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장. 使我介然有知(사아개연유지)
- 백서본 제16장
여운 이준호 풀어씀
남회근 : 베푸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을 두려워하라
장치청 : 나에게 조금이라도 앎이 있다면
주춘재 : 무도한 군주는 잘못된 길로 빠지기를 즐긴다
톨스토이 : 나는 걱정거리가 없다. 그러나 지혜는 있다
오강남 :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무엇? - 곁길 감의 폐해
도올 김용옥 : 코로나는 기회다! 노자가 옳았다!
여운 이준호 : 해 처먹으라 권력을 부여한 게 아님을 – 권력은 공공재
53.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人好徑.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服文彩, 帶利劍, 厭飲食, 財貨有餘. 是謂盜夸. 非道也哉.
나로 하여(使我) 자그나마 그러한 지혜라도 허락하여(介然有知), 대도를(大道) 행하라 한다면(行於), 비록(唯) 두려움이 있을지라도(是畏) 베풀 것이다(施). 대도는(大道) 심히 평탄해서 가기 쉬우나(甚夷而), 사람들은 그도 마다하여 샛길로 다니길 좋아한다(人好徑). 조정은(朝) 주야장천 쓸고 닦아 깨끗하나(甚除) 백성들의 전답은(田) 심하게 황무지화되었고(甚蕪), 창고는(倉) 심히 비었건만(甚虛),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服文彩), 번뜩거리는 검을 허리띠에 차고(帶利劍), 음식을 물리도록 처먹는 구나(厭飲食), 금은보화는(財貨) 남아돌아 차고 넘치니(有餘), 이를 일러(是謂) 나 도적놈이라 떠벌리는 것이다(盜夸). 도대체 이걸 도라고 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非道也哉)!
If I were suddenly to become known, and (put into a position to) conduct (a government) according to the Great Tao, what I should be most afraid of would be a boastful display.
The great Tao (or way) is very level and easy; but people love the by-ways.
Their court(-yards and buildings) shall be well kept, but their fields shall be ill-cultivated, and their granaries very empty. They shall wear elegant and ornamented robes, carry a sharp sword at their girdle, pamper themselves in eating and drinking, and have a superabundance of property and wealth; such (princes) may be called robbers and boasters. This is contrary to the Tao surely!
使我介然有知(사아개연유지), 行於大道(행어대도), 唯施是畏(유시시외)。
남 : 만일 나에게 굳건한 지혜가 있다면 큰길로 가고, 오직 베푸는 것을 두려워한다.
장 : 나에게 조금이라도 앎이 있다면 큰길을 다니며, 오직 나쁜 길로 들어설까 두려워할 것이다.
주 : 내게 겨자씨만한 작은 지식이라도 있어 행여 그 탓에 큰길을 벗어나 샛길로 빠지지 않을까 두려워할 것이다.
톨 : 나는 걱정거리가 없다. 그러나 지혜는 있다. 따라서 위대한 도 안에 살고 있다. 나는 커다란 두려움 속에서 선행을 한다.
오 : 내게 겨자씨만 한 앎이 있다면, 대도大道의 길을 걸으며, 이에서 벗어날까 두려워하리 이다.
김 : 나에게 조금만큼의 지혜라도 있어서, 하늘 아래 대도를 행하라고 한다면, 오로지 그 지혜를 함부로 베푸는 것이 두려울 뿐이다.
여운 : 나로 하여금(使我) 자그마한 그러한 지혜라도 허락하여(介然有知), 대도를(大道) 행하라 함에(行於), 비록(唯) 두려움이 있을지라도(是畏) 베풀 것이다(施).
使(부릴 사/시) - 부리다, 시키다, 따르다, 사욕하다, 하여금, 가령, 만일, 보내다, 가다.
我(나 아) - 나, 우리, 외고집, 나의, 아집을 부리다, 굶주리다.
介(낄 개/알) - 끼다, 소개하다, 깔끔하다, 얌전하다, 의지하다, 믿다, 크다, 작다, 미세한 것.
然(그럴 연) - 그러하다, 틀림이 없다, 명백하다, ~이다, 허락하다, 불타다, 밝다, 그런데.
行(다닐 행/항) - 다니다, 가다, 행하다, 하다.
於(어조사 어) - ~에, ~에서, 어조사, 기대다, 따르다, 가다, 있다, 탄식하다.
大(큰 대) - 크다, 심하다, 높다, 훌륭하다, 하늘, 존경.
道(길 도) - 길, 도리, 이치, 재주, 방법, 근원, 바탕, 기능, 사상, 제도, 가다, 따르다.
唯(오직 유) - 오직, 다만, 바라건대, 이, 응답하다, 예, 누구, 때문에, 비록 ~하더라도.
施(베풀 시/이) - 베풀다, 실시하다, 나누어 주다, 번식하다, 드러내다, 뽐내다, 은혜, 옮기다.
是(이 시) - 이, 이것, 여기, 무릇, 이에, 옳다, 바르다, 바로잡다, 다스리다.
畏(두려워할 외) -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꺼리다, 심복하다, 죽다, 두려움.
위정자(爲政者)는 정사를 다스리는 사람이란 뜻이다. 요즘 말로 정치인(政治人)이다. 나라를 누가 다스리냐가 인류의 발전사이다. 왕이 다스리면 군주제(君主制, Monarchy), 시민들의 협의체에 의해 공동으로 소유하는 체제를 공화제(共和制, Republic)라고 한다. 국가의 주인이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군주의 나라에는 백성은 군주의 사적재이다. 공화제에서는 국가가 시민들의 공유재로 전환된다. 우리는 이를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라고 부른다. 이기심에서 이타심으로의 진화는 사적재에서 공유재로의 전환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실패는 공유재를 프롤레타리아의 전유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는 서양 전통의 밑바닥에 깔린 이항대립(二項對立, binary opposition)의 산물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적 대립의 산물로 여겼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계급을 타도하고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독재는 또 다른 형태의 권력 독점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 1943~)가 주장한 “미래는 프롤레타리아가 아닌 이타주의자가 지배한다.”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덕심=이타심=자비심=평등심=협력심=공공성이다.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한 상당수의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타주의가 뭔지 모르는 것 같다. 도덕심은 더더욱 모른다.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숭상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성경처럼 찬양하지만 애덤 스미스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도덕 감정론』은 철저하게 외면했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어 보지도 않고 인간은 이기적이라고 단정하는 사람과 똑같다.
노자의 전국시대에도 애민(愛民)은 땅에 떨어지고 오로지 백성들을 착취하여 위정자들의 배만 채우는 세상이었다. 백성들도 열심히 살아봤자 위정자들이 권위만 앞세우고 속은 썩었으니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봐야 나만 손해 보는 세상임을 알았다. 본질은 사라지고 매일 터지는 사건만 남는 작금의 시대와 너무 닮아있다.
“나로 하여(使我) 조그마한 지혜라도 허락하여(介然有知), 대도를(大道) 행하라 함에(行於), 비록(唯) 두려움이 있더라도(是畏) 베풀 것이다(施).”
大道甚夷(대도심이), 而人好徑(이인호경)。
남 : 큰길은 매우 평탄하건만 사람들은 좁은 길을 좋아한다.
장 : 큰길은 평탄하나 사람들은 샛길을 좋아한다.
주 : 평탄한 큰길을 쉽게 갈 수 있거늘, 무도한 군주는 잘못된 길로 빠지기를 즐겨한다.
톨 : (도의) 커다란 길이 매끄럽고 평탄하게 나 있지만, 사람들은 좁은 길 위를 걷는 것을 좋아한다.
오 : 대도의 길이 그지없이 평탄하나 사람들 곁길만 좋아한다.
김 : 큰길은 매우 평탄하고 쉬운데, 사람들은 샛길만 좋아하는구나!
여운 : 대도는(大道) 심히 평탄하고 곧아서 가기 쉬우나(甚夷而), 사람들은 그도 마다하여 샛길로 다니길 좋아한다(人好徑).
甚(심할 심) - 심하다, 지나치다, 깊고 두텁다, 초과하다, 사납다, 많다, 꾸짖다, 심히.
夷(평평할 이) - 평평하다, 평탄하다, 베다, 온화하다, 크다, 오랑캐, 동이족, 무리, 상하다.
而(말 이을 이) - 잇다, 같다, 만약, 뿐, 따름, 그리고, ~로서, ~하면서.
民(백성 민) - 백성, 사람, 민심, 어둡다, 잠자다.
好(좋을 호) - 좋다, 사이좋다, 아름답다, 즐기다, 사랑하다, 정분, 우의.
徑(지날 경) - 지나다, 통과하다, 목매다, 다스리다, 통치하다, 주되다, 경영하다, 짜다, 경전.
우주론자들은 우리 우주가 처음 시작되어서 현재와 같이 이루어지는 확률에 대해 계산했다. 놀라지 마시라! 10⁻⁴⁷의 확률이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연속으로 156번 나오는 것과 같다. 목적론적 사고와 결정론적 사고가 인간이 신을 창조한 이유다. 확률이 거의 0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우연과 우연의 결과임을 쉽게 동조하지도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온 道는 0에 가까운 확률에서 시작하여 우리가 존재하는 거대 우주를 생성시켰다. 결정이 어려울 뿐이지 결정되어 시공간의 팽창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도법자연(道法自然)은 일사천리로 달려 나간다. 인간도 인간이 인지하는 세계도 대도(大道) 안에 있는 것이다. 자연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그럼, 스스로 그러한 자연(自然)은 성립되지 않는다. 우주와 삼라만상(森羅萬象)은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우연의 연속에 의한 결과물이다. “大道甚夷(대도심이) 대도는(大道) 심히 평탄하고 곧아서 가기 쉬우나(甚夷而),” 노자는 우주 만물의 이치를 꿰뚫고 있다. 138억 년을 쉼 없이 달려온 도법(道法)을 인간은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게 믿음이고 신뢰다. 자연을 따르는 것, 그게 대도(大道)이다. 쉽고 평탄한 길을 걷어차고 “사람들은 그도 마다하여 샛길로 다니길 좋아한다(人好徑).” 인간이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 꼴값과 잔 대가리이다. 분수의 분모 값이 커지면 전체값이 작아진다. 전체값이 커지려면 분자값을 키워야 한다. 그게 대도의 평탄하고 곧은 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우둔(愚鈍)함이 눈 앞을 가려 보지 못한다. 그러기에 아래 구절의 일들이 인간 세상에 끊이질 않고 반복되는 것이다. 특히,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이 꼴값과 잔 대가리를 굴리면 세상은 그야말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길로 가는 것이다.
朝甚除(조심제), 田甚蕪(전심무), 倉甚虛(창심허)。
남 : 조정은 매우 깨끗한데 밭은 매우 황무하였고, 창고는 매우 비어 있다.
장 : 조정은 심히 부패하고, 전답은 매우 황폐하며, 창고는 텅텅 비어 있다.
주 : 정치가 추악하니 농토는 이미 황폐해졌다. 백성들의 집에 곡식이 바닥난 지 오래지만,
톨 : 정부가 백성의 안녕을 돌보기를 중단할 때, 평야는 비워지고 나라의 곡식 창고는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오 : 조정은 화려하나 밭에는 잡초가 무성하여, 곳간이 텅 비었습니다.
김 : 조정의 뜨락이 심히 깨끗할 때, 백성들의 밭은 잡초가 무성하고, 곡식 창고는 텅텅 비어 있다.
여운 : 조정은(朝) 주야장천 쓸고 닦아 깨끗하나(甚除) 백성들의 전답은(田) 심하게 황무지화되었고(甚蕪), 창고는(倉) 심히 비었건만(甚虛),
朝(아침 조) - 아침, 조정, 왕조, 하루, 배알하다, 문안하다, 부르다, 정사를 펴다.
除(덜 제) - 덜다, 없애다, 면제하다, 제외하다, 숙청하다, 임명하다, 다스리다, 가다, 손질하다
田(밭 전) - 밭, 경작지, 봉토, 사냥, 농사일, 면적, 단전, 농사짓다, 사냥하다, 많다.
蕪(거칠 무) - 거칠다, 어지럽다, 난잡하다, 달아나다, 순무, 황무지.
倉(곳집 창) - 곳집, 곳간, 창고, 옥사, 선창, 바다, 푸른색, 당황하다, 슬프다, 갑자기.
虛(빌 허) - 비다, 없다, 비워 두다, 헛되다, 공허하다, 약하다, 앓다, 구멍, 틈, 하늘, 폐허.
왕이 거주하는 궁궐과 신하들이 정치하는 조정은 화려하고 깨끗하나 백성들의 전답은 물이 마르고 흉년이 들어 거칠게 황무지가 되었다. 농사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곡식을 쟁여놓아야 할 창고는 비어 있다. 위정자가 도덕심과 이타심이 사라지면 군주의 뱃속은 기름지나 백성들의 뱃속은 황무지가 되어 텅 비게 된다.
服文彩(복문채), 帶利劍(대리검), 厭飲食(염음식), 財貨有餘(재화유여)。是謂盜夸(시위도과)。非道也哉(비도야재)!
남 : 무늬가 화려한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물리도록 처먹고 마시고 재물이 여유가 있으면, 이를 일러 도둑의 영화라고 하니, 도가 아니다.
장 : 화려한 옷을 입고, 날카로운 검을 차며, 싫증 나도록 먹고 마시고도 재물이 남아도니, 이를 일러 도적의 무리라고 한다. 도가 아니로다!
주 : 화려한 옷차림에 날카로운 보검을 달고, 진수성찬을 즐기는 자들이 있다. 재물이 넘쳐나 평생 써도 다 쓸 수 없다. 이런 자들이야말로 도적의 무리다. 이것은 도에 맞지 않는 일이다.
톨 : 사람들은 다양한 색상의 옷을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고급스러운 요리를 먹는다. 이 모든 것은 완전히 자부심이라고 불린다. 이것이 정말 도인가?!
오 : 그런데도 [한쪽에서는] 비단옷 걸쳐 입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음식에 물릴 지경이 되고, 이것이 도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정말로 도가 아닙니다.
김 : 정교운 무늬 비단옷을 입고, 시퍼런 칼을 띠에 두르고, 처마시고 처먹는 것을 물리도록 하고, 재화가 철철 남음이 있는 그자들은 누구인가? 이놈들을 바로 날도둑놈이라 하는 것이다. 도에 어긋나는 짓들이 아니고 무엇이랴!
여운 :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服文彩), 번뜩거리는 검을 허리띠에 차고(帶利劍), 음식을 물리도록 처먹는 구나(厭飲食), 금은보화는(財貨) 남아돌아 차고 넘치는데(有餘), 이를 일러(是謂) 나 도적놈이라 떠벌리는 것이다(盜夸).
이건 도저히 도라 할 수 없도다(非道也哉)!
服(옷 복) - 옷, 의복, 일, 직책, 일용품, 구역, 복용, 입다, 잡다, 들어맞다, 생각하다.
文(글월 문) - 글월, 문장, 어구, 글자, 문서, 서적, 채색, 무늬, 학문, 버도, 조리.
彩(채색 채) - 채색, 고운 빛깔, 무늬, 윤기, 모양, 도박, 노름.
帶(띠 대) - 띠, 뱀, 끈, 근처, 장식하다, 띠를 두르다, 꾸미다.
利(이로울 이) - 이롭다, 유익하다, 편리하다, 통하다, 날카롭다, 이기다, 날래다, 이익, 변리.
劍(칼 검) - 칼, 검법, 찌르다, 베다, 죽이다.
厭(싫어할 염/엽/암/읍) - 싫어하다, 물리다, 조용하다, 순종하다, 악몽, 누르다, 빠지다, 젖다.
飲(마실 음) - 마시다, 호흡하다, 마시게 하다, 먹이다, 머금다, 숨기다, 음식, 음료, 술자리.
食(밥 식) - 밥, 음식, 제사, 벌이, 생활, 생계, 먹다, 지우다, 먹이.
財(재물 재) - 재물, 재산, 재능, 재료, 겨우, 비로소, 재단하다.
貨(재물 화) - 재물, 재화, 화물, 상품, 돈, 화폐, 뇌물, 주다, 팔다, 사들이다.
有(있을 유) -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독차지하다, 많다, 넉넉하다, 소유.
餘(남을 여) - 남다, 남기다, 나머지, 여가, 여분, 다른.
盜(도둑 도) - 도둑, 도적, 도둑질, 훔치다.
夸(자랑할 과/후) - 자랑하다, 자만하다, 뽐내다, 사치하다, 공허하다, 아첨하다, 아름답다.
非(아닐 비) - 아니다, 그르다, 나쁘다, 등지다, 어긋나다, 나무라다, 헐뜯다, 원망하다, 숨다.
也(어조사 야) - 잇기, 어조사, ~이다, ~느냐?, ~도다, ~구나, 또한, 역시, 다른, 대야.
哉(비롯할 재) - 비롯하다, 어조사, 처음, 재난, 재앙.
나는 서양의 정치학이 인간의 성향을 보수주의(保守主義, Conservatism)와 진보주의(進步主義, Progressivism)로 구분하는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이념(理念, Ideology)을 강화하여 인류를 살육하는 명분으로 사용되어 이기적인 인간들이 보수의 탈을 쓰고 짐승 같은 일을 저지르면서 기계적 중립을 강요하여 면죄부를 주고, 지속적인 기득권을 주게 한 지구 위 최고의 사악함이다. 인간은 양극화하여 진화하였다. 이기적(利己的)인 인간과 이타적(利他的)인 인간으로 말이다. 보수의 탈을 쓴 짐승들을 솎아내고 무임 승차하지 못하도록 집단지성과 제도가 하루빨리 바뀌어야 한다. 인간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사회는 단언컨대 이기적인 침팬지가 되도록 방임하는 것이다. 어찌 도적놈 같은 소인배와 성인, 군자가 동격이란 말인가!
지금도 정치라는 명분으로 털 없는 침팬지들이 벌이고 있는 만행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제 놈 개인의 사적재로 사용하고 있다. 소인배들이 독차지하고 있는 언론을 탈을 쓴 침팬지는 이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여 꼭두각시 춤을 추고 있다.
논어 자로 23편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되, 말과 행동이 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하고(和而不同), 소인은 말과 행동이 그 사람들과 한가지로 같아 보이나,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진심으로 어울리지 못한다(同而不和).”
和者, 無乖戾之心. 화(和)라는 것은 어긋남이 없는 마음이다.
同者, 有阿比之意. 동(同)은 아첨하고 아양 떨려는 뜻이다.
尹氏曰: 君子尙義, 故有不同. 小人尙利, 安得而和? 윤순(尹淳)이 말했다.
“군자는 의를 숭상하기(尙義) 때문에 동화되지 않는다. 소인은 이익을 숭상하니(尙利) 어찌 화합할 수 있겠나?”
‘정당의 목적은 권력을 잡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가르치는 정치학과 이익을 숭상하는 경제학을 내가 소인지학(小人之學)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소인들이 지배하는 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無法天地)이다. 깡패 같은 검사들이 합법적으로 절대권력을 행사하는 대한민국. 대도가 사라진 이 나라의 미래가 보이질 않는 도다!
“화려한 비단옷을 걸치고(服文彩), 번뜩거리는 검을 허리띠에 차고(帶利劍), 음식을 물리도록 처먹는 구나(厭飲食), 금은보화는(財貨) 남아돌아 차고 넘치는데(有餘), 이를 일러(是謂) 나 도적놈이라 떠벌리는 것이다(盜夸). 이건 도저히 도라 할 수 없도다(非道也哉)!”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