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동재물손괴죄로 기소된 전장연에 무죄 선고
재판부 “전장연의 ‘권리스티커’ 부착 행위, 승객 통행 방해하지 않아”
박경석 대표 “장애인 현실 종합적으로 고려해 무죄 선고한 최초 판결”
2023년 2월 13일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박경석 대표가 말하고 있다. 벽과 바닥에는 ‘권리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1일, 지하철 승강장에 장애인의 권리를 알리는 ‘권리스티커를 부착했다’는 이유로 검찰로부터 벌금형을 구형받았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 세 명 모두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지난해 2월 13일, 전장연은 장애인의 이동권·자립생활·교육권·탈시설·노동권 등의 권리 보장 내용이 담긴 스티커를 서울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 내 벽면 및 바닥에 부착하고, 스프레이를 바닥에 분사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공동재물손괴) 혐의로 전장연 대표를 기소하고,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게는 벌금 500만 원, 권달주 전장연 대표와 문애린 이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에게는 각 벌금 200만 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5단독 지충현 판사는 전장연이 승강장에 스티커를 붙이고 스프레이를 뿌린 행위가 승객의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아 승강장의 효용을 해한 것으로 볼 수 없어 ‘재물손괴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물손괴죄는 특정 물건, 건축물, 차량 등의 재물의 효용을 떨어뜨릴 때 성립한다.
2023년 2월 13일 오전 8시, 전장연이 4호선 삼각지역 승강장에 모였다. 바닥과 벽면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촉구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사진 강혜민
전장연 측 변호인 강미솔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는 “재물손괴죄는 해당 행위가 ‘물건을 사용하는 목적을 해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서 “실제 통행이 통제된 적은 서울교통공사가 스티커 제거를 할 때뿐인데, 재판부는 그것만으로는 통행이 크게 저해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교통공사가 유죄를 주장한 근거 중 하나는 ‘비에 젖은 스티커가 미끄러워 승객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시 비가 오거나 유사한 상황은 없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무죄를 선고받은 박경석 대표는 비마이너와의 통화에서 “처음에 판사가 ‘매우 고민을 많이 했다’고 말하며 선고를 시작했다”면서 “이번 판결은 23년간 장애인들이 지하철에서 권리를 외치고 있음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결한 최초의 사례”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전까지 재판부는 장애인이 왜 이러한 투쟁을 하는지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은 채, 객관적인 행위 사실과 경찰이 제출한 증거만 가지고 장애인들의 권리 활동에 유죄판결을 내렸다”면서 “이번 사건에서 재판부는 서울교통공사의 문제 제기가 과하다고 판단했다. 여태까지는 우리의 주장을 정상참작만 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재판부가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죄가 없다’고 판결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