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순종하는 DJ2공동체 2학기 16-17주차 주간리뷰
16-17주차 주제: 그들이 내 영혼을 살렸다.
#1 내 영혼은 어떻게 살아날까?
내가 살아온 삶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것이었으나, 그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삶조차도 우리가 원해서 되어진 그림이 아니라는 박완서씨의 자서전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을 보면서 많은 공감이 되었습니다. 기차 레일처럼 기차가 달릴 때는 직선인 것 같은데, 달리고 난 후를 돌아보면 곡선이 되어 있는 것처럼,그래도 나름 성실하게,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왔다고 생각하는데, 돌아보면,왠지 아쉬움이 남는 인생, 휘어진 곡선처럼 굴곡진 것이 우리가 사는 인생입니다.
채워지지 않는 제 마음의 빈 공간을 가지고 대학교 시절부터, 아니 고등학교 시절 저녁 10시에 학교가 끝나면 매일 1시간씩 학교 근처 교회로 향하여,하나님을 찾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매일 그렇게 부르짖었던 하나님은 애석하게도 제게 응답하지 않으셨습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여전히 존재의 불안을 느꼈던 그 대학생은, 부모님 몰래, 학교를 휴학하고, 전국일주도 할겸, 전국 기도원을 돌아다니며 하나님의 이름을 찾고 구했습니다. 기도원 원장님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불렀다고, 그것도 큰 종으로 불렀다고 말해주었습니다. '종'보다는 '큰'이라는 단어에 마음을 빼앗겨, 저는 신대원에 입학을 했습니다.
제가 다녔던 총신대학원은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말씀을 연구해보겠다는 일념으로, 생활비를 제외하고, 교회에서 주신 사례를 거의 책을 사는데, 사용했습니다. 27살, 그 당시 또래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하며 새벽에 운동도 하고, 제 캐릭터를 좋아해주는 친구들과 기숙 생활을 즐겁게 했었는데, 그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2학년 때는 성경만 연구하셨던 나이 지긋한 분들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분들의 레포트 쓰는 것을 도와주면서, 저는 그 분들이 평생 연구한 내용을 듣고 질문하면서, 말씀을 배웠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기초라면, 성령의 능력,기름부으심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교회 사역은 성령 사역을 하는 곳에 지원하여 사역자로 2년간 교회를 섬겼습니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경만 체계적으로 가르친다는 에스라성경대학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한 학기 수업을 듣고, 마지막 밤이 되었습니다. 성경을 배우고 성경을 연구하고 읽었는데, 제 마음 속에 진리를 배웠는가?라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 때, 말씀이라는 것, 진리라는 것은 인격적인 것이구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배움을 얻을 수 있는거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확실성과 객관성을 얻으려는, 도무지 의심할 수 없는 지식, 틀림없고, 명료한 지식은 없다는 것을, 위험을 감수하는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나온 그 진리에 대가를 지불한 것만이 내 인격에 채워지는구나 라는 통찰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와 사람이 변화되는 것도 인격적인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그 날 밤, 비가 오는 창문을 바라보며 한참을 되뇌였습니다.
#2 이성적인 바울이 이성을 잃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마지막으로 쓴 편지입니다.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 쓴 편지.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엑기스같은 말, 신앙에 깊은 말들이 나오고, 유언같은 거창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근데 이 편지에는 바울의 가장 인간 적인 면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두 사람, 부겔로와 허모게네에게 마저도 버림받고,상처의 감옥, 배신의 감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어쩌면 바울은 그렇게 인생을 마무리 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바울을 자주 격려해 주고, 자기를 자주 찾아와서 힘을 북돋아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오네시보로입니다. 디도데후서 1장은 그 오네시보로를 축복하는 기도문으로 끝이 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누구한테 편지를 쓰는데, 그 편지 받는 사람을 위해서 축복기도를 해주는 건 이해가 가는데, 갑자기 다른 사람, 오네시보로를 기도하는 바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오네시보로를 생각하고, 고마워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다가, 이 본문 옆에 "이성적인 바울이 이성을 잃었다"라고 적었습니다. 바울에게 복음(예수그리스도)이 그 인생의 처음으로 이성을 잃게 만든 사건이었다면, 바울에게 이 오네시보로는 자신에게 두 번째 이성을 잃게 만든, 두 번째 복음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을 살아보니, 특별한 은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영적인것만 필요한 게 아니더라구요. 따뜻함, 배려, 용서와 용납, 믿어주고, 용기를 북독아주는, 같이 있어주고, 끝까지 믿어주고, 신뢰해주고, 격려해주는 그런 일반은총적인 것들, 서로를 향한 신의와 진실함이 사람을 세우고, 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람은 기도로, 말씀으로,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변화되기도 하지만,사람을 가장 온전하고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진실한 인격속에 나오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5:6)입니다. 특별히 우리 인생 수많은 로마 감옥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이런 진실한 관계와 사랑 아니었나요?
#3 우리 아이들이 살아나는 길
이런 배경이 제가 아이들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아이들을 만나면서 제 마음 속에 깊이 간직하고, 되뇌이는 문구들이 있습니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진리는 인격적인 관계에서 전해진다”. “화해의 복음은 화해된 관계속에서 아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영적인 성령님은 라면을 끓이며 나누는 교제와 장소에서 구현되고, 드러나고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육체가 한 일들은, 우리 영혼에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복음을 위한다면, 지갑을 찢어라”, “우리 아이들 뒤에는 우리 아이들 한 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관계 맺는 가족, 집안, 민족이 있다, 내가 맺는 이 인격적인 관계는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주간 아이들이 집중적으로 읽었던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천국과지옥의 이혼], 대천덕 신부의 [나와 하나님],크리스토퍼 라이트의 [일곱문장으로 읽는 구약], 폴 투르니에의 [인생의 사계절] ,천종호 판사의 [선,정의,법]은 제가 읽고 고민했던 주제이면서 동시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내용입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이 주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을 도구 삼아, 우리 아이들과 신앙적인 질문을 나누면서,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 마음에 새겨지는 것도, 우리가 함께 질문하고 답하면서 마음 속에 깨달아진 내용들 아닐까요? 아이님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코칭하기 위해 만나는 인격적인 자리, 해피맨님이 합창제를 준비하면서 함께 호흡하고 노래를 부르는 자리를 통해 아이들 인생의 중요한 원리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멘관 2층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의 영혼이 이렇게 자라고 있는 것을 직접 느끼고 경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4 그들이 내 영혼을 살렸습니다.
이번 주로, 2학기가 마무리가 됩니다. 지난 10년간 교사로 있으면서 가장 기다리던 시간은 방학인데, 언제부턴가 방학이 그렇게 반갑지 않게 느껴집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그렇게 부르짖었지만, 응답받지 못했던 기도제목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었고, 하나님을 경험하는 거룩한 순간이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이 끝나갈 무렵, 안디옥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빛이 비춰지면서 제가 방언을 받았던 순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서, 제 기도제목을 응답 받았고, 제 삶을 목회자로 헌신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동안 꿈의학교에 와서도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큰소리로, 그렇게 하나님을 갈망했고, 거룩한 순간을 갈망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잘 된 일인지, 안타까운 일인지 모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기도하는 시간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니, 아이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일이, 함께 수학 문제를 풀고, 과학 문제를 알려주고, 라면을 끓여먹고, 웃고 떠드는 순간이 저에게 거룩한 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용서받고,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또 순종하며 함께 성장해가는 우리 아이들과의 만남과 순간이 이제 거룩한 순간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곳, 아이들이 걸어가는 곳, 아이들이 갈 곳에 먼저 가 있으려고, 여러 책을 집어 들었고, 제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이 아이들에 부끄럽지 않은 사역자가 되기 위해, 좋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수많은 밤을 고민하고 고민했습니다. 이 아이들과 같은 길을 걷고 싶었고, 이 아이들 앞에서 같이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기도가 말씀이 제 삶의 어두움, 불안, 힘든 순간을 통과하게 해주었다면, 언제부턴가 우리 아이들이, 제 삶의 허물과 유혹, 죄, 불안을 이기게 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들이 내 영혼을 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