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긴 여행을 떠나듯 집을 나섰다.
쉽게 걷힐 것 같지 않은 구름 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며 춘천 문학 기행 1박 2일의 여행길을 시작했다.
화숲동인회에 발을 들이고 그들과 첫 여행인데 이방인이란 수식어가 먼저 떠올랐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주위 문인들과 합류하기 위해 약속 장소 지하철 옥수역까지 기다릴 시간을 셈하며
인간 시장을 연상케 하는 지하철 4호선에 몸을 실었다.
눅눅했던 일상을 햇살에 좀 말려야 여유가 있으련만, 날씨가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래도 여행이란 동행이 있고 흩어진 기억을 끄집어내서 나누어 씹는 그들과의 맛이 있다.
동안 서툴고 미안했던 우의를 다독이는 시간으로 쓰이는 데 여행보다 더 좋은 효력은 없으리라.
그들과의 사연이 오래도록 엮이길 기원하면서 기대에 부푼 상상의 날개를 편다.
각자의 삶에서 그리운 것에 투자할 수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을 즈음,
세분의 시인과 합류하여 지하철 춘천행 급행 전철로 옮겼다.
우리가 가는 여행길엔 기차라는 추억의 소재가 한몫을 거둔다.
객실이 기다랗게 열을 지은 열차는 우리를 환영하듯 소음을 내며 맞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출발 시각을 기다리며 과연 이번 문학 기행에서
얼마큼의 행복을 배워 내 것으로 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노라니
조잘대는 이십 대 젊은이들의 배낭이 예뻐 보이고 젊은 날 내 모습인 듯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흐른다. 그런저런 시간이 흐르고
경춘선의 급행 전철은 벌써 춘천역에 도착하여 승객을 꾸역꾸역 뱉어내고 있다.
이 먼 강원도 춘천까지 전철이 들어왔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춘천이 연고인 동인의 배려로 준비해 놓은 콘도(LADENA 206호)로 들어섰다.
음성에서 먼저 도착한 동인회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으신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덥석 포옹하면서 동안 글로서나마 나눴던 정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데 울컥 치밀게 하는 체온이란 무엇이던가,
과연 그렇게 되도록 관계를 쌓아 왔던가.
그 순간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남정네들의 심정이 어느 때는 여인네보다 더 뜨거울 때가 있다.
이래서 인간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이 있는가 보다.
분명히 글을 주고받으며 서로 내면에서 신뢰하는 정서가 오가지 않았을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각자 문학과 인연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꺼내 놓고 잔디밭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어떤 추억이 든 주워 담을 수 있을 그림을 그려보는데 저녁 식사 출발 신호다.
춘천 하면 닭갈비 또한 그 맛은 한몫한다.
근래에 방문할 기회가 없어 그 맛을 잊은 지 오래여서 얼마나 맛이 우리를 즐겁게 할까?
호기심이 마음을 들뜨게 하고 있었다.
동인의 안내에 따라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그럴듯한 닭갈비 음식점으로 들어섰다.
주인아주머니가 서방님 반기듯 달려와 자리로 안내한다.
저녁 겸 닭 갈비를 주요리로 막걸리와 소주를 겸하여 모처럼의 춘천 닭갈비로
배를 채우는 행복한 순간을 맞이하였다.
웬일인가 입맛이 변했는지 고기 두어 점 씹을 때 어디를 가도 그 맛이 그 맛인 것을
기대에 찬 내 모습은 기대한 만큼에서 벗어났고 아내의 음식 솜씨가 머리를 스쳤다
아내를 생각했다는 마음이 나름대로 사랑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으리라
돌아가면 아내에게 닭갈비 솜씨를 부탁해 볼 생각이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바람이 불어 구름도 비켜 갔는지, 빗물이 하얗게 쏟아지는 숙소 베란다 곁에서
밤을 잊은 채 문우들과 옛이야기에 시간을 엮어나갔다.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든 할 말을 하는 것이다.
모처럼의 기대에 찬 마음들을 하나둘 서서히 헤쳐놓기 시작한다.
쏟아지는 비 빛만큼, 열어둔 바람의 솔깃한 기운만큼 우리의 사연은 자유로웠을까,
아쉽기도 했고 시원하기도 했던 비 오는 첫날의 공복감이 그런대로 채워진 듯하였다.
현대식 건물 실내에서는 아무리 비의 정서를 느껴 보려 해도 도무지
빗소리가 들리지 않아 살아 있음을 느끼지 못함이 정서를 무디게 하는 것 같다.
그런 비가 아침까지 거침이 없는 숙취 탓에 피동적인 나를 만들어 놓는다.
가뜩이나 숙소에서 늦은 술자리가 있었던 터라 머리가 지근거려
나의 행동을 바라보는 일행의 눈에는 자연스럽지 못한 몸놀림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가족 개념을 주장하고 싶은 내 마음이 통했는지
아무렇지 않은 듯 눈인사를 나누는 우리가 모두 가족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본다.
<화숲동인회 3/4분기 문학 기행> 현수막을 두른 24인승 승합차가 당도했다.
드디어 하루의 일정을 소화하기 위한 행보가 시작되는 것이다.
반질반질한 담쟁이 넝쿨로 화장을 한 듯 가지런한 숲속의 고딕체를 연상케 하는 미술전시관이었다.
<박수근 화백>의 전시장은 약간의 벙커(어떤 목적을 위해 만든 요새)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잠시 전쟁 때 피난처로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문의 목적 이외의 생각에 화백의 魂에 보상 차원 같은 마음에서 열심히 작품 견학에 신경을 세웠다.
그러고 보면 내 초년시절엔 화가가 되고 싶어 했던 꿈을 꽤 오래 간직하고 있었나 보다.
미술 과목 시간이면 선생님으로부터 터치가 강하고 색깔 조화가 간결하여졌으며 명암이
잘 표현됐다고 칭찬을 받으니 그 시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
몇 작품 눈여겨보니 벌써 일행은 밖으로 나가 기념사진 촬영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어
나도 화백이 앉아 있는 동상 곁에 앉아 잠시 그의 외로운 영혼의 친구가 되어 기념하였다.
<김유정 문학촌>은 어떤 인물의 흉상이 우리를 맞이하고 그의 문학의 실체가 우리를 얼마나 사로잡을까?
김유정촌은 역시 고향에도 사라져가는 초가집이어서 옛 정취에 잊혀 가는 추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고 부술부술 내리는 비에 이끼 서린 김유정의 영혼은 우리를 기다린 듯 기념관으로 들어서게 했다.
그의 고향 실레마을에 온종일 비가 쏟아진 탓에 우리는 빗물에 흠뻑 젖었고
좀 더 그이 고단한 문학에 오래 취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었든 특별한 날임은 분명했다.
그는 1908년1월 18일 태어나 1937년 3월 29일 타게.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중퇴 했으며
저서로는 소낙비, 금 따는 콩밭. 동백꽃. 따라기 등
현대 문학의 실체로 서정적인 작품이 작가의 나그네 같은 묵은 체취가
가득 머금은 서적들로 습기에 눅눅한 특유의 문학이 우리의 시선을 한동안 멈추게 했다.
내가 사후에 어림도 없는 내 문학이 세상에 알려져 나를 찾아 주는...
기대와 아닐 것이란 씁쓸한 상상을 해 보는 동안 문밖에선 김유정의 흉상이 비를 맞고 서 있다.
빙그레 미소를 머금은 의미를 나는 알 수 있어 밖으로 나와 붉어지는 얼굴을 느끼며 버스에 올랐다.
고향을 떠나 조국의 평화를 위하여 영혼마저 태워 버린 거룩하고 아름다운 청년이 잠든 곳
얼마나 애달팠으면 비목이라 하여 눈마저 감지 못한 채 잠들어 있을까?
한명희 詩 장일남 作曲의 恨을 불어넣어 이렇게 울어 댄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등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이렇게 울어 젖히며
녹슨 철모 하나 얻어 쓰고 이날까지 파수꾼으로 풍상을 이겨 가고 있었다
내 가족을 내 나라를 지키고 있노라면 어머니 통한의 울음소리 아비의 절규가
저기 터널을 후벼 파듯 메아리처럼 울려 오는 듯하다.
4년간 29개국 분쟁 현장에서 보내온 탄피로 지름 2.76m 높이 4.57m 무게 37.5톤으로 빚어진
<세계 자유의 鐘>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평화를 염원하며 얼마나 울리고 싶은 걸까?
나는 말하고 싶다, <세계자유의 鐘> 너는 과연 神의 축복으로 태어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121.5m로 가로막아 601m를 펼쳐 26억 2천 톤으로 건설된 <평화의 댐>을 바라보는 나는,
얼음 조각이 되어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과연 인간 무한의 기술과 힘이 대견하여 그저 침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댐으로 태어나 물 한번 채워 보지 못하고 텅 빈 가슴의 저 염치 없는 계곡을 바라보며
공허함과 허전함을 참지 못해 좌우로 고개를 저어 본다.
북한의 금강산 댐<인남 댐> 건설로 물의 침공을 막아내기 위한 안보적 차원에서
순전히 국민의 성금으로 건설된 평화의 댐으로 고사리손에 쥐어진 돼지 저금통이며
직장인 기업인 종교인 문화 예술인 심지어는 결혼 기념 반지까지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합심하여 모은 성금으로 진정 평화를 지켜냈을까,
아낌없이 투혼 한 국민 힘의 상징이 여기, 이렇게 북쪽을 향해 펼쳐져 평화를 사수하고 있다.
장엄한 슬픔 같은 곡선이 출렁이며 외롭게 버티는 것처럼 느껴지는 까닭은 왜일까,
비 가 긴 하루 내내 내리면서 가슴을 적시고 돌아가려는 머리 위로 촉촉이 발길을 잡는다.
오직 평화의 댐은 이데올로기의 붉은 물 만큼은 채워지지 않기를 염원하며
침묵하는 평화의 물을 반드시 채워야만 한다고 되뇌며 그곳을 뒤로했다.
정녕 외로워서 육중하게 울었던 세계 평화의 鐘 울림이 가슴에 여울져서 손짓하는 것만 같다.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풍경들이 발길을 무겁게 하는 이유였나 보다.
화숲의 1박 2일의 문학 기행 갈무리가 평화의 댐 방문을 끝으로
화숲이 하나가 되어감을 진하게 느끼면서 그렇게 막을 내리고 있었다. _ 끝 _
첫댓글 좋은 모임, 좋은 만남,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