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파에게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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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구원파 사이트에 올린 글 정리- http://cafe.naver.com/kpastory.cafe 오대양 사건 피해사례들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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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lys979111@naver.com [조회수 : 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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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역시 94년 초까지만 해도 오대양 사건은 집단타살이며 그 배후에는 구원파와 (주) 세모가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다가 탁명환 씨 사후 그에 대한 비판서를 내려고 준비하던 중 교회연합신문 강춘오 목사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가 비판서를 내려면 오대양 사건을 다루어야 하고 그 사건은 탁 씨의 허위 조작극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월간조선의 이정훈 기자(현 월간 신동아 기자. 요사이도 가끔 통화함)를 여러 번 만났고 여러 달 조사해 보니 강춘오 목사와 이정훈 기자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글로 써서 월간 시사정경 94년 9월호에 기고하였습니다. 제목은 "오대양 집단변사사건의 배후세력설은 탁명환 씨의 허위 조작극"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졸저 "탁명환, 그는 과연 누구인가"에 집어 넣었습니다. 물론 이 때까지만 해도 오대양 사건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해서 그후 계속 조사하여 월간지(교회와 이단, 풀빛목회, 선택)에 3번 더 기고하였습니다. 그런데 94년도에 서울 우이동에 살 때 제 집 옆에 미용실이 있었는데 거기 여주인이 구원파 신도였습니다. 그래서 졸저 "탁명환, 그는 과연 누구인가"를 비롯하여 오대양 사건에 관한 자료를 공짜로 그녀에게 갖다 주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때 동네에서 구두 닦고 구두 등을 수선하며 열쇠 등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한 후배를 알게 되었는데 그는 지방교회(형제교회) 신도였습니다. 구원파와 지방교회는 서로 다릅니까 ? 그러다가 98년 6월 경 서울 중곡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곳 아래에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한 구원파 신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은 김규남이라고 기억합니다. 그는 나중에 경영난 때문에 가게 문을 닫았습니다. 그게 아마도 2001년도인 것 같습니다.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오대양 사건에 관한 자료를 갖다 주었지만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여간 이렇게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구원파의 열성 신도 몇과 지방교회 열성 신도 하나를 보았습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이들이 모두 신앙을 가지고 있고 깨끗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지성적인 면에서는 아주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원파라는 별명 보다는 바보파 또는 엉성파라고 불리는 게 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95년 말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에 대한 비판서 "목사님, 정신차리소!-조용기 목사의 신앙관 해부"를 내었습니다. 그러자 곧 조 목사 측에서는 저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함과 동시에 민사재판인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었습니다. 나중에는 이 책 때문에 민.형사 재판이 8개까지 늘어났었습니다. 그런데 서울 서부지청에서 명예훼손으로 조사받을 때 한번은 정병대 주임검사와 박종철 계장이 오대양 사건에 대해 물어왔습니다. 당시 그들도 이 사건에 대해 의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음 조사받을 때 월간 "교회와 이단"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조사받을 때 그들에게 오대양 사건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집단자살이 틀림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당시 서부지청에서 이 건으로 인해 96년 1월초부터 약 4달 조사받았습니다. 그리고 96년 1월 초부터 그 해 12월 말까지 택시를 탈 때마다 기사들에게 오대양 사건에 대해 물어봤는데 단 1명을 제외하곤 모두가 집단타살, 즉 배후에 구원파와 (주) 세모가 있다고 답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형편이 나쁘지 않을 때라 택시를 자주 탔었습니다. 그러나 요사이는 그러하지 못합니다. 제가 94년도에 오대양 사건의 실체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면서부터 이걸로 계속 고통과 피해를 볼 집단은 구원파와 (주) 세모라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래서 월간지에 기고할 때도 이걸 조금씩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구원파와 (주) 세모의 대응은 참으로 한심했었습니다. 그래서 월간 신동아로부터 97년 초에 또 한번 당했지요. 그래서 우선 한 가지를 구원파에 당부합니다. 이 문제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신청하십시오. 마침 올해가 오대양 사건 발생 20년이 되는 해라 언론의 재조명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저는 작년에 mbc "뉴스 후"에 오대양 사건을 재조명해달라는 글을 여러번 올렸습니다. 여기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주간지 시사저널에는 조금 아는 기자가 있어서 작년에 통화 중 이것을 부탁했고 여기 자유게시판에 글들을 올렸습니다. 구원파와 (주) 세모도 이처럼 언론들에게 꾸준히 부탁해야 합니다.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됩니다. http://cafe.daum.net/antinaju 이것은 저희 카페입니다. 저는 부운영자이고 운영자는 제4대 천주교 신자인 김영태 비오 후배입니다. 김 비오 후배는 90년대 초 가톨릭신문 기자 노릇을 했고 그후 고향인 대구에서 경북일보 정치부 기자 노릇을 약 14년 했습니다. 그런데 이 김 비오 후배도 또한 오대양 사건을 최근까지 집단타살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종비련(www.gigabon.com)에 오대양 사건의 자료를 꾸준히 올리는 것을 그가 계속 보고 나서 이제는 제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얼마전 그와 통화 중 그는 "오대양 사건은 우리 국민 거의 모두 그리고 많은 기자들도 집단타살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구원파와 (주) 세모가 할 일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탄원서를 받아서 정부기관들과 언론사들에게 제출하여 "우리들에게 붙은 더러운 누명을 벗겨달라"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모두 홈피가 있으니 기사제보난이나 자유게시판을 이용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여기에 올린 자료들만으로도 "오대양 사건은 고 탁명환 씨의 허위조작극"이라는 것이 완전하게 입증되었습니다. 앞으로 구원파가 새로 해야 할 일은 구원파가 새롭게 태어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원파가 교회사, 특히 교리(교의)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고 탁명환 씨, 자라목 정동섭 교수등이 구원파가 사이비 이단이라고 수십년 동안 외칠 때 저는 결코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파가 분명히 성 삼위일체의 교리와 사도신경을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원파가 주장하는 것들 중에는 제가 수긍하지 못할 것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신학 등을 공부한 지도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방면에 대해 조금 압니다. 그리고 구원파는 한기총 등이 깔보고 경멸하는 사이비 목사(이xx, 강xx 등)들이 만든 책들을 구매하시지 말아 주십시오. 이런 것은 제가 봐도 가소로우니 한기총 등에서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 물론 이런 행위가 내부 결속력을 강화시킬 수는 분명히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자기 살 깍아 먹기"입니다. 앞으로 구원파가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역사를 존중하고 받아들이는 정통 그리스도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한기총의 소속교단으로 거듭나기를 당부하고 또한 이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그럼... 이용섭 Augustinus(옛 천주교 세례명) 드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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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1월 10일 13:42:24 / 수정 : 2007년 01월 10일 13:44: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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