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갑도 깃대봉 섬 산행 르포
글 | 손수원
월간산 기자 글 | 이신영 기자
기사 입력일 : 2017-07-04
한월리해변~문갑리~깃대봉~진고개해변~한월리해변 원점회귀 약 7.3km
비밀스런 해변, 덕적군도 조망처 처녀바위, 진고개 해변 일몰…
발길 닿는 곳마다 감탄
조용한 섬을 찾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해변에 작은 텐트를 펼쳐놓고 망망대해를 앞마당 삼아 망중한을 즐기고 싶었다. 그때 ‘kokim’ 김규대 대장에게 연락이 왔다. “옹진군 쪽에 한적하고 산도 좋은 문갑도文匣島라는 섬이 있는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주말이나 휴가철이 아니면 몇몇 주민들과 낚시꾼만 있을 뿐 거의 무인도처럼 지내다 올 수 있다는 말에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바로 백패킹 채비를 해 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덕적도를 거쳐 문갑도로 왔다.
문갑도 선착장에 내려 오른쪽으로 600m쯤 되는 곳에 문갑리마을이 있었다. 문갑도에서는 가장 크고 유일한 마을이다. 눈에 보이는 집이 문갑도의 모든 민가요, 눈에 보이는 도로가 문갑도의 모든 포장도로다.
동행한 ‘나무늘보’ 박태석씨는 ‘늘보마당(cafe.daum.net/1820madang)’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며 문갑도를 비롯한 인천의 섬에 등산로와 걷기 길 등을 개발하고 있다.
이날이 결혼기념일인 박씨는 아내와 함께 문갑도를 가이드해 주기 위해 동행했다.
‘망치대장’으로 불리는 김형식씨도 김 대장을 따라 흔쾌히 여행에 동참했다.
한월리 해변, 베이스캠프로 제격
문갑도에 도착한 첫째 날은 화유산 깃대봉(277.6m)을 산행하기로 했다. 화유산은 문갑도에서 유일한 산이고, 깃대봉은 문갑도의 최고봉이다. 박씨는 깃대봉을 중심으로 한 문갑도 등산로를 개척했고, 지금도 다양한 코스를 개발 중이다.
“우선 한월리 해변에 텐트를 쳐 놓고 다시 마을로 돌아옵시다. 아무리 200m대 산이라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를 만큼 쉬운 산은 아니거든요. 다행히 한월리 해변까지 700m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걸어서 10분 정도면 갈 수 있어요.”
마을에서 낮은 언덕을 넘어 도착한 한월리 해변은 절로 감탄사를 지르게 할 만큼 소박하면서도 조용하고 아름다웠다.
“문갑도에는 마을 앞 문갑해변을 비롯해 크고 작은 해변이 네다섯 군데 있어요. 그중에서도 한월리 해변에서 백패킹을 많이 해요. 마을과 적당히 떨어져 있기도 하고, 해변 입구에 새로 지은 깨끗한 화장실과 샤워장도 있어요. 덕적도와 소야도를 마주보는 아름다운 경치는 말할 것도 없지요.”
문갑도는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민어와 새우잡이로 유명해 인근 섬 주민들이 모두 모이는 ‘부자 섬’이었다. 잡아온 새우는 한월리 해변에 있던 새우젓 저장고로 옮겨졌다. 선착장에는 새우젓을 실으려는 배들로 늘 북적였다.
새우젓 담는 독을 만드는 가마도 생겼다. 하나는 문갑리 천주교 공소 밑에, 또 하나는 한월리 해변에서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었다. 당시 섬 주민이 1,000명 정도나 되었다고 한다(현재는 70명 내외).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거짓말처럼 새우어장이 사라졌고 지금은 새우젓 저장고도, 가마도 모두 ‘그때 그 시절’이 되었다.
한월리 해변에 텐트를 치고 다시 되돌아와 마을을 지나쳐 선착장 오른편에 있는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이렇게 등산로 입구가 선착장에서 지척이니 ‘열혈 등산객’들은 주말 오전 10시쯤 문갑도에 들어와 5시간 남짓 산행을 하고 오후 3시 40분 배를 타고 다시 나오는 당일산행을 하기도 한단다.
등산로에서 45개의 콘크리트계단을 올라 가파른 산길로 들어선다. 입구에서 깃대봉까지는 2.5km 거리다. 산길에 들어서자 훅 하고 날파리들이 일어선다. 그래도 날이 파랗게 좋아서 다행이다. 깃대봉 정상에 서면 분명 멋진 조망이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야, 숲이 진짜 좋네. 아직 사람의 손을 덜 타서 그런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섬에 식생이 건강하네.”
섬 산행에 일가견이 있는 김 대장도 문갑도 깃대봉으로 가는 길의 매력에 흠뻑 빠진 모양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란 곰솔을 비롯해 섬사람들이 물거리나무로 부르는 소사나무와 뗏부리나무로 부르는 보리수도 초록 빛깔을 뽐내고 있다.
“잠깐 여기 들렀다 가볼까요? 진짜 좋은 해변이어서 꼭 보여드리고 싶어요.”
가이드를 맡은 나무늘보님이 진뿌리낚시터와 어루넘어해변이 갈리는 길에서 해변 쪽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문갑도를 손바닥 보듯 다닌 나무늘보님을 믿고 해변 쪽으로 방향을 잡아 잠시 내려간다.
“와, 여긴 비밀의 해변 같아요.”
200m가 채 되지 않는 모래해변은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했다. 양쪽이 단애斷崖, 해안절벽로 이루어져 있어 오롯이 눈에 보이는 모래해변이 전부다. 누군가의 집 앞마당처럼 아담한 해변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수백 m씩 뻗은 해변과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족끼리 와서 텐트 치고 놀면 최고예요.”
문갑리에서 오로지 산길을 넘어와야 닿을 수 있기에 더욱 한적한 해변을 보니 문갑도가 숨겨놓은 것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무늘보님이 준비하고 있는 ‘비장의 카드’도 사뭇 기대되었다.
진모래 해변에서 맞이한 문갑도 최고의 일몰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진뿌리낚시터(엄나무농장) 쪽으로 방향을 잡으니 엄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몇 해 전 옹진군에서 소득 작물로 키워보라고 1만 그루의 엄나무를 주었고 문갑도 주민들 스스로 마을기업을 설립해 엄나무를 특산물로 재배하고 있다.
‘깃대봉 1.5km’ 이정표를 지나고 처녀바위까지는 소사나무와 갈참나무, 신갈나무가 많다.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은 그늘을 만들어줘 더욱 걷기 좋다. 부드러운 흙길은 도심의 둘레길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왼쪽 나무들 사이로 굴업도와 백아도, 울도, 지도 등의 이웃 섬들이 빠끔히 고개를 내민다.
깃대봉을 500m 남겨둔 곳 왼쪽으로 처녀바위가 있다. 등산로 이정표 곳곳에 ‘문갑풍월’이란 안내판이 함께 설치되어 있는데,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명소에 대한 음성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작은 섬의 등산로 치곤 매우 친절한 안내다. 이는 인천문화재단의 마을공동체 문화프로젝트 공모사업의 일환으로 설치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자 처녀바위에 대한 음성 설명이 시작되었다. 요약하자면 ‘바다로 배를 타고 고기를 잡으러 간 총각들이 거센 풍랑에 잘 돌아오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마을 처녀들이 올랐던 바위’라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에 걸맞게 처녀바위에 오르면 북쪽 깃대봉 쪽을 제외한 동서남쪽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트인다.
“저기 남쪽에 있는 섬들이 선갑도, 지도, 울도, 백아도이고, 서쪽의 섬들이 굴업도예요. 동쪽으로 보이는 섬들은 소이작도와 대이작도, 승봉도고요. 북쪽으로는 덕적도와 소야도가 있는데 깃대봉에 조금 가려 있죠.”
나무늘보님의 손가락을 따라 눈이 돌아가니 덕적군도德積群島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먼 옛날 ‘망구 할매’가 흙으로 선갑도에 선접산을 만들다가 무너지자 그것을 주먹으로 쳐서 그 흙들이 산산이 흩어져 섬들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중 하나가 굴업도와 백아도 사이에 있는 ‘선단여’다.
선단여는 남매바위와 마귀할멈바위로 이루어진 세 개의 바위인데, 망구 할매가 요강으로 썼다는 설화와 마귀할멈이 갈라놓은 남매의 슬픈 사랑에 관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처녀바위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500m 정도 깔딱고개를 올라 깃대봉에 닿는다. 등산객들이 쌓은 돌탑이 정상석을 대신하는 좁은 봉이다. 주변에 잡목이 있어 조망은 처녀바위가 낫다. 깃대봉 주변에서는 인부들이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여름쯤이면 깃대봉 오르내리기가 더욱 수월해질 듯하다.
“하산하면서 꼭 가볼 때가 있어요. 그런데 물이 차기 시작해서 좀 서둘러야겠네요.”
나무늘보님이 조급해졌다. 하산길에 진고개해변에 들러 일몰을 보려던 것이 ‘비장의 카드’였는데, 만조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래 일몰이 좋기도 하지만 모래해변이 드러나 있을 때 보는 것이 훨씬 아름답거든요. 조금만 서두르면 물이 차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행에게 문갑도의 숨은 비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여 주려는 마음이 고마워 하산을 서두르기로 했다. 왕재봉(246m)을 지나 진고개에서 왼쪽 길을 택한다. 가파른 길을 내려가 진고개해변에 닿으니 오후 6시 무렵. 물이 차기 시작했으나 다행히 모래해변이 꽤 많이 남아 있다.
“일몰이 오후 7시 20분쯤이니 그때까지 막걸리나 한 잔씩 할까요?”
망치대장이 배낭에서 시원한 막걸리 두 병을 꺼냈다. 평소 산행을 하면서 술을 마시지 않지만 이렇게 좋은 해변에서 일몰을 기다리고 있으니 막걸리 한 잔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아, 막걸리가 달다 달아! 그냥 여기서 밤새도록 술이나 마셨으면 좋겠네!”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잔을 쭉 마신 망치대장이 흥에 도취되었다. 최근에 이렇게 붉은 노을을 본 적이 있던가. 언젠가부터 뿌연 하늘 속에서 노을의 낭만마저 잊었던 것은 아닐까.
한월리 해변에서 달을 희롱하다
드디어 해가 굴업도 오른쪽 바다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나무늘보님이 숨겨놓았던 문갑도의 최고 비경답게 ‘한 폭의 그림’, ‘환상 그 자체’란 단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감동은 해가 바다 속으로 다 들어갈 때까지 이어졌다. 다시 진고개로 올라와 텐트를 처 놓은 반대편 한월리해변으로 돌아왔다. 파도 소리 잔잔한 해변에 우리만의 ‘황제 캠핑’이 시작되었다. 방풍림의 소나무에 LED 등을 켜고 프라이팬에 고기를 구웠다. 맞은편 덕적도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와, 하늘에 별 좀 보소. 진짜 쏟아지는 별빛이 이런 거네.”
노을에 취했던 망치대장이 이번에는 별빛에 취한 모양이다. 문갑풍월文匣風月이라, 과거 책 읽는 소리 가득했던 문갑도에서 외지인들은 감히 풍월을 읊지 말라고 했으나 이런 분위기에선 그게 참 어렵다. 별빛 쏟아지는 바닷가에서 달을 희롱하며 술잔을 기울이니 이 순간 자체가 한 편의 시일 것이었다.
산행 길잡이
한월리해변, 문갑리마을, 선착장 근처에 깃대봉으로 향하는 등산로 입구가 있다.
선착장 등산로 입구에서 깃대봉까지는 약 2.7km다. 깃대봉 가기 전 500m 지점에 처녀바위가 최고의 조망터다. 깃대봉에서 흘기재 방향으로 가야 왕재봉을 지나 진고개로 향한다. 진고개에서 왼쪽으로 600m 정도 내려가면 진모래해변이다. 일몰을 본 뒤 헤드랜턴을 켜고 반대편 한월리해변으로 넘어와도 무리가 없다. 진고개에서 한월리해변까지는 750m 정도 된다. 한월리해변~깃대봉~진모래해변~ 진고개~한월리해변 약 7.3km이다.
교통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덕적도로 가서 문갑도행 배로 갈아타야 한다. 인천항에서 고려고속훼리(1577-2891, www.kefship.com)의 코리아나호와 코리아스타호가 운항한다. 08:00, 09:00, 11:00, 14:30 등 매일 운항시간이 바뀌니 홈페이지에서 운항시간표를 확인할 것. 요금 왕복 기준 4만6,000원. 덕적도~문갑도는 나래호가 운항한다. 덕적도 출발 평일 11:20, 주말 · 공휴일 09:30, 13:00(문갑도→덕적도 평일 14:00, 주말 12:10, 15:40). 요금 왕복 기준 8,800원. 대부해운의 대부고속훼리 5호는 차를 싣고 덕적도까지 오간다. 인천에서 08:00에 출발한다. 요금 편도 1만2,000~1만3,200원. 차량운임 소형 편도 기준 4만8,200원.
인천시의 ‘섬나들이 이벤트’로 올해 말까지 여객선 요금 50% 할인. 단, 1박 2일~4박 5일 동안 섬에 머물러야 한다. 여름 성수기 기간 제외. 인천시민은 상시 60%를 할인받는다. 여행 전일 한국해운조합 홈페이지(island.haewoon.co.kr)에서 예매하거나 매표소에 직접 방문해 예매.
숙식(지역번호 032)
문갑도에는 음료와 술, 라면 등을 파는 작은 매점 외에 식당이나 물건 살 곳이 없다. 처음부터 모든 걸 챙겨오거나 덕적도에서 사와야 한다. 민박은 광복호민박(831-7343), 바다가보이는집(831-0936), 바다향기민박(831-9559) 등 몇몇이 있다. 모두 취사 가능, 객실요금 별도 문의.
문갑도 깃대봉 산행지도
문갑 8경 위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