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셀 화재 참사의 뿌리는 다단계 인력하도급
손정순 시화노동정책연구소
고용의 책임 피하고 이득만 얻으려는 노동시장
내 알고 너 아는 불법, 공급망 손대면 공단 올스톱
사건 터지면 호들갑, 지나고 나면 또 그대로
지난 19일 필자는 민들레에 「“차라리 벼룩 간을 빼먹지” 비정규 노동자 삥 뜯는 ‘업체’」라는 제목으로 소개, 파견·용역 등 인력공급업체의 중간착취와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농간의 실태를 고발하는 글을 올렸다. 그로부터 불과 5일 후 경기도 화성시의 이차전지 제조업체에서 화재가 발생해 무려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 중 18명은 이주노동자로서 필자가 활동하는 시흥시, 안산시에 소재한 인력공급업체를 통해 취업한 노동자였다. 보수 언론은 물론이고 한겨레 등 진보 언론조차도 위험의 외주화를 넘어선 위험의 ‘이주화’를 강조하며 이주노동자에게로 집중되는 위험 전가를 부각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게 집중되는 위험은 인력하도급의 구조적 산물
위험이 이주노동자라는 특정 계층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은 분명 문제이다. 하지만 필자는 ‘왜 이주노동자에게 위험이 집중되는가?’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주목하고자 한다. 그 중심에 필자가 지난 글에서 언급한 인력공급업체가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 제조업에 만연한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가 이번 참사의 핵심적 원인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화성 화재 참사가 한국 노동사회에 주는 의미는 이주노동자에 대한 위험의 외주화 양상을 넘어서 다단계 인력하도급이 지닌 구조적 위험 전가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아리셀 중대재해참사대책위원회가 26일 오전 10시 경기도 화성시 아리셀 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 외치고 있다. 2024. 6. 26. 연합뉴스
반월·시화공단에 있는 소개, 파견·용역 등의 인력공급업체는 메이셀에 인력을 공급했다. 그리고 메이셀은 다시 아리셀에 노동력을 공급했다. 아리셀은 메이셀로부터 공급받은 노동력으로 리튬이온 배터리를 제조해 모회사인 에스코넥에 납품했고, 에스코넥은 이를 다시 삼성 SDI에 납품했다. 즉, 삼성 SDI의 1차 하청업체인 에스코넥은 배터리 제조를 다시 자회사인 아리셀에 맡겼고, 아리셀은 자신의 회사에 노동력 공급만을 전담하는 사실상의 자회사를 두고서 필요시 노동력을 공급받았다. 화재 참사 당시 아리셀은 3만 5천 개에 이르는 배터리 팩을 검수·포장해야 했다. 그만큼 일시적으로 노동력이 많이 필요했을 것이고, 참사 당일 50여 명이 넘는 파견 일용직 노동자를 메이셀로부터 공급받았다. 아리셀과 같은 제조업체가 인력관리를 위해 노동력을 공급하는 전문 자회사(메이셀)를 두었던 것이고, 반월·시화에 소재한 소개, 파견·용역 등 인력공급업체가 메이셀에 이주노동자를 공급한 것이다. 그리고 6월 24일, 아리셀에서 화재가 발생해 23명의 노동자가 사망했다.
고용에 따른 이득만 얻고 책임은 회피하려는 노동력 공급체계
이런 식의 다단계 인력하도급은 한국 제조업에 구조화되어 있다. 자본은 노동력 없이는 상품을 제조하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자본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노동력을 채용하고 근로계약을 체결하여 결과적으로 고용관계가 성립한다. 문제는 노-자 간에 근로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발생하는 자본의 사용자 부담이다. 자본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력을 직접 채용하는 것이 아닌, 외부 사업체가 채용한 노동력을 공급받는 인력공급 체계를 음으로 양으로 구축해 왔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대공장의 사내하청이며, 이런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의 최말단에 인력공급업체들이 존재하고 있다.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의 핵심 문제점은 고용에 따른 편익과 고용관계에서의 사용자 책임이 불일치한다는 점이다. 법상의 사용자와 실질적인 사용자가 불일치하기에 사용자로서 책임져야 할 부담(risk)은 하위의 인력공급업체로 전가되는 반면에 노동력 활용에 따른 이익(benefit)은 상위의 사용사업체가 전유하는 구조인 것이다. 한마디로 ‘고용에 따른 편익을 얻는 자가 사용자다’라는 근대 고용관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체계이다. 거의 모든 국가가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를 노동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이유이다. 한국의 경우에도 근로기준법, 직업안정법, 파견법을 통해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인력공급업, 파견업에 대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불법 노동공급망 손대면 공단이 올스톱하는 심각한 문제
문제는 법으로만 그렇다는 것이다. 현실은 정반대이다. 지난 글에서 말한 것처럼 반월·시화공단 주변에는 불법·탈법의 인력공급업체들이 즐비하다. 불법임에도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 업체들 문 닫으면 반월공단이 스톱되는 거예요. 허풍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 대략 20개 업체에 한 70~80명 정도를 보내요. 그런데 우리가 갑자기 못 보내면 그 20개 업체는 일을 못 하는 거죠. 우리 같은 업체들이 여기(안산역 원곡동)에만 300~400개 될 겁니다. 여기 업체들 문 닫으면 반월공단이 서는 거죠.”
4년 전 필자가 만난 파견업체 사장이 노동청의 단속에 대한 의견을 묻자 자신 있게 한 말이다. 그리고 이런 업체를 통해 취업한 이주노동자가 지난 6월 24일 아리셀에서 일하다가 유명(幽冥)을 달리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최소한의 산업안전 교육 부재 혹은 미흡이 원인이다’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문제이다’ 등등의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이는 겉만 보고 하는 얘기이다.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유별나며 분명히 문제이고 개선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의 산업안전 실태 또한 분명 개선이 필요하다. 베트남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어로 된 산업안전 교육 동영상을 시청하게 한들 얼마나 실효성이 있겠는가? 이는 아리셀 화재 참사에 대한 피상적인 원인 분석일 뿐이며, 참사 희생자의 대부분이 이주노동자이기에 나온 즉자적인 원인 분석일 뿐이다. 실제 참사 희생자의 대부분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 국적의 재중동포였다. 그렇다면 이들을 대상으로 산업안전 교육이 미흡하고 불완전했기에 화성 화재 참사가 발생한 것일까?
‘공급받은 노동자’에겐 기초적 안전 교육조차 없었다
정확하게는 일 시작하기 전 최소한의 기초적인 산업안전 교육조차도 안 했을 것이다. 취급하는 리튬이온 배터리 팩이 얼마나 위험한지, 비상시 어떻게 행동해야 하며 나아가 피난을 위한 비상대피로를 안내하는 교육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배터리 팩 열폭주 초기에 소화기로 불을 끄려 하고, 불이 붙지 않은 다른 배터리 팩을 옮기려 애를 썼던 것이다. 결국 소화기로 화재 진압이 불가능해지자 탈출구가 없는 구석진 방으로 피신했다가 희생됐다.
왜 아리셀은 기초적인 산업안전 교육을 안 했을까? 아리셀 입장에서는 메이셀 업체의 노동자일 뿐이고, 메이셀 입장에서는 반월·시화공단의 인력공급업체에서 보낸 노동자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위험은 이면에 자리 잡고 있는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를 통해 주변부 노동자에게 전가된다. 그리고 이렇게 전가되는 위험은 한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는다. 2024년 6월 24일, 아리셀에서 일했던 노동자가 이주노동자가 아닌 한국인 노동자였어도 동일한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수많은 노동자 죽음 관통하는 딱 하나 원인 ‘다단계 인력하도급’
아리셀에 노동력을 공급한 메이셀과 메이셀에 노동력을 공급한 반월·시화공단의 인력공급업체들은 본질적으로 색맹이다. 피부색에 따라 안전한 사업장, 위험한 사업장을 구분해 노동력을 공급하지는 않는다. ‘돈이 되기에’ 노동력을 공급할 뿐이다. 이번 참사에서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의 최상위 원청인 아리셀 또한 국적에 따라 노동력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아리셀 입장에서는 이차전지를 만들어 에스코넥에 납품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기 때문이다. 아리셀 화재 참사는 한국 노동시장에서 가장 주변부 노동자인 이주노동자들이 인력공급업체를 주로 이용하기에 나타난 결과이다. 참사 희생자들이 대부분 이주노동자라는 이유로 다단계 인력하도급 구조를 외면한 채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 문제를 주목·강조하는 것은 참사 결과를 어안(魚眼)처럼 왜곡해 이해하는 것이다.
2010년,‘그 쇳물 쓰지 마라’는 글과 노래로 알려진 29살의 산재사망 사고 희생자는 현대제철 당진 사업장의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철강업종과 더불어 조선업종 산재사망 사고의 99%는 사내하청 노동자이다. 2013년과 2018년 삼성전자 사업장에서는 이산화탄소 가스 누출사고가 발생해 3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질식사했다. 2018년 산재로 사망한 고 김용균 씨 또한 발전소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2008년 40명이 사망한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2020년 이천 물류센터에서 38명이 사망한 화재 사고 희생자들은 소개·용역 업체를 통해 취업한 건설일용 노동자였다. 2024년 아리셀 화재 참사까지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을 관통하는 것은 단 하나, 바로 다단계 인력하도급이다.
노동조합이 다단계 인력하도급 체계 개선에 적극 나서야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법·제도 개선 이전에 주변부 노동시장 내 유료직업소개, 파견·용역, 사내하청 등 노동시장중개기구와 사용사업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즉각적인 관리·감독이 시급하다. 사실 고용노동부는 직무를 유기한 셈이다. 참사가 터지고 난 뒤에야 아리셀-메이셀 간 불법파견 여부를 확인하겠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소제조업 중심으로 노동시장 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전근대적 다단계 인력하도급 체계를 어떻게 개선시켜 나갈지 실질적인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 노동조합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조합만큼 노동현장을 잘 아는 조직은 없다. 아리셀 화재 참사도 만약 노조가 있었다면 분명 달랐을 것이다. 올해 3월 아리셀 사업장에 대한 소방청의 점검이 있었다. 노조가 있었다면 소방청 점검에 따라 회사 측에 개선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 결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정된 참사였지만 또다시 막지 못해 간접고용 비정규 노동 연구자이자 활동가로서 참담할 뿐이다. 아리셀 화재 참사에 희생된 노동자의 명복을 빌며 죽음의 외주화를 끝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이 글은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