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중반까지 인천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배덕운성 보살은 50대 중반에 말기 자궁암에 걸렸습니다.
당시 김천에서 살았는데, 부자집 외동아들인 남편이 평생을 돈쓰는 재미로 살면서 물려받은 재산은 물론
처갓집 재산까지 모두 탕진하고 죽었으므로, 덕운성 보살 혼자 셋방살이를 하며 두 딸과 한 아들을
키웠습니다.
"말기 자궁암으로 앞으로 3달 정도는 살 수 있습니다. 주변을 정리하시지요."
대구 동산병원의 의사로부터 이 말을 들은 것은 그 녀의 두 딸이 결혼을 하고, 아들이 중앙대 전자공학과 2학년에
재학하고 있을 때 였습니다. 그 동안 아이들 키우며 힘들게 사느라고, 아픔이 올 때마다 '낫겠지 낫겠지'하며 진찰을
미룬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덕운성 보살은 서울로 시집을 간 큰 딸과 함께 세브란스 병원으로 가서 또 진찰을 받았습니다.
"3달은 너무 성급한 진단입니다. 그러나, 6개월은 보장이 안됩니다."
그녀는 의사를 붙들고 사정을 하였습니다.
"저를 2년만 더 살려 주십시오."
"왜 2년을 더 살고자 하십니까?"
"제 아들이 대학 2학년입니다. 그 아이 졸업 때까지만 살게 해주십시오."
의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김천으로 내려온 그녀가 매달릴 곳은
없었습니다. 오직 하나, 관세음보살 뿐이었습니다.
기도비가 없었던 그녀는 집에서 관세음보살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침저녁은 물론이요, 틈만나면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백일기도 마지막날
새벽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녀는 김천 청암사 극락암에 모셔진 42수 관음상앞에서 끝도 없이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백발의 노스님 한 분이 나타나 약 세 봉지를 주셨습니다. 엉겁결에 그녀는 무릎으로
기어가 약봉지를 받았으나, 어떻게해야 할 지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먹어라"
"물이 없습니다."
그러자 노스님은 다기물을 손바닥에 부어주었고, 그 물로 한 봉지를 먹고나자 또 물을 부어주며
말했습니다.
"또 먹어라."
"마저 먹어라."
이렇게 세 봉지의 약을 먹고나자 약냄새가 거슬렸고,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치다가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을 깨고나서도 그 약냄새는 그 녀의 몸과 집안에 진동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다음 병원을 찾았더니 말기 자궁암이 완전히 나아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대학졸업을 지켜보았을 뿐
아니라, 86세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30년도 더 사신 것입니다.
출처: 병환과 기도 일타스님, 김현준 저 도서출판 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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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살았던 이 보현행 보살은 결혼 전이나 후에나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해오다가,
40대 후반에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결혼한 외아들과 함께 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의 몸에마저 이상이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힘이 없고 얼굴이 하얗게 되더니,
차츰 밥을 먹지못하고 거동조차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병명은 백혈병이었습니다.
그 때만 하여도 재산이 있던 때인지라, 서울의 유명한 병원과 한의원을 찾아다니며 진찰도하고
치료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립중앙의료원에 입원하였으나 병세는 갈수록 악화될 뿐
이었습니다. 생명을 연장하는 유일한 방법이 '수혈'외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담당의사도
손을 들었습니다.
"이제 그만 퇴원하여 집에서 요양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먹고 싶은 것이나 마음껏 드시면서..."
아들을 퇴원시켜 집으로 돌아온 보현행 보살은 외아들을 잃게 된다는 생각에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점도 치고 굿도하고 갖가지 민간요법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또 만나는 사람들에게
실오라기를 잡는 마음으로 아들을 살릴 길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어떤 분이 말했습니다.
"절에 한 번 가보시지요."
당시만 하여도 보현행 보살은 불교를 믿지 않았지만, 쌀과 향과 초를 준비하여 서울 안암동의 개운사로
가서 법당에 참배하고 스님께 사연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묵묵히 들으신 다음 한참만에 말씀했습니다.
"아들은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기가 쉽지는 않을텐데요."
"스님, 아들만 살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하루에 세 시간씩 기도를 하십시오. 먼저 천수경 1편을 외우고 나머지 시간은 열심히 관세음보살을
외우십시오. 착한 마음을 가지고 계행을 지켜야하며 고기를 먹지말고 백일동안 기도하되, 열흘에
한 번씩 공양을 올리십시오. 이 모두를 집에서 하시면 됩니다."
그날부터 보현행 보살은 지성을 다해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입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속으로 기원했습니다.
'관세음보살님, 저희의 모든 잘못을 참회드리옵니다. 대자비심으로 아들을 살려주옵소서.'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한 차례에 두 병씩 피를 수혈해도 열흘을 넘기지 못했던 아들이, 쓰러져야 할 때가
되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오히려 차츰 생기가 돌았습니다.
아들도 신기한지 어머니를 따라 염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두 달 석 달, 마침내 백일이 다 찼습니다.
그동안 보현행 보살은 여러가지 상서를 경험했습니다. 꿈에 경찰이 와서 집안에 있는 나쁜 사람을 잡아가기도하고,
돌벽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나타나 "네 소원이 성취되었다.'며 위로해주기도 했습니다.
또 버스가 집 앞에 서더니 사람들이 집안의 나쁜 물건을 모두 실어가고 도끼를 든 흉칙한 사나이를 잡아가는 꿈도 꾸었습니다.
백일기도가 끝나자 아들은 잠깐 다녀올 곳이 있다면서 아침에 집을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환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국립중앙의료원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죽었어야 할 사람이 왔다는 듯이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시면서 몇 가지 진찰과 실험을 하셨는데, 병이 완쾌된 듯하다고 하셨습니다.
이틀 정도 검사를 더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3일에 걸친 검사 결과 의사선생님의 진단은 '완쾌!'였으며, 참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정말 기적이군요. 지금 상태라면 오히려 피 1천 그램을 한꺼번에 빼내도 끄덕없겠습니다."
그 때가 1965년 가을이었습다.
이후 보현행 보살은 매일 새벽 4시만 되면 염불을 하면서 불보살님께
감사드리고, 불법이 세상에 크게 빛나기를 기원하며 살았습니다.
출처: 병환과 기도 일타스님, 김현준 글 도서출판 효림
네이버 상방대광명 블로그(blog.naver.com/lawandme)에서 옮김
첫댓글 _()_
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몽중가피. 현전가피 받으셨네요.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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