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에 관한 시모음 33)
인생과 낙엽 /노정혜
창문 밖에 낙엽이 지는 모습
고개 숙여 낙화하는 단풍잎이 처량하다
발길에 밟히고 차들에 깔린다
꿈을 안고 왔다
갈 때는 말없이
낙엽 되어 휘날린다
인생 또한 낙엽 같을 것이라
생명이 있는 지금
행복하다
떠남의 날이 오려니
추풍낙엽 /정찬열
산마루에
갈바람이 불어 댑니다.
갈참나무 흐드러진 산 중턱에
산허리 가로지르는 덱 길
그냥! 있을 수 없는 부름에
은빛 갈대 산행길을 나섰습니다.
바람에
뱅글뱅글 데며
그리움까지 감싸 돕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갈참나무 잎
앞서가는 여인이 어린애처럼
떨어지는 낙엽이 무아지경입니다
떨어지는 낙엽이
넋이 되어 떨어지니
휘돌던 갈바람에
지나간 사랑 홀로 밀려듭니다.
바람아!
좀 쉬워 다오
오늘 다 떨치면 어떡하라고
가슴속을 휑하게 떨구는 심연(深淵)
회색 하늘에
불어대는 소슬(蕭瑟)바람은
홀연한 나목의 몸짓으로
이 가을을 헤집고 마냥 구릅니다.
낙엽과 인생 /이재환
맥없이 떨어지는
메마른 낙엽 하나
뒹구는 네 모습 보니
처량하고 허망하네
젊은 날은 갔어도
부끄럼 없는 앞날을 위해
볼품없는 낙엽처럼
후회하는 인생 살지 말자
낙엽 /해련 류금선
흐느낍니다.,
바람의 옷을 입고
뒤척이는 몸짓에
무늬진 애태운 사랑
아득한 시간
속살 적시던 그리움
이제 그 무개
허공에 뿌리고
떨어져 나가 앉은 사유
이순의 노을빛입니다.
낙엽 /오보영
돋아날 때
생기 넣어주던 햇살이
무더위에
식혀주던 바람줄기가
어느새
미워지네요
싫어지네요
고운 단풍 색깔
지우려하고
여린잎 흔들어
떨어뜨리려고만 하는
심술이
두려워지네요
무서워지네요
낙엽의 독백 /김임백
차가운 대지 위에서
지나간 시절 그리워하며 파닥거린다
허공에 매달려 햇살과 공기
버무리며 지내던 시절
화려한 건 지나가면 그뿐,
갓 내린 어둠이 모든 길 끌고 온 저녁
구석에 처박혀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한때 머물렀던 자리 아름다웠지
물러난 자리도 아름다울 거야
썩어질 몸 흙 속에 거름으로 남아
축축하게 젖어드는 짓누르는 시간
눈물로 비워내고
흘러가버린 서녘 하늘 창백한 별빛
이제는 돌아보지 않으련다
어디선가 바람 한 줄기 불어와
토닥토닥 등 두드려 주고 있다
낙엽이 아프다 /김재덕
가을이 좋은 건
이별의 아픔을 어르던 울림이
노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망각의 덫을 놓은 초승달
깨문 입술의 다짐과 고통을
한잔 술에 놓으련다
그댈 잊고 산다는 것
심장 찢어진 상흔의 그림자가
차갑게 멍울지고
청잣빛 갈바람에 젖은 그리움
발등에서 맴돌던 허무한 눈빛에
딱히 낙엽이 아프다
하여,
말갛게 지우려 했다는 것이
방황 속의 아름다운 아픔이었지만
그 서러운 가슴에도
미치도록 보고 싶었던 건
가슴에 보름달을 품었기 때문이야.
낙엽이 되어 3 /류동열
힘이 다해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
달콤했던 푸른청춘
아름다웠던 삶을 뒤로하고
길가 이리저리
바람 따라 뒹구는
보잘 것 없는 낙엽
나무에 붙어 있을 때
폭풍도 견뒤어 내었고
뜨거운 햇볕도 참아 내었고
목마름 고통도 이겨내며 인내했던
지난 날이 있었음을 기억 해 본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오늘
서러움이 앞을 가리지만
그래도, 그래도 행복했었다고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낸다.
낙엽지는 뜨락에서 /김재진
서리 바람에 잎이 떨어집니다
관리실 아저씨는 낙엽을 쓸고
시인은 씁쓸한 마음을 씁니다
낙엽은 찬바람이 원망스럽고
아저씨는 낙엽이 원망스럽고
시인은 아저씨를 원망합니다
삶이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작지만, 의미가 다른가 봅니다
서로가 다른 곳을 보나 봅니다
삭풍에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면
입가에 엷은 미소가 모금하겠지요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입니다
떨어진 낙엽 /고운 허기숙
바람이 불어
한쪽에서 울고 있는
잎새 하나
가던 길 멈추며
그리움 하나 줍고
이리 저리 뒤집어 보며
눈빛이 흐려진다
가슴에
찬바람이 스며들 때
앙상한 나뭇가지에 잎새 처럼
차가운 냉기 속에
내 마음에 와닿는
그리움 어루만지며
씁쓸한 미소만 짓는다
풀리지 않는 실타래처럼
마음에 엉킨 그 무엇이
가슴을 조여온다
이리 저리 달래도 보고
혼자만의 시간과 싸움도 하지만
그저
잿빛 먹구름을 바라볼 뿐~~
낙엽 落葉 /임영조 (1943~2003)
네 이름은 정작
자리가 바뀌면서 비롯되었다.
드디어 술렁이는 가지 끝
하릴없이 밀려난 유형객(流刑客) 모양
이제 상좌(上座)도 잃고
몰골은 잔주름만 소슬하거니.
꿈결에 짐짓 엽서(葉書)를 받듯
바람 함께 날아온 너로 하여금
지난 계절 안부를 듣는다.
마지막 쥐어 본 어머님 손이
오늘 다시 믄득 그리워짐은
나 역시 고향을 떠나온 때문.
남은 해를 목판(木板)에 싣고 가는
엿장수 가위 속에서
가을은 쩔그렁 쩔그렁
한닢씩 동강나고 있었다.
낙엽아 /한영택
날려라. 멀리멀리 날려라
어여쁜 너의 자태 今時 原色으로 변하여
새색시 춤을 추듯 날려라
춤바람 난 갈바람 따라
허공에 너풀거리며
곡예사처럼 광대춤을 추는구나
한 점 바람도 맥없이 넥타이 풀고서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에
새들이 등을 스친다
둥지를 잃을까 봐 勞心焦思 하지만
남쪽 먼 나라로 날아가 버리면
나 아니 눈물 흘릴 거나?
낙엽 눈 내리던 날 /안경애
소슬소슬
노란 낙엽 눈처럼 내리던 날
먼 옛날
새끼손가락 건 약속 그대로
사랑의 노랫말 쓰다듬으며
바람 반주에 춤추던
순박한 언어(言語)로
화사한 듯 설레던 향기 품어 안고
코끝이 새큼해
눈시울 적시며
하하 호호 웃다 입도 맞춰보며
알록달록
발갛게 그리던 추억 사랑
단풍 고운 가을빛에 눈물처럼 떨어진다
책갈피 속에
오래된 꽃잎 하나 미련 담고.
낙엽을 보고 /이정우
(1) 가을에 나뭇잎마다가
손을 무릎 아래로만 흔들며 떨어지는 것은
되돌아볼 수 없는 높이가
그 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 멀리 드높은 그분의 하늘을
눈 위의 눈썹으로나
더러는 손사래로도 가려서 발돋움해 보지만,
그래도 보이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항상 제 욕심일 뿐이다.
이 가을에,
나무는 제 잎새들을 하나씩 둘씩 아래로
조용히 타일러 보냄으로써
아무도 말하지 않는 가난과 진실을
증언해 마지않는다.
(2) 저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들 모두
이미 나뭇가지를 떠난 뒤에 들리고,
나뭇잎 진 가지 사이로
겨울하늘의 비가 온다.
빗소리도 함께 들린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는 사람에게
더 많이 들린다.
이 가을의 시간ㅡ
이승을 떠날 수도 없이, 남은 이는
낙엽을 보고 배운다.
스스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
서 있을 때,
사람들은 비로소
하늘이 얼마나 더 높은지를 알게 된다.
낙엽 편지 /최해춘
강물에 띄워 보낸
그 편지에
무엇을 적어서 보냈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르시지요.
햇살이 부서지는
따사함 위로
찬 바람 슬며시 맴돌아 갈 때
뒤 돌아 훔쳐버린
눈물 자욱을
당신은 보지도 못 하였지요.
흐르다 부딪치는
바위 마다에
곱던 추억 하나씩
내려 놓으며
그렇게 흔적없이 흘러 간 것을
당신은 정녕 모르시지요.
강물따라 남쪽으로
흘러 가다가
남녘의 푸른 봄을
안고 온다며
앙상한 가지에
입맞추고 간
낙엽에 쓰여진 그 사연을
당신은 읽지도 못 하였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