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화도(蓮花島)는 욕지면에 딸린 섬이다.
통영에서 남쪽으로 24㎞ 정도 떨어져 있다.
면사무소가 있는 욕지도보다 규모는 작아도 엄연한 ‘열도’(列島)다.
본섬인 연화도를 비롯해 우도(牛島)와 반하도, 구멍섬, 목섬 등의 섬과 용머리 등
크고 작은 암초들이 ‘연화열도’를 이룬다.
아마 이 섬의 옛 주민들은 이 모습을 보고 꽃술이 겹겹이 싸인 연꽃을 연상했을는지 모르겠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9대 총무원장과 戒律을 관장하는 전계대화상을 지낸 쌍계총림 방장이셨던
고산당(杲山堂) 혜원대종사(慧元大宗師)!
포교에 힘쓰면서도 평생 수행자의 강직함을 지켜 ‘지리산의 무쇠소’로 불렸다.
한 번 옳다고 믿는 일에는 물러섬이 없었고,
부처님 법에 어긋나는 일이라 여길 때는 단호히 거부해 붙여진 별칭이었다.
1998년 제29대 총무원장에 선출됐지만 이후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법원 판결이 나오자
홀연히 자리를 떠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經律論 삼장에 두루 능한 종단의 대표적 원로로 수행과 함께
평생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는 禪農一致의 모범이 됐다.
쌍계사에 따르면 ‘봄이 오니 만물은 살아 약동하는데 가을이 오면 거두어들여 다음 시기를 기다리네.
나의 일생은 허깨비 일과 같아서 오늘 아침에 거두어들여 옛 고향으로 돌아가도다’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2021년 1월 23일 경남 하동 쌍계사에서 속랍 88세를 일기로 원적했다.
연화봉은 임진왜란 때 왜적이 나타나면 큰 깃발을 올려 연대도에 있는 봉화대와 교신하여
수군 통제영에 알렸다는 봉우리로 깃대봉으로도 불리웠다
통영 8경의 하나로, 마치 용 한마리가 남해바다로 기어들어가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정상 바로 아래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했다는 토굴이 복원돼 있다.
연꽃이라는 이름에서 짐작되듯, 사실 연화도는 불교와 관련이 깊은 섬이다.
자연경관을 제외한 섬 내 대부분 볼거리가 불교 시설이다.
연화도를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향, 불국토가 펼쳐진 연화 세계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연화도에 불교의 가르침을 펼쳐 놓은 이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다.
연화도인은 조선 연산군 때 불교 탄압을 피해 연화도로 들어왔다.
비구니 셋과 함께 섬에서 수행자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훗날 마을 주민들이 도인의 유언에 따라 시신을 수장했는데 그 자리에서 연꽃이 피어올랐다고 한다.
사명대사 전설도 비슷하다.
그를 따르는 여인 셋_대사의 누이 보운(임채운), 약혼녀 보련(황현욱),
대사를 짝사랑했던 보월(김보구)_이 섬으로 따라 들어와 토굴에서 수도했으며
세 여인 모두가 비구니가 되어 토굴터에서 수도정진을 통해 득도하여
'자운선사'라고 불리웠다는 것이 얼개다.
연화도인이 입적한 지 70여 년 뒤 사명대사가 연화도로 찾아와
연화도인 토굴터 아래에 움막을 짓고 정진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훗날 사명대사가 연화도인의 환생이라 믿었다고 한다.
보덕암은 연화사의 암자로 고산 대종사에 손에 의해 2004년에 지어졌다
가파른 비탈면에 세워진 보덕암은 위에서 볼 때는 단층이지만, 바다 쪽에서 건너다 보면 4층 건물이다.
암자 마당에서 보는 용머리의 풍경은 연화봉에서 내려다볼 때와는 또 다르다.
암자 처마의 풍경소리를 들으며 길게 이어진 바위섬들이 그려내는 풍경을 바라보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보덕암 난간 담에 뚫린 마름모꼴 창문으로 보이는 용머리 바위와 서까래의 단청은
그대로 마름모꼴 액자에 담겨진 한 폭의 수묵화다
달마대사 소림굴 수련중
혜가대사 법 구하러 찾아왔네
온갖 시련 참고 견디고
한팔 끊어 도를 얻고 법통이었네.
해안벼랑에 삐죽삐죽 거대하게 솟은 바위들의 형상이 마치 죽순과도 같다 해서 '대바위'란 이름이 붙었다.
한발 한발 벼랑을 따라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점입가경이다.
- 일행들은 우도와 구멍섬으로 향하고, 유 대장은 고산 대종사님의 땀으로 창건된 연화사를 답사했다
[蓮華藏世界]
불교에서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계신 곳으로
공덕무량(功德無量)·광대장엄(廣大莊嚴)의 세계이다.
이 세계는 큰 연꽃으로 되어 있고 그 가운데 일체국(一切國)·일체물(一切物)을 모두 간직하고 있다는 뜻으로,
연화세계·화장계(華藏界)·연화장세계라고도 한다.
사찰로 들어가는 3문(三門) 중 절의 본전에 이르는 마지막 문을 지칭하며,
일체에 두루 평등한 불교의 진리가 이 불이문을 통하여 재조명되며,
이 문을 통해야만 진리의 세계인 불국토(佛國土)가 전개됨을 의미한다.
고산당( 대종사가 여러 섬들을 만행하던 중 1985년에 연화도에 들어오게 된 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의 수행터를 찾다가
우연히 연화봉을 적시며 흐르는 맑은 샘을 발견하고
이 샘터를 마을 주민들로부터 매입한 후
틈틈히 법문보시와 여비를 모아 주위 땅을 사들여
1988년 8월에 창건한 사찰이다.
그 후
고산 대종사가 동남아를 여행하던 중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3과를 가져와
팔각구층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한 후
절 이름을 '보타 낙가산 연화사(補陀 落迦算 蓮華寺)'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