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봉 전설]
아득한 옛날 천지가 개벽할 때나 대홍수 때에 천하가 물에 다 잠겼는데,
높은 산인 고리봉의 꼭대기만 물에 잠기지 않아, 배에 탄 사람이 고리를 달아 배를 매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과 산내면과 주천면이 접하는 곳에 있는 높은 산을 고리봉(1,305m)이라 하는데,
그 아래에는 홍수 때 배를 띄운 마을이라 하여 배마을, 곧 배멀, 주촌(舟村)이 있다.
이런 고리봉과 관련된 <고리봉 전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홍수전설이다.
고리봉은 『구약성경』 창세기(6~9장)에 있는 <노아 홍수(Noah Flood) 전설>(MOTIF A1021)에서
노아 가족이 탄 배가 머무른 아라라트 산(창세기 8장 4절)에 해당한다.
홍수 전설은 전 세계적으로 어느 민족이나 부족에도 거의 다 있는데,
우리나라의 홍수 전설 중 <고리봉 전설>은
무서운 자연현상인 홍수를 만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가를 담은 점에서 오랜 역사가 있다고 하겠다.
세계적으로 홍수설화의 구성은 이렇다.
“① 인간이 타락해서 ② 신이 진노하여 벌을 내리려고 할 때 ③ 구원된 가족이 있는데
④ 살 방도로서 배를 마련하고 ⑤ 식량을 준비하며 ⑥ 신이 물로 징벌하여
⑦ 물로 세상을 파멸하였는데 ⑧ 인간의 시조를 구원하고
⑨ 동물의 시조를 구원하고 산 정상에 배와 가족이 상륙하고 홍수가 그쳤는지 새를 보내어 알아보고
예배를 드리고 신이 축복하고 인간이 존속할 방법을 찾았는데 지금도 홍수의 증거가 있다
(산에 조개가 나온다, 홍수에 관한 신앙과 풍습과 관념이 남아 있다, 함몰(陷沒)이 있다).”
<고리봉 전설>은 위 홍수 전설 중,
“④ 적은 사람이 살 방도로서 배를 마련하고
⑦ 자연이 물로 세상을 파멸할 때 사람이 산 위에 고리를 매어 배를 붙들어 두고 상륙하여 살 수 있었다.”라는
내용에 해당된다.
그런고로 <고리봉전설>은 홍수전설의 파편(破片)이기도 하고,
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제시하는 증거 노릇도 한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약 800군데의 <고리봉 전설>이 골고루 있으며,
단일 전설로 증거가 가장 많다.
바닷가에서는 홍수가 해일(海溢)로 바뀐다.
총 12기의 부처님이 조성돼 있다고 하는데
자세하게 살펴서 파악할 수 있는 마애부처님은 9기 정도이고
좌측 상단의 3기의 부처님은 흔적만 파악된다.
중앙의 불상은 코는 돋을새김하고 얼굴 둘레와 눈썹, 눈과 입은 음각하였다.
풍화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불상들도 대체로 음각이었을 것이다.
울퉁불통한 수성암 자연암벽에 새겨서 조성할 당시에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보이며,
음각으로 처리한 도상들이 천 년 동안 10cm가 풍화 마멸된다면 온전하기는 어렵다.
그 위쪽과 우측, 좌측으로 군락을 이루어 조성된 마애불이 협시불 형태로 높이 3m와 작게는 1m크기로 조성돼 있다.
상호는 돋을새김으로 처리했고,
큼직하고 둥그스름한 얼굴과 큼직한 코가 인상적이며,
신체는 선각형태로 처리해 고려시대 마애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명월지불 비로자나불 천보십(明月智佛 毘盧遮那佛 天寶十)'이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보인다고 한다.
이는 주불이 비로자나불이고, 천보는 중국 우월(吳越)국의 연호이므로 917년에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너덜바위투성이 산비탈 아래의 습지는 가로 16m 세로 25m의 직사각형 모양으로
바로 윗쪽의 용출수가 솟아나는 취수장에서 몇 발짝 실개천으로 흘러내려오는 습지이다.
첫댓글 언양골은 2014년때 서부능선 일대에 많은눈이 내려 ㅡ 마루금산악회때 선두에서 러셀하면서 힘들었던 만복때 동능과 언양 우골산행이라서 감회가 깊네요 ㅡ
멋진 추억을 유대장님 덕분에 되새김질을 합니다 ㅡ
만병초님 혜량님과 함께한 산행 잘봤습니다
이때 ㅡ마루금 산악회 우골에 걸어든 시그늘이 아닌가 싶습니다
글치 않아도
대장님께서 종주클럽에 올리신 10년 전의 언양골 앨범을 보면서!
그때 故 이한성 대장님과 함께하심서 해놓은 낙서로 추정해봤슴더~ㅎ
늘~
쭉~~
지리탐구에 동감해가는 것에..
크게 감사하며,
하염없는 貴緣에
감동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