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 래미안은 전국최고의 아파트입니다(제3탄)
제1탄과 제2탄에 이어 제3탄을 당초 약속과 달리 너무 늦게 올리게 되어 불초 소생의 글을 기다리시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아파트의 준공과 이사준비 그리고 입주와 관련된 일들을 처리하고 새집입주의 즐거움에 빠져 미쳐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 제3탄에서는 풍수지리적인 입지여건과 현재의 입지여건 그리고 향후 미래의 입지여건에 대해 논하고져 합니다.
1. 풍수지리적인 입지여건
본인이 약사래미안 부지에 대해 풍수지리적인 입지여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집안어르신들의 말씀과 삼성관계자들의 증언 그리고 본인이 도시개발분야에서 십수년간 택지개발업무를 하여 평소 토지의 풍수지리에 대해서 많은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풍수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매우조심스럽기 때문에 나이 드신분들의 증언과 관계자의 증언 그리고 공개적으로 나타난 자료에 의거한 부분만 추려 말씀드리겠습니다.
한비사택부지(현 약사래미안 아파트 부지)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울산의 공업단지 조성과 이병철회장 의 한국비료(현 삼성정밀화학)에 대한 열성과 좌절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간략하게 논하겠습니다.
1960년대 초반 혁명정부는 조국근대화의 기치를 내걸고 당시 거의 수입에 의존하던 비료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비료공장설립과 중화학공단 개발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농업위주의 사회구조하에서 비료는 현재로 치면 전자나 정보통신사업만큼 중요도가 큰 프로젝트였 든것입니다.
당시 경제인협회 이병철회장은 일본을 방문하고 혁명정부에 울산공단조성안을 제출하여 본격적으로 울산이 우리나라의 산업수도로서 태동하기 위한 반석을 세웠던것입니다.
그리하여 이병철회장의 숙원사업이었던 한국비료는 1964년 8월 일본 마쓰이로부터 상업차관 4190만달러를 대부받아 토지매입과 공장설립공사를 시행하게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이공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큰 프로젝트로서 36만톤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네스북에 까지 올리려 했다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고학시절 학비마련을 위해 공장건설인부로 일했다고 하는 자료도 있더군요.
이병철회장의 이러한 각고에 노력에 의해 1966년 공장이 준공되었으나 한비사건(삭카린밀수사건)으로 말미암아 이회장은 통한의 눈물을 머금고 지분의 51%를 국가에 헌납하게 되었던것입니다.
단순밀수사건인지 정권의 보호하에 이루어진 사건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당시 여론은(김두한 의원 국회오물 투척사건등) 이회장이 공장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든 것입니다.
1987년 이병철회장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이회장의 한비에 대한 애착은 매우 강했던 것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습니다. 생존시 이회장은 ꡒ한비를 반드시 되찾아야한다ꡓ라는 유지를 자식들과 그룹비서실에 남겼다고 합니다.
이러한 우유곡절끝에 1994년 정부의 한국비료 공개매각입찰에 삼성그룹은 타회사들이 평가한 1300억정도의 평가액보다 약1000억이 넘는 2300억을 제출하여 회사를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현재의 약사 래미안아파트부지도 다시 삼성에서 소유권을 가지게 된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아시겠지만 이병철회장은 중요한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는 항상 당대 최고의 풍수사를 대동하여 입지를 선정하였다고 합니다.
이회장이 울산에 공장과 사택부지를 물색하기 위해 풍수사를 대동하고 입지를 살펴본 결과 울산에는 3군데의 명당에 있었다고 합니다.
첫 번째가 옛날 태화루가 위치한 지역이고
두 번째가 현재의 약사래미안 아파트부지(한비사택부지) 그리고
세 번째가 돗질산(돈대산)이 위치한 현재의 삼성정밀화학(한국비료) 부지라고 합니다.
먼저 아파트부지는 집안에 어르신들이 당시 한비사택에 매점을 하였던지라 이부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더군요.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옛날부터 이 부지는 키(경상도에서는 치,칭이,챙이) 형상을 하고 있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합니다.
키는 곡물등을 까불러서 쭉정이나 검부러기 등의 불순물을 분리시키는 기구인데 앞은 넓고 편평하며 뒤는 좁고 우긋한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드신분들은 사용해보셨겠지만 우량한 알맹이는 안으로 들어오고 나쁜 쭉정이는 바깥으로 내보낸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울산의 지명사전에 보면 현재의 평산은 예전에는 부평이라고 불려졌다고 하는데 부평의 뜻은 부자가 되는 동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이회장은 이부지를 한국비료의 사택부지로 활용하고 현재는 아파트 뒤편에 공터로 남아있는 중구청맞은편 부지에 이회장의 울산출장시 울산현지숙소로 이용하기위해 건축물을 지었던것입니다.
얼마전까지만(2003년까지 존치) 해도 높은담장속에 넓은 정원을 갖춘 오래된 2층양옥집이 있었습니다.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실것입니다.
또한 약사동의 북측에는 태봉산이라고 불리우는 산에 있는데 이곳은 신라경순왕의 태봉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태봉지란 왕이 태어나면 탯줄을 묻어두는곳으로 생기가 도는 천하의 명당에만 묻어 왔다고 하는군요.
본인이 이글을 쓰면서 울산의 풍수지리를 논한 자료중 일부를 발췌하여 올리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진산(鎭山)과 주산(主山)의 제도가 있어서 무룡산은 울산의 진산이었다.
진산이라 하는 것은 그 도읍을 누르고 지키는 산으로써 고을마다 하나씩 있었다.
이에 반해서 주산이라 하는 것은 풍수지리상 묏자리나 집터 또는 도읍의 운수와 기운이 매어 있다는 산인데 울산의 주산은 함월산이며 병영은 황방산이었다.
주산과 안산이라는 말들은 모두 지리풍수설에서 나온 말이다.
지리풍수에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땅이 좋은 터 로 알고 있다.
사신(四神)은 왼편의 청룡(靑龍) 오른편의 백호(白虎) 앞의 주작(朱雀) 뒤의 현무(玄武)등, 주위의 4개 산을 말한다.
이러한 사신구비의 생각은 도읍이나 궁택은 무론 장법(奬法)에도 적용되었다.
뒷산의 현무는 머리를 드리우며(함월산,황방산) 앞산의 주작은 날개 춤추고(돗질산) 왼편의 청룡은 꿈틀거리고(무룡산) 오른편의 백호는 걸터앉는 형국이라야(문수산) 한다는 것이다.」
이런한 자료에 의거한 분석으로 보아도 평산은 그 중심에 위치하여 좌로 평사천이 흐르고 우로 도로가 형성되어 고래로부터 택지로서의 명당 자격을 두루 갖춘 지역인 것 같습니다.
세 번재로 명당이라는 한국비료 공장부지는 언론에서도 수차례 나온 고제희씨의 기업과 풍수에 관한 자료를 보면 매암동의 터를 풍수는 '누운 용이 바다를 바라보는 와룡망해형(臥龍望海形)의 형국'으로 부른다. 라고 했으며
돗질산(돗이 세워진) 돗대산으로도 불리우고 돈대산(돼지머리) 해석하여 울산의 안산으로 불리우는 산입니다.
지금도 한번씩 보면 어떻게 저위치에 산이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그 산위에서 보면 북으로 무룡산과 남동으로 동해바다 서쪽으로 태화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이 울산에서는 최고라는 위치라 할수있을 것 같더군요
고제희씨의 자료를 일부 인용하면 현대자동차가 세계적인 회사로 발전하려면 돗질산에 더 큰 돗을 달아야 한다는군요
얼마전까지만 해도 돗질산 정상에는 이회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기위해 영빈관을 건설하다가 중단된 폐허 건물이 있었지만 몇해전 철거하고 깨끗이 정리하였습니다.
울산시도 공원으로 지정하여 전망대를 설치하여 울산시민들도 방문이 가능하게 한다고 하는군요.
몇해전 현대자동차의 위기와 폐건물철거후 요즘 현대자동차의 성장은 연관성은 본인만의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입니다.
참고로 고제희씨의 자료중 일부를 인용해서 올리면
「마침내 1967년 현대자동차를 설립한 정 회장은 포드사와 자동차 조립 기술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오랜 숙원이던 자동차산업에 진출했고, 자동차 생산을 위한 공장 부지로는 울산이 낙점됐다.
15만평에 이르는 염포만을 매립하던 중이었다. 장차 이 매립지를 자동차 부지로 용도를 변경해 활용하겠다는 정 회장의 단안이 있어 결국 울산이 현대자동차의 요람으로 정해진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들어선 양정마을과 앞 바다는 자동차와 서로 궁합이 잘 맞는 땅이며, 오래 전부터 대성할 기운이 점지된 곳이었다.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분기한 낙동정맥은 동해안을 따라 울진의 백암산과 청송의 주왕상, 그리고 부산의 금정산으로 이어지며, 단석산을 지난 정맥은 가지산을 못 미쳐 동진하는 기맥을 출맥시켰다. 치슬령까지 동진한 기맥은 치슬령에서 남북으로 분기하고, 남쪽 기맥은 동대산 무룡산을 거쳐 가운데 고개를 지나더니 다시 태화강을 따라 남동진한 후에 동해를 만나 전진을 멈추었다. 그러므로 현대자동차의 본 생산라인이 위치한 양정마을은 가운데 고개에서 태화강을 따라 남동진하던 용맥에서 한 기맥이 양정천을 따라 남서진하고, 이 용맥이 다시 늪가로 형성된 명촌천을 만나 지기를 응집한 곳이다.
따라서 이 터의 태조산은 태백산이고 중조산이 단석산이고 무룡산이 소조산이며, 태화강을 건너 돗질산을 안산으로 맞이했다.
풍수에서는 배가 안전히 정박했다 출항하는 형국을 ‘행주형’(行舟形 )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안산인 ‘돗질산’은 영락없이 돛대에 매달린 삼각형 모양의 돛처럼 보이고, 산 이름의 ‘돗’ 역시 ‘돛’의 경상도 방언이고, ‘질다’는 ‘달다’의 방언이니 결국 ‘돗질산’은 ‘돛달산 ’이란 뜻다. 그런데 행주형은 주변에 키 돛대 닻을 모두 구비해야 사람 과 재화가 풍성이 모여 길한데, 만약 이들 중 하나라도 갖추지 못했다면 배는 전복되든가 표류한다. 또 우물은 절대 파서 안 되는데, 땅에 우물을 파면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배가 가라앉기 때문이다.
돗질산 정상에는 골조공사만 마무리한 채 30년간이나 방치된 삼성 소유의 영빈관이 있었는데, 지난해 여름에 삼성은 이 건물을 철거한 다음 조경수를 심었다. 이 영빈관은 1964년에 한국비료를 건립한 삼성 측이 회사(삼성정밀화학) 내에 있던 돗질산의 정상에 2층 규모의 영빈관을 착공해 공사하던 것이었고, ‘한비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자 공사를 중단 한 후 근래까지 흉물스럽게 방치해 왔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가 지금보다 더 큰 회사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돗질산의 정상에 돛대를 상징하는 키 높은 조형물을 세워야 하는데, 울산 타워의 건립이 제격이다.
왜냐하면 현대자동차는 울산보다 지리적 조건이 열악한 아산과 전주에 이르기까지 공장을 확대했는데, 이것은 돗질산 자체의 돛만으로는 행주형이 항해할 수 있는 선적량을 이미 넘어섰기 때문이다. 때문에 돗질산의 자연적인 돛에다 타워 같은 인공적인 돛을 더 매달아 줌으로써 큰 짐을 싣고서도 거뜬히 항해하도록 지기의 발동을 복돋워 줘야 한다. 따라서 울산시가 돗질산을 시민휴식공간으로 개발하려는 계획에 현대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
이와 같은 내용을 보아 이회장이 울산의 안산이며 세계로 벗어나가는 울산이라는 배의 돗대를 소유한 것이 되므로 명당중의 명당을 선점하였다는 생각이드는군요
이회장이 그토록 한국비료에 대한 애착을 가진 이유가 이해가 될 것도 같았습니다.
본인은 삼성 S D I 공장위치를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보면서도 이회장의 선견지명을 읽을수 있더군요.
여러분들도 한번 유심히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영남정맥이 흘러오다가 동으로 벗어나오는 길목에 위치한 양산통도사와 삼성전관의 위치는 풍수에 문외한인 본인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위치라고 생각합니다.
각설하고 이러한 명당중의 명당에 약사 래미안 아파트를 지을수 있었던 것이 과연 이회장이 생존해 있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입주하신 모든 입주민의 가정에 행운이 함께 할것이라는 덕담으로 이번글은 마칠까합니다.
살기좋은 동네만들기에는 입주민 여러분들의 개개인의 노력이 더중요하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두서없는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향후 울산의 발전의 축은 남구는 지역적 한계(동남으로 공단과 그린벨트 서쪽의 그린벨트)로 중구와 북구를 통해서 만이 가능하다는 글제를 남기면서 중구청일원의 87만평규모의 택지개발계획발표와 국가공공기관이전과 약300만평에 이르는 개발가능지(조정가능지역)를 위주로 해서 향후 비젼을 제시하겠습니다.
현재의 입지여건은 여러분들께서도 잘아시리라 생각하며 아주 한가할 때 정리해서 올릴까 합니다.
첫댓글 항상 좋은 글과 의견에 감사드립니다. 즐거운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래미안의자부심을 갖게해주시네요^^!! 좋은 글 유익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저도 거금의 P를 부담하면서까지 샀거든요. 그때 꽤나 중요하게 생각했던게 풍수지리^^랑... 게다가 3단지는 임원사택부지...(저 위에 언급된 이회장 출장용 양옥집 포함)라서 특히나 좋아했다는..ㅎㅎㅎ 봉천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다음 4탄..진짜 기대 엄청 됩니다. 빨리 한가해 지시길 기원하며..^^
땅의 기를 받아 모두 모두 행복하고 건강하게 잘 살아 갑시다.^^
고맙습니다..이렇게 명당자리인줄 몰랐습니다...기분이 아주 좋군요~봉천님 건강하시고 다음에 또 올려 주십시오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라 그냥 좋은 자리구나 했었는데...3단지 사는 기분이 묘한데여 ^^ 대대손손래미안계신 모든분들에게 부가 따르길..^^ 바라옵고 바라겠사옵니다.
최근에 가입했느데요. 오늘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의견 부탁드립니다.
정말 좋은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속 봐도 좋네요..
고맙습니다
늘 카페지기의 활약을 존경합니다...
태백산멕이 남으로 남으로 행하다가
영천에 이르러 청도로 넘지 않고(끊어진 부분에 만불사가 있고)
안강 뒷산을 이어 토함산 방면으로 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