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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얼마 전에 언니와 광화문에 갔었습니다.
언니는 황선홍이 누군지도 모르더군요.
대한민국 국민 맞나요?
그 게임 보셨죠?
황선홍 선수님께서 선제골을 넣었을 때..
나도 언니도 너무나 기뻐서 팔짝 팔짝 뛰어다녔습니다.
우리 둘이 광화문에서 제일 미친년 같았을 거예요.
언니는 "내가 이 분을 몰랐다니" 하면서..
바로 팬 까페에 가입해 버렸습니다.
그날 사진도 많이 찍었어요.
진이 언니는 상당히 대담한 복장을 하고 나왔습니다.
귀엽게 나온게 있어서 한 장 보내 드립니다. 고맙죠?
아, 그런데 선생님,
말씀 드렸듯이 언니 상당히 야하게 입었거든요...
분하지만, 제가 봐도 섹시했습니다.
군대에선 왜 성욕 억제제 들어있는 음료수 나눠 준다죠?
효과는 좀 있나요?
일단 그거 하나 드시고 보세요.]
진이는 태극기로 탱크탑을 만들어 입고..
V자를 그리며 웃고 있다.
어째 아슬아슬하다.
"야 막내야"
"이병 김창후!"
"맛스타 남은거 있냐?"
"네 있습니다!"
"하나만 줄래?"
"알겠습니다!"
[저번에 면회 갔을 때 보니까..
많이 얼굴 좋아지신 것 같아서 보기 좋았어요.
그래도 진이 언니는 여전히 선생님이 안쓰러운가봐요.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훌쩍 훌쩍 울기 시작했습니다.
맨날 울어요, 바보가.
"이제 편하게 지내는 것 같던데 왜 울어 언니..."
했더니..
"미안해서..."
..라고 합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요?
저는 첫 학기를 그럭저럭 끝냈습니다.
기숙사 벌점이 100점 넘으면 퇴사인데..
간신히 95점으로 디펜스 했습니다.
조마조마 했지만, 재밌었어요.
성적은 말인데요, 엉망입니다.
기말 고사 때는 뻥 안치고 총합 6시간도 공부 안했을 거예요.
예과 때 성적은 인생에 상관 없다는 선배들의 말만 믿고 있어요.
그렇다고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예요.
저희 동아리 선배가 단편 영화제 출품을 준비하고 있는데,
거기서 주연 배우를 맡았지요.
유난히 남자 뺨을 때리는 장면이 많은데
딴건 몰라도 싸대기 날리는 연기 하나는 일품이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신나게 짝짝 갈기고 있거든요.
상대역을 맡은 애는 이제 저한테 말도 걸지 않더군요.
선배들은 그 녀석을 다독거려 주기 위해 키스신을 넣어 주겠다고 농담을 했지만,
녀석은 기겁을 했습니다. 진심인 것 같았어요.
여자로서 자존심에 좀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음 장면에서는 그야 말로 성심 성의를 다해 한 방 날려 주었죠.
아카데미의 레드 카펫을 밟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기 와서 좋은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습니다.
서울 애들도 많지만, 이 지방 애들도 많아요.
강원도 사투리라는 것이 상당히 재밌습니다.
흉내내기도 상당히 어렵죠.
열심히 연습 중이니 나중에 들려 드릴게요.
선생님,
답장 좀 하시지 그래요?
이제까지 겨우 참아 왔는데...제 손에 진이 언니의 피를 묻히긴 싫군요.
저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정도라구요.
사고 치지 말구 하루라도 빨랑 제대 하세요 보고 싶어요
2002년 7월, 제자가]
[선생님,
정말 너무하시는군요.
사람이 왜 그래요 도대체.
이제 저도 편지 안쓸래요
잘 먹고 잘 사세요.
2002년 8월 제자가
PS.
아 저 이번 방학에 과외를 하나 맡았어요.
저는 제자를 나 몰라라 팽개쳐 버리는 그런 악덕 교사가 되지는 않을거예요.
고2 여자애인데,
애가 너무 착해서 좀 재미 없네요.
숙제 해오라면 다 해오고, 문제 풀라면 다 풀고.
도대체 그렇게 알아서 잘 할 거면 과외를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PS2.
아, 언니 수영복 사진을 입수 했습니다.
얼마전에 수영장에 갔었거든요.
어찌나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지,
쪽팔려서 죽는 줄 알았어요.
뭐 진이 언니 몸매야 뻔하니까.. 라고 생각 하시면 오산이예요.
(사실 뻔하긴 하지만)
왜냐, 저랑 같이 백화점에 가서 비키니 수영복을 샀거든요.
이 사진 정말 어렵게 어렵게 찍은 희귀본이예요.
선생님의 태도에 따라
보내 드릴 수도 있지요]
[선생님,
너무 속보이는 짓을 하시는 군요.
그렇게나 냉큼 답장을 하다니..
정말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아무튼 약속은 약속이니까 사진 보내 드립니다.
요번 것은 강도가 좀 세니,
성욕 억제제 첨가된 그 주스 한 다스는 드셔야 할지도 몰라요.
아 그리고 사실은 제 사진도 있긴 한데 물론 보내 드리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일반적인 남자라면 제 몸매 쪽에 100배 관심을 보이는게 정상이지만,
선생님은 변태니까요..
그런데 선생님,
저야 그렇다 치더라도, 언니한테는 편지 자주 쓰고 계신거겠죠?
요즘 전에 없이 우울해 합니다.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예요.
언니 한테는 정말 선생님 밖에 없습니다.
잘해 주셔야죠.
선생님은 좀 배워야 해요
2002년 8월 제자가]
[선생님,
가을이 점점 깊어 가네요. 이제 나오실 날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그 동안 저한테는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생겼거든요.
한 학번 위의 선배입니다.
그런데 기분은 영 별로입니다.
어쩌면 저란 인간은 남자하고는 사귈수 없는 여자인지도 몰라요.
사귀기 전에는 그냥 괜찮은 오빠였는데,
후회 막급입니다.
제가 너무 경솔했나봐요.
오빠가 촛불이며 장미꽃이며 잔뜩 준비해서
거기다 친구들 까지 동원해서 빅 이벤트를 하는데,
도저히 초를 칠 수 없는 분위기 아시죠?
솔직히 말하면 좀 기분 좋기도 했구요.
그래서..
그만 휩쓸려 버렸답니다.
아 저는 바보 입니다.
얼마 전에는 스킨쉽을 해 오는데
너무 싫어서 그만 꺄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최대한 "난 아직 순진한 여자여서 빼는 것 뿐이야" 라는 인상을 주고 싶었는데..
절대 불가능.
완전 지하철에서 치한 만난 듯한 표정을 짓고 말았습니다.
하마트면 1학기 내내 영화를 찍으며 단련된 싸대기 솜씨를 발휘할 뻔 했다니까요.
이 남자는 완전히 삐졌습니다.
여튼 이만저만 귀찮은게 아니예요.
엄청난 질투쟁이에 잔소리꾼이거든요.
제가 동아리도 그만 두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말고
하루 종일 자기만 봐 주기를 바라는 모양입니다.
또 문자 오네요
뭐하고 있어 우리 귀여운 강아지.. 라네요..
젠장! 귀여운 우리 강아지라니!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100번도 더 말했을 거예요.
이 남자는 제 일을 자기가 나서서 다 해결해 주길 좋아합니다.
저는 언제까지나 당신의 보호를 받는 어린 양 정도 역활을 해주길 바라지요.
예를 들자면,
인간 관계도 자기 친구들 하고만,
어려운 일은 무조건 자기한테 맡겨~
더욱이 이런 말 까지 하더군요
"넌 공부 대충해도 된다. 내가 나중에 출세 할 거니까"
아 사실은 원래도 대충 하고 있었답니다.
천만에!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죠.
저는 남자의 보호나 받는 그런 여자이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에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사람과 저는 서로를 지켜주는 사이가 될 거예요.
아무튼
오늘로서 한달 쯤 되는데..
그래도 좋은 사람이니까,
한 일주일 정도 무지 잘해주고 헤어지자고 하려구요
2002 10월 제자가]
[선생님,
날아갈 것 같아요.
방금 오빠에게 이별 통보를 했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마음이 약한가봐요..
예상했던 것 보다 좀 질질 끌었습니다.
정말 나쁜 년이라고 말해도 할 말은 없지만,
이렇게 기쁠 수가 없네요. 하하하.
오빠가 그러더군요,
"이렇게 빨리 헤어져 본 적은 처음이야"
제가 대답해 주었습니다.
"난 이렇게 오래 사귀어 본적이 처음이야!"
좀 위로가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오빠 친구들은 벌써 총 소집 되어서
실연을 당한 불쌍한 남자를 위로하며 밤새 소주를 마시고 있습니다.
(사실 핑계 거리일 뿐이죠, 그 사람들은 어떤 이유라도 만들어서 술을 마시고는 하거든요)
내일 2학년 수업에 남자 반 쯤은 안들어 오겠군요.
약간 걱정 됩니다만, 뭐 별일이야 있겠어요.
아 그런데 역시 좀 미안한 마음은 들어요.
좋은 사람이거든요.
저 같은거 보다는 더 착하고 말 잘듣는 여자 만나겠지요.
세상에 그런 여자란 많으니까요.
암튼 저는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달았답니다.
제가 원하는 남성상 같은거지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제 안에 있는 나도 모르는 장점들을 발견해 주는 사람 입니다.
세상에 그런 남자가 또 있을 까요?
2002 11월 제자가
PS.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네요.
보고 싶어요.
PS2.
선생님, 세상엔 변하지 않는게 없는 것 같아요.
영원 할 줄 알았던 것이 변하더라도 사람은 계속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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孤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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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6.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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