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해전(1942년 6월 5일∼7일)의 중요성
미드웨이에 있는 작은 환상 산호섬은 중태평양에 있는 미군 기지들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기지로서 미 본토에 있는 오하우섬에서 1,500마일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곳이 위협받으면 하와이까지 일본군의 공격권내에 놓이게 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일본측의 전략
일본군은 야마모토 제독의 지휘하에 20여척의 함정이 동원되었다. 첫번째로 미드웨이의 북쪽 1,200마일 거리에 있는 일류선 열도를 공격하고, 나구모 제독의 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를 사용하여 미드웨이를 공격하였다.
일본 해병대(육전대라고하죠)들이 해안에 상륙하여 비행장을 점령하고 나면 이곳을 방어하기 위해 미 함대가 이동해 오고, 이 지점에서 궤멸시킨다는 전략이 수립되었다.
일본군은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이후 5개월 이상 해전에서 승리했으며, 작전의 진행 정도도 급속히 빨랐다.
해전에서 일본군의 피해상황은 구축함급 정도의 함정만을 잃을 정도로 경미했으며, 승리에 도취한 일본군의 미드웨이 작전 계획 수립 정도는 무모할 정도였다.
야마모토 제독의 큰 실수 중의 하나는 니미츠 제독이 모든 것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의 정보력을 간과한상태가된것이다.하긴 미국은 이미 1930년대 동경대 출신 일본인으로 미국에 귀화한 야기에의해 개발된 야기안테나를 이용한 성능이 뛰어난 무선감청망이 있었다.(일명 yagi안테나)
수주일 동안의 정보 분석에 의해 미국 정보 당국은 일본군이 무엇인가 중대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고, AF라는 암호를 해독한후 AF가 미드웨이의 식수부족이란 사실을 알게되었다.
-미국측의 준비
니미츠 제독은 즉시 함정들을 집결시켰으며, 여기에 진주만에서 온 엔터프라이즈호, 호넷호 그리고 수리를 받기 위해 귀항했던 요크타운호도 포함되었다. 미드웨이 섬에는 각종 방어시설이 대공포와 함께 설치되었있었다. 일본군의 점령에 대비하여 자폭 장치도 설치되었다.
-해전경과
1942년 6월 3일 일류선 열도에 있는 더치항이 일본기의 공격을 받았는데, 비록 이공격이 미드웨이 해전 중의 일부분인 소규모 공격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상황은 일본군에게 불리하게 적용되었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본 항모 아카키, 히류에서 발진한 108대의 항공기들은 목적지인 미드웨이로 날아가 미군 방어선에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응하여 발진한 미군기의 대응은 제로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25대의 미군 항공기 중 17대가 격추당했으며, 이것은 태평양 전체를 통틀어 미해병대에 있어서 최악의 피해였다. 생존자중의 한명은 이륙도 하기전에 당하고 말았다고 울먹거렸다.
하지만 다행하게도 일본군의 공습에 대한 미군의 피해는 전체전력에비해 경미했으며, 일본기의 공습이 있을 쯤 대부분의 미군 폭격기들은 기지에서 이륙한 상태였다.
미해병대 방어선의 피해 사항 또한 일본군의 무차별 공습을 받았지만 경미했다.
미군 폭격기가 나구모 제독의 항모를 발견했을 때 제독은 2차 공격을 구상하고 있었으며, 일 항모를 발견한 미군뇌격기들은 제로기와 항모의 대공포방어막을 뚫고 들어갔다.
일본 항모는 미군 뇌격기에서 발사되어 진입해 오는 어뢰를 쉽게 피할 정도로 미군의 어뢰 속도는 상당히 느렸다.
B-26폭격기도 제로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수면 위, 아래로 이동하면서 공격에 참여했다.
일본군 함정에 대한 미군기의 4차례 공습에서 미군은 절반이상의 항공기가 격추되었다.그 결과 33대의 미군기와 그 승무원을 잃었지만, 일본군 함정의 피해는 한대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이 쳐놓은 그물은 그 효력을 잃기 시작했고,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미폭격기의 공격은 나구모 제독으로 하여금 미드웨이 섬에 대한 2차 공격을 계획하게 하였다. (결국 이게 결정적인 패전의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항모의 갑판 위에 있는 어뢰로 무장한 항공기를 격납고로 내려 보내서 어뢰를 제거하고 지상공격에 필요한 폭탄을 다시 장착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필요한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30분 정도의 작업이 진행될 무렵에 정찰기로부터 미군 함정을 발견했다는 무전 연락을 받았다. 여기서 제독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즉시 항모에서 뇌격기를 발진시켜 미군 함정을 공격하지 않으면, 항모자체가 미군기의 공습을 받게 되지만, 항모 위에서는 폭격에 참여하고 착륙 대기 중인 항공기들이 공중에서 선회 비행을 하고 있었다.
이들 선회 비행기들의 연료가 거의 바닥이 나서 비행 갑판 위에 공격 대기 중인 뇌격기들을 치우고 활주로를 비우지 않으면, 공중에서 선회 중인 항공기들은 바다에 떨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활주로에 있는 뇌격기들은 갑판 아래로 내려지고 함정에 대한 공격은 연기되었다.
30분 이내에 미드웨이 1차 공격에 참여했던 항공기들이 항모에 착륙했으며, 15분이내에 항공기들은 다시 이륙하였다.
그러나 미군측은 다른 전략을 가지고 있었으며, 호넷호에서 발진한 미군 항공기들은 비행 중 8마일 전방에 4대의 적 항모를 발견하였다.
15,000피트 정도의 고도를 유지하면서 뇌격기를 이끌고 적 항모에 접근하였다. 일본 제로기는 미군 폭격기를 저항이 별로 없는상태에서 공격했으며, 미군기들은 한대씩 화염에 싸여 추락하였다.
미군 폭격기가 추락하고있는사이 엔터프라이즈호에서 발진한 14대의 VT-6기가 일본함대를향해 날라가고있었다.
이번에는 4대의 비행기가 적의 방어막을 뚫고 어뢰를 발사했으나, 적 항모는 이를 피했고, 잠시 후 요크타운호에서 발진한 12대의 뇌격기가 도착하여 5발의 어뢰를 발사했으나 성과는 전혀 없었다.
3차례에 걸친 연속적인 공격에서 미군의 피해는 항공기 41대, 인명손상 80명이었다. 하지만 희생은 헛되지 않았고, 미군 뇌격기의 공격에 대비하여 제로기들이 낮게 떠 있는 동안 미군 급강하 폭격기들은 고도를 높게 잡고 일본 항모에 접근하였다.
제로기는 높은 고도에서 접근하는 항공기를 잡기 위한 급상승 기능을 가지고 있진 않은 약점이 잇었다.
항모에 접근한 미군기들은 급강하 하여 폭탄을 투하했으며, 첫번째 폭탄을 제외하고 4발은 연속적으로 일본 항모 가가호에 명중되었다.
한발은 이륙대기중인 밀집한 항공기 대형에 투하되었으며, 다른 한발의 파편은 사방으로 날아가서 선교에 있던 일본 수병 모두가 전사했다. 가가호는 갑자기 불꽃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으며, 3발의 폭탄은 소류호의 탄약실과 연료 탱크에 명중되었다. 갑판으로부터 불꽃이 나기 시작하고 검은 연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소류호의 함장은 부하들에게 즉시 하선을 명했고 그 자신은 칼을 들고 할복자살했다.
적어도 3발의 폭탄이 아카기호에서 이륙 대기 중이던 항공기들을 폭발시켰으며, 불꽃은 항공기로부터 갑판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진 폭탄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곧 이어 두번째 폭발이 있었고, 여기서 나오는 열기는 온몸을 후끈거리게 했다." 순식간에 모든 것이 파괴되어 주위는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10분만에 53대의 미군기들은 태평양 전쟁의 전세를 바꾸어 버렸으며, 일본군은 3대의 항모를 잃었고, 남은 것은 히루호 한대 뿐이었다.
히루호의 함장 야마구치 제독은 즉각적인 반격을 가했고, 한시간도 못되어 일본기들은 요크타운호로 접근하고 있었다.
일본기들이 전방 15마일 정도 왔을 때 미군기들은 여기에 대응하기 위해 발진했다. 하늘 위에서 벌어지는 공중전에서는 일본폭격기들의 절반 가량이 격추되었고, 그 나머지는 요크타운호로 접근했다.
일본기들이 항모에 접근하자, 항모에서는 대공포가 발사되어 첫번째로 접근하는 항공기를 3부분으로 분해시켜 버렸고, 그 잔해는 물속에 추락했다.
일본군 항공기에서 발사된 폭탄은 항모 요크타운에 명중되어 비행갑판을 뚫고 아래로 떨어져 한발이 굴뚝 속으로 들어가 폭발하여 3대의 보일러 기관과 연결된 통풍관을 파괴시켰다. 요크타운은 정전이 되고 복구반의 노력으로 1시간만에 항모 기능을 회복했지만, 일본기의 2차 공격으로 파괴되어 선장은 배를 버리고 하선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틀 후 항모 요크타운은 일본군 잠수함에 의해 침몰되고 말았다.
이 전투는 2차대전후 일본의 해전중 첫 패배이자 최악의 패전으로 끝났고, 하루사이에 해군 항공기의 절반 가량이 파괴되었고, 332대의 항공기와, 2,155명의 인명 손실이 있었다.
**일본 해군이 패전한 이유
1. 거함거포주의사상에 집착.
日本海軍이 1905년 대한해협에서 함대결전으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함으로써 러일 전쟁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이후 大艦巨砲主義는 일본해군의 주전사상으로 정착되었지만 잠수함과 항공모함의 등장으로 해전양상이 달라진 미국과의 太平洋戰爭에서도 일본해군은 대함거포에 의한 함대결전 전략에 집착하다가 1942년 미드웨이해전에서 참패.
2. 능력있는 제독 야마모토를 미군이 제거에 성공
미군측은 진주만 기습을 성공시킨 야마모토 제독에대해 위협을 느끼고 있었고 야마모토가 일본해군에 끼치는 영향이 대단하리란걸 알고 제거를 결정하게된다.
미군 정보 당국에 의해 야마모토 제독이 비행기를 타고 1942년 4월18일 솔로몬에 있는 일본군 기지를 순시한다는 정보가 입수되고 니미츠 제독은 339 비행대에 제독의 암살을 명령했다. 제독은 4월 18일 하루 일정으로 기지를 순시하며, 첫 기착지는 부겐빌에서 떨어진 작은 섬으로 향했다. 이곳은 일본군 병력이 전력 재정비를 하고 있었으며, 제독과 함께 동행한 사람은 우카이 제독이었다.
제독을 태운 항공기가 미군 당국이 예정한 시간에 목표지점에 이르렀고, 때를 맞추어 핸더슨 비행장에서는 보조 연료 탱크를 장착한 P-38 비행대 16대가 이륙했다.총 16대중, 4대의 P-38기가 야마모토를 태운 항공기를 노리는 임무를 맡았고, 나머지 12대는 야마모토를 엄호하는 6기의 제로기를 담당했다.
야마모토 공격조 4대중에서 P-38 두 대는 보조 연료 탱크 분리를 못하여 공격선에서 제외되었다. 나머지 2명인 토마스와 렉스가 야마모토 제독의 암살 작전에 나서 성공시켰다.
3. 미해군함정이 다가올때 공격후 착륙대기중인 함재기와 미해군을 공격하기위한 공격기가 뒤엉켜버림.
일본 항공기의 공격받으면서 미드웨이에서 발진한 미폭격기의 공격으로 나구모 제독은 미드웨이 섬에 대한 2차 공격을 계획하게 되었고 이는 항모의 갑판 위에 있는 어뢰로 무장한 항공기를 격납고로 내려 보내서 어뢰를 제거하고 지상공격에 필요한 폭탄을 다시 장착해야 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정도 걸리는데, 30분 정도의 작업이 진행될 무렵에 미군 함정 발견 무전 연락을 받게되는데 미군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의 공격을 받지않으려면 미군함대를 공격해야하고 미군 공격후 선회하면서 착륙을 대기하던 항공기들을위해서는 미함대공격임무를 맡은 항공기를 치워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되는데 나구모제독은 결국 연료가 바닥나가는 함재기 들의 착륙을 선택하게된다.
이게 패전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
**해전당시 미 일 동원된 해군력
-일본측 (지휘관 노구모제독)
항모 4척(아카기-Akagi- , 히류호, 항모로 개수된 Yamato급의 3번함 시나노, 소류 -Soryu-)외 함정 43척, 항공기 285기
이중 항모 4척 전부와 중순양함 1척이 침몰, 항모탑재항공기 285기 전부와 많은 탑승원을 잃었다.
-미국측(지휘관 니미츠제독)
미 해군 항모 요크타운호,엔터프라이즈호, 호넷호 외 함정 32척,항공기 233대.
- 관련 영화
진주만(최근 개봉) ; 진주만 기습~도쿄공습
도라도라도라
(70년 아카데미 특수효과상 수상작.한국에선 아마 1976개봉햇을겁니다.) ; 진주만기습
첫댓글 한마디로 정보전의 승리ㅋㅋ
글고 항모중심의 전략...
코만도스2에 보면 콜세어기가 시나노호를 공격하는 부분이 나오죠 -_-;;
음? 그거 콜세어였나요? 돈트레스인줄 알았습니다 어쨌든 그 동영상 진짜 인상깊었는데..
역갈매기형 날개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모르겠습니다 -ㅇ-;; 그냥 콜세어로 알고살아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