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호
03시 정각.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발원지는 텔레비전 위에 놓인 휴대폰의 알람소리로 형광 램프도 깜박인다.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작게 세 번 울리고 네 번째부터는 보다 크게 울려 퍼진다. 아홉 번째 울릴 무렵, 이불 뒤척이는 소리와 함께 동진이 무거운 머리를 들어올린다. 기상 시간은 한결같아도 몸은 나날이 무뎌지고 있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알람을 맞춰놓아도 겨우 눈을 뜰 정도이다. 단 오 분만 더 자고 싶은 욕구는 늘 꼬리를 치며 매달리지만 뒤에 벌어지는 엄청난 일들을 생각하면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고 두 눈이 번쩍 뜨인다. 울부짖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에도 아내와 두 딸은 먼 꿈나라에 가 있다. 동진은 살며시 이불을 젖히고 불도 켜지 않은 채 화장실로 향한다.
식재료 납품 담당으로만 십 년째, 무의식 속에 벌어지는 일관적이고 전투적인 생활 패턴은 동진을 사이보그로 만들었다. 사이보그는 의식이 있든 없든 늘 목표물을 과녁에 넣고 다니며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동진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돌린 뒤 머리를 들이댄다. 비누와 샴푸를 쓰는 일은 건너뛰기 십상이다. 새벽은 오로지 잠을 깨는 데에 목적이 있다. 수건으로 얼굴과 머리의 물기를 닦아내지만 박박 문지르지는 않는다. 적당히 물기를 남겨놓는 것도 졸음을 떨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목적지에 도착할 때쯤이면 물기는 모두 없어지고 만다. 동진의 모든 일과는 시간을 다투는 일이라 대문 밖을 나서는 순간까지 십 분이 채 흐르지 않는다. 허름한 옷차림과 몽롱한 정신 그리고 뱃속의 공복 같은 것으로는 조금도 동진의 시간을 뺐지 못한다. 아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불 속에서 배웅하는 것이 동진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현관문을 열자 새벽의 찬 공기가 동진의 얼굴을 퍼붓는다. 5월 하순, 때는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새벽 공기는 달빛에 나뒹구는 음산한 어둠의 향연같이 싸늘하기만 하다. 동진은 몸을 추스르며 자신의 화물차로 종종 걸음을 친다. 멋대가리라고는 손금만치도 없는 고철덩어리에 체중을 싣고 생명의 불씨를 불어넣는다. 화물차는 덜덜거리는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운반 최대량 1.5톤에 냉동컨베이어시스템을 갖춘 화물차는 동진의 유일한 파트너로서 동진 일가의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정도의 공간에서는 틈틈이 단잠을 이루기도 하고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집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기도 한다. 동진은 20여 초 공회전을 한 다음 가로등의 안내를 받아 사십칠 킬로미터의 레이싱 대열에 돌입한다. 항상 그랬듯이 동진의 1차 관문은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다.
새벽 출근길은 앞으로 여덟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암시하듯 적막한 가운데 긴장감이 흐른다. 항상 혼자이기에 외롭다는 생각은 망각이 돼 있지만 시시각각 넘나드는 반대 편 차량의 헤드라이트와 언젠가 어둠 속에 숨어버릴 것만 같은 아스팔트를 떠올릴 때면 자신도 모르게 식은땀이 흐르고 불안에 떨기까지 한다. 길가의 가로등만이 규칙적인 배열로 마치 동진의 화물차를 호위하듯 길을 밝혀주지만 안전을 책임져주지는 못한다. 아스팔트 정 중앙에 새겨진 두 개의 노란 줄은 운전자들에게 있어서 생명선이나 다름없듯이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한때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했던 동진은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씻지 못하고 있다. 그 아찔했던 기억들을 상기시킬 때면 고속도로를 생각하게 되지만 그뿐이지 달리 고속도로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고속도로라면 하루에 여섯 차례나 통행을 해야 하고 한 달 통행료는 자그마치 십칠만 원으로 조금의 타협점도 찾지 못한다. 동진은 이미 오래 전부터 새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지방도로나 중앙 분리대가 있는 고속도로와의 운행시간 차이가 다를 바가 없고 새벽에 운전대를 잡는 것 자체가 위험이라고 못박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화물차의 엔진은 점점 더 과열되고 동진 또한 등줄기에 땀내가 배기면서 미간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정리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어때?’
동진은 운전 중에 아내의 말을 떠올린다. 하지만 아직 단 한 번도 아내의 말에 예아니오 식의 대꾸를 한 적이 없다. 자신도 분명 새로운 일을 찾고 싶고 꼭 바꿔야 한다고 절실하게 느끼고 있지만 갖은 재능이라고는 운전밖에 없으며 장사를 하기에도 밑천 마련이 막막하기에 아내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못할 따름이다. 1년만 더. 해마다 되풀이되는 이 말이 어느덧 십 년을 채웠고 또 한 해가 되풀이되고 있다.
03시 50분.
가로등의 안내를 받은 지 사십여 분, 동진이 몬 화물차는 수원의 동탄에 위치한 물류기지에 도착한다. HS푸드시스템 물류센터의 도크에는 5톤에서 적게는 1톤가량의 화물차들이 운반물을 채워주기만을 기다린다. 동진은 자기 차량의 자리를 확인한 다음 후진으로 단번에 들이대고 차가 멈추기까지 맞물렸던 어금니를 절대로 떼어놓지 않는다. 서른 개의 도크 중, 스물네 번째 도크의 파레트 위에는 동진의 손길을 기다리는 여러 식료품들이 떼지어 몰려 있다.
급식소에서 주문한 물품을 건네주기 전에 먼저 상품의 질을 살피고 중량과 스펙이 맞는지를 헤아리는 것이 동진과 물류센터 직원들의 주요 업무이다. 하지만 새벽에 주어진 한 시간으로는 숫자를 헤아리는 정도이지 중량을 재거나 맛을 보며 상품의 질을 면밀히 파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사고를 여러 번 치른 몇몇 상품들만 들쳐볼 뿐이고 나머지는 누락되지는 않았는지 체크하는 것이 고작이다.
동진이 육안으로 상품을 살피던 중 당근 꾸러미에서 당근을 하나 빼내어 입에 문다. 당근은 흙을 제거하고 깨끗하게 세척된 상태이다. 비타민A가 풍부한 당근은 채소 중에서 항산화작용에 좋은 카로틴이 가장 많고 복부팽만 효과가 월등해 아침 식사대용으로도 그만이다. 한 입 깨물 때, 경쾌한 소리와 함께 튕기는 과즙은 당질 함량이 높아 침샘의 당단백질인 뮤신을 분비하는 작용을 돕는다. 상품 선별기준으로 본다면 당근은 머리 부분에 검은 테두리가 없어야 하고 표피색은 농선 홍색으로 형태가 모나지 않고 매끄러운 것이 좋으며 절단했을 때 가운데 심이 없는 것이 상품(上品)에 속한다. 소신초등학교의 검수기준서에는 상품이니 중품이니 하는 기준은 기재되어 있지 않으나 특정한 상품에 따라 크기와 중량 그리고 빛깔과 상태 등의 상품 선별기준이 명확하게 나열되어 있다. 동진은 당근을 꼭꼭 씹으며 소신초등학교의 물품확인서를 읽어 내려간다. 이때 물류센터 직원이 다가와 동진의 화물차 냉동칸에 냉동상품을 싣는다. 동진이 당근을 모두 먹은 뒤 허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오이 박스에서 오이를 한 개 빼내 든다. 오이는 구부러지지 않고 굵기가 위에서 아래까지 일정한 것이 좋으며 표면에 윤기가 흐르고 손으로 만져보았을 때 탄력이 있어야 한다. 동진이 오이의 양 끝을 잡고 반으로 포갠다. 순간, 오이의 특유한 향이 대기하는 화물차의 매연가스 속을 뚫고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자른 부위로는 물기가 촉촉하게 남아있다. 동진이 또다시 크게 한 입 물고는 자신의 입과 코와 눈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떠한 물건도 조리할 수 없다고 못박은 소신초등학교의 주방장을 떠올리며 깐깐한 눈매를 흉내낸다.
‘음식 때문에 아이들끼리 싸우지 않도록 해주게.’
동진은 남김없이 오이를 먹어치운 뒤 센터직원과 함께 1차 검수에 들어간다. 센터 직원은 파레트에 놓인 상품을 물품확인서와 함께 일일이 대조하며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간다. 동진은 누락된 상품이 없는지 모두 확인하고는 감자 박스 속으로 손을 들이민다. 감자 크기를 일일이 잴 수 없기에 손과 눈대중으로 모양과 크기를 확인한다. 크기는 반경 2센티를 넘지 않아야 하고 흠집이 적고 동그란 모양일수록 양호한 상품이라고 검수기준서에 쓰여 있다. 이것이 소신초등학교를 통과할 수 있는 상품의 기준이며 동진이 새벽 세 시부터 설쳐대는 이유이다. 반복되는 고된 일과 쌓여가는 클레임은 동진으로 하여금 자신의 일이 보람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들었고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하게끔 만들었다. 조림감자는 배식에 쓰이는 국자 크기가 말해주듯 한 사람 앞에 네댓 개씩만 배식이 이루어진다. 계산적이고 배식의 효율성을 보여주는 소신초등학교만의 독특한 식자재 관리시스템은 납품업자들로부터 반감을 일으키기 마련이지만 주방장은 검수기준서를 재론한다거나 기준에서 벗어난 물품을 받아 조리한 일이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 반품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상품으로 다시 배송해야 하고 주방장의 확인을 받아야만 그 날 납품업자의 업무가 종료된다. 동진은 소신초등학교의 검수기준서를 이가 갈린 정도로 줄줄 외우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맡은 분야에 능률을 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방장이 철저하게 견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진과 물류센터 직원이 파레트에 있는 상품을 모두 화물칸에 싣고 냉동칸으로 걸음을 옮긴다. 물류센터 직원이 냉동칸에서 냉동상품을 가지고 나오자 동진이 한숨부터 내쉰다. 박스 안에는 문제의 상품인 꽁치가 들어있지만 그 자리에서 박스를 풀어헤치고 꽁꽁 얼린 꽁치들을 파헤쳐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의심쩍으면 한번 뜯어볼까요?”
“뜯어보았자 맨 위에 있는 것들만 볼 수 있을 텐데요. 놔두세요.”
“그래요. 반품에 클레임까지 벌써 몇 차례인데. 제조업체도 이젠 정신 바짝 차리고 있더라구요.”
동진은 물류센터 직원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돌리며 상품이 누락되거나 이상이 없다는 사인을 물품확인서에 한다. 운전석에 올라 화물차에 시동의 걸고는 오른손으로 기어를 거머쥐고 세 시간 뒤에 벌어질 상황을 상상해본다. 주방장 앞에서 꽁치가 담긴 박스를 풀어헤치고 꽁치 토막을 하나씩 들어 올린 다음 상품에 하자가 없음을 보여줄 것이고 필요하면 자신이 직접 맛을 보면서 주방장을 당당하게 바라볼 것이라며 눈웃음을 지어본다.
05시 정각.
동진은 물류기지를 출발해서 북서쪽 인천 방면으로 차를 몬다. 풍덕천에서 시작된 수원과 인천을 잇는 42번 지방도로는 중앙분리대가 없는 편도 2차선 도로이다. 제한 속도를 알리는 표시판이 간간히 동진의 눈에 밟히지만 속도를 늦추지는 않는다. 제한 속도는 시속 80km이지만 동진이 모는 차의 속도계는 90km를 가리킨다. 제한 속도를 측정하는 감시 카메라의 위치는 이미 동진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상태이고 속도 또한 동진의 눈알 속에서 감지되고 있다. 동진은 새벽에 자신과 맞서 싸워야하는 무리들이 맞은 편 헤드라이트와 졸음이었다면 지금부터의 문제는 교통체증이라며 가속페달을 뜨겁게 달군다. 출근길 전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 급히 서둘러야 하는데 단 십 분이라도 지체가 되어 교통체증에 시달리게 되면 삼십 분이 될지 한 시간이 될지 모르는 일이고 그런 상황에까지 이른다면 주방장이 노발대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동진은, 출근전쟁이라는 시간이 정해진 바가 없고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달릴 수 있는 데까지 빨리 달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여기고 있다. 하지만 구입한 지 십 년이 넘은 차의 성능은 동진의 조급한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다. 시속 100km에 가까운 고속주행일수록 좌우 타이어의 밸런스가 깨져 핸들 떨림 현상이 일어나고 화물칸의 짐들도 흐트러지기 때문에 90km 이상의 속도를 내기가 어렵다. 동진은 차에 무리가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을 뿐이다.
05시 50분.
군포 시 외곽에 위치한 로템의 직원식당 앞.
로템은 첫 번째 주문처로 주문량이 그리 많지 않고 스펙도 까다롭지 않다. 아니 까다롭다는 표현보다 소신초등학교와 같은 그런 스펙의 상품기준이 아예 없으며 물건을 받는 사람조차도 없는 곳이다. 유통기한과 중량 그리고 지극히 흠집이 있는 상품이 아니고서는 반품이 일어나지 않는다. 동진은 식당 뒤편에 놓인 스텐 선반에 농산물과 공산품 별로 분리해 두고 공급받는자용 물품확인서를 떼어 확연하게 들어난 상품 상단에 올려둔다. 물품확인서에는 빠진 물품이 없다는 사인을 빠뜨리지 않는다. 다음 행선지는 문제의 사업장인 소신초등학교로 한 시간가량 더 가야한다.
06시 50분.
동진이 몬 화물차는 마지막 목적지에 십여 분 일찍 도착한다. 다행히 교통신호를 제외하고는 동진이 몬 차에 제동을 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학교로 들어온 동진은 식당을 삼십여 미터 앞에 두고 차를 멈춰 세운다. 시동을 끈 다음 잠시 머리를 뒤로 제치고는 일주일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계속 이런 식으로 납품을 한다면 다른 일거리를 찾아야 할걸세.’
주방장의 목소리가 동진의 머릿속을 난장판으로 만들 즈음, 동진은 문을 박차고 나선다. 그리곤 바로 화물차 뒤편으로 향한다. 화물칸의 문을 열자 박스 하나가 동진의 무릎에 맞고 떨어진다. 동진이 한심한 얼굴로 떨어진 박스를 내려다본다. 떨어진 박스를 집어올린 다음 화물칸 내부를 들여다본다. 다른 상품들도 엎치락뒤치락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 딴에는 신경을 써서 몰았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는 차를 성급하게 몬 격이 되었다.
동진은 문이 움직이지 않도록 문고리로 고정시키고 상품을 실어 나르기 위해 빈 카트를 화물칸 가까이 들이댄다. 카트에 사과 두 박스를 옮겨 싣는다. 그 옆으로 오이 두 박스를 싣고 다른 무거운 상품을 찾는다. 잠시 두리번거리더니 냉동칸에서 꽁치 두 박스를 꺼내온다. 오이 박스 위에 옮겨 싣고는 참아온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박스 상단에는 ‘소신초등학교 꽁치(조림용) 30kg’ 이라고 쓰여 있다. 동진이 그 글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감자 박스를 그 위에 살며시 내려놓는다. 무거우면서도 부피가 큰 물건이 밑으로 가도록 쌓는 일은 오랜 숙련 끝에 나온 기술이라기보다 식료품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쉽게 알 수 있는 일인데 이를 어긴 동진이 심하게 찌그러진 박스를 풀어헤치는 과정에서 그만 주방장에게 지적사항을 받아 상품 반입을 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주방장은 박스가 심하게 찌그러진 것만큼 그 내부의 상품들도 온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를 대며 찌그러진 상품을 반품시켰다. 그때의 상황을 실감하면서 나머지 상품들도 무게와 크기에 따라 차곡차곡 싣는다. 모든 상품을 옮겨 싣고는 주방장과의 일전을 벌일 태세를 갖춘 듯 두 손을 불끈 쥐어본다.
‘기필코, 주방장이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들 거다.’
동진이 카트를 검수장으로 밀고 가면서 입을 놀려대지만 사실 자신이 없다. 스스로 할 말은 하자며 몇 번이나 혼잣말로 되뇌지만 주방장 앞에서는 숨소리조차도 내지 못한다. 꽁치를 검수할 때면 십여 년이란 경력이 무색해지고 예전의 초년생 모습 때와 같이 불안에 떨고 만다. 이 달에도 이미 두 차례나 꽁치를 납품한 바가 있는데 두 번 모두 문제가 되어 동진을 괴롭히고 있다.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동진의 머리 한구석에는 꿈틀거리는 꽁치들로 가득 차 있다.
동진은 검수장 출입문을 살짝 열고 고개를 들이민다. 오른쪽 바닥에 쌀 한 가마의 무게까지 달 수 있는 저울대가 놓여 있고 그 옆에 작은 저울대가 놓여 있다. 문을 열어둔 채, 카트에 실린 상품들을 저울대 가까이 들어 나른다. 주방장은 검수하는 수순에 있어서도 냉동식품이 제일 먼저이고 그 다음으로 생식품과 공산품 수순이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특히 그 날의 으뜸이 되는 주재료를 가장 중요시 여겼으며 검수도 가장 먼저 받기를 원했다. 출입문 우측 벽에는 꽁치조림이라는 금요일 중식 식단표가 걸려 있다. 물건을 모두 내린 동진은 맨 먼저 검수할 상품을 고루고자 잠시 머뭇거린다. 고심 끝에 주방장의 요구사항을 뒤로 하고 오이 두 박스를 저울대 위에 올려놓는다. 정작 첫 번째로 올라와야 할 꽁치는 뒷전에 물러나 있다.
07시 15분.
예정된 검수 시간에 오 분을 남겨두고 주방장이 검수장에 들어선다. 소신초등학교의 영양사는 행정적인 일을 주로 맡고 주방장이 영양사의 업무 일부를 맡고 있다. 주방장이 저울대에 가까이 다가가 동진으로부터 검수확인서를 건네받는다. 그리고는 검수서의 위아래를 훑은 뒤 저울대 무게를 대조하고, 박스 안에서 오이 하나를 꺼내든다. 오이를 들고는 바로 반으로 포갠 다음 맛을 보기 시작한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시스템이 아무리 좋더라도 납품업체를 그대로 믿지 못하겠다는 영양사나 주방장들은 꽁꽁 얼린 정육이나 생선까지도 일부 떼어 냄새를 맡거나 손으로 문질러보기도 하며 필요에 따라서 맛을 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납품업자는 으레 고개를 돌리다 못해 인상을 찡그리기까지 하는데 그런 경우를 여러 차례 보아온 동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뻣뻣이 지켜볼 뿐이다. 주방장이 오이를 자른 적은 있어도 맛을 보는 일은 흔치 않다. 씹는 소리만으로도 오이는 싱싱해 보이지만 주방장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다. 보다 못한 동진은 가당찮은 표정으로 왼손을 옆구리에 집고 한 쪽 다리는 작다리 짚은 채 연거푸 콧바람을 내어본다. 새벽에, 동진이 오이를 먹으며 주방장을 흉내 내던 바로 그 얼굴 표정과도 같다. 검수하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상품을 일일이 살피고 맛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는 동진의 불순한 반입 태도와 상품에 대한 클레임이 잦아지면서 납품업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주방장 의지가 나날이 불거져 있기 때문이다. 야채에서 과일, 정육 그리고 공산품 수순대로 검수를 마치고 마지막 꽁치를 검수할 차례이다. 동진이 꽁치 두 박스를 저울대 위에 올려놓는다. 주방장이 얼굴을 들이대고 박스 안을 유심히 살핀다. 주방장의 눈은 마치 병아리를 노리는 독수리와 같다. 꽁치 토막들은 동진이 생각했던 것처럼 일정한 크기로 가지런히 정렬해 있지만 주방장의 시선은 꽁치에 가 있지 않고 축축하게 젖은 박스와 녹아내린 물기로 향해 있다.
“왜 이렇게들 녹았지? 언제부턴가? 죄다 흐물거리잖아?”
“그럴 리 없습니다. 분명 새벽 네 시에 냉동칸에 바로 실었습니다.”
“그때랑 같은가? 지금이 일곱 시 반이라고!”
주방장은 꽁치 한 토막을 꺼내 들고 물기를 닦은 다음 냄새를 맡는다. 어딘가 석연치 않은 듯 꽁치 한 토막을 내려놓고 박스 속을 뒤적거린다. 바닥에 홍건이 고인 물기를 맨손으로 훑은 다음 냄새를 맡는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는 거 모르나?”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속하게 운반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이모양 이꼴인가? 어찌됐든 언제부터 녹아있었는지는 모르나 이런 상품을 받아 조리할 수는 없네.”
“조금 녹았을 뿐이지 상품에는 큰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그냥 한번만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어차피 조리하기 전에 녹이실 거 아닌가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녹여도 이런 식으로 녹이지 않지. 그리고 지금 나와 협상을 하자는 건가?”
“협상이 아니라 본사에서 물건을 다시 준비하기가 만만치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매번 이런 식이라면 검수하는 의미가 뭐가 있겠는가. 수량만 헤아릴 거라며 밑에 직원을 내보냈을 것이야.”
“초여름이라 이렇게 빨리 기온이 상승하리라고는 미처 몰랐습니다. 다음부터 꼭 신경 쓸 테니 한번만 받아주세요.”
“손금만치도 이상이 있으면 받을 수 없는 게 여기 원칙인 거 알지? 누구 하나 잘못되는 꼴 볼 수 없다고. 전량 다시 가져오게. 전량 다!”
문제의 꽁치가 또다시 주방장의 화를 불러일으킨다. 꽁치조림은 닭튀김과 더불어 영양가도 좋으며 남김없이 먹는 것이 아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인기가 좋은 메뉴 중 하나이다. 그 인기 좋은 상품이 소신초등학교에서 화두가 된 지 벌써 석 달이 지나고 있다. 그때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방장이 모든 상품을 일일이 살폈다. 문제의 꽁치는 토막 당 40g정도 나가야 정상이나 그날은 대부분이 50g에서 60g으로 검수기준에 따른 오차의 범위 10g을 훨씬 넘어섰다. 주방장은 검수기준서를 누차 강조하면서 다시 가져올 것을 요구했지만 동진은 크기가 조금 큰 것이 무슨 문제가 되냐며 반박을 했다. 주방장은 한 사람당 돌아가는 배식 기준이 두 토막이기 때문에 나중에 배식할 때쯤은 수량이 부족해서 누군가는 분명 두 토막이 아닌 한 토막밖에는 먹지 못한다며 반품의 이유를 해명했다.
동진이 소신초등학교를 꺼려하는 이유는 검수기준서 말고도 주방장이 나이가 많은 남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방장은 꼼꼼한 검수에 기준서에 따른 지적을 했을 뿐 까다롭거나 사적인 감정을 내세우지는 않는다. 학교 급식 삼십 년이란 경력은 그의 얼굴과 손에 잘 나타나 있다. 왜소한 체구에 민첩성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빠르고 손놀림도 유연하다. 꼼꼼한 성격은 깡마르고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그의 얼굴에 잘 나타나 있다. 검수는 어떤 경우라도 아랫사람한테 시키지 않으며 조리된 음식도 일일이 맛을 보고난 뒤에 배식에 들어간다. 그래서 주방장은 조리중인 음식을 시시각각 맛을 보기 때문에 따로 식사를 하지 않을 때도 더러 있다.
‘누구나 똑같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걸 가져오게. 조금이라도 하자가 없어야 하고 바로 조리에 들어가야 하기에 냉동이 아닌 생물이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게. 다른 할 말 있나?’
검수를 마친, 주방장의 반품에 대한 항의가 동진의 귀에 꽂힌다. 상품을 하차할 때 꽁치박스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눈빛, 동진은 뒤죽박죽 얽힌 꽁치로부터 시선을 돌릴 줄을 모른다. 주방장이 한 마디도 못하게 만들겠다고 하던 의기양양함은 온데간데없고 축 늘어진 어깨에 수축한 표정으로 검수장에서 빠져나온다. 반품할 상품을 냉동칸에 밀어 넣고는 추가 주문을 회사에 요청한다. 하지만 꽁치 두 박스 때문에 오십여 킬로 떨어진 회사에서 배송을 하기에는 시간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 배송 차량도 넉넉하지 않다. 동진은 제조업체에 직접 통보해서 조치를 받으라는 지시를 팀장으로부터 받는다. 하지만 녹아내린 상품에 대한 원인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제조업체에 일방적으로 통보할 수 없는 것이 납품 대행업체와 제조업체 간의 협약이다. 동진은 또다시 지난번과 같이 시장에서 물건을 조달받기 위해 명함을 뒤적거린다. 그나마 대량으로 꽁치를 작업할 수 있는 생선업체가 가까운 재래시장 안에 있다. 동진은 가격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생선만을 시장의 생선업체로 이관할 수 있는가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단일 품목만을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시장의 생선업체도 불만이거니와 학교 측도 쉽게 허락할 일이 아니다.
07시 50분.
동진은 비용 손실을 감소하며 시장의 생선업자에게 전화를 걸어 전과 동일하게 가져올 것을 주문한다.
‘... 그때 그 스펙대로 30kg 가져다주세요. 되도록 빨리요. 냉동이 아닌 생물이어야 합니다.’
동진은 이것이 자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며 중간 배달에 큰 문제가 발생되지 않는다면 오늘 업무가 종료될 것이라고 한시름 덜어낸다. 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 듯 학교 정원을 서성이며 손목시계만을 들들 볶는다. 잘못했다가는 점심 배식에 중요한 반찬 하나가 빠지기 때문에 동진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동진은 고된 일과에 지칠 대로 지쳐있지만 아직 한 번도 아쉬운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근래에는 이 일의 장래성을 두고 여러 모로 검토하고 지난 십여 년을 되짚어보면서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겠다는 의지를 키우고 있다. 이에 앞서 자신이 맡고 있는 사업장 중에서 소신초등학교만을 다른 사업장으로 바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보다 더 확실한 뜻은 자신의 업무이기 전에 소신초등학교에 대한 회사의 강력한 방침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팀장은 동진으로부터 이 같은 제안을 받았지만 아직 뚜렷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팀장으로서는 누군가는 분명 맡아야 할 일로 업무의 전가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아는 소신초등학교의 문제를 동진 스스로 풀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소신초등학교에 대한 문제를 풀기 위해 여러 모로 애를 써 본 팀장은 혹시 업무 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냐며 주방장과 함께 저녁식사라도 할 것을 지시했지만 동진은 주방장이 대가를 바라기 위해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 아니며 주방장과 좋은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자신의 입장을 털어놓았다. 팀장은 또한 제조업체들로부터도 의견서를 받아왔는데 제조업체들은 하나같이 오 퍼센트라는 유통마진을 두고 득보다는 실이 많다고 입을 모았으며 모두가 제조업체와 직거래로 전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동진은 대체할 상품을 가지고 주방장으로부터 재검수를 받아야만 회사로 복귀할 수 있다. 회사에서는 다음날 주문서를 확인하고 그 날 발생한 클레임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제조업체로 전화를 걸거나 업체 대표를 불러놓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다. 동진은 새벽 세 시에 출근하고 오후 다섯 시에 퇴근을 하는데 이렇게 클레임이 발생한 날은 그 뒤처리를 하기 때문에 퇴근시간이 더욱 지연이 된다.
09시 정각.
짐을 실은 오토바이 한 대가 교문을 통과해서 학교 건물 뒤로 향한다. 얼핏 보기에 자신이 주문한 것임을 직감한 동진은 상기된 표정으로 벤치에서 일어나 식당으로 걸어간다. 식당 가까이 다가갈수록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마치 꽁치 알레르기 환자처럼 꽁치를 가까이 할수록 과민반응이 일어나고 흥분하기 시작한다.
식당 뒷마당에 오토바이 기사가 짐 보따리를 풀어헤치고 있다. 동진은 상기된 표정이지만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두 박스를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건네받는다. 박스는 상품의 파손 방지와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해 스티로폼으로 싸여있다. 동진은 작업이 잘 됐는지에 대한 여부는 물을 필요가 없는지 수고했다는 말만 전하고 곧바로 검수장으로 향한다. 동진은 조금이라도 빨리 박스를 풀어헤쳐서 머릿속에서 꿈틀대는 꽁치들을 지워버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먼저 두 박스를 저울대 위에 올려놓는다. 중량은 발주량보다 박스 무게를 제외하고도 많이 나간다. 하지만 중량이 많다는 것이 주방장을 통과하는 데에 유리할 수만은 없는 법이다. 박스 테이프를 자르고 뚜껑을 열어 내용물을 살핀다. 이때 주방장이 동진에게로 다가온다. 주방장의 시선은 저울대 위에 놓인 박스로 향해 있지 않고 동진에게 가 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동진에게 한 마디 쏘아붙인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만 하나? 한 번에 제대로 못 맞추냐 이말이야? 이 얼마나 사람들 피곤하게 만드는 일이고 물적 손실인지 아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만 생선업체도 워낙 많은 양을 준비하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한 사업장을 위해 별도의 전담반을 둘 수도 없는 일입니다. 제발 오차 범위 20g 정도만 봐주시면 안 될까요?”
“냉동생선만을 취급하는 전문가들이라고 소개하지 않았나? 150g정도의 꽁치만을 골라서 머리꼬리내장을 제거하고 내장부위, 몸통, 꽁지부위로 세 등분 나누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시장 상인들도 쉽게 하는 것을 전문가들이 못한다고야 말이 되느냐 이말이야.”
주방장이 열변을 토하면서 꽁치가 담긴 박스를 열어본다. 크기나 모양이 비교적 고른 편이고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내장 부위도 손질이 덜 가지 않았고 꽁지 부위도 짤게 잘리지 않았다. 주방장이 몇 토막을 꺼내어 작은 저울대 위에 올려놓는다. 토막 당 무게가 35g에서 45g으로 다행이 오차 10g의 한계선을 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주방장이 스티로폼 안의 비닐 팩을 거꾸로 뒤집어놓고는 밑 부분에 있는 토막들을 낱낱이 훑어본다. 처음에 보았던 토막과는 사뭇 다른 모양의 토막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다. 무게도 기준치에서 훨씬 작거나 크게 나가는 토막들이 상당수다. 주방장은 말할 기운이 없는 듯 입을 굳게 다물었고 동진은 어이가 없는 듯 두 팔을 거둬 붙이고 직접 나선다. 동진은 식식대며 자신이 먼저 해야 할 말을 대신해서 또 다른 박스를 직접 열고 그 속을 샅샅이 파헤친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꽁치 세례라도 받을 것만 같다. 두 번째 박스의 꽁치 토막들도 별반 차이가 없는지 고개를 땅에 떨어뜨린다.
“왜 아무 말도 없는가? 할말이 없으면 당장 싸들고 다시 가져오겠습니다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거 보라고! 내가 또 공연한 시간을 허비했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누구를 바보로 아나?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야! 내일 당장 제조업체와 팀장을 함께 불러오게!”
동진은 차라리 한 마디 욕설을 내뱉고 쫓아냈으면 하는 바람으로 벙어리가 되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생선업체는 이 가격에 더 이상의 작업은 어렵다고 하소연했고 빈틈이라고는 손금만치도 없는 주방장은 작은 실수나 미진한 부분에 대해서 한 치의 배려도 없었으며 억지를 부리지도 않았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동진은 주방장에게 자신의 의지는 물론 납품 책임을 맡는 담당으로서의 소신을 밝힐 결심을 한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20g의 오차를 허용해 주지 않는다면 이 학교의 기대에 더 이상 맞춰드릴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희는 더 이상 납품할 능력이 없습니다. 어느 회사이든 남기지 못할 장사에 계속 거래할 수 없는 법입니다.”
“잘 해보겠다고 떵떵거린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딴소리야! 아이들 먹는 것이라고 해서 가볍고 보고 장난하는 건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가 부족한 탓입니다. 저희가 맞춰드리기 어려울 뿐이며 양쪽 모두 더 이상의 손실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납품하는 사람들도 먹는 것 가지고 장난하거나 구걸하지 않습니다.”
“이걸 보고도 장난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나!”
“죄송합니다. 한 시간에 30kg이나 되는 물량을 선별해서 작업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비록 생선업체가 괘씸한 일을 저질렀지만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봅니다. 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해는 무슨 이해! 노력 부족이지. 관심이 없는 거라고!”
주방장의 언성이 높아갈 무렵 보조주방장이 중간에 나서 주방장과 동진을 떼어놓는다. 그러나 주방장은 보조주방장을 뿌리치고 한 마디 더 하기 위해 동진에게 다가간다.
“내일 당장 때려 치더라도! … 오늘 꽁치는 다시 가져와야 해! 한 시간 내에. 만약 오늘 꽁치조림이 빠지게 된다면 자네나 나나 각오해야 할 것이야.”
당혹스런 얼굴로 검수장에서 빠져나온 동진은 건물 모퉁이에서 방향을 잃은 듯 갈피를 잡지 못한다. 잠시 우물쭈물 대다 시장의 생선업자에게 다시 전화를 건다.
‘마지막입니다. 가격은 신경 쓰지 마세요. 한 시간 내에 아니 더 빨리요. 아마 앞으론 부탁드릴 일 없을 겁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 부탁입니다. 40g에서 오차 범위 10g입니다. 박스 속까지 샅샅이 뒤져볼 테니 균일하게 맞혀주세요. …아 물론 운송비도 드릴 테니 되도록 빨리 보내세요. 네…네…그래요.’
동진은 다급하게 주문을 해놓고도 불안한 마음에 안절부절 못한다. 조금 전에 검수 받은 꽁치 두 박스는 만약을 대비해서 냉장고에 보관하겠다고 보조주방장은 말했다. 동진은 학교 뒤뜰에서 정문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그리곤 팀장에게 다른 사업장으로 바꿔달라고 요청한 일을 누차 떠올린다. 사업장을 바꿔달라고 한 제안에는 담당자가 직접 피력할 수 없는 사업장 포기 의사가 담겨져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업장을 바꿔달라고 요청한 일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라며 마음의 결심을 단단히 해둔다. 그리고 또 되뇌며 떠올린다.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라는 아내의 말을. 아내의 얼굴을 떠올리고 나면 두 딸아이들도 그 뒤를 잇는다. 동진은 담배 한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다. 자신의 장래에 아무런 희망도 진전도 없다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지만 처자식을 생각하면 감내하며 현실을 받아들이는 길밖에 없다며 수차례나 보채고 또 달래본다. 머릿속에는 꽁치가 가득하고, 입속에는 담배연기가 가득하다. 머릿속에 담긴 꽁치들을 입속으로 밀어 넣고는 허공으로 세차게 훌뿌린다. 허공으로 밀려가는 꽁치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노려본다.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얼굴도 두루 만져본다. 여전히 뜨겁고 머릿속은 꽁치들이 계속 꿈틀댄다.
동진은 이미 두 차례나 제조업체 사장을 직접 불러놓고 꽁치 문제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쓸 것을 당부했었다. 제조업체 사장은 공산품과 달리 수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시간과 노동이 투여되고 기준 이하의 토막들은 모두 로스로 처리해야 하기에 적잖은 비용이 따른다고 투덜댔다. 동진은 꽁치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학교 기준에 맞도록 미리 작업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지만 업체 사장은 소신초등학교만을 믿고 시차를 무시한 채 꽁치를 대량으로 구입할 수는 없고 또 보관상의 문제도 있을 수 있다며 이의제기도 번번이 했다. 어떻게든 대안을 찾을 수 없음을 깨달은 동진은 결국 애쓴 보람을 헛되이 보내고 한 급식소를 정리하는 것이 못내 아쉽게 느껴진다.
10시 15분.
한 시간 전과 같이 짐을 실은 오토바이가 교문을 통과해 식당으로 향한다. 동진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며 서둘러 식당으로 향한다. 오토바이 기사로부터 꽁치 두 박스를 건네받고는 곧장 검수장으로 들어간다. 박스 테이프를 뜯지 않고 그대로 저울대에 올려놓고는 무게를 확인한다. 무게는 32.5kg으로 보기에도 스티로폼 박스 무게를 제외하고도 많이 나간다. 동진은 스티로폼 박스를 걷어 내고 내용물을 담은 비닐 팩만을 저울대 위에 올린다. 무게는 30.9kg으로 충분한데도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이유는 주방장으로부터 사소한 잔소리까지 듣지 않기 위함이다. 작은 저울대로도 일일이 한 토막씩 무게를 달아본 다음 깊숙한 곳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머릿속은 온통 크기가 제각각인 엉터리 꽁치를 찾는 데에 몰입이 되어 있다. 동진의 몸동작이 어느 때보다도 민첩하고 가볍게 보인다. 세 번째 가져온 상품에는 아직 아무 이상이 없는 듯하다. 그런데 이상이 없다는 것이 동진에게 아무런 희망의 징조가 되어주지 못한다. 주방장은 쉽게 찾아내는데 왜 자신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동진은 쫓기는 기색이 영역하고 안구는 점점 더 빨갛게 달아오른다.
잠시 숨을 돌린 동진은 스펙 문제가 아니라면 상품의 상태를 살펴보아야 한다며 오감을 집결시킨다. 빛깔이 선명하고 윤기가 흐르는 것이 육안으로도 싱싱해 보이지만 동진은 주방장이 했던 것처럼 꽁치 토막들을 일일이 들어 올리며 꾹꾹 눌러보며 코에 갖다 대고 냄새까지 맡아본다. 순간, 살점까지 조금 떼어서 입안에 넣고 씹어볼까도 생각하지만 그것만은 어려운 듯 천천히 꽁치 토막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동진은 꽁치 토막을 내려놓다가도 주방장의 환청을 들은 듯 다시금 꽁치 토막을 들어 보인다. 만약에 자신이 살점을 떼어서 먹어본다면 주방장에게 더욱 강력하게 맞설 수 있고 자신의 주장을 맘껏 펼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가차 없이 살점을 떼어서 입에 넣는다. 돌을 골라내는 입놀림으로 우물거리다 속도를 내어 씹기 시작한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자신도 횟집에서 회를 초고추장에 찍지 않고 먹을 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안도의 표정으로 한 손에 들고 있던 꽁치 토막을 맛깔스럽게 바라본다. 그리곤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듯 또 다른 박스 속까지 구석구석 파헤친다. 멀찌감치 동진을 바라보던 주방장이 저울대 가까이 다가와 무게를 확인한다. 주방장이 무게를 확인할 때까지도 동진은 엉터리 꽁치를 찾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됐네. 가보게.”
“아... 예? 아니 확인은 안 하실 건가요?”
“됐다니까!”
동진은 미심쩍은 표정으로 주방장을 바라본다. 잔뜩 긴장한 채 주방장의 평가를 기다리던 동진은 무슨 말이라도 하거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이지만 주방장은 무게만 확인하고 바로 돌아서고 만다. 그러나 주방장은 조리장으로 띄엄띄엄 걷다가 다시 돌아선다.
“한 마디만 하지. 모든 아이들이 몸통부위만을 원하고 있지. 자네 입장이라면 흐물거리는 내장 부위거나 쬐끄만 꽁지부분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 것 같은가? 그런 꽁치들을 나누어주는 사람 또한 기분이 좋을 리 없지. 눈 가리고 나누어주면 또 모를까. 난 그런 터무니없는 꽁치를 아이들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줄 용기가 없다고. 자네 회사가 아니더라도 납품할 회사들은 줄 섰네. 시행착오를 몇 차례 반복할 테고 또 자네와 같이 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분명 여기 공백을 메울 것이야.”
주방장은 침착했고 동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동진의 달팽이관은 마비가 된 듯 얼어붙었고 두 눈의 동공은 확장이 되었다. 머릿속은 여전히 혼란스럽지만 더 이상 꽁치들이 꿈틀대지는 않았다. 동진은 이번 달 수정된 납품 내역서와 마감 자료를 뽑아줄 테니 한 시간 후에 식당으로 오라는 주방장의 말을 듣고 검수장을 빠져나간다.
11시 40분.
배식 이십 분 전, 동진은 식당 의자에 앉아서 배식 준비를 하고 있는 주방의 작업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 주방 안은 시원스럽게 드러나보이고 작업자들은 하나같이 마스크와 두건 그리고 흰색 위생복을 입고 있다.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만 무척 여유로운 모습이다. 배식구는 아이들 키에 맞게 바닥에서 80cm가량 떨어져 있다. 배식구 앞에 놓인 삼각대에는 오늘의 메뉴와 내일의 메뉴가 붙어 있다. 동진의 눈길은 오로지 오늘의 메뉴인 꽁치조림에 집중이 돼 있고 다음 달 월요일 메뉴인 돼지불고기에는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동진은 한시라도 마감 자료만을 가져다주길 바랄 뿐이다. 주방장이 주방 깊숙한 곳에서 식판을 하나 들고 나온다. 동진이 천천히 일어서고 주방장은 들고 온 식판을 테이블에 살며시 올려놓는다.
“자네가 오늘 메뉴에 대해서 첫 감정을 해주어야겠어. 오늘 말썽을 부린 꽁치가 어떤지 말이야. 모두 자네가 가져온 재료로 만든 음식이니 평가 잘 하라고. 잘되고 못되고는 보조주방장에게 말하라고, 그럼 잘 가게.”
동진의 두 눈과 달팽이관은 아직도 마비가 풀리지 않은 상태이다. 주방장을 멀뚱히 바라보던 시선이 테이블에 놓인 식판으로 향한다. 식판 하단에는 잡곡밥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으며 그 옆으로는 보기에도 구수해 보이는 두부된장찌게가 담겨져 있다. 왼쪽 끝에는 도라지에 오이와 당근을 매콤하게 버무렸고 오른쪽 끝에는 조림감자 다섯 알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정 중앙에는 오늘의 주 메뉴로써 살점이 탱탱한 꽁치 두 토막이 나란히 키 재기를 벌이고 있다. 식판 옆에는 그 달의 납품 내역서와 다음 달 식단표가 놓여 있고 그 위로 사과 하나가 올려져있다. 동진은 한 손으로 사과를 들고 다음 달 식단표에 눈도장을 찍는다.
(200자 원고지 96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