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세계경제는 두 번의 커다란 변화의 바람이 있었다. 1953년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한국전쟁의 휴전이 성립된 후 구미 그리고 일본의 경제는 평화체제의 경제구조를 회복하면서 미국이 주도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와 IMF(국제통화기금)의 양축 토대위에서 자본주의사상 유례없는 선진국경제의 장기호황을 구가했었다. 특히 1960년대 그들의 평원에 휘몰아쳤던 바람은 연평균 5%대의 고도성장을 일으키면서 잔풍을 저개발국에까지 흘려보냈다. 이 시기 한국호라는 일엽편주가 물건을 싣고 대양을 건널 때 적도에서 회오리치는 무역풍(貿易풍)은 폭풍우 대신 훈풍이 되어 밀어주었다. 당시 공산품에 관한 한 선진국의 독점분야라는 고정관념을 깨트리면서 한국, 대만, 홍콩 및 싱가포르의 네 마리 용이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바람을 이용했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둔감했던 중남미국가들은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걸었었다.
두 번째 변화는 1973-4년 오일쇼크로 인해 석유가격이 갑자기 4배 이상 폭등하고 덩달아 다른 광물과 곡물가격이 뛰면서 선진국경제는 생산비와 임금 간 상호 상승작용에 의한 소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악성침체의 늪에 빠지자 1929년 대공황 이후 약효가 먹혀왔던 케인즈식 처방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유효수요 진작을 위해 아무리 정부재정을 풀어도 물가만 앙등할 뿐 경제는 살아나지 못했다. 19세기식 자유방임을 주창하던 폰 하이에크와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가 영국의 대처 및 미국의 레이건 등장이후 대세로 자리 잡았다. 내적으로는 작은 정부와 규제철폐 그리고 외적으로는 우루과이 라운드를 통해 WTO(세계무역기구)를 결성함으로써 세계화 바람을 일으켰다. 선진국들이 원가를 절감코자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러시를 이루자 장차 이 지역이 세계의 중심이 될 거라는 신화가 만들어졌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세계화 바람이 휘몰아치지 않았던들 한국경제의 선진국에 근접하는 도약도, 중국과 인도 및 인도네시아 등 거대한 이머징 마켓도 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이 바람은 세계각지에서 사회계층 간 양극화 내지 빈부격차 확대를 초래한 부작용을 동반하기도 했었다.
세 번째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징조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2008년 뉴욕 월가 발 금융위기 이후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6년이 지났는데도 선진국과 개도국 경제가 모두 나쁘지만 개도국 경제가 더 나빠지고 있다. 10년, 20년이 지나도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개도국의 성장률이 해마다 더 둔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21세기 초 7,8년 간 호황기에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며,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다른 신흥국들도 중국 못지않게 성장하여 반세기가 지나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평균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거로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지금은 IMF의 최근 장기전망만 보더라도 불가능할 거로 보인다. 중국의 임금상승 속도가 빠른데 투자가들이 계속 몰려들 수 있을까? 물론 그동안 중국이 축적해온 자본과 기술로 내수시장만 살려나간다 하더라도 중국의 전망은 어둡지는 않다. 인도와 동남아 및 중남미지역은 열악한 인프라와 교육 후진성의 문제로 전망이 밝지 못하다. 그들은 19세기 구미선진국이 대량생산체제에 적합토록 일군 효율적 주입식 교육제도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문맹자와 저지식인 및 저기술자가 아직도 절대다수다. 서구는 주입식과 줄세우기식 교육시스템을 탈피한지 오랜데 한국 같은 중진국들도 여전히 그 고답적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 번째 바람은 개발지역으로, 인구 많은 아시아지역으로 오던 것이 선진지역 쪽으로 역선회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발지역이 선진국 기업들의 아웃소싱 시장역할은 여전히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나 떨어지는 이윤은 선진국 기업들의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기술이 창출하는 부가가치의 1/10도 안 되는 수준으로 줄어든다. 경제를 지탱하던 거대한 장치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며, 컴퓨터와 아이폰의 연결망을 통해 3차원 프린터로 상징되는 디지털 기술이 세계경제를 이끌어갈 시대가 온다. 20세기 기계혁명 이후 21세기 도래하는 디지털혁명은 도대체 어떤 모습으로 세상을 변모시켜 갈까. 인구가 줄고 노령화가 가속되더라도 생산량과 소득을 늘려나가는 혁명이 될 것인가. 지능을 갖춘 로봇을 자유자재로 부릴 줄 아는 노인은 가난해지지 않을 것이다. 센서의 촉수를 단 기계를 작동하며 비전을 실현하는 자들은 더 부유해질 것이다. 빈부격차의 골은 더 깊어질지도 모르겠으나, 그것은 정치가와 정부의 몫으로 남는다. 전 국민에게 기초생활비를 보장하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 반드시 올 것이다. 환경정화문제 또한 유엔의 후원 아래 각국 정부의 몫이다. 1백년 후에라도 부가가치세와 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탄소방출비율에 따라 거래상품과 기업과 개인에게 세금을 매기는 혁신정부의 출현을 고대한다. 대단한 변화의 바람이 이쪽저쪽으로 바뀌며 불어온다 하더라도 무역풍에 돛을 맡기는 무역선은 디지털혁명을 전파하는 주 운송수단이 될 것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