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했다. 40대의 선생님이 나를 이뻐하셨다. 선생님은 독일어 뿐만 아니라 인생을 사는데 필요한 문화를 많이 말씀하셔서 좋았고 그 시간이 기다려졌다. 나는 그때부터 문학과 미술, 음악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교양을 많이 쌓게 되었다.
고1 때 겨울 방학이 되자 선생님이 급사 언니를 시켜 나를 교무실에 오라 하셔서 가니까 방학 때에 자기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나는 너무 황송하고 행복하여 가끔 놀러 갔다. 남편은 유명 변호사였고 친정 어머니가 살림을 도와주고 있었다. 아이는 딸 둘, 아들 하나였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시켰고 다들 사립학교에 다녔다. 가끔 선생님과 쇼핑도 다니면서 우동도 사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성당과 분도 수녀원(베네딕토 수녀원-이해인 수녀님 계신 곳)에도 같이 다녔다. 대학 갈 때 선생님은 나보고 독문과에 가면 좋겠다고 권유하셨지만 친정어머니와 고 3 담임샘이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교대를 가라고 강력하게 밀여부쳤다.
결국 교대로 갔고 독일어 공부는 끝이 났지만 그때 배웠던 <저별은 나의별, 들장미 이히 리베 디히> 등등의 독일어 원어로 부르는 노래는 아직도 노래방에서 나를 돋보이게 한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나의 제자들도 밥 먹자고 하였지만 평일날 좋은 시간에 만나자 하고 보고 싶은 독일어샘을 찾아뵈었다. 이제 80대 중반이신 선생님 남편은 재작년에 돌아가셨고 미혼인 아들과 살고 계셨다. 큰 딸은 서울대교수, 아들은 부산대 교수가 되었고 막내 딸은 주부여서 집 옆에 살며 선생님의 살림을 거들고 있었다.
어릴 때에 같이 지냈던 우리는 교수라도 이름을 부르며 원익아 니 요새도 첼로하냐고 물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다른 친구들과 다시 찾아가기로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친구들이 같이 가기로 3월에 약속 했는데 다들 제주도, 유럽 여행 중이라 함께 모이지 못했고 다시 모여 방문하기로 했다. 같이 늙어가는 스승과 제자는 만나는 것이 기다려지고 좋고 행복하다.
고딩 때의 독일어 선생님이신 백정자샘..내 인생을 풍요롭게 살게 가르쳐 주신 분이라 해마다 이날엔 꼭 찾아뵌다.
첫댓글 사제간의 아름답고 좋은모습이네요.
감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