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방송 생활하면서 이렇게 많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각박한 시대에 따스함을 주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 생각나는 그 사람∼” 그랬다
영화 속 사람들도, 영화 밖 사람들도 그를 따르며
그때 그 사람, 이태석 신부님을 그리워했다...
이 신부는 2001년 로마 교황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자청해서 아프리카 수단으로 갔다.
내전 중인 수단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지역이었다.
그곳을 자원하는 성직자는 거의 없었다.
이 신부님은 헐벗고, 굶주리고, 다치고, 병에 걸리고,
희망을 상실한 주민들에게 의술과 예술, 따뜻한 가슴을 베풀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14일 대장암으로 선종하셨다...
48세의 젊은 나이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이국 땅 아프리카에서 의료 봉사를 하다 숨을 거두었으니 붙여준
형식적인 수식어가 절대, 아니다...
영화에는 이태석 신부님이 톤즈의 배고픈 아이들,
밤낮 사흘간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수단인조차 외면하는 한센인을 바라보는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가 장면마다 배어난다.
이 신부님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진정한 선교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묵상케 하는 대목이다.
이 신부님의 고향은 부산이다.
어머님은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10남매를 키웠다.
어릴 적, 집 근처의 성당은 그에게 놀이터였다.
거기서 벨기에 출신인 다미안(1840~1889) 신부에 대한 영화를 봤다.
다미안 신부는 하와이 근처 몰로카섬에서 한센인을 돌보다가
자신도 한센병에 걸려 49세에 숨을 거둔 인물이다.
지난해 교황 베네딕토16세는 그를 성인 반열에 올렸다.
이 신부는 그 영화를 본 뒤 사제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인제 의과대를 졸업한 그는 집안의 기둥이었다.
그는 어머님께 “사제가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
신부가 된 형도, 수녀가 된 누이도 있었다.
어머니는 눈물로 반대했다.
“남의 아들들은 (신부로) 가면 다 훌륭하고 거룩해 보이던데...
왜 내 자식은 몇 명이나 데려가시냐?”고 반문했다.
그는 “어머님께 효도 못 하고, 벌어주지도 못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하느님께 자꾸 끌리는 걸 어떡하느냐?”고 울면서 대답했다.
그리고 늦게나마 신학대에 진학했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다.
그러나 내전으로 인해 모든 게 황폐해졌다.
특히 남수단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말라리아와 콜레라 등으로 약도, 치료도 없이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 신부님은 남수단의 톤즈란 곳으로 갔다. 그는 유일한 의사였다.
하루에 300명의 환자가 찾아왔다.
100㎞를 걸어서 밤에 문을 두드리는 환자도 있었다.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톤즈에 퍼졌다...
공간이 모자랐다.
이 신부님은 손수 벽돌을 구워서 병원을 지었다.
전기도 없었다.
지붕에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해 냉장고를 돌렸다.
더운 날씨에 상하기 쉬운 백신을 보관하기 위해서였다.
이 신부님은 학교도 지었다. 초·중·고, 11년 과정을 꾸렸다.
손수 수학과 음악을 가르쳤다. 케냐에서 교사도 데려왔다.
톤즈의 아이들은 거기서 미래를 찾았다...
다큐멘터리 속의 이 신부는 자신에게 묻고, 답했다.
예수님 이라면 이곳에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까?
성당을 먼저 지으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학교를 먼저 지었을 것 같다.
톤즈 사람들은 그를 “쫄리 신부”라고 불렀다.
‘존 리(John Lee)’라는 세례명을 그렇게 발음했다.
많은 사람이 이 신부님 에게 물었씀니다.
왜 굳이 신부가 됐느냐고, 의사로서도 소외된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왜 굳이 아프리카 까지 갔느냐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다고.
그 모든 물음에 이 신부님은 이렇게 답했다.
예수님께선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화를 보던 관객은 눈물을 흘렸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메시지 앞에서 솟는 눈물이기도 했다...
당신은 보고만 있냐고,,,
눈물을 흘리면서 주께 물었네
세상엔 죄인들과 닫힌 감옥이 있어야만 하고
인간은 고통 속에서 번민해야 하느냐고
조용한 침묵 속에서 주 말씀 하셨지...
사랑, 사랑, 사랑, 오직 서로 사랑하라고
난 영원히 기도하리라...
세계 평화 위해, 난 사랑하리라...
내 모든 것 바쳐서...
◆ 부산출신 10남매중 9번째 (4남,6녀)
◆ 부친 9살에 사망, 모친 현재 85세
◆고등학교때 다미안신부 일대기를 보고 감동
◆ 1987년 인제대학교 의과대 졸업 (인제의대81학번)
◆ 87년 군의관 입대, 91년 군의관 제대
◆ 92년 로마 살레지오 수도회 입회 유학
◆ 2000년 로마 살레지오 수도회에서 부제서품
◆ 2001년6월 살레지오 한국교구에서 사제서품
◆ 2001년11월, 수단으로 파견
◆ 2008년, 대장암 판정
◆ 2010. 1.14, 선종 (향년 48세)
첫댓글 kbs스페셸 타큐 보면서 눈물을 흘렸읍니다... 나 자신을 다시 한번 (건강한 사랑 .마음.)
나도 봐야겠다. 윤기야~~ 고마워~
두달전 쯤인가, 이 영화보면서 감동감동,많이 찡했다, 이태석신부님 살아 계신 하나님이 아니신가하는 ,,, 말기암에 이르도록 자신의 몸의 상태는 모른체 가난하고 불쌍한 아프리카인들을, 특히 문둥병환우들의 상처를 만져주고 손과발이 되어주는 지선의 사랑을 보여 주신 분 ! 이 분을 보고 도전을 받는다 , 점숙이 생각도 나고,,하나님 우편에 계실 분들 !
울 딸은 아프리카에 굶주리고 돈 없어 못 배우는 아이를 정기적으로 후원하고 있단다..딸이라도 고맙더라..
훌륭,,, ! 그 엄마는 더하겠지 ^^
나도 롯데시네마에서 이 다큐 재상영한다고해서 보려고 했는데 오전에만 상영하는 것 같더라. 시간이 맞지않아 아쉬워~~
에궁 미루다 못 봤는데..12월31일까지 상영한대서 31일11시35분거 예약했네..휴
다큐를 보는 내내 감동과 감격으로 눈물이 났다. 가장 보잘것 없은 사람에게 해준것이 내게 해준것이다라는 예수님 말씀이 떠올랐다. 뭔가 좋은 하고 가야할텐데...
난 두눈뜨고 차마 못볼것같애 생각만해도 머리아프고 가슴이 저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