려행기
영 국 을 가 보 다
한 일 성
2016.1
나는 영국에서 10년 세월을 보내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짬짬이 경제적인 주말려행을 즐기다보니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이국의 력사, 지리, 인문에 대한 공부도 적잖게 했다. 즐거운 영국 전역의 려행은 지루한 10년의 고역을 견디고 향수를 달래주는 보약이 되였다.
독자들도 지면을 통해 영국을 려행하면서 조금이나마 영국을 알고 즐거움을 함께 했으면 기쁘겠다.
아래에 영국의 경물을 위주로 간단하게 소개하련다.
1. 영국, 런던
[영국]이란 명칭은 습관적으로 부르는것이지 완전하지는 않다. 전칭은 “대 브리텐 련합왕국”이라 해야 한다.간칭은 “브리텐”, 혹은 “련합왕국”이다. “영국”은 “잉글란드”만 말하는것이며 전체를 말하면 “잉글란드, 스코틀란드, 웨일스, 북아일란드” 네곳이 포함된다. 그러나 이미 습관으로 굳어지다싶이 하였으니 나도 영국으로 부르겠다.
영국국토는 마치 거만한 토끼가 턱을 쳐들고 뒤짐지고 가는 모양으로 비유할수 있다. 인구는 7000만 정도이지만 한때는 전 세계를 쥐고 흔들던 대제국이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유명했었다. 아직도 유럽에서는 큰소리치는 나라이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유럽에서 가장 큰 국제도시이다.인구는 약 860만명이다. 런던은 기원 1세기에 로마인들이 건설했다. 이미 21세기에 들어선 런던은 아직도 유럽금융중심으로 자리잡고있다.
런던하면 “안개의 도시”라 했는데 그것은 옛말이다. 산업혁명시기부터 20세기상반기까지 연기와 안개가 많았지만 지금은 청명한 하늘이고 푸른 도시이다. 연기라고는 나는 곳이 없고 대신 수풀이 우거지고 소구역마다 공원과 록지가 촘촘히 들어앉았으니 악명을 벗을만도 했다.
런던시내(1죤, 가장 중심구역)는 닭알의 노란자위가 두개 있다고 비유할수 있다. 동쪽에 속한 노란자위엔 주로 은행, 증권회사, 무역회사 등 금융중심과 런던탑, 탑다리, 세인트 파울 대성당 등 명물이 있고 서쪽 노란자위에는 버킹엄왕궁, 국회의사당, 트라팔가광장, 대영미술관, 웨스터민스터사원, 대영박물관, 당인거리, 하이드공원,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 및 극장, 과학박물관, 력사박물관 등 많은 명물이 있다.
대런던은 6죤까지인데 나무나이테처럼 뻗어있으며 범위가 크다. 조선족들과 한국인들은 런던중심에서 서남쪽 4죤에 위치한 뉴몰든이라는곳에 집거해있다
기차, 뻐스, 지하철이 발달하여 출퇴근이나 유람에 편리했다.
북아일란드가 안나타난 잉글란드, 스코틀란드, 웨일스의 모양
2. 트라팔가광장
트라팔가광장은 영국의 넬슨 해군제독이1843년 대서양에서 프랑스-스페인(에스빠냐)련합함대를 격파함으로써 세계해상패권을 잡게된 대승을 기 념하여 세운 기념탑광장이다. 52메터 높이의 탑우에는 한팔이 잘리우고 다른 손으로 검을 집고 선 5메터 높이의 넬슨제독의 동상이 서있고 아래쪽네귀에는 트라팔가해전에서 로획한 대포를 녹여 만든 네개의 큰 청동사자상이 엎드려있다.뒤에는 큰 분수가 두개 있고 좌우에 력대의 왕과 장군들의 말탄 동상이 서있다. 주위 담벽에도 왕후장상들과 명인들의 조각상이 가득 서있다.
트라팔가광장은 일명 ‘비둘기광장’이라고 불리운다. 광장에 비둘기먹이를 파는 작은 가게가 있어 구경군들이 먹이를 주는통에 비둘기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그렇게 부른것이다. 사람들이 팔을 벌리고 서면 비둘기들이 머리며, 어깨, 팔에 가득 앉을 때 사진을 찍는다. 후에는 비둘기가 범람하고 동상을 더럽히고 부식시키며 병을 전파한다하여 정부에서 피임약을 먹이고 모이를 팔지 못하게 하자 비둘기가 대폭 줄었다.
이 광장에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면 노르웨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할 대형소나무를 보내주는데 이로써 대형트리가 선다. 크리스마스날 저녁이면 광장에 모여12시 종소리와 함께 낯모를 남녀들이라도 키스를 한다. 친구가 그날 저녁에 가겠다고 하니 다른 친구가 저녁에 이를 닦았느냐고 핀잔하자 그 친구는 “중국 썪두부를 먹고 가겠다.”고 한술 더 뜨는바람에 모두가 웃었다.
사진은 트라팔가스쾌어
3. 국립미술관
바로 트라팔가광장 뒤편에 런던 최고의 미술박물관이 자리하고있다. 여기에는 2200점이 넘는 그림이 영구전시되고있다. 1824년 죠지 4세의 38점 회화작품을 기초로 점차 확대한것인데 13세기 지오또부터 20세기 피카소의것에 이르기까지 유럽미술의 핵심이 되는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이 미술관의 최대강점은 네델란드(화란), 이딸리아의 르네상스시대 및 17세기 스페인회화이다.
여기에는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성모와 아기예수”, 색채와 질감이 세밀한, 뛰여난 솜씨를 보이는 고대회화의 선구자 잔 반 아이크의 “아놀피니결혼식”, 녀성누드화로는 뛰여난 벨라스케스의 유일한 작품 “로크비 비너스”, 인상파활동에서 영향을 받은 최고의 화가중 한명인 르누아르의 “우산” 등 걸작들이 많이 전시되여있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말타고 꽃구경하였다. 동쪽모퉁이에는 촬영작품전시실이 있었는데 거기도 가봤다. 인상깊은것은 중로년남성들의 라체사진이였다. 몸이 난 사람, 배가죽이 처진 사람, ‘시든 고추’가 배속에 거의 들어가버린 남자... 무슨 멋인가? 마누라들이 알았으면 야단맞겠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영국대영미술관
4. 버킹엄궁전
버킹엄궁전은 트라팔가광장에서 서남쪽으로 좀 가면 나타난다. 현재 90이 다 된 엘리자베스2세녀왕이 사무보고 거주하는 궁전이다. 1837년 빅토리아녀왕이 거주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몇대의 왕의 궁전으로 사용되고있다.
대체로 4합원식으로 된 궁인데 앞마당에서 근무병들이 지키고있다가 점심때쯤 교대의식을 하는데 볼만하다.검은색 곰털 큰모자를 쓰고 붉은 웃옷, 검은 바지를 입고 어깨에 총을 메고 나팔을 불고 북을 치며 세인트 제임스궁에서부터 버킹엄궁에 와서 교대의식을 하는데 관관객들이 너무 많아 키작은 우리들은 아무리 발끝을 세워도 볼수 없었다. 대문앞광장에는 빅토리아녀왕조각과 분수가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들이 뿜겨져나온다.
8.9월에는 대외에 개방하여 누구나 들어가 궁전안을 구경할수 있다. 궁전구역은 정면쪽 방들을 제외한 기타 왼쪽, 오른쪽, 뒤쪽, 뒤마당 등 범위에서 구경할수 있다. 안에는 음악실, 명화들로 가득찬 미술관,공식행사때 쓰는 왕관의 방, 화려한 침실, 만찬실, 휴식실, 금은보석전시실 등 왕궁답게 사치하고 우아하고 아름다움으로 가득 꾸며져있었다.
뒤마당에는 아늑한 호수, 나무들, 예쁜꽃이 핀 화원이 펼쳐져있었다.
영국에서 녀왕은 화려하나 실권이 없는 상징인물이다. 하지만 이미 독립한 원 식민지나라들에서는 아직도 엘리자베스2세를 자기들의 왕으로 모시고있다. 해마다 영련방운동대회를 개최하는데 모두다 녀왕을 모시는 나라들이다.
녀왕은 나라의 정신기둥으로, 전통지킴이로, 관광목적으로 존재하는듯 했다.
영국의 대부분국민이 왕의 존재를 찬성한다. 세계에서 국회가 제일 먼저 성립되고 민주주의의 선두국가인 영국이 왕권을 보류하니 아이러니한것 같다.
왕궁주위에는 제임스공원, 그린공원, 하이드공원, 웰링톤아치, 각국 대사관 등 볼만한것들이 많다.
버킹엄궁전앞
5. 국회의사당
굽이진 템스강서안에서 있는 국회의사당은 버킹엄궁전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자리에 11세기후 웨스트민스터궁전이 있었는데 소실되고 웨스트민스터홀만 남아 1834년 새 건물과 합쳐 지어진것이다. 16세기이래로 이곳에는 상원과 하원이 주재하고있었다. 하원은 여러 정당들에서 선출한 의원들로 구성된다. 다수의 하원이 있는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고있으며 그 지도자가 수상이 된다. 상원의 경우를 보면 귀족, 법률가, 주교와 대주교 등으로 구성된다. 법안은 법률화되기전에 량원에서 토의된다.
웨스트민스터홀안에 계단식으로 량측에 꼭 같이 의자들을 놓았고 가운데 통로 한끝에 있는 큰 테이블옆에 수상이 서며 여당과 야당이 서로 변론하고 수상에게 질문한다. 수상은 책상우의 법전에 손을 대고 질문에 해답한다.
한국이나 일본, 대만 등 나라의 국회에서는 자주 닭싸움이 벌어지는데 영국신사들은 그저 반대당의 발언에 흠집이 있으면 “우-”하며 야유한다. 사실 야유당하는것만으로도 수치심이 생길것인데 동방의회들에서는 깡패모임을 하는듯 하는 인상이다.
옛날에 가이 폭스라는 악당이 국회의사당지하실에 폭탄을 장착하고 폭파시키려하다가 잡혔다. 지금도 이 일을 잊지 않기 위해 해마다 11월이면 불꽃놀이를 한다.
의사당건물에서 가장 눈에 뜨이는것은 14톤무게의 종인 빅벤이 있는 종탑이다. 1859년이래 끊임없이 그리니치천문대의 표준시간대로 시간을 알리고있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인데 영국에서 가장 비싼 건물이 국회의사당이라 한다. 길건너 네모진 파리아멘트광장에는 조각군상들이 있는데 거기에 처칠, 만델라 등 명인들의 동상이 서있다.
웨스트민스터다리에서 본 국회의사당건물
6. 웨스트민스터대사원
국회의사당 길 건너편에 유명한 웨스트민스터대사원이 있다. 최초에 10세기에 지어졌지만 1245년 헨리3세의 명령으로 프랑스식 고딕건축물로 다시 세워졌다. 이후에 영국왕의 무덤들이 보관되고 새 국왕의 대관식장으로, 왕실의 결혼식장으로 쓰였다.
이곳은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로서 영국에서 가장 높은 고딕양식의 본당에서부터 놀랍게 복잡한 헨리7세의 례배당까지 아주 다양한 양식을 가진 건물이다.
반은 국교회이고 반은 국립박물관인 이 대사원의 복도와 주랑에는 정치인부터 시인에 이르기까지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기리는 기념비와 특이한 무덤 등이 가득 차있다.
대관식은 1000년이 넘은것으로 정복자 윌리엄왕이 크리스마스에 왕관을 쓴 1066년이래 계속 이 성당에서 열렸다. 지금의 엘리자베스2세녀왕의 대관식은 1953년 최초로 텔레비죤으로 중계하였다. 아직도 대관식에 왕관을 쓰고 앉았던 수수한 나무왕좌가 본당홀에 놓여있다.
웨스트민스트사원 서쪽 정문
7. 화이트홀과 다우닝가 10번지
화이트홀은 거리이름인데 여기에 정부건물과 기존교회건물이 집중된 력사적인 곳이다. 국회의사당에서 북으로 조금 가면 나지는 이 거리는 영국수상의 관저 다우닝가 10번지라는 유명하고 아주 작은 골목이 있다. 이 평범한 4층 건물에서 1732년부터 지금까지 영국의 력대수상들이 사무보고 가족들과 함께 거주하고있었다.
좀 더 북으로 가면 기마근위대가 투구를 쓰고 붉은 외투를 입고 칼을 들고 말을 타고 대문을 지키는 멋진 풍경이 나진다. 이 길 량켠에는 국방부 등 정부청사들이 늘어서있고 길가운데에 왕들이 말탄 조각상이 서있다.
계속 북으로 더 가면 트라팔가광장, 국립미술관이 나지고 더 올라가면 당인거리도 갈수 있다.
화이트홀거리에서 볼수 있는 기마근위대 병사
8. 당인거리
당인거리는 내가 영국에 첫발을 디딘 첫역이다.
원래는 상류층의 거주지였던것이 가구,양복업자들의 근거지가 되였다가 다시1960년대 홍콩인들이 들어오면서 음식점, 선술집, 나이트클럽, 극장,매춘굴이 함께 한 곳으로 되였다. 그러나 중국음식을 맛볼수 있는 향긋한 거리로 소문높다. 때문에 영국인이나 외국관광객이 항상 북적이는 명소이다.
음력설이면 “중국인새해”라 하여 인산인해여서 발디딜 틈이 없다. 작은 거리에 색기와 붉은초롱이 가득 내걸리고 주련이 여기저지 붙어있고 폭죽이 터지고 하여 명절의 기분이 난다. 거기에 사자춤, 룡춤을 추고 징과 북을 치고하니 중국에 온 느낌이 든다.
영국의 화교와 중국인들은 대략 20여만명이라 한다. 대부분 음식엄에 종사하고 더러는 장식업에 뛰여들고있다.
내가 방금 영국에 갔을 때 당인거리는 짝퉁안마사들이 접의자 들고 유격전안마를 하느라고 벅적거렸다. 한번에 5파운드를 받고 어깨며 팔을 대충 주물러주고 중의마사지라고 속이며 너도나도 경찰의 눈을 피해 숨어다니며 돈을 벌었다. 마치 연길 서시장에서 도망다니는 보따리행상과 흡사했다.
음력설때의 당인거리
8. 대영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공중박물관인 대영박물관은 1753년에 의사였던 한스 슬로엔경의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설립된것이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을 거쳐 수집품, 기증품, 구입품이 더해져 수천년동안의 세계의 문화를 포함하는 귀중한 공예품을 많이 소장하고있다.
남부인도에서 나온 힌두교의 신인 쉬바 나타라자(1100년) 청동상, 애급의 기원전 30년 미이라, 메히꼬 마야문명을 보여주는 조각, 희랍 아테네 판테온에서 나온 기원전 5세기 부조(浮雕-박물관에서 가장 유명), 4세기 로마시대 은제대형접시, 7세기 복음서필사본 등 진귀한 보물, 금,은,보석, 무기,생활도구 등 없는것이 거의 없었다. 여기에는 중국관, 한국관, 일본관도 있는데 중국관에는 중국에서 보기 힘든 골동품과 보물이 가득하며 원명원에서 가져온 금도금한 단지들도 있었다.
옆에 붙은 4합원 부속건물 가운데 마당에 둥글게 지은 대영도서관이 있는데 칼 맑스가 여기에서 자본론을 쓸 때 사용하던 수수한 책상과 걸상이 놓여있다. 의자밑에 패였다던 자리는 없었다. 옆의 책장에는 그가 쓴 자본론 영문판이 꽂혀있었다.
대영도서관 서쪽 가까운, 당인거리 북쪽 주택구에 맑스가 살던 세방이 있는데 5층집 3층인가에 밖으로 자그마한 기념패쪽이 걸려있다.
런던 북쪽 3죤쯤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거기에 무산자의 수령이신 맑스의 묘비가 서있다. 맑스의 두상조각상에 “전 세계 무산자는 단합하라! ‘WORKERS OF ALL LANDS UNITE’”라는 비문이 금박글씨로 새겨져있다. 내가 있을 때 영국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을 선정할 때 맑스는 2-3위에 들었다.
맑스묘비에 화환을 놓고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유럽사람들도 아직 맑스를 기리고있다는 증거이다.
대영박물관 근처에는 또 런던대학도 있다.
런던의 맑스묘비앞에서
대영박물관의 신개념 전시물
10. 런던금융중심
런던 금융중심지역을 시내(CITY)라 하는데 옛날부터 런던의 중심부였다. 2천년전에 로마인들이 무역거래소를 세운후 주민구는 적고 은행, 증권회사, 무역회사, 교회, 려관 등이 많이 집중됐다. 2차세계대전때 독일군에 의해 심하게 폭격을 당했으나 다시 복구되여 훌륭한 명물들이 많이 건설되였다. 여기에는 세인트 파울(예수 수제자 이름)대성당, 은행박물관, 런던탑, 탑다리 등이 볼만한 명소이다.
시내는 이상하게도 보통사람들이 마음대로 다니는데 영국녀왕이 이곳에 오자면 런던시장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세인트 파울대성당이 유명하다. 1666년의 런던대화재는 중세에 지은 이 성당을 페허로 만들었다. 웅장한 바로크양식의 대성당은 17세기,18세기 사이에 다시 지어졌는데 수많은 정부의식을 위해 쓰이였다. 113메터높이의 정교한 돔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850톤에 달하는 꼭대기등불, 높은 층우에 있는 스톤갤러리(돌조각상들), 벽에 대고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가 정반대편에서 명확하게 들리는 특이한 음향효과를 가진 휘퍼링갤러리 등이 있다.
대형아치와 둥근돔이 련속된 본당은 지금도 례배를 보는곳이다. 한쪽에서는 례배를 보고 관광객들은 조용히 여기저기 구경한다.
런던시내 은행박물관 근처
11. 타워브리지(TOWERBRIDGE)
탑식다리-타워브리지는 빅토리아시대의 기술의 개가로서 1894에 완성되였는데 런던의 상징으로 된다. 두개의 고딕식탑에는 커다란 배가 지나다닐수 있게 다리를 들어올리는 장치가 들어있다.이 탑들은 철제지지대와 그를 받치는 석조물, 그리고 두개의 높은 도보로로 되여있다. 탑웃쪽부분에는 다리건축에 얽힌 사연을 보여주는 박물관, 동영상실, 상점 등이 있으며 탑과 탑사이에 긴 주랑이 두개 걸쳐져있는데 런던시내, 템스강을 구경할수 있고 그림, 사진들을 감상할수 있다.
1976년에 전기장치로 다리를 들어올리기전에는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삼았다.지금도 템스강으로 오가는 돛배나 큰륜선이 지나갈 때면 다리가 올라가는데 이때를 기다려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세계에서 첫손 꼽는 다리가 이 타워브리지일것이다. 보통 승강기로 탑다리우를 오르는데 300개 계단을 밟으며 꼭대기에 오르는 사람도 있다.
런던의 상징 타워브리지
12. 런던탑(TOWER OF LODEN)
정복자 윌리엄은1066년에 왕이 된 직후 이곳에 템스강어구에서 런던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보호하기 위해 목조성채를 지었다. 1097년에 견고한 석재로 가운데에 백색탑을 세웠는데 높이가 27메터로 당시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였다. 하여 지금도 런던탑이라 한다. 이 탑은 왕실의 거주지, 무기고, 보물창고, 례배당, 반역자를 가두는 감옥 등 두루 쓰이던 유명한곳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고문을 당했고 에드워드4세 상속자들(두 아들)과 엘리자베스1세여왕과 자매로서 자리를 다투던 메리녀왕도 여기에서 처형당했다.
오늘날 관광객이 많은곳인데 력대왕들의 왕관과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가 여기에 전시되여있다. 타워브리지 바로 옆에 있는 이 런던탑에는 템스강입구에 있는데 웨스트민스터홀에서 재판을 받으러 오는 죄수들이 드나드는 물밑창살문-반역자의 문이 있고 튜더시대 국왕의 공식관저가 있으며 위병숙소,감방, 사무실 등이 있다. 마당에는 헨리8세의 6명 부인중 두명과 엔볼린, 캐더린 하워드를 포함한 일곱명을 죽인 잔디밭처형장이 있다.
가장 유명한것은 6마리의 갈까마귀이다. 갈까마귀는 영국의 국조이다. 이들이 탑을 떠나면 왕국이 멸망한다는 전설이 있어 보호되고있는데 우리 나라 까마귀보다 별 다르지는 않은데 좀 크고 살찌고 까마반지르르하다. 그럴수 밖에, 전문사육사가 날마다 닭고기를 날것으로 대접하는데 여윌리가 있겠는가?
런던탑의 수위들도 이곳에서 사는데 42명이나 되며 제복은 튜더시기복장이여서 옛맛이 다분하였다.
런던탑 길건너에서
13. 하이드파크와 켄싱턴가든
하이드의 옛날 정원은 1536년 수도원분해시기 헨리8세가 갖고있던 웨스트민스터대사원의 일부에 속했다. 제임스1세는 17세기초에 이 공원을 일반에 공개했고 곧 런던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공중장소로 되였다. 불행히도 이곳은 결투하는 사람들과 로상강도들이 많아서 윌리엄3세는 300개의 등을 주변에 달았는데 이로써 영국에서 가장 먼저 야간에 등을 켜는 거리가 되였다.
1730년 캐롤라인녀왕이 웨스트번강에 댐을 쌓아 인공호수 서펜타인호를 만들었다. 19세기 중기에 트라팔가해전에서 프랑스를 이긴것을 기념하여 이곳에서 전쟁재연을 하였다.오늘날 서펜타인호는 보트를 타고 수영을 즐기는 곳이 되였고 로튼로우라는 길은 승마용거리가 되였다.
이 공원은 또한 정치집회의 장소인데 북동쪽에 있는 연설가의 코너에서는 1872년부터 오늘날까지 누구든지 일반대중에게 연설할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대중을 흡인하고있다.일요일에 특히 많은 연사들로 붐비며 많은 괴짜들이 나와 자신들의 관점과 계획을 발표한다.
하이드파크옆에는 켄싱턴가든이 붙어있는데 원래는 1841년에 일반에 공개된 켄싱턴궁전의 자리이다. 이곳은 1690년대부터 죠지3세가 버킹엄궁전으로 옮겨간 1760까지 왕실의 주요거처였다. 오래동안 이곳에서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었다. 1714년 앤녀왕이 과식으로 인한 중풍으로 여기서 사망했으며 1837에는 켄트의 빅토리아공주의 삼촌인 윌리엄4세가 갑자기 사망하여 빅토리아가 녀왕에 올랐으며64년간 왕위에 있었다. 궁전의 절반은 아직도 왕실의 거처로 챨스왕세자가 살고있다. 1999년 내가 런던 히드로공항에서 런던시내로 들어갈 때 챨스의 원 부인 다이애나왕세자비가 도버터널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여 켄싱턴가든철대문에 애도의 화환과 꽆묶음이 가득 쌓인것을 보았던곳이다.
하이드파크의 동남쪽코너에는 웰링톤아치가 있다.워털루전투에서 나뽈레옹을 격파하고 대승한 웰링톤장군을 기념하여 세운 개선문이다. 주위에 외국대사관이 몰려있다. 공원 남쪽변두리 가운데쯤에는 빅토리아녀왕 남편이였던 알버트공의 금빛조각상이 있는 탑이 있고 길남쪽에 원형 알버트극장이 있으며 주위에 런던제국대학, 자연사 박물관, 력사박물관,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이 모여있다.
웰링톤아치
알버트기념탑
14. 박물관군체
먼저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에 들어가봤다. 미로같았고 놀라왔다. 이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풍성하고 다양한 여러 시대와 문화에서 온 정교한 응용예술수집품이 있었다. 금은보석기물은 말할것도 없이 많았고 컨스터블이 그린 닥마텐장화, 이슬람의 자기제품, 인도가 아닌 다른 나라의 훌륭한 인도예술수집품, 중국예술품, 12세기후반에 만들어진 콜롱에서 만든 엘텐버그 납골상자(중세 걸작 수공예품으로 소문높음), 여러가지 조각품, 무기, 옷수집품, 도자기, 명화 등등 보물들이 너무 많았다.
관관객이 흘린 말을 엿들을라니 영국의 박물관들만 팔아도 영국사람들은 10여년 가만히 놀면서도 잘 살수 있다고 한다. 보물이 어찌나 많던지 마치 아라비안전설에 나오는 보물동굴에 들어선것 같았다.
길건너에 있는 과학박물관을 들어가보았다. 고대 희랍과 로마시대의 의약품부터 우주탐험과 핵융합까지 모든것이 포함되여있었다. 많은 수집품들은 직접 작동하면서 구경하게 한다. 전시품중 뛰여난것은 항공분야로서 모의비행기, 1969년에 우주인을 달에 보내고 돌아온 상처난 아폴로 10호 등이였다. 발명품들로 증기기관, 수송렬차, 자동차, 오토바이, 텔레비죤, 컴퓨터, 재봉침, 치과의기 등 다종다양했다. 이런 발명은 영국에서 생겼으나 후에 미국에서 소문난것이 많다.
다음 그 옆의 자연사박물관을 보았다. 이 대형성당처럼 생긴 건축물은 건축학적으로 화려하고 뛰여난 건물로 이름이 높다. 전시품들은 생태학, 행성의 진화, 종의 기원과 인간의 발전 등 기본주제를 다루고있으며 가장 최신기술과 전통적인 체험 등이 조화를 이룬다.화산폭발, 지진체험, 열대우림, 빙하 그리고 대형 공룡뼈(1억5천만년전) 등도 볼수 있었다.
대형공룡뼈
빅토리아와 알버트 박물관안의 예술품들
15. 런던아이(LODENEYE)
세계에서 가장 큰 런던아이는 국회의사당 근처 웨스트민스터다리를 건너 있다. 채바퀴높이가 가장 크고 사람이 타는 눈과 같이 생긴 집의 크기도 가장 커서 20여명이 탈수 있다.런던아이를 타면 런던시내가 멀리까지 환히 보이고 구중천에 오른듯싶다. 한바퀴 도는데 반시간가량 걸린다.
세우기전에 템스강에 걸쳐 눞혀놓았을 때 너무 커서 어찌 세우나 모두들 걱정이 많았다. 런던을 보는 눈이요,런던을 지키는 눈이라 하여 런던아이라 이름지었다. 그만큼 런던아이를 타보지 못하면 런던에 가봤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할 정도로 시야가 탁 트이는것이 좋았다.
그 옆에는 런던수족관이 있어 들어가보았다. 해양세계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에 취해 시간가는줄 모르고 지하에서 헤맸다. 상어며 각종 이름모를 이쁜 고기들,조개, 해초 등 그야말로 룡궁이 여기구나 하며 감탄을 쏟았다.
대형런던아이를 배경으로
16. 마담 투소스와 샤일록 흠즈 박물관
투소스부인은 프랑스대혁명의 희생자얼굴을 밀랍인형으로 만들기 위해 영국에 건너와서 1835년에 런던 베이커거리에 자신의 작품들을 전시하는 장소를 마련했다. 지금은 왕실의 인물이나 정치인, 배우, 대중가수, 운동선수, 명인들의 상을 실물과 꼭 같게 만들어 전시하고있는데 꼭 가보는것이 좋다. 여기에서 레닌,마르틴, 루터킹, 쉑스피어,파불로 피카소, 축구왕 베컴, 챠플린, 마리렌 몬로, 각국의 수상 등 수많은 명인들을 만나볼수 있게 해준다.
공포의 방은 프랑스대혁명실패때 희생자들의 처형, 고문 장면을 재현하였는데 어두컴컴한데다 섬뜩하게 귀신까지 나타나 녀성들은 혼자 절대 가지 말것을 권고하는곳이다.
후에 추가된 피날레는 런던의 력사를 보여주는데 1666년 대화재장면부터 1960년대까지의 사건들을 택시를 타고 지나면서 살펴볼수 있는곳이다.
플아네타리움은 1958년에 지어졌는데 놀라운 별들과 레이저쇼룰 볼수 있는곳이다.
샤일록 흠즈 박물관은 바로 그 근처에 있다. 아서 코난도일경이 지어낸 유명한 탐정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샤일록 흠즈는 실재한 인물처럼 존경받아 박물관까지 세웠다. 소설에서 샤일록 흠즈는 베이커거리 221B번지에 살았던것으로 되여있는데 실제로는 이런 주소가 없다. 흠즈의 방들은 빅토리아시대 낡은 건물을 다시 꾸민것으로서 소설과 근사하게 만들었다. 아래층 기념품상점에서 흠즈에 관한 책과 테이프, 디스크, 담배파이프, 확대경, 모자, 목도리, 맥주잔 등 여러가지 기념품을 살수 있다. 나도 흠즈상이 달린 확대경을 하나 샀다. 어쩌면 그 확대경으로 물체를 보면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신비가 생길것 같은 기분이였다. 밀랍인형관옆이 바로 베이커지하철역인데 역문밖에 흠즈의 동상을 세웠다.
나뽈레옹 밀랍인형과 마주 서서
나치
17. 리치몬드파크와 큐가든
리치몬드파크는 대단히 너르다. 과장해서 연길시만큼 하다.이렇게 큰 자연공원이 대런던범위내에 속해있는데 놀랍다.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고 수풀도 있고 호수도 있으며 궁전도 있고 여러갈래의 차길도 많다.템스강이 그 옆으로 흘러지나 런던시내로 향한다. 17세기 중기 크롬웰 공화정에 의해 처형당한 챨스1세왕의 사냥터였던 이 리치몬드가 지금은 꽃사슴떼가 자유로이 뛰노는 공원이 됐다. 사슴들은 어른이 먹이를 주러 가면 피해 달아나지만 어린이들이 주면 얌전히 받아먹는다.
공원안에는 “이싸벨라화원”이 있는데 주로 여러가지 꽃들로 대궐을 이루었다. 여기에 진달래와 한과에 속하는 두견화가 연분홍바다를 이루는데 고 향의 진달래를 보는것처럼 반갑다. 공원의 호수마다엔 물새들이 자유로이 노니는데 어떤 호수에는 백조, 기러기, 물오리 등 큰새들이고 어떤 호수에는 원앙새와 같은 이쁜 새들이 살고있다. 새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다가와서 먹이를 달라고 조른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세상이다.
차를 몰고 한바퀴 도는데 꽤 시간이 걸리지만 지루하지 않고 시원한 바람과 시선을 끄는 경관에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가 풀린다.
큐가든은 리치몬드 남쪽 강뚝에 가까이 있다. 런던식물원이다.정원에서는 영국에서 자랄수 있는 거의 모든 식물과 열대 희귀한 식물을 거의 다 키우고있다. 특이한것은 여러해만에 피는 괴이한 큰 꽃인데 이름은 구약나물이라 한단다. 붉은색을 좀 띤 나팔같은 커다란 이 꽃은 키가 2메터이상이고 꽃은 48시간 피는데 꽃향기가 시체썩은 냄새가 나서 “시체꽃”이라 한다. 사람들은 코를 싸쥐면서 이 썩은 냄새를 맡으러 모여든다. 하도나 희한한 꽃이라 보기가 여간치 않으니까.
리치몬드의 꽃사슴떼
큐가든의 구약나물꽃
18. 햄프톤코트팰리스
런던시 서쪽에 있는 햄프톤코트팰리스는 옛왕궁이다. 요크의 대주교이며 막강한 권력의 주목사였던 울시 추기경이 1530년대에 왕위를 이어받아 헨리8세왕이 된후 새로 확장한 왕궁으로서 유명하다. 1690년대에는 딸 메리녀왕이 더 확장했다. 궁전의 바깥은 튜더양식과 영국의 바로크양식이 혼합되였다. 내부에는 왕의 아파트와 그레이트홀과 같은 튜더왕조의 고전양식의 방들이 많다. 안에는 왕의 수집품, 즉 가구,그림, 직물류 등으로 치장하였다.
밖에 있는 장대한 라임나무거리, 이국적인 식물수집품과 전형적인 화단이 있는 바로크양식의 정원이 볼만하다. 이 궁전에는 전설이 있다. 헨리8세의 네째부인이 미움을 받아 리혼하려고 로마 카톨릭교황에게 허락할것을 청구하였는데 교황이 반대하였다. 헨리8세는 노하여 부인을 죽게 마들었고 이 일로 로마교황과 수틀리게 되였다. 헨리8세는 아예 영국에서 로마카톨릭을 철페하고 교회들과 수도원을 수많이 파괴했으며 자기절로 예수그리스도교를 만들고는 자기가 교주가 되였다. 그때로부터 기독교와 천주교로 파가 나누어졌다. 기독교는 신부가 아니라 목사가 설교하고 결혼, 리혼할수 있으며 신부의 검은 도포를 입지 않고 평복을 입게 했다. 그후 기독교는 영국의 대외확장과 더불어 전 세계에 더 널리 퍼졌고 영향력이 더 커졌다.
햄프톤코트에 가면 지금도 헨리8세에게 죽음을 당한 페비가 귀신으로 현신하여 돌아다닌다는 설이 무성하다.
이 궁전은 헨리8세와 더불어 소문높으며 제일 화원이 아름다운 궁전으로 명망높
햄프톤코트팰리스의 가든의 일부
19. 윈저궁
런던시 서쪽교외에 자리한 윈저궁은 엘리자베스2세녀왕의 별궁이다. 영국에서 오래동안 왕실의 거주지였던 윈저성은 원래 목조건물이였는데 1070년 정복자 윌리엄이 런던의 서쪽 접근로를 지키기 위해 세운것이다. 그는 이곳이 높은곳에 위치해있고 런던탑의 그의 기지에서 하루면 올수 있는곳이라는 리유로 이곳을 성새로 선택했다. 그후 왕들은 왕실의 변화하는 기호를 잘 보여주기 위한 기념비로 변경하였다. 죠지5세는 이곳을 아주 사랑했다.
윈저성은 1992년 화재로 손실됐으나 다시 수건하여 아름다운 별궁으로 되였다. 지금 녀왕과 가족들은 주말에 자주 이곳에 오군 한다.
여기에는 알버트례배당, 세인트 죠지 례배당, 원형탑, 1855년 나폴레옹3세의 방문을 위해 만든 침실, 의식용방, 워털루전투에서 나폴레옹1세를 패망시킨 장군들의 초상화가 있는 워털루실, 미켈란젤로가 그린 백악질판화-”예수의 부활” 등 그림전시실, 응접실, 메리녀왕의 인형실, 헨리8세의 문 등이 있다.
여기에서도 검은 곰털모자를 쓰고 총을 든 위병들이 지키고있다. 방어성벽이 높고 튼튼하여 외적을 막기 좋은 성새이자 멋진 별궁이다.
윈저별궁마당안에서
20. 그리니치천문대
런던 동쪽 교외에 있는 그리니치천문대는 구왕립천문대 옛터로서 지금은 천문대박물관이 되였다. 1884년부터 그리니치시간을 세계통일시간으로 하였다. 둥근 지붕, 그 안에 있는 대형천체망원경, 각종 시계, 천문연구기구 등 볼만했다. 여기에 세계 경도선의 0도선표시가 있다. 자오선의 자오면이 있어 여기서부터 동경, 서경이 갈린다. 경도선 15도마다 1시간씩 차이난다. 영국과 중국은 8시간 차이난다. 런던이 밤 12시일 때 연길(북경시간)은 오전 8시이다.
0도자오선을 벽에 표시하였고 땅에도 표시하였는데 모두들 자오선금을 가로타고 서서 사진을 찍는다.
템스강이 옆에 있으므로 배를 타고 가도 되고 기차. 뻐스, 지하철로 갈수도 있다. 주위에는 대공원이 형성되였고 언덕에서 내려다보면 런던 동쪽시내와 템스강, 국립해양박물관 및 해군대학 등 경치들을 볼수 있다.
템스강가에는 중국과 차무역을 하던 큰 돛배가 있는데 장관이다. 중국글로 “茶”라고 쓴 나무상자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여기서 좀 서북으로 가면 새 천년맞이 “밀레니엄돔”이라는 커다란 둥근 지붕의 건물이 있다. 안에는 큰 공연장, 화원, 음식점, 상점 등과 다양한 레저시설까지 갖추어져있다. 이는 2000년을 맞으면서 건설한 거작이다.
그리니치에서 0도자오선표시를 가로 탄 모습
21. 도버와 마게이트
도버는 유럽에서 가장 가까운 해협에 위치한 중요한 항구이며 지금은 도버해저터널로 영국-프랑스를 직통하는 어구지이다. 다이애나 전 영국왕세자비가 교통사고로 죽은것이 이 도버 바다밑 터널이다.
이곳의 백색절벽은 돌아오는 려행자들을 끌어모는곳이다. 전략적위치와 커다란 자연항때문에 늘 극가방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고대 색슨인들의 성채가 있던곳에 지어진 도버성은 높은 절벽우에 자리잡고있는데 헨리2세가 이 성을 처음 짓던 1198년부터 던크릭철수작전때의 사령부로 씌이던 2차세계대전때까지 이 마을을 지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우리 친구 몇은 도버성을 구경하고 바다가에서 고등어낚시질을 하였다. 바람때문에 파도가 높아 몇마리 잡지 못했으나 재미는 좋았다. 처음 바다낚시라는걸 해보았다. 낚은 생선으로 회를 쳐 먹었더니 음식점에서 먹던것보다 생신해서 훨씬 맛있었다. 가지고간 위스키에 싱싱한 바다생선을 즐기느라니 신선인들 이런 락이 있으랴는 감회가 든다.
마게이트는 내가 영국에 가서 처음 본 바다였다. 물맑은 해변, 석회석의 흰바위, 바닥에 자갈처럼 쭉 깔린 홍합조개, 여러가지 해초들, 참으로 신기한 바다였다. 우리는 신사옷을 망가뜨리면서 해변에서 조개를 주었다. 돌아가서 조재를 삶아먹으니 바다의 싱그러운 향이 진동하였다.
마게이트해변에서 조개를 주으며
22. 리즈성
호수에 둘러싸인 리즈성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채중의 하나이다. 런던 동부, 도버로 가는 길에 있다. 12세기초에 짓기 시작한 이 성에는 계속 사람이 살고있었다. 리즈성은 1278년 아첨하는 일부 신하들이 에드워드1세왕에게 바친 선물이다.
후에 헨리8세가 차지했는데 무척 좋아했으며 런던의 전염병을 피해서 자주 여기에 와 있었다. 16세기후부터 헨리의 실물크기의 흉상이 여기에
모셔졌다. 에드워드6세는 아일랜드인들을 순화한 공으로 1552년에 엔서니 세인트경에게 이 왕실의 소유권을 넘겼다. 이 성 정원에는 재미있는 미로가 있다. 지금의 성은 1930년에 다시 수건, 확장된것이다.
아름다운 리즈성
23. 브라이튼과 이스트본
런던에서 가장 가까운 남쪽해안휴양지인 브라이튼은 가장 인기있는곳으로서 마게이트나 다른 해변보다 훨씬 세련되고 정돈되였다. 이곳은 배우나 예술가들도 많이 찾는데 로렌스 올리버에는 그의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다.
18세기 중반에 해수욕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곳은 영국최초 해변휴양지가 되였다. 이곳의 분위기는 곧 1820년 죠지4세인 웨일스왕자의 마음에 들었다. 1785년 그는 몰래 홀몸인 피츠허버트부인과 결혼했는데 이곳에서 서로 즐겼다. 그는 해안근처의 농가로 이사해서 여기에 사치스런 파티에 알맞는 동양식(이슬람식)궁전을 지었다. 1850년 빅토리아녀왕이 이 궁전을 브라이튼마을에 팔았다.
이 로얄 파빌리언궁전은 아주 멋진 궁전이다. 안에는 서양의 무서운 룡이 그려져있고 미술관, 빅토리아녀왕의 침실, 금색벽화가 있는 음악실, 알현실, 연회실, 대주방, 그물눈을 넣은 힌두식 돔창문, 중국식벽지를 바른 살롱, 애급의 긴의자 등이 눈길을 끈다.
바다가에는 유명한 팰리스피어가 있는데 1899년에 지어진 이 빅토리아후기시대의 긴 선창은 지금 방문객들을 위한 아케이드로 리용되고있다.
이스트본은 빅토리아시대의 해변휴양지로서 저지대 관광의 첫번째 중심지이며 은퇴한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멋진곳이다. 이스트본은 브라이튼과 멀지 않는 바로 동쪽 옆바다가에 있다.
이스트본의 서쪽에는 높이가 163메터이고 285헥타르가 되는 백악질절벽과 저지대습지로 이루어진 세븐시스터(7자매)켄트리파크가 유명하다. 북쪽에는 고대의 시장과 15세기 려관-더 스타가 있는 알프리스턴 마을이 있다. 동쪽에는 선사시대의 백악질조각인 “롱맨 오프 윌밍턴”이 있다.
여기도 브라이튼처럼 바다로 길게 뻗은 멋진 선창이 관광객을 끌고있다.
브라이튼 바다가 파빌리언궁전
이스트본 바다가 선창을 배경으로
24. 옥스포드(OXFORD)
옥스포드는 런던서북쪽 그리 멀지 않은곳에 있다. 오래동안 런던으로 가는 서쪽도로의 전략적지점이였는데 그 이름은 강을 건너기 편한 지점(소들이 건널수 있는 여울)을 뜻한다.
옥스포도는 대학들이 집결된 대학도시이다. 크지는 않으나 고풍이 짙은 건물과 거리는 아주 멋지다. 처음 대학을 세운 학자는 1167년 프랑스에서 건너왔다. 옥스포드대학은 지금 세계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최고의 대학이여서 외국의 날랜 류학생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는곳이다.
옥스포드거리에는 유명건물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골동품박물관인 “에쉬몰린 박물관”, 카페스타워, 홀리웰음악당, 셀도이언극장, 순교자기념탑, 크라이스트교회, 유명한 탄식의 다리, 도서관 “래드클리프 카메라”, 대학박물관 등 명물이 있다.
대학들로는 올소울즈대학, 링컨대학, 모들린대학, 뉴칼리지, 퀸즈대학, 세인트 죤스대학, 트리니티대학, 코퍼스 크리스티 대학, 머튼대학 등이 있다. 도서관은 1330년대에 세워진 보들레이안도서관, 험프리공작도서관 등이 있다.
옥스포드대학건물앞에서 영국소녀와 함께
26. 케임브리지(CAMBRIDGE)
케임브리지대학도 세계대학순위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명문대학이다. 이 대학도시는 런던에서 동북쪽으로 좀 가면 있다.
케임브리지는 캠강에서 처음으로 항해할수 있는곳에 있던 로마시대의 중요한 마을이였다.11세기에 마을에는 수도회가 생기기 시작하였고 1209년에 종교학자들이 학문적, 종교적 론쟁이 있은후 옥스포드대학에서 떨어져나와 이곳으로 왔다. 대학교운영과 학업생활은 이 도시의 주요특징이였지만 또한 부유한 농업지역이여서 시장의 중심지로 작용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유명한 대학은 왕의 대학-킹스칼리지이다. 헨리6세는 1441년에 이 대학을 창설했다. 킹스칼리지례배당건물이 도시전체를 앞도하도록 길이 88메터, 폭이 12메터, 높이 29메터가 되게 했다.
너벅선이란 작은 쪽배를 타고 캠강을 올라가면 이 대학의 주요 경관을 거의 볼수 있었다. 맥달린다리아래에서 배를 타고 올라가면 이 다리우에 세인트 죤스 대학, 탄식의 다리(옥스포드의 탄식의 다리는 도로우에 있음), 키친다리, 트리니티대학, 트리니티 애비뉴다리, 클레어대학, 클레어다리, 킹스칼리지대학례배당, 킹스칼리지, 퀸즈칼리지, 그린체스터, 수학적다리 등을 볼수 있다. 하지만 그 유명한 뉴톤의 사과나무터-뉴톤이 이 대학에서 공부할 때 사과가 떨어지는것을 보고 후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를 보지 못했다. 근처에 있다는데 우리끼리 가다보니 언어장애로 찾아볼수 없어서 애수했다.
기타 대학인 엠마뉴엘대학, 세니트 하우스, 코퍼스 트리니티 칼리지, 펨브로크 칼리지, 지저스칼리지, 모들린칼리지, 피터하우스, 티리니티대학, 대학식물원 등이 주위에 널려있었다.
케임브리지대학정문
26. 블렌하임궁전
런던 서북쪽, 옥스포드에서 좀 북쪽으로 가면 처칠수상이 1874년에 태여난 블렌하임궁전이 있다.
말버러 1대공작인 죤 처칠은 원스턴 처칠 전 영국수상의 할아버지이다.1704년에 블렌하임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치자 앤녀왕은 우드스톡의 장원을 하사하고 그를 칭송하기 위해 이 궁궐같은 집을 지어주었다. 이 건물은 바로크양식의 걸작이다.
안에는 55메터길이의 긴 도서관에 앤녀왕의 초상화가 있는데 화려하게 그려졌다. 말버러 1대공작의 가족례배당이 있는데 거기에는 유명한 대리 석기념비가 서있고 프랑스식 멋진 살롱, 그레이트홀의 천정벽화, 집필실, 여러개의 응접실, 다양한 회화실, 금은기물전시실 등이 있다.
밖에는 구조물내에 방이 있는 그랜드다리, 그랜드호수, 이딸리아식정원과 분수, 기념비, 조각상, 테라스정원, 다이애나의 사원, 장미의 정원, 수목원, 말버러미로, 모험의 놀이동산, 나비의 집, 극소형관광철도와 관광기차, 승리의 아치와 기둥 등 대면적의 록지와 수풀로 그야말로 왕궁 못지 않았다.
처칠이 젏었을 때 호수에서 놀다가 빠져 위험해졌을 때 근방의 한 농부가 구해주었다. 구원된 처칠은 은혜를 갚으려했으나 농부의 완곡한 사절을 받았다. 하여 처칠은 농부의 아들을 런던에 보내 공부하게 했다고 한다. 그 아들은 의학공부를 열심히 하여 페니실린을 발명하기에 이르렀는데 이로써 유명해졌다. 처칠이 수상이 된후 전염병때문에 고생했었는데 농부아들이 발명한 페니실린에 의해 다시 구원되였다는 미담이 전해지고있다.
처칠은 젊어서 목공일, 벽쌓는 일, 그림그리기, 글짓기, 연설 등 다방면의 재능을 가지고있었다. 2차세계대전에서 영국과 유럽을 구한 특별한 공훈을 세운 영국수상으로서 지금도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있다.
처칠의 고향 블렌하임궁전 옆 분수가에서
27. 쉐익스피어의 고향
런던 서북쪽에 있는 스트래퍼드 어폰이란 이곳은 세계대문호 쉐익스피어가 태여나고 후에 세상을 뜬 고장이다.
영국중앙지대의 중심부인 에이번강의 서쪽뚝에 있는 이곳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마을중의 하나이다. 이곳의 력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올라가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반목제건축인 건물과 나무가 심어진 에이번강변의 산책로가 있는 튜더시대의 작은 시장마을이다.
이곳에는 윌리엄 쉐익스피어와 그의 후손들에 련관된 건물을 보러 모여드는 관광객들을 가장 많이 끌어 모아 그 인기를 나타내고있다.
쉐익스피어의 생가는 목조건물인데 3층이다. 이 건물에서 쉐익스피어부친은 가죽장갑을 만들며 살았다. 19세기에 다시 지은 튜더시대원형을 살린 집은 오래되여 사람들이 걸어다닐 때 삐걱삐걱 소리가 나는데 당금 무너질가봐 겁이 났다.
강변에 있는 왕립쉐익스피어극장은 그의 모든 연극을 상연하고있다. 강변의 작은 공원에서는 교예도 구경하고 음악을 듣기도 하며 휴식을 취하는 유람객들로 북적거렸다.
쉐익스피어생가
쉐익스피어조각상
28. 바스
바스는 런던 서쪽 멀리 떨어진 곳, 웨일스와 가까운 지점에 위치해있다. 바스는 목욕탕이라는 뜻인데 후에 도시지명이 됐다.
아름답고 간결한 느낌을 주는 바스는 에이번계곡의 구르는듯한 푸른 언덕에 있으며 어디서나 웅장한 주변의 전원광경을 즐길수 있다. 이 활기찬 도시의 중심지에는 거리의 음악가, 박물관, 카페, 매력적인 상점이 많지만 바스의 특징인 우아한 미색의 죠지왕시대의 가옥은 시를 쓰는데 훌륭한 배경을 이룬다.
전설에 의하면 바스의 기원은 기원전 86년이전에 켈트의 왕이였던 블래더드가 천연온천의 치료로 효과를 보면서부터이라 한다. 그는 나병환자로서 그의 왕국에서 쫓겨나 이 온천에 와서 돼지처럼 뜨거운 온천과 진흙에서 뒹굴어 병을 치료했다고 한다. 1세기에 로마인들은 이 온천근처에 목욕탕과 켈트족이 숭상하는 물의 녀신인 설리스와 로마의 녀신인 미네르바를 합친 설리스 미네르바 녀신에게 바쳐진 사원을 세웠다. 박물관의 로마시대의 유적에는 1727년에 발견된 금박입힌 설리스 미네르바 두상이 있다.
지금도 옛 목욕탕의 유적을 복원하여 구경할수 있게 했다. 로마군이 집정할 때 벌써 지금 사용하는 사우나와 찜질방이 있었다. 목욕탕박물관에 가면 이런것을 다 볼수 있다.
바스 대수도원에는 하늘로 올라가는 천사 제이콥이 층계를 오르는 조각탑이 주목을 끈다.
영국에서 가장 장엄한 거리로 칭송되고있는 웅장한 반원형의 가옥-로얄크리센트박물관은 18세기에 살았던 오크공작같은 귀족의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커다란 잔디밭과 서쪽의 로얄빅토리아공원은 이 시에서 가장 큰 야외공간이다.
로얄 크리스센트 앞 잔디밭
29. 스톤헨지
바스에서 동쪽으로 가면 스톤헨지가 있다. 기원전 약 3000년전부터 여러 단계에 걸쳐 지어진 스톤헨지는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선사시대의 기념비이다.
이곳에서 열렸던 의식을 상상해볼수 있을뿐이지만 돌이 놓인 위치로 보아 이 원은 태양과 계절의 흐름과 관련이 있으며 이것을 지은 사람들은 대수와 천문학을 상당히 알고있었음을 짐작할수 있다.
스톤헨지의 규모는 당시 사용가능했던 도구가 돌, 나무와 동물뼈로 된것뿐이였다는것때문에 더 놀라운것이다. 돌을 쪼으고 나르고 일으켜세우고 얹어놓는 일은 대량의 자원을 동원하고 많은 사람을 통제할수 있어야 했다. 블루스톤서클은 기원전 2000년경에 남웨일스에서 캐여낸 80여개의 판석으로 이루어졌다.
스톤헨지의 주위에는 다른 선사시대의 유적이 많은데 원형의 분묘들, 긴 묘실, 의식용 청동무기, 보석, 2헥타르너비 40메터높이의 백악질언덕 등이 있다.
아직도 스톤헨지가 무엇을 하던곳인지 확실한 해명은 없고 여러가지 주장으로 쟁론중에 있다.
스톤헨지유적지
30. 리버풀과 비틀즈
영국중부의 서해안에 위치한 리버풀은 아이랜드와 가깝다. 머지사이드의 주거의 거취는 기원 1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207년 어촌이였던 리버풀에 죤왕이 자치도시허가를 해주었다. 슈트어트시대의 인구는 겨우 천명이였으나 17-18세기동안 리버풀서쪽해안은 카리브해의 노예무역중심지였다. 최초의 대양을 항해하는 증기선이 1840년에 이곳을 출발하였고 기근으로 하여 아일랜드를 탈출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1960년대 리버풀은 여러 훌륭한 악단과 가수, 코미디언 등 연예인을 배출하였다. 죤 레넌, 폴 맥카트니, 죠지 헤리슨, 링고 스타가 구성한 “비트스(딱정벌레)”는 세계적인 선풍을 몰고왔으며 그들과 관련된 장소는 리버풀에서 사당처럼 숭앙받고있다.
비틀스가 팝음악계를 휩쓴 리버풀정신이 다시 살아났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비틀스를 위해 여기를 찾지만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축구와 교외횡단전국경주와 같은 운동경기 및 대학으로도 유명한곳이다.
리버풀해변의 대표건물
31. 요크(YORK)
요크는 북동부지역의 도시이다. 미국 뉴욕은 영국 요크사람들중 청교도들이 탄압을 받게 되자 미국에 건너가서 새 요크-뉴욕을 세운것이 지금은 세계제일의 대도시로 되였다.
오우스강을 낀 요크는 중세의 구조를 잘 간직하고있어서 그 중심으로 들어가는것은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가는것과 마찬가지이다. 모형같은 좁고 구부러진 거리에 있는 고대 목조가옥은 잘 보존되여있다.
요크대성당은 영국에서 가장 큰 중세의 교회로서 1280년에 다시 세워진것이다. 627년 노섬브리아 에드윈왕의 세례를 위해 세워진 례배당은 목조건물이였다. 요크대성당을 민스터라고도 하는데 민스터라는 말은 보통수도사들이 일하는 교회를 뜻하지만 성직자들은 항상 요크에서 일했다.
요크거리의 석조문에 중세의 악마조각-허리가 쇠사슬에 묶인 로마시대의 붉은악마는 도로우에 세워진 특징물이다. 요크에서 가장 작은 거리에 “윕마옵 마 게이트”라는 가장 긴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 이름은 색슨시대부터 내려온것이라고 한다.
요크는 전략적 위치때문에 19세기에 철도중심지가 되였다.
작지만 깨끗하고 고풍이 짙고 유구한 요크는 멋있는 유람지이다.
요크대성당
32. 뉴카슬 어폰 타인
뉴카슬이란 글자 그대로 말하면 새 성채라는 뜻이지만 기실 이 이름은 1080년에 정복자 윌리엄왕의 장자가 세운 노르만의 성에서 비롯된것이다. 로마인들은 타인강에 라리를 놓고 성채를 세웠다. 중세때 이곳은 강의 입구를 지키는 성채였으며 스코틀란드에 대한 영국의 전시적 기지였다. 중세기부터 이 도시는 석탄, 광석의 수출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19세기 공업, 제철 그리고 나중에는 세계최고의 조선업 등으로 알려졌다. 이 도시에는 과거를 볼수 있는 웅장한 타인다리, 동상, 기념비들이 있다. 증기기관을 발명한 스티븐슨의 동상도 있다.
뉴카슬에는 영국에서 가장 작은 성당이 있다.11세기의 노르만 교회유적우에 14-15세기 구조물이 세워진 이 성당에는 반은 탑이고 반은 첨탑인 장식이 된 등대가 있는데 이런 형태는 영국에서 3개밖에 없다.
뉴카슬 타인강의 철다리
33. 범버그성
뉴카슬 북쪽에 가면 범버그카슬이 해변에 솟아있는 모습을 볼수 있다. 스코틀란드에 대한 노섬브리아의 적대적이였던 력사때문에 이곳에는 영국의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요새와 성채가 있다. 대부분 11-15세기 이 지역 장군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범버그의 붉은 사암성은 그런 대형 해안성채중의 하나였다. 최초의 주요요새는 550년에 색슨족의 족장이 지은것이였다. 1095년부터 1460년까지 전성기동안 범버그는 왕의 대관식을 거행하던 왕성이였다. 안은 화려하고 장엄하며 각가지 갑옷, 무기, 병사, 왕의 궁전, 동굴감옥, 예술품전시실 등이 있다.
중세 말엽에 이곳은 쇠락하여 뉴카슬의 무기상이였던 암스트롱경이 사들여 복원했다.
영국 북부의 범버카슬
34. 에딘버러
영국에 갔다하면 에딘버러에 못가보면 헛갔다왔다 할 정도로 이 곳은 필수관광지이다. 스코틀란드의 수부인 에딘버러에는 중세기와 죠지왕시대의 구역이 있으며 아서왕이 있던 자리의 화강암으로 된 턱이 진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거나 캘튼힐에서 북쪽을 내려다보면 에딘버러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도임을 알수 있다.
예술로 유명하여 “북부의 아테네”라고 불리우던곳이다. 해마다 열리는 에딘버러축제에서 과거의 영화를 지작할수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는 많은 문화유산들이 전시되여있다.
사화산의 화강암부위에 서있는 에딘버러성은 12세기부터 20세기까지 내려온 여러 건물들이 모여있어서 성채로부터 왕궁으로, 군사 등 방어요새와 정부 감옥으로 역할이 변해왔다. 이 자리에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있었음이 확실하지만 원래의 성채는 6세기 노섬브리아왕인 에드윈이 처음 지은것으로서 도시의 이름도 그의 이름에서 나온것이다. 이 성은 1603년의 왕위의 통합까지 왕실사람들이 즐기던 주거지였으며 후에 의회가 들어있다가 지금은 스코틀랜드 왕실련대 사령부로 되였다.
이 성채안에는 사령관의 저택, 녀왕 마리의 궁전, 스코틀란드의회가 열리던 그레이트홀, 성마가릿례배당, 아가일포대, 반달형포대, 지하감옥, 제임스5세가 만든 스코틀란드 왕관전시실, 무기고 등이 있다. 높은 성주위는 깊은 골짜기이고 골짜기건너 도시와 바다가 있다.
기마동상뒤편 골짜기건너 에딘버러성이 보인다.
35. 네스호(LOCHNESS)
스코틀란드중상부를 거의다 횡단하는 네스호는 길이가 39킬로메터이고 제일 넓은곳이 1.5킬로메터인 좁고 긴 호수이다. 깊은곳은 305메터나 된다. 서쪽호안에는 호수를 따라 관광도로가 길게 펼쳐졌는데 16세기에 지은 어쿼트성 옛터가 풍미를 더한다.
이 호수는 괴물이 나타나는 호수로 유명하다. 6세기에 성콜럼버가 처음으로 목격한 “네시”는 1930년대에 어슴프레한 사진들이 찍히고난 다음부터 더욱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여러 도구를 동원한 집중탐색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명확하지 않은데 사경룡이라니, 대형뱀장어라니, 착시에 불과하다느니 각종 설이 란무하지만 네스호 괴물전시관에서는 이 괴물에 대한 각종 시청각정보를 제공하고있다.
흐리고 바람불고 파도치는 어둠녘이면 괴상한 소리가 나고 괴물과 같은 형상이 언뜰언뜰하여 크게 놀란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우리는 긴 호변도로를 따라 자동차려행을 하다가 서남쪽해변의 오반이란곳에 가서 구경하였다. 벼랑아래 뭍에 지은 이 작은 도시는 아름다운 항구도시였다. 또한 유리, 도자기와 영국에서 가장 훌륭한 몰트위스키를 생산하고있다.
우리는 대게 한마리를 사서 위스키안주로 먹었는데 어찌나 크고 살이 많은지 남자 넷이서 푸짐하였다.
네스호반에 있는 옛성터
해변소도시 오반
36. 던펌린
1603년까지 스코틀란드수도였던 던펌린은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이다. 에딘버러에서 좀 북쪽으로 가다가 큰 다리를 건너면 던펌린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12세기의 수도원과 왕실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궁전의 페허가 있다. 19세기 성가대석이 있는 수도원교회에는 22명의 스콭틀란드왕과녀왕의 무덤이 있다.
던펌린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박애주의자인 앤드루 카네기의 생가가 있는데 거기에 작은 박물관을 차렸다. 이 도시에 피튼크리프공원이 있는데 그는 어려서 이 공원에 들어갈수 없었다. 후에 부자가 된 그는 이 공원전체를 사서 던펌린시민들에게 기증했다. 1845년 10세때 가족과 함께 미국 펜실바니아주로 이사했고 그곳에서 강철업으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되였으며 3억 5천만딸라를 자선사업에 기증했다.
우리는 피튼크리프공원에 가보았다. 좀 비탈진 큰 공원이였다. 우리가 공원에 나타나자 애완견으로 기르는 양몰이개 한마리가 우리한테 다가와 치근거렸다. 입에 테니스공을 물고와서 같이 놀자는것이였다. 주인인 젊은 련인들이 저쪽에서 안고 속삭이니까 심심하던 모양이다. 공을 우리 발뿌리에 놓고 곧 채갈것처럼 가동작한다. 내가 발로 공을 차니 굴러간 공을 순식간에 뛰어가 물고와서는 다시 놓고 계속 놀자고 한다.
나의 친구가 “임마 너 영어를 잘한다며? 하우아유?”하고 농을 건다. 개는 꼬리를 흔들며 악의없이 짓는다. “이 개는 스코틀란드사투리도 알걸. 너만 나을거다.” 다른 친구가 한마디 하여 모두가 웃었다.
카네기박물관의 카네기밀랍형상
카네기가 기증한 피튼크리프공원
37. 위스키공장
우리가 즐겨 마시는 스카치위스키 “FAMOUSGROUSE(멧닭표)”술공장을 참관했다. 위스키하면 스코틀란드가 본고장이다.
전통적으로 보리, 이스트와 내물로 만드는 스코틀란드위스키(게일어로 위스키는 생명의 물이라는 뜻)는 숙성하는데 최소한 3년, 제조는 3주정도가 수요된다. 숙성은 참나무통에서 이루어지는데 보통 세리 포도주통에서 한다. 양조법은 1860년대에 에딘버러에서 시작되였다.
원래 위스키는 투명한 술이였다. 후에 한 사람이 술통을 말리우느라 불을 지폈는데 실수로 너무 그슬리여 냄새가 심하고 색이 누렇게 옮았다. 아무리 닦아도 안되고 또 술통이 모자라서 그대로 담갔는데 지금의 위스키처럼 색이 나고 향이 났다. 원래의 위스키보다 더 좋았다. 이때부터 위스키는 지금의 누렇거나 붉은색의 향이 짙은 위스키로 변했다고 한다.
위스키공장마당
공장에서 우리에게 명함장만한 카드 한장씩 나누어주었다. 카드에는 8개의 입술도장이 찍혀있었다.손으로 문지르니 부동한 술향이 났다. 자기가 맛볼 술향을 선택하면 그 술을 한잔 준다.
스코틀란드는 바위산이 많고 계곡으로 맑은 물이 흘러 술제조에 천혜의 땅으로 손색없었다. 우리는 영국에 있는 10년동안 위스키며 프랑스 브란데, 인두마 꼬냨, 로씨아 워드카 등 유럽술과 맥주들을 실컸 향수할수 있었다.
38. 골프의 고향- 성 안드루스
스코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촌의 하나이자 한때는 종교적 수도였던 안드루스는 또한 세계 각지에서 몰려드는 골프인들의 신전같은곳이기도 하다. 이 도시에는 여러개의 골프코스가 있는데 모두 저렴하다. 로얄골프클럽 및 에인션트 골프클럽이 어떻게 경기의 중재자가 되였는지를 보여주는 영국골프박물관은 골프애호가들을 즐겁게 해준다.
도시의 세개 주요도로와 골목길에 가옥들과 대학건물, 중세의 교회들이 위엄을 뽐내고있으며 12세기 대성당의 오래된 잔해가 모여있다.
지금 영국 왕세손-윌리엄(왕자 챨스의 큰아들)도 이 안드루스대학을 졸업했다.
골프라는 이 운동종목은 처음 성안드루스의 한 목동이 해변가 풀밭에서 양치기몽치로 돌멩이를 쳐서 날리고 구멍에 넣는 놀이로부터 옮겨온것이다. 지금은 많은 나라들에서 귀족운동으로 되고 국제시합종목으로 인기있다.
스코틀란드 녀왕이였던 메리는 골프를 즐겼는데 남편인 단리가 살해당한 직후인 1568년에 골프를 쳐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성 안드루스
39. 포츠머스와 와이트섬
한때 아주 중요한 항구였던 포츠머스는 남쪽 해안 브라이튼에서 좀 서쪽에 있다. 영국의 해군력사에서 획을 긋던곳이다. 여기에 고대 조선소가 유명하고 1545년 프랑스군과 전투하러 처녀항해를 떠나다 침몰한 헨리8세의 기함이던 메리로즈의 선체가 있다. 또 넬슨제독이 트라팔가해전에서 전사한 빅토리아호도 복원되여있다. 포츠머스에는 16세기부터 포클란드전투까지의 해군력사를 다룬 왕립 해군박물관이 있다. 그 옆 사우스햄프튼에는 1912년 가라앚은 호화려객선 타이타닉호가 미국으로 떠난 항구가 있다.
와이트섬은 사우스햄프튼에서 배에 사람과 차를 싣고 건너가면 된다. 빅토리아녀왕과 알버트공이 즐겨 찾던 휴양지가 와이트섬에 있다. 챨스1세가 1647년 머리 잘리기전 갇혀있던 캐리스브록성도 여기에 있다. 이 섬에서 특히 카위스윅이 유명하다.섬의 서쪽끝에서 바다로 튀여나온 세개의 탑과 형형색색의 절벽이 멋있다.
와이트섬의 경치
40. 웨일스 수부 카디프
기원 75년 로마인들이 카디프에 성채를 세우고 점유했다.
1830년대 항구로 개발되기전까지는 조용한 전원 마을이였다.1913년 세계에서 가장 분주한 석탄수출항이였다. 카디프는 1955년에 웨일스의 수도가 되였는데 오늘날 상업, 행정 도시이며 재개발사업으로 바뀌고있다.
카디프성은 로마의 성채로 시작된것인데 이 부분은 나중에 붉은돌로 만들어진 다른 부분과 분리되여있다. 그후 700년이 넘는 동안 이 성은 권력이 있는 가문들을 거쳐 1766년 뷰트의 백작인 죤 스튜어트에게 넘어갔다. 1867-1875년 중세의 이미지와 랑만적인 세부장식이 풍부한 화려한 저력으로 되였다.
안에는 부챔프탑이라고 불리우는 8각형탑이 있고 멋진 연회실,지붕의 화원이 있으며 희랍, 아시리아, 히부루와 애급의 알파벳 등 고대의 문자를 나타내는 조각 인물상이 도서관의 굴뚝조각을 장식하고있다. 또한 이슬람양식의 대리석과 유리장식이 있는 금박천정을 한 아랍실이 있고 시계탑, 동물의 벽 등도 있다. 마당에서는 예쁜 공작새가 한가로이 거닐고있어 평화로운 분위기가 넘치고있다.
웨일스도 잉글란드의 침공을 많이 받다보니 도처에 큰 성채가 많다.
카디프성조감도
이상으로 영국 전역의 대표성을 띤 명승지들을 함께 돌아보았다. 아직도 가볼데가 기수부지이고 이미 가본데도 꽤 많지만 이만 소개한다. 여러 독자분들도 여기에서 조금이나마 향수를 느꼈다면 기쁘겠다.
한일성 연길에서
2016.1
첫댓글 살로 간다치 않은 기행문이자 문화 력사지식문이야. 나도 지리는 좀 아는데 작자의 이 기행문을 통해 더 많은 지식을 배웠어 건강 또 건강
례로 그리니치천문대 0도자오선...작자는 동서반구를 가로탔네. 참 좋아 부럽네. 잘 학습했어, 고마워
소개됀 내용들이 필자가 1994년 옥스퍼드대학에서 연수를 받을때 휴일을 이용해 들린곳이 대부분 이라서
한참을 머믈며 쭈~욱 읽었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좋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들샘님은 대단한 분이시군요.세계일류대학에서 연수받으셨다면 대학자이시군요.저는 일하는 짬에 그저 구경이나 다녔는데 선생님은 학문에 정진하셨으니 제가 너무 부러군요.
멋진 여행을 하셨군요 세계유람으로 세계를 알고 살아가는 삶 윤택하게 가꾸시는 푸른 호수님은 멋쟁입니다 영국에 대해 아는것이 너무 없었는데 님덕분에 많은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해랑선생님,들샘님,눈속매화님 모두다 공명을 주시니 잘 못쓴 글이라도 힘이 납니다.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
영국여행을 해보지 못한 이 푸른 하늘이 상세한 소개와 사진에 눈을 박으면서 보았습니다.
넘 수고 많았구요. 앞으로 영국여행에 존 가이드 역할 해주어 고마움을 전함니다.
수고하셨어요.
푸른하늘님께서 보아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간단한 가이드라 벌도움은 못되지만 잘 읽어주셨다니 대단히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