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결국 붙잡힌 지존파…난 외려 파출소 장롱에 숨었다

[김양일]

결국 붙잡힌 지존파…난 외려 파출소 장롱에 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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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1994년 9월8일 / 지존파 납치 생존자의 증언 ④ 체포
① 1994년 9월8일 ▶ 바로가기
② 지하 ▶ 바로가기
③ 탈출 ▶ 바로가기
④ 체포
⑤ 수사와 재판
⑥ 그날 이후(지난주 내용 요약: 이정수(가명·당시 27살)씨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2남3녀 중 막내였다. 음식점을 겸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1994년 9월8일 새벽 경기도 팔당댐 근처에서 지존파 다섯명에게 납치됐다. 함께 일하던 동료와 드라이브를 하던 중이었다. 트럭에 실려 전남 영광에 있는 그들의 아지트로 납치됐다. 이정수씨와 함께 잡혀온 남성은 살해된 뒤 교통사고로 위장돼 버려졌다. 이정수씨는 김현양이 병원에 갈 때 동행해 탈출을 계획한다.)김현양의 지갑하고 핸드폰을 제가 갖고 있었어요. 그가 저한테 줬어요. 절뚝인 채 진료실에 들어가면서 저를 돌아보며 씩 웃더라고요. ‘김현양이 진료실에 들어가면 일어나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문이 닫힘과 동시에 저는 반사적으로 일어났어요. 밖에 지존파가 있든 없든 ‘두목 김기환이 감옥에서 나오기 전에 오늘 도망쳐야 한다. 오늘 아니면 안 된다. 죽어도 나는 밖에서 죽을 것이다. 그들이 있든 없든 나는 나갈 것이다’라고 생각했어요. 오전이었습니다.정신나간 사람처럼 일어나서 뛰지 않았어요. 뛸 수가 없었어요. 뛰면 주위 사람 시선이 집중될까봐. 걸어서 나갔어요. 병원 문 밖에 나가서 거기서부터 골목길로 뛰었어요. 나중에 수사 이후에 제가 뛰쳐나온 곳이 정문이 아니라 후문이라는 걸 알았어요. 정문으로 나갔어야 하는데 후문으로 나가서 병원을 끼고 한바퀴 돈 거예요. 까딱하면 김현양을 만날 수도 있었던 거죠. 지금 같으면 아찔한 상황이죠. 김현양이 진료를 마치고 나와서 이리로 돌 수도 있는 거잖아요.저는 무조건 병원 코너를 돈 거죠. 중간에 빨간색 프라이드 승용차가 병원 후문길에서 정차해 있었어요. 제가 “아저씨! 아저씨! 저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차를 두드렸어요. 운전하던 사람이 차문을 잠그면서 한편 윈도를 살짝 내려 저를 쳐다봤습니다. 제가 “살려달라, 나 좀 태워달라”고 했더니 윈도를 올리더니 그냥 가려고 하더군요. 프라이드는 안 되겠다 싶어 다시 차가 다니는 도로로 나갔어요. 그때는 이성을 잃은 상태예요. 택시가 딱 서더군요. 택시를 타고 “아저씨, 무조건 빠져나가달라”고 했어요. 제가 뒷자리에 타서 “저쪽으로 가주세요”라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태연하게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어요. 제가 “납치됐다가 도망쳤다”고 했더니 택시기사가 “아니, 우리 영광에 그런 놈들이 어디 있어?”라며 “후배들 내가 다 아는 놈들인데 어떤 놈들이 그랬지? 백수(영광군 백수읍)놈들이 그랬나?”라고 말했어요. 저는 그때 택시기사한테 해남경찰서에 데려다달라고 했어요. 영광경찰서는 불안했어요. 반대편으로 가달라고 한 거죠. 서울에도 그들 지존파가 올 거라 생각했고, 이들이 엠비시도 점령한다 그랬기 때문에 어디든 불안했어요. 그들이 서울경찰서도 다 안다고 제게 말했기 때문에 해남경찰서로 가달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택시기사가 “동네 후배들 다 안다”는 말에 또 불안해졌어요.김현양이 진료실 들어가자마자
반사적으로 일어나 뛰쳐나왔다
택시 타고 “납치당했다”고 말하자
기사 왈 “동네 후배들 다 안다”
택시에서 내려 비닐하우스에 숨어 민가에 무작정 들어가 도움 요청
승용차로 대전, 택시로 서울까지
모텔 들어가 카페 지인 불러내서
초경찰서 찾았지만 문전박대
가까스로 고병천 반장을 만나다10분쯤 타고 택시기사에게 요금도 확인 안 하고 10만원을 주고 내렸어요. 포도밭이 보이는, 5~6가구쯤 농가가 있는 작은 마을이었어요. 택시기사한테 무조건 내려달라고 한 데가 거기였어요. 아직 낮이었어요. 택시에서 내려서 막 뛰어 들어갔는데 집이 안 보이니까 숲속에 일단 숨어 있었어요. 숲속에 숨어 있는데 차츰 이성을 차려보니 ‘여기 숨어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그때 그전에 읽었던 소설이 많이 작용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을 청하면 안 돼. 그건 곧 그들에게 내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거야. 여긴 좁은 시골이니까’라고 생각했어요.‘일단 이성을 찾고 보자’라고 생각하며 길을 걸어갔어요. 창고와 돼지우리가 보였어요. 창고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했고, ‘돼지우리나 닭장 안에 들어가서 숨어 있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사람을 마주치면 안 되는데, 외지인이라는 티가 날 테고 그들(지존파)이 몇 동네만 돌면 내 위치를 알지도 모르는데’라고 생각했어요. 한참 언덕 끝으로 올라갔더니 집과 포도밭 비닐하우스가 보였어요. 비닐하우스를 열고 들어갔더니 네모난 평상이 있는데 그 밑으로 기어들어갔어요. 벽돌 두개 정도 높이로 쌓은 평상이었어요. 엎드려 있다가 비닐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 발을 확인할 수 있도록 몸을 조정했어요. 핸드폰도 껐어요. 핸드폰이 켜져 있으면 그들이 제 위치를 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뚜껑 없는 삼성 핸드폰이었어요.제가 평상 밑에 들어간 게 아마 낮 열두시 반쯤이었던 것 같아요. 평상 밑에서 오래 있었어요. 해가 졌어요. 저녁 8시쯤 비닐하우스에서 나와서 집에 도움을 청하려는데 큰 개가 달려들었어요. 제가 “살려줘요!”라고 외치니 집주인 아저씨가 “무슨 일이냐, 누군데 여기 와서 이러냐”고 했어요. 저는 “저 좀 도와달라, 살려달라”고 그랬어요.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집주인 아주머니가 “아, 왜 하필이면 우리 집으로 왔냐. 무섭게 우리 집으로 왔냐”며 집 안으로 들여보내주지 않았어요. 제가 상황을 설명했어요. 살인사건이 났고 제가 탈출했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집주인 아주머니가 집 안으로 선뜻 안 들여보내주는데 제가 그냥 신발을 신고 집 안 방으로 막 들어갔어요. 그러면서 “여기 다락방이 없냐, 창고방이 없냐”고 막무가내로 물었어요. 제가 정신나간 애처럼 이쪽 문도 열어보고 저쪽 문도 열어보고 그러니 집주인 부부도 놀라서 어리둥절했어요. 집에는 둘만 있었어요.서초서 형사 “장수에 가서 신고하라”제가 정신없이 “아무 데도 연락하지 말라. 제가 가진 돈 다 드리겠다”고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전화 한 통만 쓰게 해달라”고 말했어요. 아는 번호가 기억이 나서 계속 잘못 누르기를 반복하다가 일하던 카페 전화번호가 기억이 나서 번호를 눌렀어요. 처음 전화를 건네받은 카페 후배가 “언니, 도대체 어디야? 지금 여기 난리 났어! 아저씨(밴드마스터)가 교통사고 처리됐는데 언니가 실종이라고 경찰들이 곧 (카페에) 오기로 했어”라고 말했어요.제가 “내 얘기 잘 들어. 이건 범죄야. 일단 너는 아무 얘기도 하지 마라. 내가 서울로 갈게”라고 말했어요. 집주인에게 차를 불러달라고 부탁했어요. 택시, 승용차 모두 싫고 화물차나 큰 트럭을 빌려 달라 그랬어요. 그런데 그때 추석이 다가올 무렵이라 렌트가 안 된다는 거예요. 다들 시골 고향에 내려간 거죠. 집주인이 “자기가 아는 사람 승용차를 빌려주면 안 되겠냐”고 말했어요. 제가 “아저씨가 서울에 데려다달라”고 했더니 그건 안 된다고 했어요. 포도를 따야 한다고 했어요. 대신 자기가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불러주겠다고 했어요. 승용차가 왔어요.중년의 아저씨가 왔는데 “이 시간에(밤에) 누가 어디를 간다고 불렀어?”라고 말했습니다. 집주인이 자세한 말은 안 했습니다. “이 여자분 어디 간다는데 좀 태워다 줘”라고만 했습니다. 저는 차 바닥에 누웠어요. 좌석도 아니고 바닥에 그냥 누웠어요. 아저씨가 차를 모는데 영광 근처 도로에서 검문이 있었습니다. ‘아, 이건 진짜 검문이 아니라 그들(지존파)이 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순간적으로 “아저씨, 검문 그냥 지나쳐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저씨에게 “차창을 열지 마세요, 제발”이라고 애원을 했죠. 검문하는 게 그들일 거라고 저는 100% 믿은 거예요. 실제로 그들은 경광봉도 갖고 있었거든요. 저한테 교통사고 난 것처럼 경광봉으로 차를 세우기도 한다고 말했거든요. 그런 식으로 차를 세우겠다는 범죄계획도 있었고요.검문을 지나 차가 달리기 시작했죠. 그분은 대전까지밖에 못 간다고 했어요. 돈을 더 줘도 대전까지밖에 못 데려다주니 대전에서 택시를 이용하든지 하라고 말했어요. 대전에 내리니 새벽 1시쯤이었어요. 톨게이트를 빠져나와서 그냥 차가 다니는 4차선 도로변에 내려달라고 해서 내렸어요. 거기서 또 택시를 잡았어요. 대전에서 서울까지 가는 데 얼마냐고 물었어요. 차비로 20만원을 줬습니다.서울 강남역 어느 모텔 앞에서 내렸어요. 모텔에 들어가서 문을 다 잠그고 일하던 카페로 다시 전화를 했어요. 카페에서 같이 일하던 고등학교 친구한테 걸었죠. 아무한테도 연락하지 말고 와달라고 했어요. 카페 주인의 남동생 부부와 같이 왔어요. 카페 주인 남동생이 가끔 가게에서 일을 봐주고 대리운전도 해줘서 알고 있었습니다.친구는 나를 보자 “도대체 너 어떻게 된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 여기선 아무 말도 못해. 경찰서로 가야겠는데 검찰청이나 큰 경찰서로 갈 거야. 걔네들(지존파)은 너무너무 큰 애들이라 일반 경찰서에선 해결할 수가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 그들을 당시 과대평가했어요. 저는 “검찰청으로 가게 해달라”고 했어요. 같이 온 카페 주인의 남동생이 “정신 좀 차려보라”고 하더군요. 제가 겪은 일을 얘기했어요. 옆에 있던 카페 주인 남동생의 부인이 남편에게 “이 일에 우리 크게 관여하지 말자”며 제게 “경찰서는 정수(가명)씨가 혼자 가라”고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가족에겐 피해를 줄 것 같아 연락하지 않았어요. 당시 집을 나와 자취를 하고 있어, 가족들은 제가 실종됐는지도 몰랐을 거예요.저는 그래서 서초경찰서로 가자고 했어요. 큰 경찰서라고 알고 있었거든요. 새벽 3시쯤 경찰서에 갔어요. 당직 형사가 있었습니다. 그 경찰을 붙잡고 “전라도 장수에서 난 교통사고가, 그게 교통사고가 아니라 살인을 위장한 사고”라고 말했더니 그 당직 경찰이 웃었어요. 그리고 “장수에서 교통사고 난 것을 거기에서 신고하지 왜 여기 와서 신고하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 “저는 여기(서울) 사람이니까 여기서 신고를 하는 거다”라고 했더니 다시 그 경찰이 “거기(장수) 가서 신고하라”고 했어요. 제가 “그럼 경찰차를 불러 달라. 경찰차를 타고 장수경찰서로 가겠다”고 했더니 귀찮다는 표정으로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그 경찰은 “아무것도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래서 “그러면 저기 유치장 안에 넣어 달라”고 그랬어요. 나가면 그들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경찰은 “뭔 소리 하냐”고 계속 귀찮다며 가라고 했어요. 저는 “경찰서를 절대 못 나간다”고 말하고 소파에 주저앉아버렸어요. 카페 주인의 남동생이 “누나(이정수), 잠깐만 있어봐”라고 하더니 어딘가 전화를 했어요. 그게 고병천 반장님(당시 서초서 강력반장)이었나봐요. 당시 고 반장님은 외근 나가 계셨대요. 카페 주인의 남동생은 “자기가 아는 형사한테 얘기를 했다”고 말했습니다.아직도 기억나는 ‘전남 러 1771’

전남 영광군 불갑면 금계리의 아지트에서 포터 트럭을 타고 나오다 경찰에 가장 먼저 체포된 강동은. 구속된 뒤인 1994년 10월18일 오전 서울형사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참석하는 모습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저는 계속 안절부절못하며 “무섭다. 그들이 올 것 같다”고 울먹였어요. 함께 온 제 친구는 제 옆에서 저를 붙잡고 막 울었어요. 욕 한마디도 할 줄 모르는 순진했던 친구예요. 가장이었어요. 낮에 직장생활 하고 밤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런데 겁은 굉장히 많고 착했어요. 순수했어요.조금 기다리니 어떤 사람들이 쑥 들어왔어요. 저더러 “나와 보라”고 했어요. 저는 “(소파가 있는 위치에서) 안 나간다”고 했어요. 덩치가 크고 불독같이 생긴 형사님이 오시더니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하며 저를 경찰서 매점에 데리고 들어갔어요. 그리고 저한테 “뭔 일인데?”라고 말했어요. 그게 고병천 반장님이었어요.아마 그때 제가 두서없이 얘길 했겠죠? 살인사건이 났는데 몇명은 죽고 불에 타서 죽었고 시신을 토막냈다고 말했어요. 제가 막 횡설수설하니까 마약 먹은 줄 아셨나봐요. 제 얘기를 듣는 와중에 제 손을 잡고 (마약 주사 자국이 있는지) 살펴보더라고요. 저는 “마약 먹은 거 아니다. (사건) 맡기 싫으면 맡지 말라. 저를 믿지 않으면 얘기 이제 안 하겠다. 검찰청으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 반장님과 동료들이 “잠깐만”이라고 하시더니 뒤쪽으로 가서 자신들끼리 의논을 했습니다. 저는 그분들에게 “이 사건을 맡아주시겠다고 하면 제가 다 얘기를 할 것이고 아니면 저는 얘기를 안 하겠습니다”라고 당돌하게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 반장님이 “알았어. 우리가 해결해줄게”라고 약속했어요. 제가 다시 “살인사건이 있었고…”라고 했더니 표정이 이상했어요. 저는 다시 “거봐요, (제 말을) 못 믿으시잖아요”라고 말했어요. 고 반장님은 “네 말을 못 믿는 게 아니고 워낙 큰일이라 그러는 거지”라고 말하며 자기네들끼리 눈을 마주봤어요.제가 다시 “살인사건이 있었고 교통사고로 가장했다. 그들은 엠비시도 점령한다고 말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못 믿는 눈치였어요. 고 반장님도 긴 형사 생활에 그런 일은 처음이니깐 믿을 수가 없었던 거겠죠. 선뜻 상부에 보고하기도 좀 그렇고 해서 그런지 일단 먼저 기초 확인을 한 것 같아요. 제가 가지고 있던 김현양의 핸드폰을 켰어요. 고 반장님이 “이 넘버(핸드폰) 가지고 가서 어디서 개통했는지 확인해봐”라고 했어요. 바로 그날 확인이 됐나봐요. 경찰 중에 한명이 “아, 이거 전라도에서 개통한 건데요?”라고 말했습니다. 누구 명의로 개통한 것까지 그날 새벽에 알아냈어요.거기까지 확인한 뒤 고 반장님이 “지금 집에 들어가면 안 되고, 우리가 일단 너를 보호해야 될 의무가 있다. 너를 따로 둘 수는 없고, 집으로 돌려보낼 수도 없으니 일단은 (오늘은) 우리가 정해준 거처에서 안정을 취하자”고 했어요. 경찰이 저를 어느 호텔로 데리고 가서 형사 한명과 제 고등학교 친구와 같이 잤어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했어요. 고 반장님이 저에게 “이제 안정 좀 차렸어? 다시 얘기를 한번 정리해보자”고 하시더군요. 호텔에서 메모지에 사건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제가 호텔에서 사건에 관한 진술을 하는 동안 다른 경찰이 초벌 수사에 들어간 거예요. 동사무소에 가서 핸드폰 명의자 강동은의 주민등록초본을 확인했어요. 제가 포터 트럭 차번호도 외워놨거든요. ‘전남 러’라는 글자와 ‘1771’이라는 뒷번호가 아직도 기억나요.호텔에서 2박을 하며 조사를 받았어요. 둘째 날 경찰이 제게 서류를 주며 “이 사람이야?”라고 물었어요. 서류에 강동은 얼굴이 딱 찍혀 있었어요. “이 사람이 맞다”고 했더니 경찰이 “어휴, 얘 말(이정수)이 다 사실이네”라며 그때부터 제 말을 100% 믿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도 상부에 보고를 안 했나봐요. 강동은의 전과도 확인하고 주소와 핸드폰 개통 여부를 다 확인했는데 제 말과 맞았던 거죠. 그 이후 경찰이 묻는 말에 제가 답을 하는 문답식 조사를 했죠. 조서 작성은 호텔에서 했어요. 고 반장님이 상부에 보고했다며 제게 “내가 이놈들을 꼭 잡아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너 발 뻗고 잘 수 있게 해줄 테니까”라고 했어요. 저는 “한 사람이라도 놓치면 안 돼요”라고 말했습니다.제가 탈출한 지 3일째 되는 날 밤 10시반께 드디어 그들을 잡으러 출발했어요. 승용차 3대에 나눠 타고 출발했어요. 저는 고 반장님 및 다른 경찰 2명과 같이 갤로퍼에 탔어요.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에 너무 힘들고 몸도 아팠어요. 저는 차에서 옆으로 쓰러져 잤어요. 깨보니 비가 많이 내렸어요. 전남에 접어들면서 고 반장님이 “어느 집인지 기억하겠어?”라고 물었어요. 저는 “그 집(아지트)에 있을 때 언덕에 차가 다니는 게 보였기 때문에, 그 언덕만 가면 (아지트를 알아)볼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근처에 ‘내산서원’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했어요. 제가 그때만 해도 기억력이 좋았거든요.‘이 숫자로 퍽도 잘 잡겠다’가는 길에 불만이 있었어요. ‘몸도 아픈데 굳이 나를 왜 데려갈까’라고 생각했어요. 순간적으로 형사들을 무시하는 마음도 들었어요. ‘이 숫자로 퍽도 잘 잡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렇게만(이 인원만) 가요?”라고 물었던 것 같아요. “야, 걱정하지 마”라고 고 반장님이 말했어요. “내가 일망타진, 아주 속 시원하게 너 보는 앞에서 아주 다 잡아버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 네가 죽여 달라면 아예 거기서 아작을 내버릴게”라고 저를 위로해주셨어요. 그랬지만 저는 좀 우스웠어요. ‘그들(지존파)은 무기도 많은데 기껏 7~8명이 가서 누굴 잡아? 택도 없어. 이건 분명히 실패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가는 내내 말 한마디도 안 했어요. 고 반장님이 차에서 “야구방망이 준비하고 혹시 모르니까 총 2정 가져가고…”라고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경찰서 연락해서 협조 요청을 해라”는 이야기도 들렸어요.근처에 가니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새벽 3시쯤 아지트가 멀리서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도착했어요. 경찰은 주변을 답사하기 시작했어요. 헤드라이트는 다 껐어요. 작전도 짰어요. 저는 차 안에 있었어요. 고 반장님도 거기 도착하니 아무 말 없이 작전을 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아지트 구조를 이야기해줬습니다. 뒤에 야산이 있고 지하실이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들이 공기총, 칼, 전기충격기를 갖고 있다고도 말해줬어요. 경찰은 언덕에서 계속 아지트를 지켜봤어요. 6시쯤 동이 터서 망원경으로 아지트를 지켜봤어요.망원경으로 고 반장님이 계속 아지트를 보더니 망원경을 제게 넘겨주면서 “저 집이 맞냐?”고 묻더군요. 제가 “맞아요”라고 했더니 고 반장님이 웃으면서 “걱정하지 마! 내가 다 잡아서 다 족쳐줄게”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계속 감시하고 있는데 6시쯤 갑자기 고 반장님이 “누가 나온 것 같다”고 말하며 제게 “확인해봐”라고 하면서 망원경을 줬어요. 제가 망원경으로 봤는데 포터 트럭이 아지트 밖에 세워져 있었어요. 원래는 다 아지트 안 차고에 집어넣거든요. 차를 밖에 세워 둔 적이 없었어요. 차를 건물 안에 집어넣고 대문을 다 잠그는 편인데, 그날 따라 대문도 반쯤 열려 있고 포터 트럭도 밖에 있었어요. 제가 “저 포터 트럭 맞아요”라고 말했어요. 그런데 망원경으로 보니 아지트 대문이 열리더니 어떤 남자가 걸어 나오는 겁니다. 포터 트럭으로요. 제가 “어, 쟤 맞아요, 쟤 맞아요. 쟤가 강동은이에요”라고 말했습니다.강동은은 트럭에 타더군요. 저는 순간적으로 “쟤네들(지존파) 어젯밤 분명히 술 마셨을 거예요. 그래서 해장 음식 사러 가는 것일 수도 있고 (강동은)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것일 수도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고 반장이 다른 경찰들에게 어느 길목을 지키고 서 있을지 지시했어요. 아지트 앞에 저희가 위치한 언덕이 있고 아지트 한참 뒤편에 불갑지서(현재 불갑치안센터)가 있었어요. 아지트 앞에 난 도로는 삼거리와 만났습니다. 삼거리 위쪽에 제가 탄 차가 있었고 삼거리 아래쪽 불갑지서 방향에 미리 고 반장의 지시로 다른 차가 대기중이었습니다. 강동은의 트럭이 삼거리에서 어느 길로 지나도 잡을 수 있게 한 거죠.강동은이 모는 트럭이 마침 삼거리 아래쪽으로 향했습니다. 고 반장이 무전으로 “야, 그쪽으로 꺾어졌으니까 차를 일단 막고 잡아!”라고 했어요. 포터 앞에 경찰이 탄 승용차가 가로막고 차에서 건장한 남자 두명이 내리니까 강동은이 순간적으로 직감을 했나봐요. 강동은이 순간적으로 차에서 내려 튀었어요. 도로 옆 논밭으로 도망갔는데, 경찰이 야구방망이를 들고 쫓아가서 강동은을 잡았어요. 그리고 근처에 있던 불갑지서로 붙잡아 데려갔어요.“저 여기 있지 않게 해주세요”

그해 9월26일 서울경찰청 이무영 형사부장(오른쪽에서 둘째)이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지존파 사건의 종합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저는 언덕 위 멀리서 강동은이 잡히는 걸 다 봤어요. 같이 있던 경찰은 강동은 체포에 합세하려고 가서 없고 저는 차에서 혼자 기다렸어요. 경찰이 다시 와서 언덕에서 내려와서 다른 차에 옮겨 타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했어요. 경찰이 몰고 온 다른 승용차에 옮겨 탔는데 저는 경찰이 강동은을 체포하는 사이에 차에서 내려서 논밭 어딘가에 그냥 숨어 있었어요. 논밭 중간에 곡식창고가 있었어요. 곡식창고 담벼락 밑에 앉아 있었어요. 차에 있는 게 더 무서웠어요. 경찰들은 불갑지서로 다 들어간 상태였어요. 한참 있다가 다시 차로 돌아갔어요. “저 여기 있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경찰에 말했어요. 불갑지서로 갔어요.불갑지서에 들어가는데 강동은이 뒤로 손을 결박당하고 무릎 꿇린 모습이 보였어요. 저는 1층을 지나쳐 지서 2층으로 올라갔어요. 의경 내무반처럼 보이는 방이 있었어요. 그 방에 들어가 장롱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어요. 장롱 안의 이불을 다 끄집어내고 그 안에 들어가서 숨어 있었어요. 좀 있으니 무슨 소리가 나더군요. 밑에서 경찰들이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어요. “여기 교통사고가 났는데 합의를 해야 되니까 오라”는 내용이었어요.나중에 들어보니, 두번째로 잡힌 게 김현양과 강동은의 여자친구인 이경숙, 강문섭이었어요. 파출소 직원이 아지트에 전화해서 “강동은씨 아시죠? 강동은씨가 교통사고를 냈는데 경미한 사고니까 합의를 보려면 빨리 불갑지서로 나오시라”고 말했어요. 파출소라고 하니까 김현양과 이경숙, 강문섭이 의심 없이 나왔나봐요. 르망을 타고 나왔어요. 지서 안으로 이렇게 들어오려고 하다가 느낌이 이상했나봐요. 불갑지서에 들어서다가 바로 후진해서 도망쳤다고 하더라고요. 김현양이 운전하는 차가 계속 영광군내를 달렸고 경찰차가 쫓아가서 잡았다고 하더라고요.아지트에 남아 있던 나머지 2명은 산으로 도망가는 걸 전경들이 뒷산에서 잡았다고 들었어요. 백병옥과 문상섭이에요. 후배 두명이 아지트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멀리서 남자들이 우 몰려오니까 2명은 직감적으로 아지트 뒷문으로 도망갔어요. 뒷문을 열면 산이에요. 미리 전경들이 뒷산을 포위해서 2명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고 들었어요. 고 반장님의 작전이었대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아마 그 둘을 놓쳤을 거예요. 제가 미리 경찰에 아지트에 뒷문이 있다고 얘기를 해줬거든요.그들이 다 잡혔어요. 광주경찰서에서도 경찰들이 오고 전경도 왔어요. 2층 의경 방에서도 불갑지서 뒤편 공터에서 나는 소리가 다 들렸어요. “이 썩을 놈의 새끼들, 느그들이 안 잡힐 줄 알고 그랬어?” 뭐 이런 소리들. 제가 장롱에서 나와 2층 창에서 공터를 내려다보는데 경찰과 눈이 마주쳤어요. 그 경찰이 저를 쳐다보더니 들어가라고 손짓하더라고요. 쳐다보지 말라고요. 그들을 다 결박하고 서울로 호송할 준비를 다 끝낸 상태에서 고 반장님이 저더러 “내려오라”고 말했어요. 그게 오후 4시쯤 된 거 같아요. 왜냐면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을 때 해가 져서 어슴푸레했거든요.그들이 결박된 봉고차를 따라…지존파 애들은 못 봤어요. 그들은 이미 결박돼 봉고차에 탔어요. 다 끝난 상태에서 이제 저만 태우면 서울로 출발하는 상황이었어요. 커다란 쇠창살이 있는 봉고차였어요. 거기에 지존파 애들이 다 타고 있고 형사들이 같이 탔어요. 저는 서울로 올 때도 갤로퍼 앞 조수석에 탔어요. 앞에 가는 봉고차를 보면서 따라왔어요.서너시쯤 어느 휴게소였는지 모르겠는데 차들이 잠시 섰어요. 중간에 저녁시간이 되었어요. 형사들도 배가 고픈지 저에게도 “밥을 먹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안 먹겠다”고 하고 차에서 안 내리고 기다렸죠. 앞 봉고차 뒷모습이 잠깐 보였는데, 김현양 뒤통수가 보이더라고요. 형사 몇명이 차에서 내려 음료수와 빵을 사온 것 같았어요. 뒤통수를 봤는데, ‘측은하다,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 때문에 사람을 납치하고 저를 성폭행했지만 그 외에는 그들이 그렇게 썩 나쁜 애들은 아니라고 그때는 생각했어요. 천성은 순수했던 걸로 기억해요.어린애들은 묵묵히 그냥 선배(김기환 또는 김현양)가 시키는 걸 했고 하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어요. 그들은(지존파) 밥을 먹을 때도 김치 하나에 밥을 먹었어요. ‘뭘 갖고 싶다, 뭐를 먹고 싶다’ 이런 욕구가 없어 보이는 애들이었어요. 옷도 그냥 1만원짜리나 5000원짜리로 보이는 시장에서 산 듯한 티셔츠를 입었고요. 운동화가 제대로 없어서 슬리퍼를 끌고 다녔어요. 저를 폭행한 뒤에는 그다지 공포감을 주는 행동이 따로 없었어요. 중간중간 그들의 말에 공포감을 받았지만 그들 자체가 무섭지는 않았어요. 나중에는 ‘죽으면 죽는 거지’라는 생각이 드니 그들의 행동을 담담하게 지켜보게 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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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경찰서에 도착하니까 어둑어둑해졌어요. 7~8시쯤 된 것 같아요. 봉고차에서 그들이 내리는데 형사들이 나와서 그들을 경찰서로 끌고 들어가는 모습을 저는 차에서 다 봤어요. 한명 한명 포승줄로 묶여 수갑도 다 채워져 있었어요. 그렇게 경찰서로 들어가는 모습을 봤죠. <다음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