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주에서 35Km떨어진 소적석산의 대사구내에 위치한 중국의 유명한 석굴 중의 하나다. 병령사는 티베트어 '仙巴炳靈(Xiānbābǐnglíng, 十万佛)'의 음역으로 천불동, 만불동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서진 건국 원년인 420년에 건설된 정교한 석조예술품으로 사내에 694개의 석조상과 82개의 소상이 900평방미터에 전시되어 있다. 그 중 당대의 것이 2/3 이상으로 총 183개의 크고 작은 석굴이 있다. 그 중 제일 유명하고 볼만한 것은 169굴로 60m의 낭떠러지 위에 있으면서도 가장 정묘하다. 이 외에도 석조대불과 다수의 보불 등 걸출한 불교작품이 곳곳에 담겨 있다. 또 이러한 석조물들을 통해 16국 시내의 사회풍모와 민속정취, 음악무가 등의 높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알 수 있다.
병령사(炳靈寺)는 북위시기 당술산(唐述山)이라 불렸다. '수경주(水經注) 권2 하수조(河水條)의 기록에 의하면 "당술산의 암벽면에 석굴이 많다(唐述山懸崖之中 多石窟)"라고 하였다. 문헌에서는 또한 임양당산(林楊堂山)이나 당술산(唐述山)리라고도 부른다. 482년경에 편집된 '수경주(水經注)'에서도 도교계(道敎系)의 사원으로 기술되어 있고 668년에 간행된 '법원주림(法苑珠林)'에도 진(晉)의 태시연간(泰始年間, 265~274)의 석각(石刻)이 그 존재를 전하고 있는데, 당나라 때 용흥사(龍興寺)로 불려진 불교석굴을 주로한 착감(鑿龕), 조상(彫像)이 성행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당대에는 영암사(靈岩寺)로 불렸다. '송사(宋史)' 열전 권215에 "元符二年七月炳靈寺渡河"라는 기록이 보이고 있어 병령사란 칭호는 송대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북위 연창(延昌)2년(513) 명(銘)의 마애석각에는 조자원(曺子元)이 환제폐하 군료백관(郡僚百官), 사중인민(士衆人民), 칠세부모(七世父母), 소생부모(所生父母), 육친권속(六親券屬)의 서방왕생(西方往生), 숨병의 증장(增長) 기원을 위하여 석굴을 뚫었다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이 조자원 발원(發願)의 석굴이 병령사석굴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옛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나라의 석굴 5개와 불감 1 외에 다수의 송나라 벽화 등이 확인되었고, 불감 149개가 아랫절에, 굴 1, 감 3이 윗절에 있다. 특히 송나라에는 토번(土番)이나 서하(西夏)의 침입에 대처하는 군사상의 중요한 진(鎭)이었기 때문에 많은 참례자가 불상에 공양 또는 동굴의 수리가 끊임 없었고, 원(元)나라 이후의 라마교 유행과 더불어 라마 사원이 되엇는데 근세에는 명나라의 벽화가 많이 그려졌다. 마지이산, 둔황의 천불동 등과 함께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2012. 8.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