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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백 꽃
김 재 현
동백꽃은 동백나무의 꽃이다. 동백나무는 차나무 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키는 2미터 정도까지 크고 잎은 윤기 나는 진한 초록색이며 꽃은 주로 빨간색과 하얀색으로 핀다. 열매의 씨앗에서는 기름을 뽑아내는데 여자들의 머릿기름으로 쓰던 동백기름이 바로 그것이다.
동백꽃은 겨울꽃이다. 대부분의 다른 꽃들이 봄, 여름, 가을에 피지만 동백꽃만은 겨울에 피고 진다. 예외적으로 일부 품종이 늦겨울에 피기 시작하여 봄이 채 가기도 전에 지고 마는데 춘백(春栢) 즉 봄동백이라고 따로 분류해 준다.
동백꽃은 우리나라의 남쪽지방 특히 남부해안지역과 다도해 일대의 많은 섬에서 숲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다. 특히 유명한 동백나무 자생군락지는 다음과 같다. 충남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길과 전북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숲, 이 두 곳은 동백나무 서식지의 북방한계선으로 보고 있으며 그 이북지역에서는 동백나무를 보기 힘들다고 한다.
춘천출신의 유명한 작가 김 유정의 “동백꽃이라는 작품에 등장하는 동백꽃은 사실은 진짜 동백꽃이 아니라 생강나무의 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중북부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는 별명으로도 불렀기 때문에 생긴 착오라는 것이 식물학자들의 설명이다.
전남 여수 오동도의 동백나무숲에는 무려 3600여 그루의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국내 최대의 군락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 외에도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동백섬도 있다.
동백섬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루어 자생하고 있는 섬이다. 그런데 해운대 동백섬은 이제는 육지와 연결되어 섬은 아니지만 겨울이 되면 숲을 이룬 동백꽃이 한껏 만발하여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섬 이름에 꽃 이름을 붙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동백꽃이 특별한 꽃이기 때문일 것이다. 지상의 거의 모든 식물들이 꽃과 잎을 털어내고 앙상한 알몸으로 북풍한설의 매서운 추위를 견뎌야 하는 겨울이 와도 동백섬은 오히려 참숯불처럼 뜨겁게 타오른 동백꽃의 물결로 섬 전체를 훈훈하게 달구어 준다.
털모자, 귀걸이에 털장갑 끼고 두터운 외투를 입고 산책하다가도 동백꽃 숲속에 들어서면 붉고 화사한 동백꽃과 짙푸른 초록의 잎 사이에 잠시 황홀한 기분이 되곤 한다. 그러니 선인들도 이 희한한 꽃의 이름으로 섬 이름을 지은 것이 아니겠는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르디의 오페라 “라트라비아타”는 춘희(椿姬)라고 번역하는데 동백아가씨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오페라에서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들고나오는 꽃이 바로 동백꽃이란다.
동백아가씨하면 우리들은 바로 이 미자 씨의 그 유명한 가요 곡을 떠올리는데 이 노래의 애절한 가사는 항상 듣는 이들의 심금을 울려주고 있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그리움에 지쳐서, 울다가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꽃의 꽃말은 청순한 사랑, 겸손하고 소박한 삶, 그리고 안타깝고 끈질긴 기다림이라고 한다. 북풍한설에 홀로 활짝 핀 그 모습이 청순하고 강인하여 장하게도 보이지만 또한 하필이면 이런 힘든 계절에 피어나서 생고생하는 것이 딱하고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 심정으로 쳐다보니 너도 우리같이 추운 겨울 견디고 따뜻한 봄이 오기를 우리보다 더욱 안타깝고 간절하게 바랄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 기다림의 꽃이라고도 부르게 된 것 같다.
7,8년 전 우리 내외는 정년퇴직 후 시골 생활을 즐기던 홍천에서의 삶을 잠시 접고 아들 가족이 사는 부산으로 옮겨 갔었다. 맞벌이하는 아들 부부가 두 손녀를 키우느라고 허덕이는 모습을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당분간 돌봐주기로 작정한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 곳을 무척 좋아하는 며느리 덕분에 주로 해변가에 살았는데 부산을 떠나기 직전 살던 곳이 해운대해수욕장과 동백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해운대관광특구지역에 있는 까멜리아 아파트였다.
그런데 까멜리아는 동백꽃의 영어 학명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동백꽃 아파트에 살면서 매일 동백섬을 마주 보며 겨울이 오면 동백꽃 잔치를 보려고 나들이하는 동백꽃 가족이 돼버렸다.
그러나 사실은 처음에는 동백섬이나 동백꽃보다는 오히려 그 옆에 있는 이제는 세계적 명소가 된 해운대해수욕장의 그 활기차고 번화한 모습에 더 큰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각종 행사와 이벤트가 있었고 수중 다이버들, 관광객들, 단체모임들이 있었으며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이 뿌려주는 먹이를 향해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장관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제철인 여름이 되면 그야말로 인산인해가 되어 사람은 사람끼리 밀려다니고 차는 차끼리 맞물려 몰려다니는 바람에 문자 그대로 북새통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가을이 오고 겨울이 닥치면 그 모든 것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백사장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훌쭉하고 처량한 모습이 되는데 그때쯤 되면 바로 옆에 있는 동백섬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욱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들 내외, 두 손녀와 3대가 어울려 오손도손 정신없이 바쁜 새로운 생활에 푹 빠져 지내던 우리 부부는 결국은 객지이며 뜨내기 형태의 삶이 주는 긴장감과 중압감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우리들 스스로의 삶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자꾸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두고 온 홍천 집과 다정한 이웃 사람들, 평생 비비고 살아온 서울 친지들에 대한 그리움이 갈수록 애타게 고향을 그리는 나그네의 설움같이 깊어만 갔다. 그렇다고 대놓고 아이들 앞에서 내색도 잘 할 수 없으니 더욱 답답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바깥사돈이 다음 해 봄에 전역예정이어서 그 댁 내외가 우리하고 임무 교대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해 겨울 우리 부부는 전보다 더욱 부지런히 동백섬을 산책하며 괴로운 기다림도 다독이고 들뜬 기대도 다스리곤 했었다. 좀처럼 겨울눈을 보기 힘든 부산에 솜털 같은 하얀 눈이 잠시 내린 그 날은 동백꽃들이 마치 무슨 축제라도 여는 듯이 무더기로 빨간 꽃잎들을 펼쳐 보였다. 내자는 신나게 사진을 찍으며 올봄에는 꼭 집에 갈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바로 그날 사돈댁의 사정으로 우리의 홍천 행은 8월로 연기된다는 전갈을 받게 되었다. 우리 내외는 한동안 크게 실망하고 낙심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기다림의 세월이 확실하게 끝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위로를 받았다.
그 후에도 몇 번 혼선이 이었지만 우리는 그해 7월 드디어 부산을 떠나 홍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꿈속에서도 그리워하던 홍천 생활도 막상 돌아와 닥쳐보니 이미 우리들 자신부터 달라져 버렸다. 고심 끝에 우리는 가까운 춘천으로 옮겨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간절하고 안타깝던 기다림의 세월도 마무리되었지만 동시에 동백섬도 동백꽃도 기억에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며칠 전 신문의 신간 안내코너에 이 해인 수녀의 신간시집이 소개되었다. 그 제목이 눈길을 잡아당겼다.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이라는 한 줄의 글이 그대로 내 가슴속으로 여과 없이 스며들어왔다. 마치 정답던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해인 수녀는 강원도 양구 출신으로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류시인의 한 분이며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이후 시집, 산문집 모두 합해서 6백만 부가 팔렸다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이분은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며 생사의 고비를 넘기셨다고 하는데 동백꽃처럼 피고 지겠다는 그 제목이 어쩐지 나에게는 죽음을 바라보는 그분 나름의 깊은 성찰을 고백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즉 동백꽃의 삶의 모습을 마치 수도자의 삶과 같이 고난과 순명을 통하여 빛과 사랑을 전하는 그런 봉사와 헌신의 삶으로 받아들이고 죽음의 모습은 동백꽃이 질 때의 모습 그대로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되었다.
동백꽃은 그 지는 모습도 다른 꽃들과는 확실하게 차별화된다. 다른 꽃들처럼 질 때가 되면 누렇게 변색되거나 볼품없이 쪼그라들면서 시들시들하다가 산들바람만 건듯 불어도 한 잎, 두 잎, 맥없이 떨어지며 이리저리 떠다니다가 땅에 떨어지면 그대로 쓰레기가 되고 마는 그런 스타일하고는 전혀 다르다. 동백꽃이 질 때는 꽃잎이 따로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꽃송이 그 자체가 통째로 달려있던 가지 끝에서 툭 떨어질 뿐이다. 낙화암 삼천 궁녀들이 온몸으로 감물로 떨어지듯이 할복한 사무라이의 목이 배석 무사의 칼끝에 뎅겅 떨어지듯이 그렇게 장렬하고 단정하게 떨어지는 것이다. 바래지도 시들지도 오그라들지도 않으면서 어느 날 한순간에 아무런 미련도 집착도 없이 아담하고 우아한 그 모습 그대로 장렬하게 지는 것이 동백꽃이다. 수녀님도 아마 이러한 모습을 묵상하며 당신의 죽음도 바라본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해 보았다. 그리고 나 또한 지나간 나의 삶과 언젠가 맞을 그 순간을 생각하며 동백꽃처럼 산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떠날 때는 동백꽃처럼 지고 싶은 마음이 마치 오랫동안 몰래 바쳐온 간절한 기도같이 가슴속을 적셔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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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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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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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까멜리아아파트를 본 것 같습니다.
해변을 끼고 멋들어지게 굽은 아파트 군락지 어디메즘,
동백섬 누리마루와 서로 마주보는 곳.
동백꽃이 피는 겨울쯤이 좋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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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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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