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시작. 빨리 못하면 늙었다는 의미예요. 한 번 더 하겠습니다. 시작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오십견이 와서 팔이 안 올라가시네요. 저도 이제 오십견이 온 어른들을 보면 제가 약간 왜 팔이 이렇게 아플까라는 이상한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오십견이 왔어요. 팔을 잘 못 뜨겠더라고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야 이해하는 것들이 많아지나 봅니다.
저와 상관없는 이야기긴 한데요. 요즘 여러분 금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요. 상대적으로 다른 강물에 비하면 비해서 금값이 계속 오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금은 한정 자원이기 때문인 거예요. 금의 희소성 때문에 그러니까 지구상에 있는 금은 딱 일정양이에요. 더 이상 만들어질 수 없는 딱 일정량의 금만 지구상에 있기 때문에 금의 가치가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사람들이 금을 원하면 원할수록 계속해서 가치는 더 올라가게 되죠. 왜냐하면 한정량으로 매장되어 있기 때문에 두 번째로 금은 오랜 기간 동안 인류에게 화폐로 통용이 되었고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금은 인류에게 매우 중요한 화폐 수단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화폐의 가치를 매기는 데 연관되어 있는 것이 금이에요. 여러분 이게 되게 어려운 말인데 저도 잘 들어보지 못한 말이 금본위제라고 해요. 그러니까 금이 다른 화폐의 가치를 매긴 기준 역할을 하는 것을 금본위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금이 가치가 있는 거예요.
세 번째로는 금은 인공으로 만들어낼 수 없어요. 오직 자연에서만 추출이 가능한 게 금이에요. 그래서 원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금의 가치는 점점 더 올라가게 됩니다. 많은 강물들은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더 만들면 돼요.
그런데 금은 한정 자원이라서 앞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인류가 만들어낼 수 없어요. 그래서 가치 있게 여겨지고 금이 모든 사람들이 가장 가치를 부여하는 최고의 화폐 수단이 되고 광물로 쓰임을 받았습니다. 한번 따라 하겠습니다.
가치를 알아야 가치가 있게 됩니다.
할렐루야 가치를 모르면 가치가 없는 게 돼요. 가치라는 것은 가치를 인정해야 가치가 있는 것이 되지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는 것이 돼요. 보석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은 보석이 땅에 뒹굴어도 그 보석을 줍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가치를 모르기 때문인 거예요.
약간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벨상을 받은 하버드 교수이자 경제학자인 갈브레스의 이야기예요. 아마 이 사람이 그렇게 강의나 이렇게 할 때 인용했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프리카 여행 중에 이 아이들이 공기놀이를 하는 것을 이렇게 봤어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사용하는 그 공깃돌이 다이아몬드인 거예요. 근데 처음부터 이게 다이아몬드다라고 말을 하고 그걸 달라고 하면 아이들도 그 가치를 알게 되어서 고가의 매입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사람이 작전을 짰어요. 물론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아무튼 작전을 짰어요. 어떻게 작전을 짰냐 하면 이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사탕을 주기 시작했어요.
여러분 사탕이 얼마나 달니까 여러분과 저는 단 것을 많이 먹어서 사탕이 별로 없지만 이걸 안 먹어본 처음 먹어본 사람들에게는 많이 신세계일 거예요. 사탕의 맛이란 이 아이들이 점점 이 사탕의 맛에 빠져들어갈 때쯤 더 이상 이제 이 사람이 사탕을 아이들에게 공짜로 나눠주지 않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이들을 불러 모아놓고 너희가 이 공깃돌을 나에게 주면 내가 사탕을 너희에게 주겠다. 이 아이들은 달콤한 사탕이 너무 먹고 싶어가지고 자기가 공기 놀이를 할 때 사용했던 공기돌이 다이아몬드를 그 사람에게 주기 시작했고, 또 이 아이들은 이제 공깃돌이 무한정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 다이어머가 돌을 주은 곳에 가서 더 많은 다이아몬드 돌을 주어서 그 사람에게 줘서 사탕을 먹었다는 정말 슬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치를 몰랐기 때문에 다이아몬드가 가치가 없는 거예요. 그 원래 가치가 있는 건데 가치를 모르면 가치가 없는 것이 돼요.
교회도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이아몬드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는 세상에서의 최고의 가치예요. 할렐루야 이 가치를 깨닫는 것이 신앙이고 신앙의 성숙이고 성장인 거예요. 여러분이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는데 교회가 더 소중하게 여겨지고 더 귀하게 여겨지면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잘 믿은 거예요.
반대로 여러분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가 점점 하찮게 보여지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면 여러분은 잘못 예수님을 믿고 있는 거예요. 이게 가치 있는 교회도 사람들이 가치를 모르면 가치 없는 공동체가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가치는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되고 인정받게 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대해서 가치 없게 대하면 교회는 가치 없는 것이 돼요. 우리가 교회를 향한 태도 이것은 곧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향한 태도와도 연관되어 있어요. 여러분과 제가 교회를 가치 있게 여기면 나의 그런 태도를 보고 세상 사람들도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를 가치 있게 여기게 됩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대한 태도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도 교회에 대한 올바르지 않은 태도를 가지는 거예요.
밤 늦은 시간에 교회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많이 줄어들지만 여전히 좀 있어요. 때로는 교회 마당에서 술 파티 일을 벌이는 분들도 있습니다. 정중하게 부탁할 때도 있어요. 여기 교회입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아주시고 술도 그만 드셔주면 본받겠습니다고 제가 되게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할 때도 있지만 어떨 때는 아주 짜증 나고 성난 목소리로 부탁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밤새 먹은 것을 교회에 다 기부하고 가기도 하고요. 앞으로 기부한 게 뿐만 아니라 뒤로도 기부를 하고 가셔요. 참 이상한 분들이 교회 주변에는 많습니다. 예루사랑을 접할 때 제 마음에 드는 생각이 하나 있어요.
사람들이 왜 교회를 이렇게 대할까? 나는 내게 교회가 소중한데 왜 사람들은 내가 다님으로 있는 이 교회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을까 이 생각이 종종 저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때로는 좀 아쉽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좀 슬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대하는 모습은 우리가 교회를 대하는 모습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거예요. 제 마음이 불편한 것은 혹 내가 우리 교회 성도들이 이 땅에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같이 없게 대했기 때문에 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가치 없게 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이 마음이 되게 저를 불편하게 만들어요.
그 사람들이 밉다기보다는 뭐 그럴 수 있죠 살다 보면 아니 교회 마당이 얼마나 넓어요? 깨끗하게 청소해 놨잖아요. 파라솔도 있어요. 반에 비 오면 비도 막아주고요. 조명도 있어서 우아하고 너무 멋있어요. 웬만한 음식점보다 나아요. 밤늦게까지 먹어도 쫓아내는 종업원이 없어요.
얼마나 교회가 좋습니까?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제 마음에 제 마음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꼭 이것이 내가 우리 교회를 대하는 나의 태도 때문에 저 사람들이 저렇게 하는 건 아닐까 아니면 우리 교회가 성도들이 교회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저 사람들이 저렇게 우리 교회를 다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제 마음이 되게 불편하고 아쉽고 아플 때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가 교회의 가치를 알고 가치 있게 교회를 대하면 세상도 교회 건물일지라도 그것을 같이 있게 돼요. 목회자나 성도가 교회를 위대한 공동체로 본다면 세상 사람들은 그 본질은 모르지만 우리의 태도를 따라서 교회에 대해서 조심하고 또 삼가할 것입니다.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우리가 교회를 대하는 태도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마음이 저를 불편하게 한다는 거예요. 담배를 피웠다는 것 때문에 술을 마셨다는 것 때문에 앞뒤로 기부를 했다는 것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게 아니라 혹 이것이 나로부터 시작되지는 않았을까 가끔 성도들도 교회를 그렇게 대할 때가 없지 않아 있어요.
그때도 제 자신이 자꾸 돌아봐줘요. 혹 내가 교회를 좀 함부로 대하지 않았을까? 교회 사역이나 아니면 성도들을 아니면 교회의 건물들을 아니면 교회의 어떤 예배들을 내가 성도들이 볼게 함부로 여겨도 되게 내가 그런 모습으로 설교하거나 예배하지 않았을까 이 마음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성도에게 필요한 것, 목회자에게 필요한 것 교회의 가치를 아는 거예요. 그게 믿음이 성장하는 것이고 그게 삶이 성숙해져 가는 거예요. 내가 예수를 잘 믿는다. 그럼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는 것을 가장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길이잖아요. 말씀은 교회의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가 교회를 어떻게 알기를 바라고 계실까요?
에베소서 1장 22절 23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도록 하겠습니다. 시작
또 만물을 그 발랄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신 이에 충만함이니라
아멘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하시고요. 교회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 종합하면 어떤 의미냐 하면 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의미예요. 에베소서 1장 22절과 23절의 말씀의 핵심은 교회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예요.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를 지니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교회를 예수님 대하듯이 되려야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의 명령을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처럼 여겨야 한다는 거예요. 교회의 사명을 나를 향한 그리스도가 내게 부여하신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교회에 대해서 권위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시는 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교회가 가치 있다는 것을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서인 거예요. 최소한 내가 섬긴 우리 교회에서는 교회의 가치를 몰라서 교회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을 용서하시고 들으십시오. 당회실을 지나서 이렇게 목양실이 있어요. 저희 당회실 바닥에 예전에 불을 지른 흔적이 있어요. 이게 안 치우고 덮어는 놨고 저는 보지는 않았으니까. 근데 제가 그게 항상 당회의실 제가 앉는 자리에 이렇게 오른편에 있어요. 항상 저는 그게 제 목회한 어떤 싸인과도 비슷해요. 싸인과도 비슷해요. 그리고 종종 그곳을 이렇게 볼 때마다 제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몰라요. 교회가 영광스러워지는 것은 교회를 가치를 알 때인 거죠. 성도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은 그 성도가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이 교회의 가치를 아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교회의 가치를 알았다면 지금까지 교회에서 했던 우리의 말들과 우리의 행동들은 분명히 정제되었을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잘못됐다고 말씀하신 모든 것들은 여러분과 제가 버렸을 거예요. 어쩌면 지금 우리 교회를 대하는 여러분의 모습은 제가 교회를 대하는 모습일 수도 있어요. 제가 늘 앞장서서 교회를 섬기잖아요. 가장 눈에 많이 띄잖아요. 제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이 교회를 향한 태도와 행동이 되는 거예요. 그래도 듣기 좋은 소리가 하나 있는데 외부인들 타 교인들이죠. 타 교인들이 이제 우리 교회에 오면 하는 말이 교회 시설이 낡았지만 지금은 이 본당이 깨끗하죠. 낡았지만 되게 깨끗하대요. 그 말은 제가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아마 제가 열심히 치우니까 아무래도 성도들도 제 눈치가 보여져서 열심히 청소하고 이렇게 치우셨겠죠 그건 그렇지만 그 나머지를 봤을 때 과연 내가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가치 있게 대하고 있을까 교회에 대해서 가치를 알고 말하고 있을까라는 가끔씩 돌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교회의 가치는 이 땅에 있는 그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거예요. 비교의 영역이 아니라는 거예요. 교회에 갇혀있는 이 땅에 있는 어떤 조직들, 어떤 위대한 국가보다도 더 가치 있는 더 위대한 더 훌륭한 더 영광스러운 공동체가 교회라는 겁니다.
교회가 이 사실을 깨닫고 알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의 가치를 이 땅에 있는 무엇과 비교한다면 그 사람은 교회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성도가 되어 간다는 것 교회의 가치를 알고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것이고, 믿음이 성숙한다는 것 교회의 가치를 알고 인정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교회를 인정한다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교회를 가치 있게 여긴다는 것은 교회의 지체인 성도들을 가치 있게 여긴다는 의미와도 같습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몸, 즉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에 성도도 그만큼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거예요. 교회의 가치나 성도 한 사람도 곧 교회인 거잖아요. 그렇게 보면 한 성도의 가치나 한 교회의 가치가 동일한 거예요. 그런 기준으로 보면 여러 사람이 모였다는 기준을 보면 좀 다르게 보여질지 모르지만 성도 한 사람도 곧 그 사람도 교회잖아요. 성전이잖아요. 하나님의 존이잖아요. 그렇게 보면 성도 한 사람이나 교회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옆에 앉아 있는 성도는 그만큼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지적질을 함부로 하면 안 되고 함부로 아프게 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잘못된 길로 인도해서도 안 되고 함부로 말을 해서도 안 돼요. 권면이 필요하고 때로는 섬김이 필요하고 지도가 필요하지만 예의와 과정을 잘 갖춰서 그렇게 성도들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건물도 교회가 한 사역도 교회에서 드려진 예배와 교회의 제도도 그만큼 같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교회가 같이 있다는 것은 교회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다 가치가 있다는 거예요. 사역도 가치가 있어요. 그리고 예배도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요. 교회의 조직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것이고, 교회 건물도 그만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본다면 교회의 직분도 그만큼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말씀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결정도 중요해요. 여러분 교회가 판단할 수 있는 교회의 어떤 문제를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두 개인데 하나는 말씀이고 하나는 그동안의 교회의 결정이에요. 말씀을 근거로 우리 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교회 안에 많은 문제들을 결정했어요. 그래서 우리의 선조들의 결정도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래서 교회는 교회는 때로는 방향과 좀 본질이 맞지 않다 할지라도 우리의 정치적인 조직들이죠.
노예나 아니면 총회의 결정들을 잘 따라야 할 의무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교회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건 교회의 결정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거예요. 당회 또 공동의회가 직분을 선출하고 직분을 주는 것처럼 생각해서 직분이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직분에 대한 말씀은 그런 것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아요. 직분은 가치 있는 것이고 또 교회가 결정해서 주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그만큼 가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가치 있게 여긴다면 교회 직분 그게 목사이든 그게 아닌 장로이든 교회 안에 어떤 직분도 다 같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직분에 대해서 좀 극단적인 교회들이 한국에도 있어요. 첫 번째 교회는 조금만 기준이 되면 모든 교회 남자들을 다 장로로 세워요. 조금만 기준이 되면 그 기준은 되게 쉬워요. 그 기준에 의하면 우리 교회에 남자분들은 장로가 되지 못할 분이 거의 없어요.
그리고 조금만 기준이 되면 모든 여자분들에게 다 권사의 직분을 줘요. 우리 교회 여성분들 중에 나이가 들면 권사의 직분을 못 받을 사람은 아예 없어요. 이렇게 직분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대하는 교회가 있어요.
또 반대로 어떤 교회는 아예 직분을 주지 않는 교회도 있어요. 직분 대신에 형제와 자매라는 용어를 씁니다. 왜 이랬을까 추측은 가능해요. 직분이 주는 폐단 때문에 이런 결정을 했을 것으로 추측은 할 수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까 문제가 생겨요. 어떤 문제냐 사람들이 자꾸 직분에 대해서 가치 없게 여기는 거예요.
어떤 교회는 직분을 다 줘서 가치 없게 여기는 거고, 어떤 교회는 아예 직분을 주지 않아서 가치 없게 여기는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직분을 너무 과하게 성스럽게 여기는 것도 문제지만, 직분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도 심각한 문제예요. 교회의 가치를 안다는 것은 직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 걸 보면 알 수 있어요.
여러분 직분은 귀한 거예요. 왜냐하면 그 유례가 말씀이거나 아니면 교회의 결정들이에요. 교회의 결정은 그만큼 말씀의 권위만큼은 아니어도 그만큼 중요한 결정들인 거예요. 교회라는 믿음의 고백을 함께하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결정 기관이 그것을 결정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어봅니다. 큰 집에는 시작,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계약에 쓰임 받는 것도 있고, 선악의 쓰임 받는 것도 있나니
그다음 구절은 아마 기록되지 않을 때 제가 읽어드릴게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을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수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게 주인의 쓰임에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본문을 이 두 구절인데 짧게 요약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어떤 그릇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쓸 수 있는 그릇이냐가 중요하다는 거죠. 어떤 그릇이 중요한 게 아니냐 쓸 수 있는 그릇이 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쓰임 받는 그릇은 분명하게 오늘 본문이 말합니다. 깨끗한 그릇이에요. 그릇의 종류가 아니라 깨끗한 그릇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다는 거죠. 그러니까 그릇의 종류보다 깨끗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결함이 그릇의 같이 쓰임 받느냐 쓰임 받지 못하느냐를 결정한다는 거예요.
은사나 능력이나 재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꾸 재료에 집중해요. 그래서 내가 흑수저냐 내가 금수저냐에 집중해요. 이것을 따져요. 가치는 재료가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는 상태가 좌우하는 거예요.
직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끗함이에요. 성결함이에요. 재료가 아니라 우리는 권사냐 장로냐 직분을 더 중요시 여겨 이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가졌느냐 아니요. 직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그 직분의 직분을 정렬하게 감당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큰 교회 다니냐 작은 교회 다니느냐 만이 좌우예요. 중요한 게 아니라 큰 교회든 작은 교회든 상관없이 정결함으로 예배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내가 큰 자냐 찬양 단체에 의해서 사역하느냐 작은 찬양 단체에 의해 사역하느냐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정결하게 내가 쓰임 받으면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 나를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는 재료에 자꾸 집중하면 안 돼요. 목사도 솔직히 재료에 많이 집중해요. 이게 솔직히 평생의 싸움이에요.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 여러분이 오늘도 성도들이 참 많이 오셨는데 우리 교회가 자꾸 이렇게 본당이 차고 이렇게 성도가 많아져 가잖아요.
여러분 기존에는 교회가 되게 크다고 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보다 한 그래도 배 10배가 아니라 몇 배가 되겠나 한 50배 정도 더 큰 교회에서 다니면 아니지만 긴 시간을 이미 사역을 해왔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제 머리에는 규모가 자꾸 자리를 잡아요.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 말씀은 그렇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큰 교회나 작은 교회 여시는 게 아니라 깨끗하게 섬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거예요.
깨끗하게 교회를 섬기느냐 정결함으로 교회를 섬기느냐 농촌교회를 섬겨도 정결하게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큰 교회를 섬겨도 정결하지 않게 섬기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의 가치를 좌우하는 게 뭘까요? 깨끗함이에요. 사역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도 깨끗함이에요. 성도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도 깨끗함이에요. 이 성도가 대학을 나왔느냐 대학을 나오지 않았느냐 이 성도가 훌륭한 직장에 다니냐 그렇지 않은 직장을 다니느냐 이 성도가 부자냐 부자가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성도가 하나님의 자녀로 정결하냐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상태가 교회의 가치를 결정하고 상태가 성도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뛰어난 사람이 없어서 교회가 시골에 있어서 교회에 부유한 사람이 없어서 교회의 성도가 적어서 쓰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실은 그것 때문에 쓰임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결하지 않아서 쓰임 받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는 재료를 탓하지만 하나님은 재료가 아니라 너희들의 상태라고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재료 때문에 안 쓰는 게 아니라는 거죠. 상태 때문에 안 쓴다는 거예요. 너희가 정결하지 않다는 거예요. 정결의 상태 즉 그릇이 깨끗한가를 보고 하나님이 우리를 쓰십니다.
21절을 공동 번역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그러므로 모든 악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귀하게 쓰이는 그릇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주인에게 쓸모 있는 그릇으로 바쳐져서 모든 좋은 일에 쓰입니다.
악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해서 쓰임 받지 못한다는 거죠.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지 못해서 쓰임 받지 못한다는 거예요.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위치의 문제도 아니라는 거예요. 소유의 문제도 아니라는 거예요. 상태의 문제라는 거예요.
이 말씀은 저의 마음도 참 많이 때리더라고요. 준비하는데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니가 이 말씀을 전할 자격이 있을까 왜냐면 저도 수없이 많이 재료에 집중하며 살았어요. 우리 교회가 중소도시에 있어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부유한 사람이 없어서 정말 우리 교회는 부유한 분들이 없으시죠?
부유한 사람이 없어서 우리 교회에 재능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또는 그를 핑계 대고 저를 합리화할 때가 너무 많았어요. 가만히 돌아보니 오늘 말씀에 비춰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쓰실 만한 그릇이었다면 교회가 시골에 있든 성도의 구성원이 어떻든 간에 하나님 반드시 들어 사용하신다는 거예요.
근데 제가 자꾸 재료에 집중했던 거죠. 상태에 집중하지 않고 그래서 10월 말까지 비싼 기도회를 하자고 여러분에게 선포한 거예요. 함께 기도하자고 기도는 우리의 상태를 고쳐주더라고요. 할렐루야 따라하겠습니다.
기도는 나의 상태를 고쳐줍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나의 상태를 고쳐요. 그래서 기도의 길이 없어요. 기도가 나의 상태를 고쳐 줍니다. 악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지 못해서 쓰임 받지 못한 것이지, 내 상태가 별로여서 내 재료가 별로여서 쓰임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기회를 교회가 언제 얻을 수 있을까요? 세상과 분리될 때 얻어요. 여러분 인생의 기회를 언제 얻을 수 있을까요? 세상과 분리될 때 얻을 수 있어요. 여러분의 상태가 더 좋아져야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재료가 좋아져야 기회를 얻는 것이 아니라 상태가 좋아져야 기회를 얻어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 자꾸 재료에 집중해요. 더 나은 대학들, 더 나은 직장들, 더 나은 남편과 아내들, 더 나은 상황들에 자꾸 집중해요. 근데 말씀은 그렇지 않다고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재료가 아니다. 이건 너희들의 상태다. 내가 쓸 만한 그릇은 다 쓰고 아무리 재료가 별로인 그릇도 나는 위대하게 쓸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이게 하나님의 음성인 거예요. 작은 그릇도 하나님이 쓰시면 위대한 그릇이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그 재료보다 상태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금구이이냐 은글이냐를 따집니다. 우리는 나무 그릇이냐 질그릇이냐를 따집니다. 솔직히 말하면 거기에 모든 걸 다 빼앗겨요. 열등감을 느끼고 좌절을 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그게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제로를 탓하는 시간에 악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상황을 탓하고 우리가 재료를 탓하고, 우리가 위치를 탓하고 내가 흑수저냐 금수저냐 그 탓하는 그 시간에 우리가 악으로부터 떠나라는 거예요. 그럼 하나님이 우리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교회가 주님 손에 붙잡혀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넉 달 동안 저를 위해 기도할 때 제가 하나님 손에 붙잡혀지게 기도해 주십시오. 저는 부족해요. 옛날엔 잘난 줄 알았는데 부족한 게 되게 많더라고요. 이거 끝나는 데도 한 많은 시간이 걸리더라. 한 30년 넘게 걸렸어요. 이젠 제가 잘났다는 말은 잘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좀 하고 다녔어요.
어쨌든 FM으로 우리 학교를 우리 교단을 나왔으니까 제가 나온 과정을 다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저 목사님은 정말 정규 과정을 다 나왔구나 이렇게 여기는 그 과정을 저는 다 통과를 했어요. 수로를 하고 하나님이 그 때문에 저를 쓰는 게 아니에요. 제가 성결해질 때까지를 기다리시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 목장 교회를 기다리셔요. 언제까지 성도들이 교회의 가치를 알고 그 가치에 맞는 삶을 살려고 애쓰기를 기다리시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때 하나님이 우리를 쓰실 거예요.
저는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찬양단의 찬양을 거의 매일 들어요. 악기들과 뛰어난 탁월한 연주자들, 싱어들, 좋은 정말 영감이 담긴 가사들 그러면서 다시 제가 꿈을 꿔요. 하나님 그 일이 목장 교회에서 있게 해 주십시오. 저는 재료를 탓했더라고요. 근데 우리가 교회의 가치를 알고 찬양의 가치를 알면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쓰신대요. 우리가 쓰임 받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들어신 형제들 형제, 또 악기를 다룬 자매들, 찬양 인도하는 전도사님 지금도 잘 쓰시지만 하나님이 정결케 하셔서 쓰시려고 지금 기다리시는 거죠? 저는 믿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쓰임 받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그 가치를 알 때가 있을 거라고 믿어요. 찬양의 가치를 알아서 찬양을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하고 예배의 가치를 알아서 예배할 때마다 하늘로부터 위로와 치료의 역사가 이 자리에 임하고 교재의 가치를 알아서 성도들 대화할 때마다 영원히 힐링이 되는 역사가 이 세단에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가치를 알면 그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제가 마무리를 해야 설교를 잘 마쳤다고 할까요? 제가 오늘은 마무리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이 마무리하십시오. 그리고 교회의 가치를 아는 자리에 여러분과 제가 손잡고 함께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는 주를 섬기는 것에 후회가 없습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