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 ] - 스티븐 스필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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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시네아스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첫번째 애니메이션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이하,틴틴)>이 개봉했습니다. 돌이켜 보면, 2011년은 가히 스티븐 스필버그의 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가 직접 연출한 두 작품, <틴틴>과 <워 호스>(워 호스는 2011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미국에서 개봉했으므로)를 개봉시켰으며, 그가 제작총지휘한 세 작품 <슈퍼 에이트> <트랜스포머3> <리얼 스틸>을 연내에 모두 개봉시켰습니다. 지금 세계의 어느 누구도 예순이 넘은 이 노장 감독이 이 정도로 발빠른 행보를 보일 줄은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게다가 이 영화 <틴틴>은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 감독이 제작에 참여한 3부작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란 점에서 더욱 세계의 이목을 한 곳에 받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뚜껑을 열어 본 결과 <틴틴>은 이런 저의 기대를 완벽하게 만족시켜주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스필버그의 이전 어드벤처물 <구니스>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감성을 애니메이션으로 잘 이식화한 작품이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죠지 루카스가 원작만화 <땡땡의 모험>이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롤 모델이 된 작품이라 발언했던 것이 이해가 될 정도로 어쩌면 스필버그에게 있어서 <땡땡의 모험>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평생의 숙원과도 같은 작업이었을 겁니다.
나름, 스필버그의 매니아라 자부하는 저로서는 영화를 보고나서 오랜 세월 교양만화로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 영화의 원작 만화 에르제의 <땡땡의 모험>을 읽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영화는 총 24권의 원작 만화 중 세 편 <황금집게발 달린 게> <유니콘호의 비밀> <라캄의 보물>만 각색했다고 해서 얍삽하게도 저는 이 세 편만 골라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영화가 세 편의 원작을 정말 정교하게 짜집기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황금집게발 달린 게>에서는 틴틴과 하독선장의 첫만남을 따 왔고, <유니콘호의 비밀>에서는 사건의 발단과 사하라에서의 모험을 따 왔고, 상대적으로 영화화된 부분이 거의 없는 <라캄의 보물>에서 조차 후반부의 결말은 영화가 그대로 따 왔더군요. 그만큼 영화는 원작에 대한 거의 오마주로 봐도 무방할 정도 입니다.따라서, 원작을 미리 읽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상대적으로 재미가 많이 반감되었을 것 같더군요. 이렇게 원작 자체가 스필버그의 이전 어드벤처 영화들을 연상시키는 부분이 상당히 많으며, 등장하는 캐릭터 조차 스필버그 영화의 기존 캐릭터와 겹치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틴틴과 하독선장의 티격태격하는 관계는 <백 투 더 퓨처>의 마티와 브라운박사와의 관계, 혹은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인디와 아버지 헨리 존스와의 관계를 많이 연상 시키더군요. 특히, 틴틴의 캐릭터 자체가 스필버그 영화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어른을 능가하는 소년 캐릭터의 반영이라 할 만합니다. <태양의 제국>의 짐, <인디아나 존스>의 쇼트 라운드, <에이 아이>의 데이비드,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프랭크와 같이 타고난 억척스러움과 능수능란한 임기응변으로 가끔 아이라고 하기엔 좀 영악하다고 느낄 정도로 처세술에 능한 소년 캐릭터들 말입니다.
이렇듯, 영화는 기존 스필버그의 영화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애니메이션에서도 그 특징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에도 지금 한국 관객들에게는 상당히 찬밥 대우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원작의 지명도를 알고 있을만한 관객들은 이미 40대가 훨씬 넘은 사람들이 태반이라 그들이 틴틴을 기억하고 극장을 찾을 지는 정말 미지수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난 뒤, 스필버그의 작품으로서 기대 이하 였다는 관객들도 이 작품이 헐리우드 CG애니메이션의 한 정점에 이른 높은 기술적 완성도를 지녔다는 점에선 다 인정하는 분위기더군요. 극장용 CG애니메이션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토이 스토리(1995)>에서의 인간 캐릭터(앤디) 묘사와 이 <틴틴>을 비교해 볼 때, 그동안 얼마나 장족의 기술 발전이 이루어졌는 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퍼포먼스 캡쳐연기의 장인이라 할 수 있는 앤디 서키스가 하독 선장을 연기해 냈으니, 우리는 정말 인간의 숨결이 넘치는 희대의 캐릭터, 하독 선장을 스크린에서 온전하게 만날 수 있었던 거구요. 3D 효과면에서도 <아바타>와 <드래곤 길들이기>처럼 대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3D가 쓰여야 할 부분에서는 확실히 3D 만족도가 높은 장면으로 뽑아냈더군요(저는 이 영화를 3D버전으로 먼저 보고, 후에 2D 디지털로 한번 더 보았습니다). 그리고, 3D버전으로 봤을 때는 화면이 2D버전 보다 더 어두워서 그런지 더욱 확실하게 실사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올해 상대적으로 처지는 '픽사'나 '드림웍스'의 작품들 덕분에 내년 아카데미 장면애니메이션상 부문의 유력한 후보로 등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다만, 검증된 원작의 탄탄함과 높은 기술적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나서 한가지 아쉬운 점을 느끼게 되는 것은 부인할 수 없더군요. 정말 오락영화로서는 흠 잡을 데 없이 잘 빠진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스필버그의 전작 <레이더스>나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과 같은 작품들이 영화 감상 후 짙은 여운과 진중한 메세지를 던져줬다는 점에서 <틴틴>을 그 작품들과 같은 반열에 올리기에는 많이 주저 되더군요. 물론, 그런 메세지 강박증이 없어서 오히려 좋았다는 관객들도 아마 꽤 많을 겁니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영화를 오랜 시절 보아온 저나 스필버그팬들은 아마 오락영화 그 이상의 무언가를 기대했을 겁니다. 스필버그의 이전 어드벤처 영화들은 그런 기대감을 충분히 충족시켜 줬거든요. 제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 같다고요? 팬들의 기대는 항상 높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도 저는 이것 하나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 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틴틴>이 스필버그의 첫번째 애니메이션으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한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부터는 감상 포인트 입니다.)
①당대의 시대적 분위기와 틴틴 캐릭터를 잘 설명해주는 도입부의 그림자 극장 시퀀스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도입부 애니메이션을 연상시키는 스필버그 전매특허의 타이틀 시퀀스.
②스필버그식 주인공 첫 등장씬은 역시 일품. 2D 캐릭터의 3D 캐릭터로의 이토록 자연스러운 변환 이라니.
③극중 하독 선장의 말버릇인 "이런, 조개 같은"은 "이런, 물귀신 같은"의 잘못된 번역.
④스필버그 특유의 장면 전환 기법인 매개물 하나로 장면을 넘나드는 기법이 애니메이션에서도 그대로 통용될 줄이야.
⑤쌍둥이 경찰과 소매치기의 지갑방 장면은 원작의 장면을 그대로 살린 동시에 훨씬 독창적인 개그 감각으로 훌륭하게 애니메이션화한 예. 이 외에도 원작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스토리보드화 시킨 화면 구성이 상당히 많음.
⑥원작에 없는 하독 선장의 기억상실증과 사하라에서의 신기루 묘사는 세 편의 원작만화를 한꺼번에 묶어줄 수 있게 만든 최고의 각색.
⑦영화내내 가장 큰 활약을 보여주는 개 '스노위'는 원작에서도 위기에 자주 빠지는 틴틴에겐 없어서는 안될 존재. 심지어 원작에서는 말까지 한다!
⑧존 윌리암스가 이번에도 음악을 맡았지만, <인디아나 존스>시리즈의 '레이더스 마치' 처럼 귀에 착 감기는 테마음악이 없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
⑨스토리보드 몇 백장은 그렸을 듯 하고, 롤러코스터의 아찔함을 그대로 살린 후반부 쪽지 탈환 장면은 왜 스필버그가 <틴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는 지 잘 설명해주는 예.
⑩오락영화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환타지에 휴먼 드라마를 잘 녹여내는 피터 잭슨이 만들 예정인 속편을 기대할 만큼은 되는 딱 그 수준.
★★★ (별 4개 만점 기준)
첫댓글 두번이나 보셨다니 대단하세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나 어드벤처의 냄새가 솔솔나기만 하고 더 이상 없었던게 아쉬웠어요 ㅠㅠ
그리고 가장 아쉬웠던점은 긴장감이 없는게 넘 아쉬웠어요~~
그러면서도 실사였다면 어땠을가하고 생각해봤어요 스펙터클한 장면은 애니보다는 적을지는 모르겠지만
댐이 나오는 장면은 실사였다면 더좋았을것 같더라구요
네, 저에게있어서 스필버그영화는 기본 2번 이상 봐야 성이 찬답니다.^^
맞아요. 긴장감...스필버그의 어드벤처 영화들은 항상 긴장감 넘치는 연출력으로 가득했었지요.
긴장감이 떨어지는 건 아마 애니메이션이어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번엔 틴틴이라는 캐릭터 자체를 소개하는데 주력했다고 봐요. 후에 나올 피터 잭슨 감독의 2부가 기대되는게 이 양반이 환타지에 휴먼드라마를 잘 조합시킨다 말이에요. 그래서 스필버그 버전 보다 더 감동적인 영화가 꼭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 CG배우들의 연기를 보면서 앞으로는 정말 실사배우들이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였어요. 깜놀!이었어요. 답글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