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場)돌림
후박/전원일
**이글은 1984년도 부산에서 신발공장을 하다가 부도가 나서 창고에 재고로 남은 신발과 함께 전국 5일장을 떠돌면서 한달간 겪었던 일들을 추억을 회상하면서 적은 글이며 한꺼번에 모두를 적지 못하고 생각을 떠올려 6부작으로 나눠서 적는글입니다
*장사이동경로/부산출발 ㅡ>함양 ㅡ>장수 ㅡ>진안 ㅡ>정읍(내장산) ㅡ>전주 ㅡ>고창 ㅡ>논산 ㅡ>천안 ㅡ>단양 ㅡ>쌍용 ㅡ>영주 ㅡ>봉화 ㅡ>태백 ㅡ>안동 ㅡ>영양 ㅡ>평해 ㅡ>울진 ㅡ>저진 ㅡ>속초(설악산) ㅡ>강릉 ㅡ>동해 ㅡ>삼척 ㅡ>영해 ㅡ>구룡포 ㅡ>부산귀항
제1부 고추바람
84년도 새해 벽두부터 부산의 신발 공장은 두가지 얼굴을 드러냈다 하나는 수출의 호황을 맞은 대기업들이고,또하나는 우후죽순식으로 들어선 신발 공장으로 인해 곳곳에서 문닫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대기업은 자기 브랜드를 가지고 호황을 누렸다기보다 외국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맡아서 국제경기가 좋은 덕택에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기만 했다 대표적인 브랜드는 나이키.아식스.아디다스. 콤버스.뉴바란스같은 제품을 들수 있다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부산의 국제상사 대양고무.진양고무.풍영.동양 삼화고무같은 회사였는데 그들은 이런 위탁제품을 만들어 번돈으로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프로스펙스.월드컵....등의 제품이 탄생한것이다
나도 부산에서 '제닉스'라는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서 제품을 생산해서 부산 자유시장과 서울 남대문 시장으로 제품을 판매했다그리고 타회사의 일을 하청맡기도 했는데 요즘으로 말하면 협력업체였던것이다. 그러나 본사가 부도가 나니 받은 약속어음은 휴지가 되고 말았을뿐만 아니라 큰 뚝이 무너지고나서 인근 작은 제방이 맥없이 무너지듯 그 여파로 줄줄이 맺어온 거래처들이 허물어지고 말았다 결국 도산에 이르고 말았는데 그 피해액수가 브랜드 아파트가 없었던 시절 고급아파트라고 불렸던 맨션아파트 다섯채에 해당하는 금액의 개인 빚을 짊어지고 만것이다 내 나의 겨우 31세였고 두려움없이 혈기왕성하게 사업을 했던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일이 터진것이다
직원들의 인건비를 계산하고 기계들을 헐값으로 팔고 남은건 아직도 남은 많은 빚과 창고에 남은 재고상품만 가득했다 5개월 가까이 공장을 정리하면서 밤마다 찾아와서 횡포를 부리는 채권자들로 부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는 지칠데로 지쳐있었다 한 예로 80kg의 몸무게가 63kg이 되었다 무려 17kg이 빠졌으니 얼마나 힘들게 보냈는지 가히 짐작하고도 남을것이다 광대뼈가 불거져나오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꼴이었다 이제 남은것은 재고 신발을 처분하는길인데 도매시장에 전화를 했으나 신발 한개당의 가격은 책정하지 않고 무더기로 저울을 달아서 사겠다고 했다 그런 예는 나와같이 부도가 난 공장은 모두 그렇게 처분 받았다 나는 생각끝에 부전시장이며 구포시장에서 노점상하는 상인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그들을 공장으로 데려와서 창고의 절반 분량을 처리하고 나니 2.5톤 분량(엄청 높이쌓은 높이)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내가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있었던곳도 부도가 나서 돈 대신에 신발을 가져가라고 해서 울며격자먹기식으로 신발을 가져왔다 공장 창고에서 담배를 물고 한숨만 쉬고 있다가 이렇게 앉아 있을수만 없다고 판단한 나는 부전시장에서 노점을 하는 사람들의 상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갔다 그런데 조용히 리어카에 신발을 파는 신발장사와는 달리 옷장사는 핸드마이크를 들고"골라 골라"를 외치면서 손님들을 불러들였고 손벽까지 동원한 그들을 신기한듯 쳐다보던 주부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많은 물품을 구입해 가지고 가는 모습을 옆에서 우두커니 지켜보다가 나도 저렇게 마이크를 들고 팔면 잘팔수 있을것이라고 생각을 한후 인근의 전파상에서 핸드마이크를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아무래도 내 얼굴이 많이 팔려진 부산이나 경남보다는 타지역으로 가서 파는게 좋을듯해서 마음도 식힐겸 여행도 할겸해서 전국을 다니면서 파는것이 낫겠다고 생각을 하고 2.5톤 트럭에 산더미처럼 신발 박스를 실고 다음날 아침 출발하기로하고 야숙을하기 위해 텐트. 버너 .코펠등을 준비하고 멸치 한포대.고추장.그리고, 쌀과 라면을 준비해서 차에 실고 30만원을 경비로 챙겼다
때는 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7월 중순이었다 부산을 출발해서 호남지역부터 가기로 하고 남부고속도로를 향했는데 차들이 별로 없어서 쉼없이 달렸다 평균 2~3백미터에 하나 정도의 차량들이 보일 정도였으니 차가 얼마나 뜸했던 시절임을 짐작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줄곳 진주로 향했는데 진주로 가는것은 그곳에 둘째 누이동생이 살고 있어서 가는 길목이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주 금산면으로 시집간 누이는 결혼후 한번 밖에 보질 못해 무척 보고 싶어서였다 그렇게 마음 먹고 달려갔는데 마산이 지나자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누이가 보고싶긴 하지만 이런 몰골로 나타나면 매제가 어떻게 생각할까 또 너무나 달라진 내 모습을 보고 누이동생이 얼마나 가슴아파할까하는 생각이 들자 전라도로 바로 가자는 생각을 했는데 광주 또한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민심이 흉흉하다는 소문을 들은터라 광주가는것을 포기하고 함양을 넘어서 전북을 가기로 했다
진주를 거쳐 지리산에서 흘려오는 계곡을 따라 줄기차가 올라가니 산청이 나오고 계속 올라가니 함양을 만났다 나는 그곳에서 군대시절 함께 북방한계선 서해 5도중의 하나인 우도에서 고락을 함께한 동료인 공재현(군시절 별명이 마라도나)을 만났다 그 친구는 제대를 해서 그곳 농협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군대생활할때 체격이 나보다 훨씬 작은 놈이었는데 농협생활이 편했는지 허리둘레가 나의 두배가까이 되어 있었다 그 친구는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워하면서 그의 집으로 갔는데 아내와 두 아들을 두고 오붓한 가정을 꾸미고 있었다
"여보 내가 말하던 전**이라는 친구다 인사하거라"
"녜 말씀 많이 들었어예...에피소드도 많이 듣고예...^^"
맞인사를 하던 친구 부인은 친구의 귀에 무언가를 궁시렁거리는 말로 속삭이고 있었다
저녁을 함께 먹고 집에 자라는 말을 뒤로하고 계곡에 텐트를 치고 준비해간 소주를 주거니 받거니했다
"친구야 너거 마누라가 뭐라카더노?"
"그런기 있다...^^"
"임마 궁금하다 말해보거라?"
"음 다름이아이고 니보고 거지인줄 알았다안카나~~^^ 니보고 항상 잘생긴 친구라고 말하면서 해군 세라복 입은 사진도 보여줬고 해서 우리 마누라가 기대를 항상하고 있었는데...오해하지마라"
"오해는 무슨 오해 ..너거 마누라 이해한다~~^^"
사실 내가 봐도 외모가 거지 형체였다 두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아 머리도 길고 수염도 많이 자라 있었고 그기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었고 짙은 선글라스를 꼈으니 말이다
"친구야. 네 몰골을 보니 힘든모양인데 이곳에서 며칠 푹 쉬었다 가라 반찬꺼리는 걱정하지말고.."
"반찬꺼리 걱정말라 무슨뜻이지??"
소주를 몇병 마신 친구는 계곡을 가로질러 소위 피리낚싯줄을 연결해 두었다
"잠시 있어봐라 내가 만다꼬 반찬 걱정하지 마라 카는지 이유를 알끼다"
친구와 수많은 대화를 나눈후 뒤를 따라 피리 낚싯줄을 들어 올리니 피리고기들이 줄줄이 걸려 있었었다
"봐라 내말 거짓말아이제 .지금은 낮이라서 그렇지 밤을 새우면 더 많이 잡힌다 피리들은 밤에 활동을 많이하거든....^^"
피리로 횟감으로,매운탕꺼리로 해먹으며 낮에는 혼자서 계곡에서 물놀이를하다가 텐트에서 잠을 자고 그러다가 퇴근해서 술을 들고오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보니 금새 일주일이 흘러가버렸다
계곡에서 일주일 있으니 사람이 그리워서 친구와 작별을 하고 지리산을 넘어 장수로 갔다 학교에서 지리교사로 근무하는 아내가 말하기를 그곳을 무진장 고을이라고 종종 말을해서 나는 무진장 고을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무진장 고을이라고함은 무주군.진안군.장수군을 통칭해서 말하는데 장수로 접어들자 읍내 5일장이었고 곳곳에는 인삼 노점상들이 눈에 띄었다 " 이상하다 .인삼은 금산뿐인줄 아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를 세운후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그리고 항상 인삼은 비싸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나는 가격을 묻는것도 주저하면서 인삼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무더기를 쌓아둔것을 3만원에 흥정을 해서 보자기에 사들고 갔다 "왜 이렇게 값이 싸지?인삼도 가짜가 있는건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인삼 장사가 권하는 작은 뿌리를 질근질근 씹었다 값이 싼 이유를 물으니 작업도중에 상처를 입은것과 모양이 좋지 않은것(사람人자라야함)은 제품으로서는 가치가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해서 나도 한 보자기를 3만원주고 구입한후 수돗물에 깨끗이 씻어서 절반은 말리듯 핸들 앞위에 말리듯 늘어 놓았고 나머지는 내 옆좌석에 두고 인삼을 씹어면서 차를 몰았다 입안 가득 인삼 냄새가 가득함을 느끼면서 점심을거르고 인삼으로 배를 채우면서 진안쪽으로 가는데 저멀리 이상한 산이 눈에 나타났다" 참 산이 희한하게 생겼네!! 우리나라에도 저런 산이 있나!!"하면사 경탄을 자아내며 차를 몰고 갔는데 저만치서 팻말이 보였다
마이산(馬耳山)....
그래 맞어 꼭 망아지 귀같이 생겼네!!신기하게 생긴 마이산을 향해 핸들을 꺾었다 더운 여름인데도 많은 관광객들이 마이산을 찾아들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수많은 돌탑을 세워 놓은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안내판을 본후 어떤 처사가 이 많은 돌탑을 샇았다는점에 놀랬다 '참으로 대단하신분이구나 어찌 이 많은 돌탑을 쌓았을까?'하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숫말산으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배가 아팠다 밥을 거른체 인삼을 너무 많이 씹어 먹어서 그런거라 생각이 들어서 화장실을 찾았으나 공중 화장실이 없었다 나는 적당히 용변을 해결하기 위해 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얼마나 노상 방뇨(放尿) 방분(放糞)을 많이 했던지 곳곳에 똥무더기들이 진동을 해서 구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아무리 내가 급해도 저곳에선 변을 볼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배를 움켜쥐고 아랫쪽 절간 같은곳으로 내려와서 겨우 볼일을 보았다 나는 마이산에서 더 이상 있고 싶은 생각이 달아나서 간단히 세수를 하고 차족으로 오는데 내가 세워둔 차 옆에서 콩국수를 팔고 있었다. 점심때여서 배가 고픈지라 얼른 가서 콩국수 한그릇을 먹은후 남원을 향했다
남원으로 향하는 길을 달려가자 저 멀리서 성춘향이과 이도령의 전신 모습을 그려서 세운 대형 그림이 눈에 나타났다 말로만 듣던 남원이 나를 반겼다 읍이라고 하기엔 웬지 초라한 동네였다 차량 몇대 보이지 않은 길을 따라 돌아가니 광한류가 나타났고 능수버들이 연못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간혹 관광객인듯한 사람들이 남여 모여서 다니고 있었는데 반술이 되어 있는 걸음걸이를 하고 있었다 오작교를 슬쩍 올라가서 둘러본후 곧장 빠져나와 차를 세워 둔곳을 향하는 데 "오골계탕 저게 뭐지? 삼계탕은 많이 먹어보았지만..." 궁금증이 발동해서 상호가 써여진 곳을 기웃거렸다
"손님 오골계탕 잡수시려 오셨나요?들어오세요"
"오골계탕이 뭔가요?"
"오골계 처음 들어보시나요?옛날에 임금님들이 즐겨 잡수신 보양식인데....^^"
나는 임금님 수랏상에 올랐고 보양식이라는 말에 호기심이나서 안내하는 아줌마를 따라 식당엘 들어갔다
오골계는 조금전 아줌마의 말처럼 먹으면 보신이 될것 같았다 경상도 지역에선 한번도 보지 못한 검은 닭인점도 있었지만 재료로 들어간것이 여러가지 한약재를 넣어서 음식이라기보다 보약을 먹는 느낌이었다 나는 식당을 나오면서 생각하기로 오골계탕집을 경상도지역에 차리면 많은 돈을 벌수 있을것같은 생각을하면서 오골계탕집을 나오는데 온 몸이 가렵고 몸의 작은 흉터자리에는 불긋불긋 반점이 생겼다 "객지에 나와서 아프면 어쩌지... 죽을병인가?"생전 처음 나타난 전신 붉은 반점을 보고 너무 많이 놀랬고 걱정이 되어서 병원을 찾았으나 보이질 않았다 길가는 사람들에게 병원을 물으니 해가지면 의원은 문을 닫으니 한의원집으로 가보라고 했다
한의사는 내몸에 생긴 붉은 반점을 진단하더니 내게 오늘 무엇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장수장에서 인삼을 사서 점심 대신에 먹었다고하니 한의사는 '허허허'웃었다
"인삼을 그렇게 많이 먹었다는게 이해가 안가네요?~~^^"
"전라도 산세를 구경하느라 그냥 오징어 씹듯이 씹어 먹었지요"
"당신 큰 효험을 보았소 앞으로 감기 몸살이나 그런 잔병을 일체 없을꺼요~~~^^"
그말을 듣고 나니 안도가 되어서 가슴을 쓸어내렸다 한의원집을 나온 나는 전북지역의 최고 명소인 내장산을 향해 출발했다
해가 뉘엇뉘엇 저물어갈때 내장산 국립공원에 도착할수 있었다 내장산은 국립공원임에도 불구하고 정읍에서 들어가는 길은 비포장 도로여서 자동차 바퀴에 울퉁불퉁한 돌들이 툭툭 튀어 나갔다 "참 이상하네?국립공원인데 어찌 도로포장 조차 안되어 있을까?양산통도사만해도 포장이 되어 있는데?"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호남지역에서 지역차별이라고 향변하는 생각이 떠올라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입장료도 받지 않는 내장산 안쪽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서 큰 단풍나무 아래에 차를 세우고 이곳에서 1박하기로 하고 개울가에 텐트를 쳤다 텐트를 치고 나서 종아리 절반 정도의 물이 흐르는 곳에 발을 담그고 세수를 했다 몇 미터 윗쪽 맞은편에는 허름한 합판으로 지은 간이 음식점에서는 부침개를 만드는 여자가 분주하게 후라이팬을 돌리고 있었고 계곡에 설치한 둥그런 탁자에 앉은 내또래 되는 사내에게 방금 구은 부침개를 동그란 대접에 담아 올려 놓고 갔다 그는 부침개가 도착하기전 벌써 막걸리 두병 과 소주를 마신듯 빈병이 놓여져 있었다 그는 또다시 막걸리를 달라고 큰소리로 말한후 그라스에 부은후 연거푸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다가 바위에 걸터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힐끗 쳐다 보면서 손짓을 했다
"보슈 일행이 없으면 이리와서 술 한잔 하시오"
"............"
나는 대꾸도하지 않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괜찮소 나도 혼자 마시니 술맛도 없고 하니 말동무가 그립네요"
그는 애탄 목소리로 오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또한 혼자이고 지금 텐트에 들어 가보았자 잠도 오질 않을것 같아서 계곡 물살을 가르며 사내 근처로 다가 갔다
"이쪽 의자에 앉으세요 술값은 신경 써지 말고 말동무 되어주세요"
그는 나의 거지 같은 몰골을 훑어보며 술값은 염려하지마라고 안심을 시켰다
"이것도 인연인데 인사나 합시다 저는 광주에 사는 35세 김동수라고 합니다"
그는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녜 .저는 부산에서 온 전** 입니다 올해 31세이고예"
"부산?그곳에서 이 먼곳까지 우째왔소?내장산은 가을 단풍철에야 외지인들이 오는데?..."
"관광온게 아니고 신발장사하러 왔소"
"신발? 신발하면 부산이죠..."
그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런데 김형은 무슨 고민이 있나요?왜 혼자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거요?"
"동생이 보고 싶어서요"
"동생이 어디 멀리 갔나요?"
"광주민주혁명때 도청앞에서 공수부대 총에 맞아 죽었소...."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나는 광주사태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어서 혁명이라는 말에 약간 이질감이 들면서도 그의 표정을 숙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전형도 광주혁명을 빨갱이 짓이라고 생각하요?"
"....................."
"음 ..내가 말을 괜히 했군요 경상도 사람들은 모두들 그렇게 생각한다더니..전형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요"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마을 선배가 육군 헬기조종사인데 그 선배가 공수부대원들을 광주에 운송해주고 고향에 잠시 왔었는데 마을사람들이 정말로 방송데로 전라도 사람들이 빨갱이들과 합세해서 난동을 부리느냐고 물렀었는데 그 선배는 묵묵부답이었거던요 그래서 무언가 군부에서 떳떳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니 말을 못한다고 시골사람들도 의심을 했었지요 또,잘은 모르지만 5공 군부세력들이 총검으로 무장한체 무고한 시민을 삼청교육대로 막 끌고 가는것을 보고 우리나라도 엄연히 법치국가인데 체포 영장하나없이 마구잡이 잡아가니 군사독재라고 생각을 했거던요 그래서 언론에서는 광주사태라고 표현하지만 군부세력이 언론을 완전 장악했으니 빨갱이가 아니라 더이상의 범법자로 몰아가도 누가 뭐라하겠어요 그래서 광주 빨갱이 난동이라는 말은 처음부터 의심을 했고 석연찮게 생각했던게 사실이요 ....."
"왜 5공세력들은 아직까지 우리 광주 사람들을 빨갱이 취급하는지 모르겠소"
".............."
"정권찬탈의 정당성을 만들기 위해 광주시민을 희생양으로 만들어 놓고 씨펄새끼들...."
"..........."
내가 더이상 대꾸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자 그는 멋적은듯 머리를 긁적이며 빙그레 웃었다
"형씨도 살기가 힘들어 보이는데 내가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한것같소 이해하소 그런데 신발은 좀 팔았슈?"
"아뇨...^^"
"부산에서 정읍까지와서 신발을 못팔면 되나요?"
"못팔면 다시 실고가면 되죠 뭐"
"그런데 숙소는 정했소 내하고 같이 갈래요?"
"숙소는 저 아래 텐트입니다 그런데 형씨는 어디서 잘꺼요? 내장산으로 들어올때 저 아랫쪽에 보니 여관이 있긴 합디다마는 ..."
"자는거는 신경안씁니다 아무데나 자면 되지요...^^"
그와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는 사이 어느덧 밤하늘에는 별들이 총총했고 숲속에서는 풀벌레 소리들이 합주단의 작은 악기소리같이 찌직거리는 소리를 냈고 우리들의 긴얘기를 듣고 잠에서 깨어난 매미들이나 작은 새들이 시끄러워서 더 이상 잠을 못자겠다는듯 푸드득 소리를 내면서 자리를 이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물속에 발을 오래 담궜더니 발이 시리네요 계곡의 기온도 많이 떨어지고 이젠 술도 많이 마셨으니 텐트로 들어갈까합니다 "
"벌써요?...시간도 얼마되질 않았는데...."
나는 잘 먹었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손사레를 쳤다 텐트속으로 돌아와서 트렌지스트 라디오를 켜고 모포에 모로 기댄체 담배 연기를 길게 내 품는 동안 눈까풀이 자꾸만 처지기 시작했다 그를즈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전형! 벌써 자요?"
조금전 함께 술을 마신 그가 텐트속을 빼꼼히 드러다보면서 말했다 그는 술을 들고온듯 들고 있는 비닐 봉지에서 병이 부딪히는 소리가 딸가닥 거렸다
"텐트에서 한잔 더합시다"
그는 싱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술 많이 드셨는데 또 마실려고 그래요? 안으로 들어 오세요....^^"
내가 텐트 자크를 끄르륵 열고 문을 열어주자 그는 조심스레 몸을 낮추며 까치걸음으로 안쪽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비닐봉지를 열고 술잔을 이었다 조금전 계곡에선 막걸리를 마셨지만 이번에는 소주였다 그는 자기 가족사에 대해서 장구하게 늘어 놓으면서 부산에 삼촌이 산다는 얘기까지하며 자신이 부산가면 술한잔 사달라는 약속까지 받아내려는듯 "꼭 만납시다"라는 말을 되풀이하는 동안 그가 들고온 소주 네병도 빈병으로 드러 누웠고 그도 나도 입이 풀리기 시작했다
"김형 여관에 가서 잘려고 하지말고 텐트에서 같이 잡시다"
"히히히....그래도 되겠소?아가씨가 아니라서 미안하요~~^^오늘 여관비 벌었네...내일 여관비 벌인 댓가로 해장국 살께요..."
그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드러눕더니 코를 드르렁 고는 소리를 냈다
다음날 아침 7시께 일어나서 개울에서 세수를 하고 내장산 경내며 윗쪽 방향을 올라가서 구경을 하고 돌아왔는데 그는 아직 잠을 자고 있엇다 어젯밤에 술을 마셨던 통나무 가게에서는 오늘 장사를 준비하느라 후라이펜과 냄비등 그릇을 계곡에서 씻고 있었다
"잘 주무셨어요?음지라서 바닥이 축축했을텐데 몸 괜찮아요 뻐근안해요?"
식당 여주인은 애교섞힌 목소리로 물었다 그녀의 남편은 콜라 박스를 엉덩이 위에 걸치고 개울을 건너오고 있었다
"아저씨 냉 커피 한잔 드릴까요?"
"녜 한잔 주실래요?"
"어제함께 마시던 사람은 여관방에 잘 갔는지 술이 거나하게 되었는데 술을 네병달라고해서 그냥가서 자라고 했지만 고집을 피우면서 들고 갔지요"
"ㅎㅎㅎ어제 저하고 같이 잤습니다"
"함께요? 참말로 남자들 세계는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몇시간만에 금새 친구가 되어 동침을 하고...호호호 ..그런데 그사람은 자고 집으로 갔어요?"
"아뇨..아직 자고 있어요~~^^"
"허긴 그사람은 며칠째 이곳을 돌아다니던데 죽은 동생때문에 충격이 많이 컸나 봅니다 볼때마다 술이 취해서 다니더군요"
커피를 마시고 텐트로 돌아오니 김씨는 방금 일어난듯 띵해진 표정으로 봉두난발이 된 머리를 긁고 있었다
"김형 일어났소"
내가 자크를 열며 먼저 인사를 하자 고개를 돌리던 그가 말했다
"막걸리하고 소주 짬뽕하면 머리가 골때린단 말이야 전형은 괜찮소?~~^^"
"원래 저는 짬뽕을 좋아해요 맥주에 소주 짬뽕이며 폭탄주도 좋아하지요~~^^"
"전형.어젯밤 내가 코 많이 골지요?"
"모르겠습니다 저는 잠이 들면 누가 짊어지고가도 몰라요..^^밖에나와 세수하신후 해장국 먹으러 가야지요~~^^"
내가 내밀어준 타올을 목에 걸치고 개울로가서 머리를 감더니 뭔가 부족한듯 잠시 생각을 하더니 티셔츠를 벗어던진후 상체 부위와 겨드랑이를 씻기 시작했다 그런후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전형 식사를 해야지요? 저기 통나무집은 밥은 안파니 라면이라도 끓어 달라고 할까요?"
"라면은 싫어요 일단 입구 쪽으로 가봅시다~~^^"
우리는 오랜 벗처럼 정답게 대화를 나누면서 걸어갔다
"김형 이 동네 삼겹살 구이집 같은곳 없을까요?"
"삼겹살?이곳에 안보이던데?주로 버섯이나 산채로 만든 비빔밥 종류 식당 밖에 없는것 같은데...왜 삼겹살 찾아요?"
"육고기를 먹은지가 꽤되어 돼지고기가 먹고 싶네요 쇠고기는 비싸고....^^"
"닭고기는 어때요 정읍시장에가면 오골계 파는 식당이 있는데..."
"오골계?.....ㅎㅎㅎ"
"왜 웃어요 오골계 먹어 보았어요? 맛 없어요?"
"아뇨 남원에서 오골계 먹어 보았는데 맛은 있던데 새종류라서 그런지 금새 배가 고파서 그래요...^^"
두사람이 대화를 나누면서 식당 유리창에 적힌 메뉴를 보면서 정읍시내 방향으로 걸어오는데 저만치 입간판에 '돼지국밥'이라고 적힌 글씨가 보였다
"저기 갑시다 돼지국밥집이라면 수육도 있겠네요 어제 김형 술 잘 얻어 마셨으니 오늘은 내가 살께요~~^^"
식당 모서리에 걸쳐 놓은 솥단지에서는 구수한 돼지 냄새가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아줌마 고기 수육 한덩어리 주세요 돈은 상관하지마시고 굵직하게 썰어 주세요 돼지고기는 얇으면 맛이 없어요"
수육을 주문한 사이에 아침부터 소줏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김형 어젯밤 말씀들어니 동생땜에 상심이 엄청 커시던데 광주민주혁명이 일어난지도 몇년 지났으니 이젠 마음을 가라 앉히고 김형 앞날을 위해 노력하심이 좋을듯해요 슬픔에 잠겨서 매일 술을 마시면 몸 밖에 더 상하겠어요 광주의 진실은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진상규명이 될껍니다 제 뜻을 아시겠지요?"
"전형 고맙소 특히 경상도 사람한테 이런말을 하고 듣고나니 더욱 기분이 좋소 그리고 어젯밤에는 몰랐는데 오늘보니 전형도 엄청 야윈 얼굴이네요 눈도 뻐꿈하고 광대뼈도 튀어나오고 골격을 보니 원래는 체격이 좋았던 사람같이 보이는데...."
그는 내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우리들은 식당 아줌마가 들고온 수육이 양이 덜 차서 한 접시 더시켜 먹었고 게트림을 한후에야 식당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주에 약속이 있다며 버스 정류장쪽으로 향했고 나는 텐트로 돌아왔다
낮술에 취기가 올라 텐트에 들어오자마자 곤하게 다시 잠에 빠졌는데 얼마나 잤을까 오후3시 정도였는데 텐트 근처에서 장고소리에 맞춰서 여자들이 현철이 노래"내 마음 별과같이"라는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체 누워서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텐트 옆에서"쎄"하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밖에 비가오나보다하고 뛰쳐나갔더니 아줌마 네사람이 소변을 본후 속내의를 걷어 올리다가 나와 시선을 마주친후 기겁을 한 표정으로 얼굴이 빨개지면서 달아났다 나도 민망하기는 마찬가지여서 텐트 속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녀들은 장고를 치며 야유회를 왔던 일행인듯 갑자기 그쪽에서 호들갑 떠는 소리며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텐트쪽으로 저벅저벅 소리가 들리더니"아저씨 계세요?"하면서 텐트안을 머리를 빠끔히 드러다 보았다
"와 그랍니꺼?"
"다름이아니고 고기 조금하고 떡하고 가져왔으니 잡수세요"
"아저씨 혼자 왔어요?"
"녜 혼자 놀러 왔심더"
"어? 경상도분인가 봅니다 어디서 왔어요?"
"부산서 왔어예"
"그라믄 혼자 계시지말고 우리 있는데 같이 갑시다 먹을것도 많아요 점심 식사는 하셨어요?"
인정스럽게 대하던 그녀들은 들고온 음식을 텐트 안쪽으로 넣어준후 함께 가자고 엉석 부리듯 손짓을 거듭했다 나는 더이상 그녀들의 극성을 뿌리치지 못하고 손에 이끌려서 갔다 그녀들은 40대초반 정도 보였는데 알고보니 장성에서 중학교 동창들끼리 야유회를 왔다고 했고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그녀들이 마신 빈잔을 내게 건네주면서 너도나도 술을 건넸다 나는 그녀들의 끈질긴 극성에 못이겨 줄사탕 마시듯 술을 이었다
"아저씨 수염만 깎으면 미남이겠는데 무슨 실연이라도 당했나요?"
한 여자가 입에서 술냄새를 폴폴 풍기면거 내 턱밑 가까이 다가와서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ㅎㅎㅎ아닙니다 실연은요 결혼했는데예..."
"그런데 우째 혼자서 이곳까지 왔나요?"
그녀들은 나의 초라한 형색을 보고 먼곳 부산에서 왔다는 사실이 궁금한지 이것저것을 자꾸 물으면서 술잔이 비면 또 따르고해서 금새 취기가 올랐다
"아저씨 노래 잘해요?"
"노래할 기분은 아니고예 장고를 쳐줄끼예"
"녜? 장고를 칠줄 알아요?"
"조금 칠줄을 압니더"
나는 조금전에 그녀들이 장고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느낀것이 리듬은 맞으나 파워있는 장단이 아니어서 흥이 반감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내가 장고채를 들고 파워있게 두들겼더니 신이난 그녀들은 내장산이 떠나갈듯 괴성을 지르면서"경상도 사나이 최고!"를 연발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렇게 두시간 넘게 논후 계속 더 놀자고 손목을 잡고 윗옷을 당기는 그녀들을 억지로 뿌리치고 텐트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서 이곳에 온 목적을 생각했다 그래 나는 신발을 팔기 위해 이곳까지 왔는데 아직 신발 한컬레도 팔지 않고 있지 않은가 어쩐담 그렇다고 시장에 깔아놓고 팔 자신도 없었다 그런 생각이 자꾸 들면서 다시 부산으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은 부산을 생각하니 머리가 다시 아파왔다 부산으로 돌아가긴 싫어니 신발은 팔지 못해도 이곳저곳 구경이나 해보자하는 생각을 했고 윗 지방을 생각해보았는데 복잡한 서울은 제외시키고 충청도를 생각하니 나와 거래를 했던 천안의 신발가게 주인 최씨가 떠올랐다 그래 최씨한테 전화를 한번 해보자하는 생각이 들어 오전에 돼지국밥집 근처에 보았던 공중전화가 떠올랐다 나는 호주머니에 잔돈을 확인한후 내려갔다
"최형 입니까? 부산 창신화학 전**입니다"
"아..녜..전사장이요 부산인가요?잘있지요?"
"아뇨 내장산에 왔어요"
"내장산? 그곳에 어쩐일로 왔어요 그곳까지 오셨으면 전북에서 천안오는데는 잠깐입니다 만나서 소주한잔하고 경부고속도로타고 가시면 되겠군요 기다릴께요 꼭 오세요"
나는 최씨를 만나기로 마음 먹고 텐트로 돌아왔으나 함양에서 마신술과 여거푸 10일 가량을 대작을 했더니 몸이 지쳐서 그냥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퍼져 버렸다 그렇게 잠이든 나는 이틀이 지난후 점심께 일어났는데 텐트 안에는 엊그제 함께 놀았던 그 여인들이 놓고간듯 통닭이며 떡이며 술과 음료수들이 텐트안에 수북하게 놓여져 있었다
천안으로 떠나야겠다고 마음을 먹자 마음이 갑자기 바빠져서 이른 아침에 일어난 나는 라면부터 끓어 먹었다 그리고 코펠과 냄비등의 식기류를 개울가에 들고가서 씻었고 버너에 라면 국물이 넘쳐 지저분한 것도 씼었다 또 텐트 안팎에 너즈분하게 흩어져있는 빈깡통과 비닐 봉지를 정리하고 나니 옷에서도 케케한 냄새들이 나는듯 했다 내장산에 4일간 머무는 동안 옷한번 갈아 입지 않았으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나는 트럭으로 가서 함양계곡에서 부터 모아둔 꼬장물 나는 속내의와 새로 갈아 입을 반바지와 하얀티셔츠를 한벌을 챙겨서 개울가로 왔다 그리고 들고온 빨랫감을 물이 고여있는 곳에 훌쩍 던져 놓고 입고 있는 상하의 옷과 런닝을 벗어 던지고 펜티차림으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빨래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군대시절 부터 속내의를 한꺼번에 씻는 습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군대생활하는 동안 펜티 50장과 런닝50장을 가지고 3년 동안 군생활을 했었는데 50장의 런닝과 펜티 중에서는 국가에서 주는 보급품도 있지만 절반 이상이 제대하던 선임자들한테 물러 받은것이었다 나는 3일에 한번씩 속내의를 갈아입었는데 그렇게 입어면 5개월간 빨래를 하지 않았고 빨랫감은 씨백(육군에선 더불백)에 쑤셔 넣어둔 마지막 속내의를 입은후 빨래를 하는 데 빨래를 할땐 그 드럼에다가 빨래비누 여러개를 넣은후 삶는데 줄대에다 펜티50장과 런닝 50장을 걸어두면 펜티가 깨끗하게 보여서 속내의 도둑을 여러번 맞기도 해서 빨래하는 날은 때아닌 보초를 서야 했다 그런 경험이 있으므로 몇장 되지 않는 속내의 정도는 장난치듯 혹은 콧노래 몇번 부르는 사이 금새 빨래를 마칠수 있었고 빨래를 꼭 짠후 다시 비닐 봉지에 넣었다
그리고나서 마지막 내가 입고 있는 펜티까지 발가벗은 몸으로 빨래를 하고 난후,개울 중에 조금 깊은 곳으로 들어가니 신선이 따로 없다는 상쾌한 마음이 들었다 물속에서 내장산 단풍들을 하나하나 눈여겨 보았다 내가 살고 있는 경상도 지역의 왠만한 산은 대부분 해송과 육송 같은 상록침엽수가 산을 뒤덮고 있는 반면 내장산의 나무들은 낙엽활엽수여서 잎의 질감이 부드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장산을 떠나면 언제 이곳에 다시 올수 있으랴하고 나무 하나하나마다 정겨운 눈빛을 보내주면서 타올로 몸을 닦았다 그리고 텐트를 접어서 트럭에 실은후 조금전 빨래한 속내의가 든 비닐을 트럭 옆좌석에 싣는 동안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뒤에 실린 짐이야 비닐 천막으로 꽁꽁 묶어 두었으니 신경 쓸일도 없지만 그래도 행여 박스에 물이라도 들어갈가 싶어서 짐칸을 한번 훑어본후 운전석에 앉았다 그런후 비가 오면 습해서 방금 빨래한것을 오래두면 곰팡이가 생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리창 앞쪽에는 런닝을 깔고 의자와 의자 등받이에는 노끈을 활용해서빨랫줄처럼 만들어 주렁주렁 매달았다
"가시려구요?"
등 뒷쪽에서 통나무집 아줌마가 비닐봉지를 들고 출근하는 길이 었다
"녜..."
"어디로가시려구요? 부산으로?"
"아뇨 천안으로 갈려구해요"
"녜...아침 식사는 했어요?"
"라면하나 끓어 먹었어요"
"천안에 가신다면 전주를 지나칠텐데 유명한 전주 비빔밥을 잡수시고 가시죠?"
"그렇게 맛있나요?"
"우리다 먹어보니 괜찮은데 글쎄 경상도분들은 맵고 얼큰하고 짠 음식을 즐긴다고하니...."
아줌마와 대화를 하는 동안 저만치서 남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걸어 왔다 그도 며칠 함께 있는 동안 그래도 정이 들어서인지 장거리 다니시려면 타이어가 좋아야 한다며 트럭 타이어를 꼼꼼히 살펴주면서 앞쪽 타이어에 바람을 약간 더 넣어야겠다고 발로 쿡쿡 눌러 보곤 했다 그리고, 엔진오일 체크와 브레이크 오일도 정비소에가서 한번 체크 한후 다니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리고 신발 잘 파시고가라고 행운을 빈다는 말을 남긴후 악수를 나눴다
"전주 비빔밥이 그렇게 맛있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돼지국밥 집에서 만난 정갈한 반찬이 떠올랐고 일반 정식을 먹는 사람들의 반찬을 엿보았는데 그때 상에 올려진 반찬을 보면서 경상도 음식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경상도 지역의 음식은 시각적으로 깔끔하지 못하고 투박한 색상을 띤 반면 전라도 음식은 시각적으로 정갈하면서 색깔이 산뜻한 느낌을 주어 먹음직스럽게 보이면서 맛 또한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통나무집 아줌마가 강조하던 전주비빔밥집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 내가 언제 전주에 와서 비빔밥을 먹어 보겠어 그렇다고 비빔밥 한그릇 먹기 위해서 일부러 올수도 없지"하는 생각이 들어 핸들을 꺾어 전주 시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연쇄점 간판이 보이는 곳에 가서 담배를 사면서 전주에서 제일 유명한 비빔밥집이 어딨냐고 물어니 **회관이라고 말하면서 연쇄점 주인은 가게를 나와서 가는 방향을 손짓으로 지적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전주의 번화가인듯한 곳에 위치한 2층(?)건물의 비빔밥 간판이 크게 눈에 띄었다 나는 트럭을 식당옆 골목에 세운후 식당엘 들어 갔는데 단일종목으로선 부산에서 한번도 보지 못한 꽤 큰 규모의 식당이었다 2층에 방석을 깔고 자리잡은 나는 비빔밥을 주문했다 잠시후 나온 비빔밥은 경상도 비빔밥과는 대조적이었는데 경상도 지역의 비빔밥은 겨울초 삶은것.콩나물.고사리 그리고,반숙 계란과 고추장 한덩어리와 참기름을 약간 넣은 비빔밥인데 전주 비빔밥은 싱싱한 산채와 잘게 썰은 쇠고기도 약간 들어 있었다 나는 재료를 확인해보듯 젖가락으로 뒤적여보았는데 자그마치 열가지가 넘는 종류의 산나물 종류가 들어 있는듯해서 마치 자연식 보양을 먹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골치 아파서 한동안 음식을 제데로 삼키지 못한 나는 객지 생활을 하면서 하나둘 잊고나니 식욕이 되돌아왔고 왕성해진 식욕으로 비빔밥 양이 부족한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기분 좋게 식사를 했다
그때 내 옆좌석에 앉은 내또래 되는 사람들 다섯명이 비빔밥집에 온것을 후회하는듯한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니 고창에 가서 장어구이에 소주를 한잔하는게 났지 괜히 비빔밥집에 왔다고 이곳을 고집한듯한 한사람를 원망하고 있었다
"장어구이?"
장어라는 말에 나는 귀가 솔깃했다 그것은 내고향 마을 앞의 저수지가 생각나서였는데 우리 고향에선 민물장어를 손으로 잡으면 뱀처럼 꿈틀거린다면서 팔목을 감는다고 꾸물장어라고 불렀다. 그리고, 저수지엔 꾸물장어가 지천이었다 어릴때부터 유일한 취미가 낚시였는데 낚시는 준비과정이 쉬웠기 때문이었다 즉 대빗자루에서 키가 제일 큰것을 하나 뽑아서 그곳에 고래수염(낚싯줄)을 묶고 장날 사가지고온 갈치 입속에는 항상 낚시바늘이 걸려있었는데 그것을 모아 두었다가 고래수염에 매단후 수숫대를 손가락 마디 정도 잘라서 불에다가 약간 그을면 멋진 푯대가 되었고 두엄더미 속에서 우글거리는 지렁이를 끄집어 내서 비료 부대 조이에 흙과 함게 싸면 낚시 준비는 모든게 끝난는 셈이었다 그리고 저수지에 가면 가시연꽃이 수면에서 졸고 있는 틈바구니에 낚시를 던져 놓으면 성질 급하고 순진한 장어는 지렁이를 물고 달아나버린다 표대가 물속 깊이 사라지면 힘껏 당기면 망신살이 뻗힌 자신을 원망하듯 장어는 온몸을 배배 꼬았었다 감질나게 입질하던 동다리나 새끼 붕어와는 달리 한번 물론 헛방이 없이 정직하게 물고 가버리는 장어 만큼 기분 좋은 낚시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어가 낚인 날은 기쁨이 천배만배가 되었다
"고창 장어구이라!"나는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들에게 물었다
"고창 여기서 멀어요? 그곳 어디에 가면 장어구이 집이 있어요?"
내가 묻는 질문에 그들은 친절하게 종이에 약도를 적어주었는데 덧붙혀서 선운사가는 길목에 가면 장어구이집이 줄을 이어 있으니 선운사 관광도 할것을 권했다 그말을 들은 나는 장어가 얼마나 많이 잡히면 장어구이집이 줄을 지어 있을까하는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물면서 그들이 적어주는 고창을 가기로하고 이정표를 따라 길을 떠났는데 알고보니 고창은 내장산에서 가까운 위치였다 그래서 결국은 북쪽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셈이었다
비는 그치고 태양은 뜨거운 햇살을 작렬시키고 있었다 고창을 알리는 대형 아치들이 나타날쯤 트럭 안에 펼쳐 놓은 속내의들이 빠싹빠삭 말라 있었다 나는 길 옆에 차를 세우고 건조가 된 속내의를 가방에 넣은후 길을 제촉했다
선운사가는 길은 거의 비포장이어서 울퉁불퉁한 길을 운전하니 차가 좌우로 크게 파도를 쳤다 하긴 국립공원인 내장산가는길도 비포장인데 선운사야 당연한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선운사에 대한 기대치를 크게 가지다보니 그런생각을 한듯했다
울퉁불퉁한 길을 조심스레 운전을 하고 가다가 조금 평탄해진길에서 시각적으로 여유를 가진 나는 창밖을 바라 보았는데 눈앞에 펼쳐진 들녁과 작은 산들이 붉은 색갈을 띈 황토땅이었고 저 만치서 커다란 저수지가 나타났는데 물빛도 누르스럼한 빛갈을 띠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 줄줄이 서 있는 건물마다 장어구이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져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선 선운사 부터 둘러 보기로 했다
내가 기대를 갖고 찾아온 선운사는 물론 큰 사찰이 아닌점도 있었으나 낡아빠진 단청이 을씨년스럽기까지했음은 물론 불자들이 얼마나 없으면 시주를 못 얻어서 저렇게 폐가처럼 낡은 색상을 새로 입히지 않는담하고 약간은 실망을 하면서 사찰 왼족으로 이동해서 보니 동백나무 숲이 있었다 동백나무는 토양이 적당하고 양지바른곳이어서 그런지 동백잎이 반질반질한 광택을 내고 있었지만 거제도에서 만난 동백숲처럼 키는 커질 않았다 그러나 행여하고 뒷쪽으로 걸어 갔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동박새 한쌍이 정다운 부리를 마주치고 있었다 그렇게 경내를 한바퀴 돈후 기대를 잔뜩하고 있었던 장어구이집을 향했다
장어구이집 앞의 큰 다랑이에는 장어들을 넣어두었는데 내 고향에서 낚시로 잡고 저수지를 퍼서 잡은 장어들은 모두 등 부위가 검은 색깔을 띠고 있었는데 이곳 장어들은 누르스럼한 빛깔을 보여서 맛이 못할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양념을 발라 들고온 장어 맛은 일품이어서 한 접시 더 주문을 한후 소주도 두병 곁들였다
기분이 알싸하게 좋아질쯤 태양은 낙조를 대지 위에 뿌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아무래도 천안을 못갈것 같았다 물론 12시 이내 도착이야 할수 있겠지만 밤늦게 꼭 최씨를 만나야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다시 천안에 있는 최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형!! 오늘은 못갈것같네요 내일 점심때 만납시다 미안합니다"
전화를 끊고 장어구이집을 나왔다 맛있는 장어구이를 먹고 술을 기분좋게 마시니 만복감과 함께 차에 올랐다 그런후 디스코풍의 신나는 테이프 하나를 꽂은후 출발을 했다 천안이 얼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지 모르니 최대한 전북을 벗어나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2부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