에 닿아 일행은 비봉산 중턱에 자리한 청룡사로 향한다. 지금도 장쾌한 풍경을 보이는 청룡사지만 인공의 가미가 거의 없던 60여 년 전에는 훨씬 그 모습이 자연스럽고 아름다웠으리라 짐작된다. 청룡사에서 홍살문으로 이루어진 일주문과 아름답고 신비로운 신령당과 법당을 차례대로 구경하고 있다.
돌아서 생각하니
아모리 여자인들 아니 먹고 아니 쓸까
주점을 찾아와서 여름 지낸 과하주며
만첩 산중 송엽주며 이태백의 포도주를
갖은 안주 빚어놓고 일배 일배 부일배라
주량 되로 시켜 먹고 만학천봉 높이 올라
사방 사천 둘러보니 산천 구경 더욱 좋다
돌아와서 생각하니
아무리 여자인들 아니 먹고 아니 쓸까
주점(酒店)을 찾아와서 여름 지낸 과하주(過夏酒)며
만첩산중(萬疊山中) 송엽주(松葉酒)며 이태백의 포도주(葡萄酒)를
갖은 안주 빚어놓고 일배일배부일배(一杯一杯復一杯)라.
주량대로 시켜 먹고 만학천봉(萬壑千峰) 높이 올라
사방산천(四方山川) 둘러보니 산천 구경 더욱 좋다.
여행지에서 풍류(風流)를 즐기는 부분으로 본문 네 번째에 해당한다. 본문은 화달리 화룡골의 옥천 전씨 집성촌 아낙들이 오랜만에 경천대로 놀이를 가고자 약속하는 모습과 가벼운 걸음걸이로 경천대로 향하는 첫 번째 장면, 경천대의 강가와 인근 숲을 유람하는 두 번째 모습, 경천대 앞 낙동강에서 뱃놀이하고 강을 건너 비봉산 중턱의 청룡사에 이르러 절을 구경하는 세 번째 모습이 차례대로 제시되고 있다. 여정에 따른 기술(記述)하는 순행적(順行的) 구성으로 일반적인 구성 방법에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제 풍류의 장면이 여행의 마지막을 장엄하게 장식하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처럼 먹고 마시며 노는 것이 여행의 큰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경천대와 낙동강, 청룡사의 유람을 마친 일행은 다시 강을 건너 적당한 곳(주점)에 위치를 잡고 술과 음식을 마시고 먹고 있다. 여자도 남자와 매일반으로 먹고 재물(돈)을 쓸 수 있다. 나이가 50여 세 노년에 이르러 자식도 낳아서 어느 정도 키워 놓고 어지간히 힘든 시기도 지난, 더 이상 여성으로서의 금기의 족쇄가 많이 없어진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따뜻하고 맑고 밝은 날 봄에 수많은 골짜기와 봉우리, 사방의 산과 내를 볼 수 있는 곳에서 지난여름을 지낸 과하주와 깊은 산속의 솔잎으로 빚은 술과 이태백이 먹었다는 포도주를 준비한 여러 가지 안주와 함께 마시고 먹고 있다. 이태백의 시에 나오듯 한 잔 한 잔 또 한 잔 권커니 잣거니 마시며 비슷한 처지끼리 정담을 나누는 등 풍류를 즐기고 있다. 그래야 하고 그래도 된다. 인생은 유한하고 삶을 즐기는 것은 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렁저렁 오는 길에 삼봉이골 다다르니
전야에 농부들은 농절을 당하야서
논갈기가 세월이요 형제밧골 다다르니
나물 뜯는 처녀들은 꽃 꺾어서 머리꽂고
나물 뜯기 세월이요 약천골을 다다르니
물 마시로 오는 사람 오락가락 왕래하니
그도 또한 경이로다 핏는골을 다다라서
삼봉산을 바래보고 노루장화 걸음걸어
사방산천 둘러보니 사방공사 지원산이 산림이 울창하여
잎 피어 청산이요 꽃피어 화산이라
때는 마참 삼춘일뿐 산천구경 더욱 좋다
이렁저렁 오는 길에 삼봉이골 다다르니
전야(田野)의 농부들은 농절(農節)을 당하여서
논 갈기가 세월이요, 형제밭골 다다르니
나물 뜯는 처녀들은 꽃 꺾어서 머리 꽂고
나물 뜯기 세월이요 약천(藥泉)골에 다다르니
물 마시러 오는 사람 오락가락 왕래하니
그도 또한 경(景)이로다 핏넝골을 다다라서
삼봉산(三峰山)을 바라보고 노류장화 걸음 걸어
사방산천 둘러보니
사방공사(砂防工事) 지원(支援) 산이 산림이 울창하여
잎 피어 청산(靑山)이요 꽃 피어 화산(花山)이라
때는 마침 삼촌(三春)일 뿐 산천구경 더욱 좋다
여행지에서 돌아오는 여정을 그린, 본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경천대와 청룡사, 그리고 화전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다. 오랜만에 유람과 풍류를 즐긴 일행은 고향 마을인 화룡리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 마을 거치고 있다. 비교적 평지가 많은 지역이지만 도로가 많이 없던 1960년대이니 지름길로 산길을 많이 이용했을 것이다. 삼덕리 삼봉골의 논밭으로 이루어진 들에서는 막 봄의 농사철을 맞이하여 논을 열심히 갈고 있는 모습을 보인다. 아마 소를 이용하여 논을 갈고 있었을 것이다. 이어서 일행은 형제밭골에 이른다. 이곳에서 처녀들이 꽃을 꺾어 머리에 꽂고 봄나물을 뜯으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다. 부지런하면서도 봄의 멋을 잊지 않는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계속해서 일행은 물 마시러 오는 사람이 왕래하는 약천골을 지나 핏넝골을 지난다. 조금 멀리 있는 삼봉산을 바라보고 가벼운 걸음을 걸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사방공사를 지원한 산에 산림이 울창하다. 아름다운 봄을 맞은 산은 신록을 자랑하고 꽃은 활짝 피어 매우 아름다운 모습이다. 6.25 전쟁 이후 민둥산을 경험한 일행은 사방공사를 지원한 보람을 느꼈을 것이다.
3. 결미
결미는 집에 도착하여 일상으로 돌아온 모습을 담고 있다.
이렁저렁 오는 길에 가사에 다다르니
시부모 걱정하고 어린 애기 앵앵 우니
구경 간 보람 없고 생짜증이 절로 난다
이렁저렁 오는 길에 가사(家舍)에 다다르니
시부모 걱정하고 어린 야기 앵앵 우니
구경 간 보람 없고 생짜증이 절로 난다
화자는 화전을 끝내고 집에 도착하고 있다. 시부모님의 걱정과 아직 어린 자식들이 울음이 화자를 기다리고 있다. 구경 갔던 즐거운 기분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지독한 짜증이 저절로 생기고 있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70대의 장모님께서는 해외여행을 가서 가장 좋은 것이 때 되면 밥 주고, 때 되면 좋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농사와 가사로 힘든 부녀들에게 화전놀이는 공인된 일탈이었다. 다신 고된 일상으로 돌아와 너무도 잘 아는 힘든 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하니 짜증스러웠을 것이다.
Ⅳ. 결론
화전가(花煎歌)란 음력 3월 중순 경에 꽃놀이를 위하여 교외나 야산 등지에서의 화전놀이를 소재로 한 규방가사로 ‘화류가(花柳歌)·화수가(花樹歌)·낙유가(樂遊歌)’ 등으로도 불린다.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절 등 봄에 일기가 좋은 날을 택해 부녀자들이 산이나 승지(勝地)를 찾아가서 하루를 즐기는데, 이때의 상화(賞花)놀이를 화전놀이(꽃달임) 또는 화류놀이·꽃놀이라 부르고, 그 장소를 화전장(花煎場)이라 한다. 화전장은 주로 사방이 트여 잘 보이는 나즈막한 산봉우리가 많다. 여인들은 그 곳에서 준비해 간 음식과 진달래 꽃전을 만들어 먹기도 하고, 또 지필묵(紙筆墨)으로 현장에서 창작·윤작(輪作), 독송(獨誦)·윤송(輪誦) 등의 규방가사로 가회(歌會)를 여는 것이 상례처럼 되어 있다. 이때 지은 가사를 화전가라 한다. 화전가는 이처럼 현장에서 짓기도 하지만, 미리 지어 오거나 또는 화전놀이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그날 하루를 돌이키며 그 감회를 글로 남기기도 한다. 이때 남편이 지어 주기도 하는데 이 글이 바로 그러하다. 화룡골에 사는 전병규씨는 1960년대에 인근 경천대 일원으로 화전놀이 간 아내 류기매씨에게 여행에 관한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대화를 나누었을 것이다. 즉 여행의 경로와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 그리고 느낀 것들에 대해 묻고 답하며 이를 기록하여 ‘화전가’란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서두는젊은 날 즐기지 못하고 노년에 이른 자기 삶을 탄식하는 부분과 남자들과 달리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한 여인으로서의 한, 그리고 이를 보상받고자 가까운 여행지를 탐색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다.본문은 서로 약속하고 경천대에 이르는 과정, 경천대에서 유람(游藍)하는 부분, 낙동강에서의 뱃놀이와 청룡사에서 유람하는 부분, 여행지에서 풍류(風流)를 즐기는 부분, 여행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결미는 집에 도착하여 일상으로 돌아온 모습을 담고 있다.
이 가사는 20세기 중반 상주 사벌 화달리 화룡골에서 살아간 규방의 여성인 진주 류씨의 삶의 기록이다. 하나의 사회 문화적 유산이면서 규방가사의 맥을 잇는 데서 이 가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부록>
어하 세상 벗님네야 이내 말쌈 드러보소
청춘홍안 소시절은 빈부간 살림살아
잔자식 골몰중에 허송순간 다보내고
백발창안 그리되니 별 아니 무궁하오
유덕하신 남자들은 무삼 적션 하얏기로
남자 몸이 태여나서 일본으로 유람가며
만주로 여행하며 세계 각국 다녔건만
무심한 우리들은 심구에 깊이 앉아
가마니로 농사 삼고 주야로 치자 하니
경치가 무엇이며 학교가 무엇인고
앉아서 들어보니 상주에서 남장사와
상주 사벌 경천대는 경치도 좋다 하니
백사를 다버리고 상하촌 통문하여
산천구경 가자서라 노구하나 앞세우고
청년하나 뒷세우고
신식양산 빨지양산 해를가려 높이들고
노루장화 걸음 걸어 경천대를 다다르니
우허로는 절벽이요 알로는 대강이라
뒤허로 돌아보니 이승버들 너른 골에
황봉은 노래하고 점도새 춤을 추니
그도 또한 경이로다
기묘한 대위에는 백화가 만발하고
밑으로 내려보니 선유하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높이 떠서 노래 불러 왕래하니
골골이 구경이요 봉봉이 경이로다
심산궁곡 들어서니 송추중에 오작새는 수목 간에 날아들고
양류간에 앵무새는 경계상에 왕래하고
송이송이 꽃 가운데 슬피우는 저 두견아
그대도록 우지 마라 객의심이 산란하다
이렁저렁 가는 길에 강변을 다다라서
배를 타고 높이 떠서 사방산천 둘러보니
청용사가 보이거늘 강변을 다다라서
청용사를 바래보고 누루장화 걸음걸어
청용사를 다다르니 홍산문 일류문과
산천경계 신령당과 선경채로 법당이며 차차로 구경하고
돌아서 생각하니
아모리 여자인들 아니 먹고 아니 쓸까
주점을 찾아와서 여름 지낸 과하주며
만첩 산중 송엽주며 이태백의 포도주를
갖은 안주 빚어놓고 일배 일배 부일배라
주량 되로 시켜 먹고 만학천봉 높이 올라
사방 사천 둘러보니 산천 구경 더욱 좋다
이렁저렁 오는 길에 가사에 다다르니
시부모 걱정하고 어린 애기 앵앵 우니
구경 간 보람 없고 생짜증이 절로 난다
붙임 ‘화전가(花煎歌)’ 연구
[자료제공] 상주문화원 사무국장 전부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