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해설
존재와 생명의 복합적인 인식과 진실
-자정 장현경 시집 『시인의 하루』
김 송 배
(시인. 한국현대시론연구회장)
1. 삶의 궤적에서 탐색된 존재의 의미
일찍이 한국철학사상연구회에서 펴낸 『삶과 철학』에 보면 우리 사람들은 항상 어떤 눈앞의 목표, 혹은 앞날에 대한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왜 사는지, 삶을 궁극적으로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하는지는 좀처럼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눈앞에 닥친 현실 문제에만 몰두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다.
또한 사람들에겐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미래가 설정되어 있고 그 설정된 미래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데 살다보면 간혹 미래가 지배력을 상실할 때가 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서 현실이 와해(瓦解)되어 버리면 삶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삶의 전체를 반성해 보게 된다는 철학적인 견해에 공감을 하게 된다.
자정(紫井) 장현경 시인이 상재하는 시집 『시인의 하루』를 일별하면서 이와같은 삶의 문제를 먼저 상기하는 것은 그가 취택하는 시적 소재와 그 상황이 삶을 중심으로 한 그의 체험과 성찰이 다양한 전개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어서 그의 삶은 곧 존재의 이유이며 생명의 원류라는 시적 진실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지의 창출이 그의 일생에서 체험된 소중한 정서와 사유(思惟)들이 복합적으로 존재의 이유와 생명성에 대한 진실의 의미를 투영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삶의 지표, 즉 최종적으로 성취해야 할 가치관의 탐색이 진솔하게 분사(噴射)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장현경 시인은 ‘잘 쉬고 잘 놀고 / 주말이면 행복을 추구하는 모든 이에게 / 삶에 어떤 슬픔이 기다리고 있건 없건 / 마음으로는 지워지지 않는 / 사랑보다 깊은 사랑을 펼쳐 놓는다.(「주말이면」중에서)’라는 어조(tone)와 같이 ‘행복+사랑=삶’이라는 등식(等式)을 성립시키고 있어서 그가 추구하는 인생의 지표는 철학에서 말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존재의 문제가 광범위하게 포괄(包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장현경 시인은 작품 「인생은 짧다」 전문 ‘인간은 사는 동안 / 기쁘고 / 즐겁고 / 웃으면서 /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 아무리 슬프고 / 괴로워도 / 낙천적으로 살아야 한다 // 인생은 매우 짧으니까 // 저들도 우리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의 사유에는 낙천적인 요소가 발흥(發興)하고 있다. ‘인생은 매우 짧으니까’라거나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어조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탐색하는 인생행로에는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도 모두 ‘낙천적으로 살아야’ 하는 자적(自適)의 심성으로 삶과 인생을 긍정하는 시법을 읽을 수가 있다.
시를 사랑하고 수필, 소설을 쓰는 일
참 즐겁고 행복하지 아니한가
생물, 무생물
그냥 스쳐 지나가면 모든 게 묻혀 버리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을 수 있는 만남 그리고 동행
마음과 눈이 먼저 가슴을 열고 이야기를 쓰다 보면
사랑으로, 기쁨으로, 생동감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얼마나 황홀한 감사함인지!
이 얼마나 눈물겨운 행복인가!
생명, 존재, 삶이 시작된 내 고향 용궁
오곡백과 풍성한 기름진 용궁평야
우뚝 선 고종산의 정기 서린 산하(山河)
이 모두를 다시 일으켜 그리는 일, 그 마음
햇살 가득한 날 바람의 날개 타고
포자(胞子) 되어 미지의 세계로 날아간다.
--「용궁을 그리며」 전문
장현경 시인의 인생에서 불멸의 가치를 탐색하는 것이 문학이다. 그가 즐겨하는 장르가 바로 ‘시를 사랑하고 수필, 소설을 쓰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참 즐겁고 행복하지 아니한가’라는 어조로 자신의 삶에서 추구하는 문학이 그의 인생관과 동일성을 유지하는 문학관이 곧 그의 행복과 동행하는 가치관임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또한 그는 문학과 융합하는 ‘생물, 무생물’과의 교감에서 획득하는 ‘황홀한 감사함’과 ‘눈물겨운 행복’을 만감(萬感)하면서 그의 ‘고향 용궁’에서 ‘오곡백과 풍성한 기름진 용궁평야’와 ‘우뚝 선 고종산의 정기 서린 산하’와 화해하고 그는 그의 ‘생명, 존재, 삶’이 그의 문학적인 해법으로 발원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성과 결부하는 삶의 궤적에서 진솔한 존재의 의미를 재인식하면서 그가 탐색하고 지향하는 심원(心願)에는 현실적인 행복과 더불어 오늘도 ‘좋은 시 쓰려고 / 틈틈이 온몸을 던(「글보다 사람이 되라」 중에서)’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작품 「시인의 하루」 전문에서 ‘새날이 오면 / 무엇이 달라지려나 / 설레다가 / 세월이 흘렀다 // 그런대로 모나지 않게 / 어제도 오늘 같고 / 오늘도 어제 같은 세상 // 을밋을밋하다가 // 한여름 무더위에 / 땀을 뻘뻘 / 시상(詩想)을 떠올리며 / 시 한 편을 썼다.’는 겸양의 미덕으로 이 시집의 표제시로서 그의 존재의 정점(頂點)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 밖에도 작품 「황혼의 반란」, 「실수」. 「내가 태어났을 때」 등에서 그의 삶과 인생을 조망(眺望)할 수 있으며 그는 이미 그의 ‘시인의 말’에서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자라온 환경과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심리적 특성을 갖게 되고, 그때부터 서로 다른 인생 이야깃거리가 전개된다. 그 나름의 독특한 상황과 어조 표현 방법에 적절한 시어들로 여기 자기소개서를 한 권의 시집으로 다듬는다.’는 언지와 같이 그의 인생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2. ‘연가’와 ‘그리움’의 공감된 합주곡
장형경 시인에게서는 다시 연가풍의 작품을 많이 대할 수 있는데 이는 그에게 내재된 연민(憐憫)의 정서가 ‘사랑이란 영혼의 궁극적인 진리’라고 명명(明命)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정서를 심도(深度)있게 답습(踏襲)하는 듯 하다.
그가 ‘떠나면 잊으리 / 만나면 잊으리라 // 바람 소리 새소리마저 / 텅 비어 서글프다 // 그리움 절절히 / 파도에 실어 보내니 // 에이는 마음 / 더더욱 아리다.(「연가 ․ 1」 전문)’는 어조와 같이 떠남과 만남의 간극(間隙)에서 통감(痛感)하는 ‘그리움’에 대한 애절한 호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멈춘 듯
어느 그곳에
붙박이처럼 곧게 선
너와 내가
다른 나무들의 앙상블에
버팀목
곁눈질하지 않고
슬픔은 가슴에 안식처
뻗어지는 나이테 따라
춤추는 나무야
삶에 지친 눈빛으로
천연이 서 있는 나목
어디로 가야 하나!
--「연가 ․ 3」 전문
여기에서는 ‘너와 내’라는 화자(話者)가 구체적으로 현현되고 있어서 ‘연가’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삶에 지친 눈빛’과 ‘슬픔은 가슴에 안식처’라는 시적 정황(situation)으로 더욱 명민(明敏)해지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시 멈춘 ‘시간’과 ‘춤추는 나무’ 혹은 ‘서 있는 나목’의 대칭으로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의문으로 그리움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어서 그가 지향하는 ‘연가’의 정점은 ‘어둠의 향기 따라 / 오경(五更)에 머무르면 // 춤추는 촛불 밝혀 / 더듬어보는 추억 // 첫눈이 /소복소복 쌓이면 // 가녀린 떨림 속 / 부드러운 그 숨결.(「연가 ․ 2」 전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밤이 있다
고달픈 삶 때문도
존재의 외로움 때문도 아니다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 하나 있어
별들이 진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나직이 그대 이름을 불러보지만
스치는 바람에
문풍지 덜커덩거리고
눈 흩날리는 이 밤
그리운 그대
애타게 기다리게 하네.
--「그리움 1」 전문
그의 연가적 사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그 지향점에는 ‘그리움’이라는 거대한 시적 원류가 흐르고 있다. 여기에는 ‘그리운 그대’라는 화자가 있다. 이러한 그리움에 대한 사연은 ‘고달픈 삶’과 ‘존재의 외로움 때문도 아니’라고 적시하고 있어서 그가 탐색하는 그리움의 정체는 ‘애타게 기다리게 하’는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인 바로 ‘그대’를 향한 간절한 연가이다.
이러한 장현경 시인의 ‘그리움’의 양태는 여러 작품에서 접할 수가 있는데 「그리움 2」에서 ‘그리운 그대 / 아련한 추억 // 그대와 걷던 그 길을 / 다시 찾아와 보니 / 지금 이 길은 / 그때 그 길이 아니네!’, 「장맛비」에서 ‘그리움은 빗물 되어 // 아! 장맛비/허기진 배 채워 준 어머니처럼 / 가슴에 집필 시간으로 쏟아지네.’, 「비야 내려라」에서 ‘비야 내려라/쏟아지는 그리움 흥건히! / 우수와 출렁이며….’, 「6월이 오면」에서 ‘내리는 비는 / 우산으로 가릴 수 있지만 / 쏟아지는 추억의 그리움은 / 막을 수가 없네!’ 그리고 「가을은」에서도 ‘ 모진 세파에 휩쓸리는 / 인생의 뒤안길이다 // 자욱한 안개를 / 담담하게 바라보는 그리움이다. // 핏빛 노을로 덮인 / 천고마비의 산야 / 시린 외로움에 사무치는 기다림이다’라는 심저(心底)의 울림이 메아리치고 있음에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3. 자연의 동화와 서정적 자아 탐구
장현경 시인의 자아 인식에서 현실적인 삶의 궤적을 중시했다면 외적(外的)으로 응시(凝視)하는 사물들에게서 많은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다. 바로 지천(至賤)으로 널려 있는 자연현상들이다. 그의 시야에 펼쳐진 자연현상들은 바로 그가 동화(同化)하는 서정적 자아의 발견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 그는 자연의 변화에서 시간성을 중시하게 되는데 사계절에 따라서 만물의 형상이 달라지는 섭리(攝理)를 흡인(吸引)하면서 친자연적 서정성에서 안온한 시심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작품 「강변에서」 ‘봄이면 / 군락을 이룬 수양버들 // 시나브로 / 하늘하늘 휘늘어지는 / 이른 봄 오후 / 줄기마다 드러나는 / 이 힘찬 맹아(萌芽)들.’이란 어조로 분명하게 봄에 대한 이미지가 현현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법에는 계절적인 감응이 자연 현상과 화해하는 순정으로 장현경 시학의 중심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수유
아직은 이른 봄
눈발 맞는 꽃봉오리
메마른 가지 위에
새 세상 열려 오는가!
개울가
저 산야에
봄이 오는 소리
석조(石棗) 홍옥(紅玉) 그리는
바쁜 마음에
노란 네 잎의 꽃을 피운다.
--「산수유화(山茱萸花)」 전문
그렇다. 장현경 시인은 ‘산수유화’를 통해서 ‘봄이 오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이른 봄’인데도 ‘메마른 가지 위에 / 새 세상 열려 오는’ 봄의 이미지를 만끽(滿喫)하고 있다. 봄의 이미지는 대체로 새 생명의 탄생으로 생기가 넘치는 향훈(香薰)을 우리 인간들이 공유하게 된다. 만유(萬有)의 자연과 인간이 새로운 활력을 접하는 세상을 맞는다.
이처럼 봄에 대한 찬미(讚美)는 ‘수양버들이 / 축 축 늘어진 연못가 / 아지랑이 하늘하늘 // 사방 연못에는 봄의 물결이 / 찰랑찰랑(「수양버들」중에서)’이거나 ‘찬바람이 떠나기 전 / 뭇 봄꽃들의 개화를 이끌려 / 노란 눈꽃으로 / 이정표를 세우네.(「복수초」중에서)’ 그리고 ‘봄바람 살랑살랑 /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비에 / 철쭉꽃 하얗게 웃음 짓고(「실개천」중에서)’라는 등의 어조로 찬사를 보내고 있다.
장현경 시인의 자연 친화(특히 꽃)의 시법은 우리 시학에서 말하는 자연의 인격화이다. 자신이 꽃과 동화(assimilation)하여 자신의 심중으로 끌어와서 꽃을 내적으로 인격화하는 원리를 취하고 있거나 자연 속에 자신을 상상적으로 투여하는 투사(投射-project)라는 낭만적인 두 형태의 자연관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고요한 호숫가의 갈대숲
휘영청 밝은 달빛
지난 시름 안은 채
세월을 하나 둘 헤며
먼 길 떠나는 가을 나그네
유유히
산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계절이 성숙하는 교차점에서
인생은 함초롬히 젖어나고
낙엽의 유혹이 깃들여
감미롭게 핀
계절의 왕, 황홀한 시월에
황혼 깊은 계곡에 지는 낙화
그대 눈망울에 머문다.
시월의 하늘이여!
그대의 가을이여!
--「계절의 왕」전문
그는 특히 가을의 향취를 즐기고 있다. ‘고요한 호숫가의 갈대숲 / 휘영청 밝은 달빛’과 ‘산빛 구름이 흐르는 산봉우리’, ‘낙엽의 유혹’ 그리고 ‘황혼 깊은 계곡에 지는 낙화’ 등의 추경(秋景)에 흡인되어 있다. 그는 이 ‘계절의 왕, 황홀한 시월에’ 그의 내면에는 ‘세월’과 ‘인생’을 통한 ‘시름’과 ‘성숙’이 교차하는 ‘시월의 하늘’을 향해서 절규하는 교성곡(交聲曲)이 울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가을은 ‘가을비 부슬부슬 / 찬바람이 불며 / 대지를 적신다(「겨울은 힘이다」중에서)’라거나 ‘들국화 꽃잎에 / 영롱한 아침이슬 / 차갑구나(「들국화 향기」중에서)’ 그리고 ‘이 가을에 / 단풍길 따라 달리는 버스 / 소싯적 설렘처럼 / 저 멀리 벼 벤 자국 / 을씨년스럽고 / 들판엔 기울어진 허수아비(「내장산 단풍」중에서)’라는 정경(情景)에서 교감하는 계절적(시간적) 이미지는 더욱 정감을 두텁게 전해주고 있다.
이 밖에도 싱그러운 신록을 통한 여름 이미지도 작품 「오월의 신록」「아카시아꽃」「라이락 향기」「찔레꽃」등에서 인생의 무상(無常)이나 고적감(孤寂感)과 그리고 그리움과 ‘풋풋한 사랑’ 등 그가 탐색하면서 구현하려는 시적 진실을 탐미(眈美)하고 있다. 또한 겨울 이미지도 그의 서정성을 배제할 수 없는데 작품「첫눈」「초겨울」등에서 ‘을씨년스러’움과 ‘순백의 사랑’을 교감하고 있는 것이다.
4. ‘낮선 길 위에서’ 화해하는 여정
장현경 시인은 여행을 좋아하면서 그 여정(旅情)에서 당면한 여행지의 소재와 거기에서 획득한 주제가 바로 작품으로 연결되고 있다. 그는 국내외를 불문하고 방랑벽을 결행하여 주옥같은 기행시편을 창작하고 있다.
그는 ‘햇살 쨍쨍 내리쬐는 / 찌는 듯이 무더운 / 한여름의 남쪽 바다(「외도 보타니아」중에서)’로 국내 여행을 하기도 하고 ‘천문호선(天門豪仙) / 천하제일경 장가계(「장가계」중에서)’ 등과 같이 외국을 여행하기도 한다. 일찍이 영국의 철학자 러셀은 ‘여행의 추억은 끊임없는 휴양입니다’라고 그의 글 「사랑이 있는 기나긴 대화」에서 말했듯이 여행은 휴양과 동시에 다양한 사유의 폭을 광범위하게 화해하는 귀중한 시적 해법이 되는 것이다.
나이가 몇인지
직업이 뭔지
어디서 왔는지
그건 별 관심이 없다
천천히 걸어서 좋은
오솔길 같은 해안 바위길
계절 따라, 바닷길 따라
철새처럼 찾아온다
낯선 길 위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돌담길에서
하늘 보고, 돌 보고, 바다를 보고
순간순간 부는 바람에 감사하고
흐뭇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푸른 바다에 안기어
한참을 걷다 보면
몸은 힘들고 무거워져도
근심 걱정 사라지고
마음이 가벼워지네
--「제주 올레길」전문
그는 우선 제주도 올레길을 답사하고 있다. 그의 감응이나 지각은 ‘천천히 걸어서 좋은 / 오솔길 같은 해안 바위길 / 계절 따라, 바닷길 따라 / 철새처럼 찾아온다’는 그의 여행 동기, 그것은 ‘낯선 길 위에서 / 자연스레 이어지는 돌담길에서 / 하늘 보고, 돌 보고, 바다를 보고 / 순간순간 부는 바람에 감사하고 / 흐뭇해하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결론적으로 자아 인식의 경지를 수확하게 된다.
이렇게 그는 역마살에 가까운 여행을 통해서 ‘몸은 힘들고 무거워져도 / 근심 걱정 사라지고 / 마음이 가벼워지네’라는 어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장현경 시인과 여행은 불가분의 상관성으로 인생과 여행 혹은 인생과 문학이라는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설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하듯이 그의 여행은 ‘직지사’, ‘구룡사’, ‘용문사’ 등에서 ‘영원한 침묵의 설법’을 익히고 ‘노고단’, ‘구곡폭포’. ‘하회마을’, ‘월영교’, ‘실미도’, ‘용화산’, ‘사명산’, ‘병풍산’, ‘무의도’ 그리고 ‘소양강’, ‘파로호’ 등지에서 그가 구상하고 이행(履行)하려는 인생과 문학적 설계도를 이미지화(化)하는 특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투명한 침묵이
몇 바퀴 허공을 맴돌듯
잠시 주춤거리다가
한번 호흡을 가다듬으면
도도한 폭포수처럼 떨어져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규모는 작아도
수심 5m의 열대 해(海)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에메랄드빛 물결
낭만적인 그네와 다이빙대는
인간문화의 뿌리를 찾아
마지막 원시인을 보는 듯
오늘도 이상향을 찾아
꿈꾸는
라오스 관광의 백미(白眉).
--「블루라군」전문
이제 그는 국내보다는 국외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여기는 ‘오늘도 이상향을 찾아 / 꿈꾸는 / 라오스 관광의 백미’라고 극찬으로 결론을 내린 ‘블루라군’에서 ‘인간문화의 뿌리를 찾아’ 나섰다. 역시 그는 절경(絶景)에 심취(心醉)해서 ‘도도한 폭포수’나 ‘에메랄드빛 물결’ 그리고 ‘마지막 원시인을 보는 듯’한 감흥(感興)에 흠뻑 젖어 있다.
그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그의 발길은 닿는다. ‘보봉호수’를 비롯해서 ‘벳부 온천’, ‘비엔티안’, ‘팟투사이’, 그리고 ‘방비엥 집라인’ 등의 해외여행에서도 그의 인생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경관이나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통해서 발흥하는 시심의 행방은 곧 장현경 시인의 소중한 인생의 한 단면 ‘무한 속 / 무(無)로 이어지는 공간’이라는 시적 혹은 인생적 진실임을 상기(想起)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는 그의 「서간집」에서 ‘여행은 인간을 겸허하게 합니다. 세상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입장이 얼마나 하찮은가를 두고두고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라는 명언과 같이 이러한 기행시를 통해서 장현경 시인의 겸허성은 명징(明澄)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제 자정 장현경 시집 『시인의 하루』의 읽기를 마무리해야 하겠다. 그는 ‘방랑자가 찾아가는 / 향기로운 새 아침.(「모래시계」중에서)’을 맞기 위해서 사색을 하고 시를 쓰고 여행을 하는 인생의 고행(苦行)을 자초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시집에서 대체로 삶의 궤적에서 존재의 인식과 그 의미를 심도있게 추적했으며 그와 동시에 파생하는 삶과 인생의 문제에서 사랑과 동행하는 그리움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어서 내적인 관념의 세계에서 외적인 사물의 현상인 자연에서 재발견하는 서정적 자아에 깊은 인생철학을 가미(加味)하고 있어서 우리들의 공감영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서 또 하나는 역마살이 곧 시적 영감과 합일한다는 문학적 입지(立志)를 견고하게 지속한다는 점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정황이나 전개의 원류에는 인생론이 적시하는 장현경 시인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품 「구름」중에서 ‘처음엔 맑은 하늘 / 연민에 사무쳤든 가슴도 / 구름 같은 인생 / 한세상 두둥실 떠가는 것을 // 우리 이 모습 이대로 / 살아온 세상 뒤돌아보며 / 환한 웃음 가득히 // 여기 오래오래 / 머무르고 싶구나.’로 귀결하는 존재의 의미가 적나라(赤裸裸)하게 표출되고 있어서 『시인의 하루』에 잠재한 영혼의 노래는 더욱 시의 광명으로 영원히 밝게 빛날 것이다. 시집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