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10
"크아아아아아!"
자신의 공격이 무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번은 괴성을 지르며 마이샤에게 달려들었다. 분노로 인해 그의 이성
은 이미 잃은 지 오래였다. 오직 눈에 보이는 상대를 죽이기위해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마이샤에게 다가가기
전에 무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하이네가 만든 물의 장막이었다.
하이네는 물의 장막을 만들고는 뒤를 돌아서 마이샤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잘생긴 마이샤~」
"하하, 이거 칭찬 고마워."
"크아아아아!"
번은 광분하며 자신의 앞에 생긴 물의 검을 단검으로 베어나갔지만 물이 검에 베어질리는 없었다.
「그래, 내가 잠시 잠자는 동안 문제가 생기진 않았겠지?」
"아, 아주 사소한 문제가 있었어. 어느 '멍청한' 누군가가 주인의 명령조차 어겨가며 누군가를 깨우려했지. 난
죽을 것 같았는데 그 '멍청한' 누군가가 끝까지 버티고 있어서 참 큰일날뻔했어. 아~. 그 '멍청한' 누군가는
뭘 하고 있을까."
하이네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렇게 그 주인앞에서 주인의 볼을 꼬집어주고 있지~~~!!」
"으아아앗~!"
마이샤의 볼은 발갛게 물들었다. 마이샤는 눈물을 찔끔하며 자신의 볼을 어루만졌다. 하이네는 무엇이 좋은지
여왕처럼 웃어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
물의 장벽이 사라졌다. 하이네가 놀라며 말했다.
「어머? 약했나보네요. 이런, 미안해요. 좀 더 강한것을 내놓을게요.」
번과 마이샤 사이에는 또 다시 물의 장벽이 생겨났다. 그리고 번은 미친듯이 그것을 부수러 또 난리를 피우
기 시작했다. 하이네가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오...... 역시 푸른검다워. 이렇게 강한 힘을 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걸?」
"푸른검?"
「응, 지금 내 몸안엔 하이네란 존재 이외에 푸른검이라는 존재가 하나 있어. 그 애가 나에게 힘을 빌려주고
있는데...... 자신의 주인앞에 나오는것이 부끄러워서 싫다나......」
"에?"
「게다가 그 주인이 바람둥이인것 같다며 아주 꼼꼼히 숨어버렸어. 이렇게 힘만 내어주고 말이야.」
"......"
마이샤는 할 말을 잃었다. 낯을 가리는 정령이라니...... 그것도 앞으로 평생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주인에
게...... 마이샤는 머리가 아파옴을 느꼈다.
콰아아앙
바인은 고개를 급히 들었다. 카이젤이 자신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예의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젠스님, 너무 심하신데요?"
"그런가?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상대에게 올바른 죽음을 주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하는걸?"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전의를 상실한 상대를 죽이는 것이 올바른 기사도입니까?"
"닥쳐라, 카이젤! 난 이대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넌 방해말아라!"
바인은 어디서 힘이 났는지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하지만 카이젤의 얼굴은 바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바인님."
"죽음은 내가 맞는 것이지 네 놈이 맞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난 죽을 자리를 마련하였다! 그런데 왜! 왜 네 놈
이 방해를 하는 것이냐! 썩 물러나라!"
"이런이런...... 계약의 내용은 아직 다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억지를......"
"꺼져라!"
바인의 주먹이 카이젤을 향하여 날아갔다. 힘이 빠지긴 하였어도 그의 주먹엔 엄청난 힘이 실려있었다. 하지
만 카이젤은 너무나 쉽게 너무나 가볍게 그의 주먹을 막았다. 바인이 놀라할틈도 없이 카이젤의 주먹이 그의
복부에 꽂혔다. 바인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곧 쓰러져 버렸다.
"젠스님, 바인님은 제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도 그의 죽음을 여기서 해줘야한다고 생각하는데?"
"훗...... 애석하지만 그것은 어려울 것 같군요."
카이젤은 젠스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은채 손을 쓱 휘둘렀다. 그러자 바인의 몸이 사라져버렸다. 젠스는 미동
도 않은채 그의 얼굴만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의 무인으로써의 자존심은 뭉개졌다. 그것이 어떻게 당신에게로 향할지 모릅니다."
"저의 걱정을 해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으나 그것은 그렇게 큰 걱정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
카이젤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아까 바인이 사라졌던 것 처럼 사라졌다.
젠스는 가만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말했다.
"가이샤님...... 어째서 우리들의 운명을 이렇게 만든 것입니까......"
젠스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번은 끊임없이 단검을 휘둘렀지만 물의 장벽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하게 번을 막고 있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하이네와 마이샤는 가벼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번은 정말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느낌을 맛
보았다.
'죽여버리리라! 죽여버리리라!'
"이제 됐습니다."
"카이젤?"
번의 손은 카이젤의 손에 잡혀있었다. 그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마이샤에게 말했다.
"번님은 제가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번과 카이젤의 몸은 사라졌다.
"어? 이게 웬일이야?"
타이카가 의외라는 듯이 말하며 카이젤에게 다가왔다. 카이젤은 웃음을 지우지 않고 말했다.
"수련이 다 부족한 탓입니다. 하지만 타이카님은 이기셨는가 보군요."
"아, 쉬웠어. 그녓거은 왠지 각성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
"이런이런, 이번의 우리 목표는 적의 모든 각성입니다. 그것을 이루시지 않으신 건가요?"
"괜찮아. 내가 엄청난 적개심을 품도록 만들어놓고 왔으니 말이야. 얼마 안있어 각성할꺼야. 그런데......"
타이카가 바닥에 쓰러진 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들 모두 어떻게 하지?"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더 많은 수련을 시키는 수 밖에요. 그리고 이번에는 하르가님께서도 오셨으니 더
욱 전력이 강화되겠지요."
"그럼 보자, 음...... 하나, 둘...... 일곱인가? 아직 세명 남았네? 그 자들은 강하겠지?"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엥? 그럼 우리들의 도움이 되기는 돼?"
"그것도 모르죠. 상대에 대한 강한 분노와 적개심이라면 강하겠지만 흐지부지한 마음이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요."
"호오...... 오직 복수심에 의해서 우리들은 강해지는 건가?"
카이젤은 타이카를 향해 능글맞은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그렇죠."
"후...... 그런가...... 좋아, 나도 다음에 저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지. 난 수련하러 들어가겠어. 그럼 다시 얼굴
볼 때까지 안녕~"
타이카는 즐겁게 말하며 발걸음을 통통 튀기며 저 멀리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기를
보고 있던 카이젤은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그는 싸늘한 눈으로 뻗어버린
자들을 바라보았다.
"쓸모없는 것들."
그의 입에서 싸늘한 말이 나왔다. 아까의 카이젤과는 너무나 다른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치 카이젤이 아닌 것
만 같았다. 카이젤은 가만히 동굴의 벽을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 그 벽을 향해 가볍게 주먹을 내질렀다. 그의
주먹과 벽이 마찰하는 조그마한 소리가 들렸을뿐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카이젤은 자신의 주먹을 바라보다가
몸을 획 돌려 자신의 방으로 가버렸다.
카이젤도 어둠속으로 사라졌을때...... 카이젤이 주먹을 휘둘렀던 벽에는 금이 가더니 무너져버렸다. 그렇게 심
하게 무너지지 않았기에 동굴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무너진 정가운데에는 카이젤의 주먹이 선명히 세
겨져 있었다.
"......"
모두들 말이 없었다. 라이샤가 분위기를 바꿔보기 위해 여러 푼수짓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라
이샤는 포기하지 않고 더욱 푼수짓을 하려고 하였다. 그런 라이샤의 어깨위에 마이샤가 손을 얹어놓았다. 그리
고는 슬픈 눈으로 안된다고 고개짓을 하였다. 라이샤는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려다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무
력한 자신의 일행에 그만 힘이 빠져 버렸다. 될데로 되라는 식으로 내버려두고 샘의 보수공사현장으로 향하였
다.
그나마 시끄럽던 라이샤가 가버린 후 집 안은 적막감이 존재할뿐 다른 존재는 없었다. 젠스와 퉁가리는 고개
를 뒤로 젖힌채 위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고 나미는 침대에 누워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
다. 그녀는 아까전부터 일어나 있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바라볼 뿐이
었다. 자이커는 하르게가 배반했다는 사실이 꽤나 충격적이었는지 자신의 손을 보고 가끔 중얼거릴 뿐이었다.
마이샤는 분위기에 눌려 아무런 말도 못하고 있는 부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어두워진 밖은 오직 달과 별
만이 세상을 밝히고 있었다.
마이샤는 아무런 말도 않은채 걸었다. 늉과 린화도 말없이 걸었다. 한참동안의 적막감이 흘렀다. 마이샤는 계
속해서 아무런 말도 없이 걸었다. 린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대체 왜 그러는 거야?"
"......"
"대체 왜! 왜 그러는 거냔 말이야!"
"....."
"이겼잖아? 그들이 물러났잖아? 그들을 땅에 쓰러뜨렸잖아! 그런데, 그런데 왜 다들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응? 말해줘, 마이샤. 응? 왜 그런거지? 응? 나는 이해를 할 수 없어, 응?"
"......"
"왜! 대체 왜! 왜 다들 그런 표정을 짓는 거냔 말이야~!!!"
린화의 고함소리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갔다. 린화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고는 흐느끼며 울기시작했다.
"대체...... 왜...... 흑......"
마이샤는 걸음을 멈추고 린화를 바라보았다. 린화는 얼굴을 손으로 가린채 흐느끼고 있었다. 그는 늉의 얼굴
을 바라보았다. 늉은 울고 있는 린화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을 바라보고 있었다. 샘의
보수공사현장이 있는 곳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늉은 혼자 추적추적 걸어가 버렸다. 어둠속 달과 별빛
만이 비치는 곳에 마이샤와 린화만 남았다. 린화는 계속해서 흐느꼈다. 하지만 마이샤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채 그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린화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 예전같았으면 따뜻하게 그녀를 감
싸주었을텐데 그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린화는 계속 흐느꼈다.
"이제......"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마이샤의 입이 움직였다. 린화는 흐니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은 그녀
자신의 눈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늉님을 따라서...... 가도록 해."
린화는 방금 마이샤가 한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마이샤의 몸에 매달리며 말했다.
"응? 뭐라고, 마이샤? 응? 린화가 잘못들은 거겠지? 응? 마이샤? 말을 해, 마이샤."
마이샤는 고개를 떨군채 그녀의 눈과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각오가 비장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린화
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크게 울어버렸다.
"왜! 대체 왜! 왜! 왜! 왜!"
"너는...... 너무 여려. 그래서...... 우리와 있다면 오늘같은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야...... 오늘은 우연찮게
늉님이 나타났지만....... 언제나 늉님이 나타나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이제는, 이제는 다시는 마이샤말을 어기지 않을께. 제발, 제발 나보고 가란 말은 하지 말아줘!"
마이샤는 여전히 린화를 얼굴을 바라보지 않은채 말했다.
"그러니...... 잠시...... 내 곁에서...... 떠나줬으면...... 좋겠어......"
린화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마이샤의 바지춤에 매달리며 잘못했다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마이샤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았다.
울며 자신의 바지에 매달리는 린화를 끝내 매정히 떼어버린 마이샤는 최대한의 속도로 공사현장을 향해 뛰어
갔다. 뛰어가는 그의 뒤에 물 같은 것이 떨어지고 있었다.
"왜 오신 겁니까?"
"자네가 쓸쓸해보여서 말이지."
라이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까 제가 하는 짓을 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제가 쓸쓸해 보인단 말씀이십니까?"
"지금 나의 눈에는 그 누구보다도 자네가 쓸쓸하고 슬퍼보여."
"......"
"강한척, 멍청한척, 있는 척 없는 척은 다하고 있지만...... 자네는 그들 중 가장 슬퍼. 자네의 얼굴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
"......"
라이샤는 무릎사이로 얼굴을 묻었다. 늉은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마 자신이 약함에 대한 무력감과...... 그에서 느껴지는 슬픔이겠지."
"......"
"하지만 지금 자네의 생각은 잘못되었어. 자네는 충분히......"
"강하다고요? 제가 충분히 강하니 그런 표정을 짓지 말라고요!?"
라이샤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늉은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하세요! 그런 위선으로 가득찬 말...... 이제는 지겨워요! 제가 강하다고요? 아부하지 마세요! 저의
이 기분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기위해 그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저는 약해요! 그래서 저 혼
자서는 제 몸하나 지키기도 힘들죠! 물론 인간계의 인간이나 여러 몬스터보다는 강하지요. 하지만 그게 다에
요. 그보다 더 강한 존재가 나타나면 전 언제나 동생 마이샤나 카이드라스의 도움을 받아야 했죠. 이젠 진절머
리가 나요! 이런 생활, 이렇게 나 자신이 약하다는 생각이 이제는 정말 싫어요! 이제는......
이제는...... 죽고 싶을 정도에요......"
"......"
라이샤는 다시 자신의 무릎사이에 얼굴을 묻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늉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바라보다
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느꼈는가...... 자네도 위선자로구만."
라이샤는 늉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늉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의 자네게 약하다면 자네의 손에 죽어간 몬스터들은 뭔가? 인간들에게 벌레란 하찮은 존재들이 있는 것
처럼 그런 존재들인가? 자네는 인간이나 몬스터보다 강하다고 하였네. 그럼 뭐가 문제인가? 인간들 중 강한
인간도 있고 몬스터 중 강한 몬스터도 있네.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자네보다는 더 강해질 수 없겠지. 그런데도
자네는 약하다고? 자신에 대한 무력감때문에 이제는 죽고 싶다고? 그럼 자네의 손에 죽어간 인간이나 몬스터
들은 무언가. 무력감을 이기지 못해 영혼마저 파멸시키고 싶은 기분이 아니겠는가? 전에는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느낌을 느끼지 못하였을테지. 하지만 자네느 패했어. 이긴 것 같지만 남의 도움을 받아 이긴것. 결국 패
한 것이지. 그리고 그제서야 자네는 무력감이라는 가이샤님이 만드신 훌륭한 느낌을 맛보게 되지. 그리고 그렇
게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지. 그렇지 않은가?"
늉의 말을 듣던 라이샤는 발끈하여 움직이려 하였으나 모두 옳았다. 늉의 말은 한치의 거짓도 없었다. 늉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자네나...... 자네의 동생이나...... 자네의 동료나...... 다 바보들뿐이군. 내 삶 1만년 중에 이런 바보 집단을 보
는 것은 처음이군."
늉의 나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째서 바보소리를 하는 것인가 그것만이 중요했다.
"자네들이 왜 바보인지 아나? 자신이 강하다는 생각은 않은채 오로지 자신이 약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
고 있어. 그것이 더욱 강해지는데는 필요한 것이지. 하지만 이제 자네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필요없어. 자네들
은 충분히 강해. 자신들의 종족인 인간들 중에는 덤빌자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그것이 다 아닌가? 자네들은
인간이란 종족중에서는 최강이야. 왜 쓸데없이 그런 키메라나 다른 세계의 존재에 대해 무력감을 느끼는가?
왜 최강이란 최고의 기분을 만끽하지 않는 것이지? 난 그것이 이해되질 않는군."
라이샤는 늉의 말을 들으면서 움직이지 못했다. 늉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말일세...... 자네는 가이샤님이 인간을 만들고 처음 내린 명령이 무엇인줄 아나?"
"......"
라이샤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늉이 온화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로 '서로 도와가며 살아라'였네. 인간은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존재로 가이샤님은 만드셨지. 인간 중에
자네들처럼 강한 자들이 많다고 그 명령이 무효화 되는 것은 아니야. 인간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지. 그렇지 않은가?"
늉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라이샤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자네들은 도움을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인지를 모르겠군. 인간은 도와가며 도움 받으며
살아가라고 있는 존재야. 그런데 왜 그것을 수치로 여기는 것인가? 난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군."
늉은 말을 마치고는 목이 메인듯 켁켁거렸다. 하지만 곧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라이샤는 아무런 말도 않
은채 늉의 말을 기다렸다.
"자네는....... 저 하늘의 별처럼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가?"
라이샤는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하여 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늉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옛부터 별은 위대한 사람들이 죽으면 하나씩 하나씩 생긴다고 전해져 왔네. 가이샤님이 이 세상을 만들고 한참이 지난 뒤에는 이렇게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채워왔지. 저 별들은 수 많은 영웅들이지. 오크든 도마뱀이
든 꽃이든 인간이든. 모두 저것은 영웅이지. 자네는 저런 영웅이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이들지 않는가?"
라이샤는 그것만은 필요없다고 생각하였다. 영웅이란 자리를 차지해서 무엇하나. 다 부질없는 것임을......
"허허, 그렇게 생각하다니 의외로구만. 하지만 그것도 자네는 틀렸어. 영웅이란 것은 부질없는 것이 아니지.
자네는 불사의 생명을 가진 것 같지만 자네도 언젠가는 죽어. 나도 죽겠지. 그런데 만약 자네가 영웅으로써 이
름을 남기고 죽는다면 자네도 저들처럼 별이되어 인간계를 바라보겠지. 인간들이 수천년도 전에 죽은 자네 이
야기를 하면서 칭송한다면 자네는 어떤 기분이 들겠나? 기쁘기고 하면서 너희들은 그렇게 할 수 없지? 하는
마음에 우월감도 들겠지. 지금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겠나?"
라이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도저히 늉이 하는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늉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이샤님은 인간을 만들며 여러가지를 부여하셨지. 그 중 하나가 감정이지. 감정은 모든 생물들이 가지고 있
는 것이지만 인간에게는 특별했지. 식물보다 동물보다, 몬스터보다 인간은 더 많은 감정을 누릴 수 있었어. 우
월감, 기쁨등이 그 예지. 몬스터들은 기뻐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보다 더욱 큰 것을 가질 수 있다는 욕심에 제
대로 기쁨이란 감정을 누려보지 못해. 다른 동, 식물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인간은 달라. 욕심이 들기도 하면서
지금의 기분에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그래서 인간들은 모든 감정을 충실히 느껴볼 수 있어. 이것이 모든
생물과 인간을 구별짓는 것이지. 자네는 이해할 수 있겠나?"
라이샤는 이번에도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물론 그러리라 생각하네. 자네는 인간이니까. 인간인 이상 다른 생물의 감정을 맛보려는 것은 힘든 것이지.
이건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야. 다른 생물도 자신과는 다른 생물의 감정을 느낄 수 없어. 그렇게 가이샤님이 만
드셨지."
라이샤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영웅들이 하늘에서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네들은 지금 앞에 보이는 이득만을 위해 움직일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만끽해보는 시간을 좀 더 가
지고 자신만이 아니라 남을 생각하는 것도 좀 배워야 할 걸세. 그래야만 오늘같이 습격을 해오더라도 무난히
해결 할 수 있을 게야."
늉은 자리에 일어서며 말했다.
"에구, 늙은이가 너무 주절주절 떠들어댔구만. 이제 해가 뜨려는걸? 미안허이."
"아닙니다."
"허허허."
해가 뜨고 있었다. 늉은 해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고 라이샤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해가 늉의 작은 몸을 다
뒤덮었을때 늉의 모습과 나이라세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라이샤는 순간 놀라며 외쳤다.
"나이라세!?"
늉은 그저 아무런 말없이 온화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태양이 조금 더 움직였을때 늉은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았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라이샤의 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따뜻한 바람을 보며 라이샤는 작게 중얼거
렸다.
"나이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