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부 교육지원청의 법과 양심 도덕과 윤리의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정온/ 대전시민
*이 글은 저를 곁에서 도와주시던 친정아버지께서 2년 전 오전에 코로나19 음성 판정받았다가 다시 양성 확진받은 일로 공부방을 운영하던 제가 대전 서부교육지원청 공무원들에게 당한 일을 정리한 것입니다.
독자들이 볼 때는 중언부언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니 지금까지 당하고 있는 저로서는 정신착란증에 시달리고 있어 알아보기 쉽도록 정리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들과 투쟁해 나갈 것임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코로나 (라틴어로 왕관 또는 광륜)는 내게 티아라(라틴어 교황 의관)가 되지 못하고 가시면류관이 되었습니다.
메가 머신 베가 293(12700톤) 트럭에 짓밟혀 봉숭아 꽃잎처럼 으깨어져도 당신들이 움직이지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하루아침에 제발 귀찮게 하는 인간 좀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본인의 문제는 법뿐만 아니라 시대와 양심, 권력과 법의 취약과 변동성에 관한 것입니다.
2021년 4월 28일 대전 서부교육지원청에 본인이 개인과외 신청을 하러 갔을 때 C 주무관님께서는 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감염질병 법 위반에 걸려서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전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 법이 있을까요? C주무관께서는 답해주기 바랍니다.
< 아라온> 한국 최초의 쇄빙선(시속 3노트:5.5km)처럼 나 정온은 얼음을 깨고 나아가겠습니다. 느리더라도 묵묵히 얼음이 덮여있는 수역을 부수어 항로를 여는 마음으로 대전 서부교육지원청 및 C 주무관과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국가의 녹을 먹는 민중의 지팡이가 민원처리를 그렇게 해서야 되겠는지를. 세금 빨아들이는 기계들인지!
New York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키니 입고 세차하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용인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법과 양심이, 그리고 사회적인 문제의 편차가 얼마나 다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본인이 이 순간 비키니를 입고 큰 마을 아파트 109동 앞에서 세차를 하면 타인을 때린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타인의 물건을 훔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심상 떳떳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나가는 어르신들께 불쾌감을 줘서 할머니들로부터 몰매나 돌을 맞을 수도, 빗자루 세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요망한 것 감히 어디서"라고 하며.
그러나 또 다른 이들에겐 오락거리와 눈요기를 제공할 수도 있으므로 취존으로 인한 양심상의 가치를 조금도 느끼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감사의 댓글과 함께 할아버지들(물론 제게 그분들은 오빠 부대입니다)의 "곱네 고와" 이런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반면에 젊은 여자들로부터는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수도 있고 “미쳤나 봐 불쌍해"라는 동정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도덕적 기준으로 <음란공연 죄>에 해당된다며 경찰차가 뜰 것이며, <풍기 문란죄>로 인터넷이나 유튜브에 가십거리를 제공할지도 모릅니다.
대전 서부교육지원청에 본인이 개인과외 신청을 하러 갔을 때 C주무관님께서는 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감염질병 법 위반에 걸려서 안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성껏 준비해 간 서류조차 확인 안 하셨습니다.
제가 전에 코로나19에 감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런 법이 있을까요? C 주무관께서는 답해주기 바랍니다. 그 후 변호사를 통해 항의하자 행정처리 미완료로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교육청의 최대 권한은 2개월 영업정지인데 7개월이 넘은 시점까지도 안된다고 한 것은 명백히 권력 남용입니다.
<갈마동 비키니녀>란 제목으로 2020년 10월 6일 전국 방송에 일주일 내내 <벌초 가족>이란 제목으로 기사거리를 제공했던 것처럼, 뜨거운 소식, 더 자극적인 이슈로 돈이 된다면 어디든 달려가는 유투버들의 심장을 펄떡이게 하는 벌초가 아닌 <벌츄 virtue(미덕) 여자>라는 작위를 하나 더 하사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무언가 씹기 좋아하는 현대인들에게 안주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기왕 이벤트 하는 김에 대전 서부교육지원청 3층으로 얼음통 들고 올라가서 아이스 버킷까지 함께 할까요? 아이스버킷과 함께 1+1 이벤트 번지점프까지 할까요? 줄 따위는 안 매고. 이런 경우 전에는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위로를 받았는데 법이 바뀌어서 이제 벌금 부과를 받게 된다고 합니다.
도대체 법은 점쟁이도, 미래학자도 예측이 불가능하니 어찌 대처해야 할지 뇌가 하수구에 머리카락 엉킨 것처럼 집요하고도 불쾌한 느낌입니다. 이 정도면 그때 그 시절(2020년 10월 6일부터~) 보다 더 긴 시간 가십거리가 될 수 있을까요?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기자분들께서 1층 2층 3층 놀이터까지. 가득 채우셨습니다. 며칠 전 들은 정보로는 110동 206호 2층 지인 집까지 쳐들어 가 내부 촬영까지 서슴없이 했다고 하네요.
그분은 또 무슨 죄인지? 조성민 선생님 죄송하고 또 미안합니다. 전 생계를 다 위협당하시고 대전 서부교육지원청 직원들의 질문세례와 공권력의 직격타를 몸소 제 대신 지셨으니 죄송하고 미안한 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언제부터 공부방 했냐?”
“둘이 무슨 관계냐? 상호명이 왜 같냐?”
“왜 2층에서 하느냐?” 등등 경찰 취조보다 더 삼엄하고 살벌했지 뭡니까. 거기에다 없는 형편에 과태료 150만 원까지 내시고 , 자존심 상하고 기분 더러웠다고 조성민 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록취록에 남아있다지요.
살수록 더 어렵습니다. 이상합니다. 삶은 예습도 복습도 아닌 실전 밖에 안 되니까요. 미리 코로나 민방위 훈련만 했어도 이렇게 세게 두드려 맞기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시대의 암울을 비 극화한다거나 저항하거나 정치적 목적이나 선동질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본인은 오히려 전 세계의 멸망보다 나 자신의 멸망을 더 두려워하는 쇼펜하우어 식의 철학을 신봉하는 사람입니다.
극단적 이기 주자이기보다 평범한 소시민입니다.
이 시대의 선구자가 되고 싶은 의도도 없고 나설 생각도 없으며, 구원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구루이기보다는 구시대적 발상에 순응하는 구가다 소시민일 뿐입니다. 본인의 삶에 있어서만큼은 사회적 약자를 구하고 비열한 악인들을 응징하는 민족 영웅 소설인 존 스턴 매컬리의 소설 <쾌걸 조로>처럼은 아니어도 <쾌걸 조루>라도 되고 싶은 심정으로 칼을 벼리는 중입니다.
교육청 전 직원이 짜고 치는 고스톱에 일괄적인 답장과, 아니라는 거짓증언과 형식상의 인사말의 반복으로 신명 나게 한판 놀림거리가 된 죄밖에 없습니다. 허망하게 대책 없는 1년 10개월이 지났습니다. 경찰서 모든 조사가 끝난 시점에 전화 시작, 숨소리도 못 내고 있었습니다. 냉동 인간으로 살아온 시간입니다.
아니 낚싯밥으로 준비된 지렁이였습니다. 이승에서의 삶에 대한 답은 다음 생애에서나 가능할까요? 단 한 번의 답변도 주지 않았습니다. 참다 참다 국민 신문고에 올리자 기본 프래임에 맞춘 레디 메이드식의 답장만 그것도 거짓 답변만 받았을 뿐입니다.
네티즌 통신원처럼 들뜨고 신나서 개인정보 계속 올리시던 그분은 뭐하고 계실까요? 마음 편히 잘 지내 시겠죠? 공무원의 신분으로, 더구나 어린 나이에 남을 파멸하는 법부터 배워서 미래가 탄탄하실 겁니다. 누군지 다 알고 있고 개인 정보법 위반으로 고소 가능 하지만 안 하겠습니다.
사유나 인격의 깊이가 얕은 생각으로 가득 차 우리는 때때로 오만하게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반박의 욕구, 내가 남보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잘 안다고 자랑질하고 싶은 생각에 누구라도 팔 각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행복하신지요? 이 시대의 선구자처럼 민원인을 그렇게 해 놓으셨으니.
이 글을 보고 계시는 당신은 몇 번이나 민원인을 그렇게 대하셨을까요?
감히 여쭤봅니다! 본인은 시인 이육사처럼 372 자랑스러운 번호를 받았습니다. 요즘 신세대들은 오징어 게임의 숫자를 떠올리겠지요. 병균 취급당하고 인권 유린에 고통, 또 고통, 아직도 벌거벗겨진 채 버려진 느낌입니다.
날마다 “잊자, 아니 잊지 말자. 아니 잊자. 날마다 되 내 뇌이며 살고 있는 고통을 알기나 하시는지요? 조악한 이 글이나마 내가 없어도 살아남아 이 끔찍한 시대를 비추는 청동 거울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살아 무엇을 남길 것인지!!. 하극상의 시대 양심의 문제는 대숲에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하고 소리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제가 겪었던 고통을 인간의 존엄에 관한 염원을 냉철하게 피력하고 싶었습니다. 모공 하나하나마다 분수처럼 피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입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이 메두사의 뱀 대가리처럼 댕강댕강 잘려나가는 느낌입니다.
법의 변동성은 어떤 점쟁이도 예측불가이며 출렁다리보다 더 요동치는 바람에 안전장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법의 유린에 의해 삶이 유리되어 떠돌았습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는 통념에 딴지를 걸고 싶습니다.
최대한 빨리 모든 게 끝나고 나만의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지난 모든 시간들은 근세 (중세로 잘못 알려진) 시대 <마녀사냥>의 재창조 부활이었습니다.
"마녀 사냥"이라기보다 "마녀 사업"이라는 게 정설이듯이 인권이 없던 당시 공개 처형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오락 거리를 제공해주었던 것입니다. 본인의 가족도 전 국민의 목울대를 간질여 즐겁게 해 주었습니다.
지나간 시간의 보상이 아니라 이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현되지 않기를 바라는 맘으로 진심을 담아 올립니다. 현대라는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마녀사냥으로부터 안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습니다. 2003년 요한 바오로 2세가 마녀사냥을 교회의 잘못으로 드디어 인정했습니다.
피해자들은 전설로만 남았습니다.
단지 코로나라는 이유로 너무 힘들고 먼 길을 걸어야 했고, 다시는 돌아갈 수도 없는 곳으로 이미 쓸려와 버렸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은 돌려주실 순 없지만 하루빨리 끝맺음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짧은 글로나마 초록합니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분명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것도 안 해주고 너무도 당당한 그들을 고소합니다. 대전 서부교육지원청의 K과장님, P주무관님 C 주무관님. K선생님과의 싸움은 생각해보겠습니다.
공자도 길가에서 똥 싸고 있는 자는 가르쳤지만, 길 한가운데서 싸고 있는 이는 피하라 했습니다. 혹시나 제가 고소당할까 두려워 피하는 건 아닌가 오해하실까 봐서요.
가장 심한 가해자이면서 예의상의 사과조차 거부한 자를 가르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흘러 돌아보면 그런 종류의 인간들은 다 그만큼의 삶만을 살고 있더군요.
미세먼지만큼이라도 세상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욕망이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싸워야만 했고 그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고 피할 수 없는 길이었습니다.
그냥 1년 9개월이 아니라 올리브기름 짜듯 틀 아래 깔려 피를 쥐어 짜였던 1년 9개월이었습니다. 당신들의 민원인을 대하는 그런 태도 때문에 고통당하며 살고 있는 민원인을 생각이나 하고 있는지요?
비정상적 고발과 인권유린, 직무유기, 직권 남용, 권력의 남발이 만들어낸 기준과 법 그리고 횡포 앞에서 저는 한없이 무력했습니다. 돌발성과 불규칙성과 변동, 젊고 앙칼진 교육청 직원의 막말은 아직도 달팽이 관에 기생체처럼 달라붙어 있습니다.
“공부 좀 하시지요. 이일 계속하시려면 공부 좀 하세요”
그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 소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조의 말에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이 일(학원)을 계속해야 하니까요. 그래야 이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견뎌 나갈 수 있었으니까요. 이런 시대를 살아본 적이 없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생이 처음이라! 하지만, 다음 생은 반려하겠습니다. (C주문관 님처럼 당당하게)
코로나 확진으로부터 1년 10개월이 지난 2022년 6월 30일 새벽에 아직도 면책받지 못한 정온 감히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