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3월26일 미군과 연합군은 대규모의 함대를 동원 폭격을 시작하고 4월1일 오키나와 중부해안에 상륙했다.
오키나와는 일본 본토에서 900km정도 떨어진 곳
일본 본토공격의 보급기지로 사용할 목적이었다.
1945년 5월29일 미군은 오키나와 슈리성 탈환,
미국과 일본은 80일 넘게 한 전투로 20여만명이 희생된다. 일본인은 천황을 위해 싸우다가 죽는다는 "철혈근황대"로 싸우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
집단자살 하거나 끝까지 싸우고 자살로 대항했다. 특히 카미가제 자살특공대 공격은 공포와 미군을 긴장시켰고 가미가제 자살공격을 두려워 했다.
슈리성이 함락될때까지 양측에서 발생한 희생자 수는 20만에 달해 제2차세계대전 중 가장 많이 발생했다.
미군은 1만2천명, 일본군은 6만6천여명 전사자, 나머지 12만명은 오키나와 주민과 강제징용 된 조선인 1만여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미군은 오키나와를 완전 점령했지만 항복하지 않는 일본, 결국 트루먼 대통령은 전쟁을 끝낼 결심을 한다.
트루먼 대통령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명하고 수십만명의 희생을 내고 일본천왕은 항복문을 발표했다.
이렇게 제2차세계대전은 끝이 났고 한국은 드디어 1945년 8월15일 해방되었고 일본의 항복과 철수
그리고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15일 초대 대통령 취임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