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대마을과 모후산 유래]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의 개경 침공으로 피신을 해야 했던 공민왕은
왕의 처가쪽인 화순 동복 오씨들과 어머니를 모시고 피신처를 찾던 중
화순 동복 사람인 "김도"의 안내로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모후산 자락 왕대마을 쪽에 안착하게 된다.
아들인 공민왕은 경상도 안동으로 가게 되고, 어머니와 처가쪽 사람들이 이곳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머무르면서,
모후산에서 자생하는 산삼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게 된다.
그후 홍건적의 난이 어느정도 진압된 이후 어머니를 모시러 온 공민왕이
이곳 순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도착하여 기이하고 우람한 산세를 보고
곁에 있던 김도에게 "이 산이 무슨 산이냐?"라고 물으니,
김도는 "예, 라복산(蘿蔔山)이라 하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고 나자 다시 왕이 말하기를 "과연 덕여모후(德如母后)로다."라고 말하였다.
왕이 머무른 장소라 하여 마을 이름도 '왕대(王垈)' 라 칭하였고,
왕족이 피신한 임시수도라 하여 그 아랫마을 이름은 '유경(留京)'이라 부르게 되었다.
1836년 조기중은 「창건사적기(創建事蹟記)」에서 초연정의 입지와 주변 환경에 대해서
“후산 아래 왕대동이 있다. 산수의 기운이 어려 가히 '별유천지 비인간지야(別有天地 非人間地也)'라고
할 수 있다. 그 안에 봉우리 하나가 있는데 높이는 하늘을 닿을 듯하고 땅에 똬리를 틀 듯 자리 잡았다.
생김새의 흐름은 구불구불하고 어려 있는 정신은 맑고 깨끗하며 좌우가 가지런하면서도
겹겹이 울타리처럼 두르고 있으니 이곳의 모양이야말로 마치 왕이 구중궁궐에 거처하고 있으면서 장수들이
군막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과 같다.”라고 하였다.
초연정 원림은 크게 내원(內園)과 외원(外園)으로 구성된다
내원은 도로와 담장이 맞닿아 있으며 정자의 작은 앞뜰과 수석(水石)이 함께 어우러져 있고,
정자 뒤편에는 거북이 모양의 큰 자연석이 있다.
「초연정중수실기(超然亭重修實記)」에는 정자, 담장, 연못, 누대, 큰 문, 작은 문 등이 묘사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당시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연못은 초연정 주변에 수풀이 우거져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조준섭(趙俊燮)이 1888년 송시열(宋時烈)의 9세孫 우국지사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 1836~1905)을 모시고
제자 40여 명과 시회(詩會)를 열고 "초연정(超然亭)"이라고 名名했다.
송병선은 당대에 상당한 학문적 경지에 오른 사람이었다.
옥천 조씨 문중의 유생들은 송병선을 스승으로 모시고
소학과 사서삼경의 경전을 배우고자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송병선의 『연재선생문집(淵齋先生文集)』卷 22 중
「유월출천관산기(遊月出天冠山記)」에 나타나 있다.
“到寶城之牛山 習禮於木美菴 人母候山 講學于趙氏超然亭 過谷城地.”
“월출산과 천관산을 유람하고 보성의 우산에 이르러 목미암에서 향음례로 참배하고
모후산으로 들어와 조씨 초연정에서 강학하고 곡성으로 갔다.”
송병선은 학행(學行)으로 천거 받아 제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官)ㆍ경연관(經筵官)ㆍ 대사헌(大司憲)을 지냈다.
옥천 조씨 문중에서 이렇듯 구한말의 큰 선비인 송병선을 초빙하여 초연정에서
강론하게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로,
이것은 그만큼 당시에 옥천 조씨 문중의 활동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후 송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ㆍ자결하고 말았다.
別業(별업)은 '원래 사는 집 외에 주로 휴양을 위해 주변 경관이 좋은 곳에 따로 마련한 집'을 뜻한다.
왕대사적(王垈事蹟)은 고려 공민왕이 피신해 살았다는 왕대마을의 유래와 연혁을 다루고 있으며,
옥천 조씨의 입향조와 그 후손들이 그 뜻을 기려 음각을 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초연정 원림의 경관구성요소는 산, 물, 바위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것은 외원이 초연정을 구성하는 주요소임을 말해주며,
모후산의 전경이 외부경관의 주 조망점으로 구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또한 3월과 9월에 선조를 추모하는 활동이 봄ㆍ가을 계절별 요소로 나타나,
조상을 숭배하는 마음과 효도를 칭찬하는 내용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
초연정은 해발 약 400m 자락에 위치하며,
'일반 구릉지나 평지에 건립되어 확 트인 경관을 감상하는 일반적인 별서(別墅) '와는 다르게
깊은 자연계곡을 이용한 독특한 예로 볼 수 있다.
爰居爰處 枕流嗽石 滌蕩盡臼之愁 洗盡胸膈之滓 物外淸趣 人間至樂 孰有加於此哉 逍遙於此
“이곳에 거처하면서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고 돌을 베개 삼으며, 때 묻은 근심을 씻어내고 살만한 곳이다.
가슴에 응어리 진 찌꺼기를 온전히 제거할 수 있다.
사물 밖의 맑은 정취와 인간의 지극한 이러한 즐거움을 이보다 누가 더 보태줄 수 있으랴!”
- 조기중의 '초연정 창건사적기(創建事蹟記)' 중에서 -
순천시 송광면 삼청리 왕대마을에 위치한 초연정(超然亭) 원림은
원래 1788년(정조 12) 대광사(大光寺)의 승려가 창건하여 수석정(水石亭)이라 이름 짓고 수도하던 곳이었으나,
1809년(순조 9)에 청류헌(廳流軒) 조진충(趙鎭忠,1777∼1837)이 옥천 조씨의 재각으로 건립하면서
자신의 학문과 수양의 장소로 삼은 '별업(別業)'이다.
처음에는 초가였으나 1864년 아들 조재호(趙在浩)가 기와지붕으로 중수했고,
그 후 1896년과 1925년에 중수하였고, 6.25 때에 폐사(廢舍)된 것을
1986년에 복원공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1990년 2월 24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27호로 지정되었고,
2007년 12월 7일에는 ‘순천 초연정 원림’ 국가명승 제25호로 지정되었다.
초연정의 본제(本第)인 옥천 조씨의 일가는 이곳 왕대마을에서
화순군 남면 대곡리 한실마을로 옮겨갔는데
1991년 주암댐이 축조됨에 따라 한실마을 지역일대가 수몰되어
다른 곳으로 이주했다.
정자의 명칭인 초연(超然)은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글로,
노자는 “초연(超然)이란 인간 내면의 근본, 근저에 가까워진 상태에서
외부의 세계와 공명을 일으키는 경지를 말한다.
초연이 되지 않고 몰연(沒然)이 되면 바탕과 괴리되어 미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릇 성인은 언제나 초연에서 언행하고 사유해야 한다”고 했으며,
조선시대 말엽 유불선에 모두 능했던 월창거사 김대현(金大鉉)은 "술몽쇄언(術夢풏言)"에서,
“세상에는 간혹 세간의 속된 일에서 벗어나 홀로 근심 없이 사는 이가 있다.”라고
"초연"을 설명하고 있어,
조선시대 선비에게는 물외(物外_바깥세상)에 초연하여 높은 절개를 지닌 채,
세속에 물들지 않고 근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높게 생각하는 풍조가 있었다.
@ 여기서
왕대마을이 속한 삼청리를 부르게 된 수청, 풍청, 월청 인데..
수청 윗쪽 적석탑 바로 곁의 풍청은 훼손이 심하여 아래 자료사진으로 대신해본다
아래의 초연정엔 청류헌(聽流軒) 음각이..
여긴 청송헌(聽松軒) 묏돌이라?
초연정을 지었던 조진충의 號인 청류헌을 따온 것이 아닐지?
[유마사 維摩寺 ]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이다.
627년(무왕 28)에 중국에서 건너온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이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부속암자인 귀정암(歸靜庵)·금릉암(金陵庵)·운성암(雲城庵)·사자암(獅子庵)·
오미암(五味庵)·은적암(隱寂庵)·남굴암(南窟庵)·동암(東庵) 등과 함께
수많은 승려들의 수행도량으로 이용되었다.
국립광주박물관은 지난 2023년 한 해 동안 지역학 연구 사업의 일환으로 수행한
학술조사·연구 성과를 종합해 출판물 2종을 발간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 2021년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이 기증한
조선의 승려 초의선사 관련 중요 문헌 자료를 체계적으로 조사한 첫 결과물로
'박동춘 기증 초의선사 유묵 번역집1-가련유사(迦蓮幽詞)'를 발간했다.
'가련유사'는 초의선사를 비롯한 다산 정약용의 제자들이
1818년, 1819년 2차례에 걸쳐 개최한 시회(詩會)의 내용을 엮은 아회록(雅會錄)이다.
이번 번역집은 조선 후기 문화사는 물론 우리 차 문화의 원형 확보에 유용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 2024년 2월 1일자 신문기사 스크랩 -
# 박동춘 선생님과의 차담 내용을 제목만 간추려본다.
@ 茶에 대해 언제부터, 누구와의 인연이었는가?
@ 이 자리(대광사 터)에서 똬리를 틀게 된 사연과
@ 우리 茶의 중흥조인 초의선사는 알려진대로 무안군 삼향면 태생이 아니며,
@ 초의선사와의 茶脈을 이어오는 범해 ∙ 금명 ∙ 응송 과 얽힌 사연들을 들려주셨으며,
@ (사)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와 관련한 내용을 전해주셨고,
@ 차 맛은 담결(淡潔)∙담박(淡泊)∙소쇄(瀟灑)∙기운(氣運)이다.
@ 마지막으로 이 차밭과 한옥의 주소는 알리지 말아달라!
# 박동춘 선생님과 관련한 최근 기사를 링크합니다!
첫댓글 평일인데도 요즘은 유대장님이 시간이 많으신가 봅니다
멋진 순천의 명산도 다녀오시고 ㅡ이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사진으로 보니 유명한이가 이곳을 유람하는것을 보니 역사가 깊은 명산인것 같습니다
평일이었지만서도!
뜻밖의 일정이 생기는 터라~
밥먹댁기님을 부추겨서
그 누구도 해보지 못한 인문기행을 겸한
빡센 된비알과 임도길을 하고 왔으며!
정지와 원림,
그리고
茶脈을 오롯하게 이어가고 계시는 한학자 출신의 박동춘 쌤님과
특별한 茶談까지 해보는
아주 장엄한 다큐물이라고
감히 일갈할 수 있는
앨범이자 후기입니다,
동부능선 대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