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제 모습)
(예전 스사모 홈페이지에 한 번 올린 듯한데, 최근 비슷한 일로 속이 많이 상해서 이곳에 다시 올립니다.)
처가 식구들에게 드리는 글
또다시 봄날이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오고 가는 계절처럼 우리의 개별적인 삶에도 다양한 나날이 펼치졌다가 사라지곤 합니다. 맑은 날도 있고, 비가 오는 날도 있고, 눈보라가 치는 날도 있습니다. 저와 HSY의 삶이, 그리고 처가 식구들의 삶이 늘 봄날 같을 수만은 없겠지만, 봄날처럼 살고자 하는 노력은 중요한 듯합니다.
우선, 별 것 아닌 일로, 연로하신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죄송합니다.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별 것 아닌 일이지만, 그 일을 당면한 사람에게는 별 것일 수 있고, 엄청 중요한 일일 수 있어서, 저의 입장을 편지글을 통해 분명하게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이제 막 불혹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아내 HSY과는 십여 년 전에 만나서 지난 2000년 1월에 부부 인연을 맺었습니다. 아내 HSY과 저의 지나간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면, 힘겨운 나날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나날이 더 많았다고 회상합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거나 무책임한 남편 때문에 아내 HSY은 계속 일을 하며 고생했습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아내 HSY에게 늘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저 KSP은 경제적인 감각에 있어 매우 아둔합니다. 그러나 그 아둔함이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인 감각이 예민한, 경제적으로 영리한 사람들의 삶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경제적인 정의나 범주는 간단합니다. ‘자신의 능력껏 열심히 일해서 주어진 여건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서는 열심히 일하는 것 이외에도 여러 가지 경제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야 돈을 더 늘리고, 더 큰 집을 사고, 더 좋은 자동차를 탈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모든 구성원들을 시장판에 모여드는 파리떼로 전락시키고 있습니다. 즉,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만이 가치의 정점을 이루고 있습니다. 때문에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다른 사람들이야 어떻게 살든 말든, 나와 내 식구들만 잘 먹고 잘 살면 된다는 가족이기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팽배해져 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어느 70대 노인은 토지 보상 문제로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자, 그 분풀이로 숭례문을 불질렀습니다. 지난 총선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수도권 사람들이 뉴타운 건설이라는 거짓 공약에 속아서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 주었습니다. 작년 말에는 죽지도 않은 경제를 마치 죽은 것처럼 규정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숭례문에 불을 지른 노인이나 뉴타운 공약을 믿고 표를 찍어준 사람들은 그 행동 양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나지만 그 기본적인 의식 구조는 매 한가지입니다. 자신에게 경제적인 이익이 오는 것은 환영하지만, 경제적인 불이익이 오는 것은 참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70년대나 80년대에는 참으로 많은 국민들이 정치적 불의에 분노하고 그것에 대항하여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민주화를 얻었는데, 그렇게 어렵게 얻는 민주화의 자리를 그만 자본주의의 시장 논리가 차지하고 만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 모든 국민들의 사고방식이 이익/불이익 두 가지로 나뉘어서, 그것으로 모든 것을 평가합니다. 기가 막히는 현실입니다. 정치적인 불의가 있다면, 경제적인 불의도 있을 터인데, 최근 사람들은 경제적 불의에는 애써 눈을 감아 버리고 귀를 닫아 버리는 듯합니다. 경제적 불의는 관심이 전혀 없는데, 경제적 불이익에는 매우 민감합니다.
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과에 적을 두고 있었지만, 전공 보다는 한국근현대사와 서양철학, 문화인류학, 행동심리학, 사회생물학, 현대문학, 미술사 등에 더욱 많은 비중을 두고 공부했습니다. 졸업할 당시 막연하게 대학원 진학을 생각하고는 취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전공을 막론하고 천편일률적으로 토익이나 토플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1년 동안 아니 4년 동안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 한 권, 시집 한 권 읽지 않는 대학생들이 죽어라 영어 공부를 하고, 그 영어 공부와 암기 위주의 상식 공부 등이 입사시험에서의 평가 기준이 되는 사회 현실의 병신스러움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는 집안의 경제적인 형편 때문이었다기 보다는 공부에 관련된 제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저는, 저에게 10여 년간 여러 가지 학문에 접근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스승님에게 찾아가 대학원 진학에 대해 상담했습니다. 스승 왈, “네가 진정으로 학문을 사랑하고, 공부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대학원에 진학하거라.”라고 제게 답해 주었습니다. 공부, 즉 학문에 대한 제 스스로의 사랑과 깊이를 확인할 길 없고 확신할 길 없어 대학원 진학을 포기하고 잡지사에 취직하여 잡글을 썼던 것입니다.
졸업한 뒤, 계속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민예총 문예아카데미나 철학 아카데미 등의 개별 사교육기관에서 약 일곱 학기에 걸쳐 야간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심지어 스승이 강의하시는 대학원 강의실에 몰래 들어가 몇 학기 동안 돈 한 푼 내지 않고 도강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신문방송학보다 다른 학문을 더 많이 더 깊이 더 넓게 공부했지만, 신문방송학을 통해 기존 언론 시스템의 한계와 문제점을 정확하게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사 역시 돈을 버는 기업이라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특정 언론의 논조는 돈벌이(대부분 광고비 수주와 관련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국언론사를 공부하면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의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일제의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창간된 이 신문들은 겉으로는 민족지를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소수 특권층이나 권력에 기생하며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장사꾼들이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러한 언론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다양한 사건 사고를 언론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내용을 평가하게 됩니다. 문제는 중간에 개입한 언론 매체가 의도적으로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입장을 반영하여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만나서 밥 한 그릇, 차 한 잔 나누어 먹어본 적이 없는 사람을 특정 언론매체의 입맛대로 평가하고 판단하게 됩니다.
저는 스승들이나 선배들, 또는 동기들보다는 책을 별로 많이 읽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생각이 짧고 안목도 부족합니다. 책을 한 권 읽은 사람과 열 권 읽은 사람의 안목은 당연히 차이가 납니다. 우물 안에서만 생활해 온 개구리와 온 산천을 다 돌아다니는 개구리의 세상 보는 눈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문제는 책 한 권 읽은 사람은 그 책 한 권의 내용만이 진실의 전부인 줄 알고 고집하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바로 전 구성원들에게 책 한 권만의 내용을 강요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 세상이 의미 있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모두 저마다 다르다는 것 때문입니다. 다르게 생겼고, 다르게 움직이고, 다르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풍요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러한 다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으로 세상 모든 것을 보편타당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인간에게는 남과 다르게 생각할 권리가 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아주 오랫동안 그 권리를 탄압해왔고, 과거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오늘날에도 그것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한 것은 그것을 누리는 사람에게 여러 가지 편의를 제공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한 인간의 행복을 가늠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강남의 타워팰리스에 100평이 넘는 자기 집이 있고, 최고급 외제승용차를 타고, 최고급 옷을 입고, 최고급 음식을 먹는 사람이 있을 때, 그 사람이, 그 사람만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성공한 사람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각종 편리함과 편안함, 그리고 속도는 우리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대가 중 하나가 바로 태안 앞바다에 쏟아진 수만 톤의 원유입니다. 그 기름 유출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삼성중공업에 있지만,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바로 우리 인간들의 화석연료 사용인 것입니다. 지구가 수십만 년 동안 저장해 둔 화석연료로 집을 짓고, 냉난방을 하고,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는 우리 모두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겨울, 아내 HSY과 태안 바닷가에 가서 기름걸레질을 하면서 이를 악 물고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서(실제로 겨우 두 식구가 사는 우리 집에는 차가 두 대나 있습니다.) 반성하면서 또 다짐했습니다. 가급적이면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자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 실천 방안 중 하나가 바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의 일 때문에 자동차를 타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직장에서의 일은 시간을 다투기 때문입니다. 지난 3월초부터 오늘까지 실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체력이 허락하는 한, 자전거 타기를 계속 실천할 것입니다.
저는 집(영어로 House)을 다음처럼 생각합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 핵심이 되어야지, 돈을 주고 사고 파는 것이 핵심이 되어서는 아니된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있어 집은 집이 아니라 사고 파는 가운데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부동산이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국가 차원에서의 복지 시스템이 엉망입니다.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특히 그러합니다. 때문에 국민들은 저마다 개별적으로 그 비용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돈을 모으려고 합니다. 그런데 정상적으로 돈을 모으는 것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기 때문에 너도나도 투자라는 이름으로 땅을 사거나 아파트를 사서 돈을 더 얹어 되파는 형태의 부동산 장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행위인데 내가 하면 투자이고, 남이 하면 투기라고 생각하는 이중적인 잣대가 옳고 그름 자체를 판단할 수 없게 만듭니다. 즉, 땅이나 아파트로 부자가 된 사람들을 ‘졸부’라고 욕하기는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하고 자신도 기회가 주어지면 그렇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저의 부족한 공부에 의하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러한 현상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 경제성장 때문인 듯합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몇백 년에 걸쳐서 이룩한 산업화를 불과 30년 사이에 군대식으로 무조건 빨리 빨리 이룩했기 때문에 그 부작용이 1990년대부터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참으로 많은 사람들은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시기를 그리워하고 있으며, 그러한 방식의 날림 경제를 지휘한 당사자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모래 위에 지은 집은 제대로 된 기초가 없기 때문에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맨 처음 모래 위에 지어진 집의 근사함을 잊지 못하고, 그렇게 모래 위에 대충대충 집을 지은 건축업자를, 집이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도 찬양하고 존경합니다. 혹은 집이 무너지는 시점에 그 집을 관리하고 있는 사람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도 합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잡지사에서 3년, 장기기증운동단체에서 2년, 그리고 미술계에서 5년을 일했습니다. 모두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은 아니었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자’라는 신념으로 의미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런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몇 번인가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형태의 직장을 가질 기회도 있었지만, 제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맞지 않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부모님도 다른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어릴 적부터 저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공부해서 남 주냐? 제발 공부 좀 해라.’라고 했습니다. 이후 조금 더 큰 후에 세상을 둘러보니, 정말로, 사람들은 공부해서 남을 전혀 안 주고 자기와 자기 식구들만을 위해 사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라도,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공부한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 진정한 공부라는 것을 십수년 간의 공부 과정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함께 사는 아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 점은 늘 반성하고 있습니다.
2년 전쯤, 처남 HJK가 일본에서 한국으로 잠시 귀국하여 김포에서 처가 식구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미술단체에서 거의 자원봉사 수준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외식을 마치고 김포의 처가 아파트로 들어가려는데, 처남 HJK가 저를 잠시 불러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한 마디 했습니다. “매형! 이제 그런 일 좀 그만 하시죠.” 그 말에 숨겨진 뉘앙스가 무엇인지는 알았지만, 순간 엄청난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당시 저는 도둑질을 하지도 않았고, 마약 장사를 하지도 않았으며, 여자 장사를 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이 서른도 훨씬 더 넘어서 부모의 돈으로 일본에서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작은 누나를 고생시킨다는 이유로, 매형이라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한없이 괴롭고 슬프고 열 받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분당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을 수 있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KSP의 삶 전체가 무시당하고 모욕당한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을 이래라 저래라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날 차 안에서 장모님이 하신 말씀의 핵심은 간단했습니다. “열심히 벌어서 돈을 모아 집을 사라”였습니다. 제가 드린 말의 핵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본래의 내용과는 달리 말의 형식이 서로 달랐습니다. 때문에 제대로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4년 동안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했습니다. 대부분의 커뮤니케이션은 일방적인 모양새를 갖기 때문에 타인과의 의사소통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단, 인간과 인간의 의사 소통에서는 다양한 관계와 입장이 개입하기 때문에, 이해하고 해석해가며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입니다.
저의 성격이 많이 삐딱해서인지, 그날 차 안에서 장모님이 제게 하신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매우 공격적인 질타로 들렸습니다. 도대체 한 달에 얼마를 버냐는 질문, 명륜동 부모님에게 용돈을 얼마나 드리고 있느냐는 질문, 도대체 얼마를 모으고 살며, 오르는 전세값을 모을 수는 있냐는 질문,‘인간 도리를 하며 살아야 할 것 아니냐’는 훈계 등이 KSP에게, KSP의 있지도 않은 자존심을 건드렸습니다. 제가 장모님의 둘째 사위라는 이유로, 혹은 HSY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그러한 식의 모욕적인 말을 들을 의무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격적으로 수양이 덜 되었기 때문에, 어른에게 드리는 말투가 다소 가팔랐던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장모님의 말씀도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아니하게 들렸습니다.
저는 글주변도 없지만 말주변은 더더욱 없습니다. 생각하는 것은 많은데 그것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말을 내뱉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것이 특히 아내 HSY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번의 경우도 찾아가 뵙고 말로써 저의 입장을 전달해 드리는 것이 옳지만, 저는 워낙 말주변이 없는데다가 성질을 잘 조절하지 못하여 대신 이렇게 글로 저의 입장을 올립니다.
저는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것을 좀처럼 견디지 못합니다. 장모님은 식당에서 음식 나르는 종업원 한 명의 고단함마저 배려하시는 세심함을 갖고 계십니다. 저는 식당에서 음식도 날라 보았고, 막노동 현장에서 일당 노동자 생활도 오랫동안 해 보았기에, 장모님의 그 노동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세심함을 존경합니다. 나라에서 지급해준 군복을 입고, 나라에서 지급해준 총을 들고 군대에서 29개월 간의 치욕적인 생활도 했습니다. 군대 생활을 29개월간 직접 체험하며 느낀 것이 있습니다. 군대야말로 이 세상의 모든 불합리와 부조리에 대해 그냥 참고 견디는 것을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세뇌시키는 곳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집단적인 폭력과 강요, 그리고 세뇌가 자행되는 군대를 제대하고 보니 대학교라는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보니 사회는 군대와 똑같았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하면, 잘못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문제시 삼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종교라는 이름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삶을 강요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 영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경제적으로 아둔한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옳거나 또 어떤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다를 뿐입니다. 나와 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을 틀렸다고 쉽게 평가하거나 내 삶의 방식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직 공부가 부족하여, 무엇이 진정으로 인간을 위하는 사회인지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의 현실이 유일한 정답이 아니라는 점만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세상을 희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형평성에 기초하여 전국민이 낸 세금으로, 진정으로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학비 걱정없이 유치원에서 대학원까지 다닐 수 있는 사회, 무슨 질병에 걸리든 국가에서 다 책임지고 치료해주는 사회, 열심히 10년 정도 일 하면 조그만 집 한 채를 구입할 수 있는 사회, 직업적인 편견이나 차별이 없이 서로를 존중해주는 사회, 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 얼굴도 모르는 다른 사람의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는 사람이 더 많은 사회, 좁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지구 전체를 하나의 공동체 하나의 조국으로 생각하는 사회, 일 하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예 그것이 가능하지 않은 사회, 불이익에는 무심해도 불의는 참지 못하는 사회, 불합리하거나 부조리한 일에 대해 당당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 이번 생에서는 가능하지 않다고 해도, 그런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오게끔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에 분당에서 김포를 오가는 차 안에서 처남이 제게 그러더군요. ‘이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리고 살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처남 HJK에게 되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말라는 말인가’하고 말입니다.
어릴 적(아마 20대 초반)에는 혁명이나 전쟁과 같은 커다란 계기가 있어야만 세상이 변할 것이라는 미련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개개인의 조그만 실천과 노력이 당장에는 별 의미 없이 보여도, 언젠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다 희망적으로 바꾸어 놓는다고 말입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 40대 초입까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에서도 그 공부는 계속 될 것입니다. 공부하는 이유는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인간 고통의 근원에 대해 보다 깊이있게 이해하고 싶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인간의 희망을 찾고 싶습니다. 종교도 아마 그런 공부 중 하나일 것입니다. 다들 더 잘 먹고 더 잘 살기 위해서 공부합니다. 오늘날 영어 공부 열풍은 바로 그 맥락입니다. ‘오렌지’를 ‘어뤤지’라고 발음해야 인정받는 사회 속에서, 그런 사람들의 공부를 전적으로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어른들 보시기에는 참으로 가소롭고 한심한 인생일지 몰라도, KSP은 단 한 번 뿐인 삶을 의미있고 재미있게 통과하려고 합니다.
저의 개인적 결함이나 경제적 무능함에 대한 지적이나 비판을 달게 받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살아온 삶이나 살아갈 삶 전체에 대한 부정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날 차 안에서 장모님이 하신 말씀은, 딸자식을 시집보낸 부모님로서의 걱정에서 비롯된 말씀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8년 간의 결혼 생활을 통해 지켜본 아내 HSY은 매우 야무지고 똑똑하며 단단한 여자입니다. 저는 바보 온달은 아니지만, 분명 HSY은 평강공주가 맞습니다.
정당하게 열심히 노력하여 돈을 모아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집을 구하겠습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보시기에는 제가 한없이 철없는 어린아이 같겠지만, 저도 어느덧 불혹의 나이를 먹도록 세상에 존재했습니다. 저의 경제적 감각의 아둔함에 답답하실테고 화도 나실 것입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제 삶의 가치를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내 HSY을 고생시키지 않겠습니다. 장모님은 저에게, 결혼한지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고 역정을 내셨는데요. 이 세상에는 변함없이 변하는 것도 있고, 변함없이 변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저와 HSY이 당면한 경제적인 형편 또는 여건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하신 듯한데요. 거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변명이나 해명을 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제 능력껏 노력하겠습니다.
내 집이 없어 전세를 옮겨 다니는 것은 확실히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행한 일은 아닙니다. 부모가 아주 돈이 많거나 아주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지 아니한 바에는 처음부터 쉽게 집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 두 분은 평생을 노동하여 모은 돈으로 집을 사셨습니다. 때문에 지금 명륜동 집 재산은 엄연히 두 분만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법률상의 자녀균분제에 의하면, 저에게도 아버지를 제외한 나머지 구성원으로써 4분의 1 가량의 몫이 있지만, 그것을 주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 역시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으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식이 없지만, 만약 생긴다면 그 자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그대로 물려받아 그것을 밑천으로 계속 돈을 불려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는 방식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의 재산이 없는 사람은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릴 수 없는 시스템이 고착되기 때문입니다. 결혼 초, 우리 부모님과 처갓집 어르신들이 전세자금으로 지원해주신 부분은 어떤 식으로든 되돌려드릴 것입니다.
장모님이 저에게 ‘인간적 도리’를 말씀하셨는데요. 사람마다 또는 처한 입장이나 위치에 따라 그 ‘인간적 도리’는 제각각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인간적 도리’에는 충실하며 살아왔습니다. 경제적 차원에서의 ‘인간적 도리’라면, 오고 가는 돈의 액수에 따라 인간적 도리의 옳고 그름이 결정되는 것인지, 저는 아둔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늙으신 부모님들에게 한 달에 10만원씩 용돈을 드리면 인간적 도리를 못 하는 것이고, 한 달에 100만원씩 드리면 인간적 도리를 다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아예 용돈을 못 드리면 ‘인간’이 아니라 ‘짐승’인지 그것 역시 알 도리가 없습니다.
제가 제 자신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해 보면, 별로 이렇다하게 가진 능력은 없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돈 되는 능력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고유한 능력이나 가치를 평가할 때, 오로지 경제적인 수입 정도만으로 평가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그 또한, 저는 아둔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지 이제 겨우 10년이 되었습니다. 개별적인 생에 있어서는 남아 있는 삶이 그리 많지 않지만, 사회 구성원으로서 본격적인 사회적인 삶을 살기에는 아직도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제가 갖고 있는 꿈이 구체적인 형태의 날개가 되어 날아오를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제가 이 세상을 다녀간 증거가, 고작, KSP 명의로 된 아파트 한 채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제 자신을 믿습니다. 그리고 아내 HSY도 믿습니다. 우리의 미래도 믿습니다.
정말 사소하다면 한없이 사소하고, 중요하다면 정말 중요할 수 있는, 둘째 딸과 둘째 사위가 당면하고 있는 경제적인 형편이나 여건 때문에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 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그러나 두 분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많이 불편하거나 많이 불행하지는 않습니다. 희망이 있고, 또 내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만 두서없는 편지글을 줄이고자 합니다. HSY을 존중해주며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
--------------------------------- 2008년 4월 29일, 둘째 사위 KSP 올림
(1년 전, 제 모습)
첫댓글 홧팅 하세요
아침에 출근해서 이 글을 오픈해서, 일하면서 틈틈이 읽다 보니 이제야 다 읽었습니다.
사진에 보니 10년 전보다 1년 전 사진이 훨씬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입니다. ^^
..
..
저도 10년도 훨씬 전에 작성한 편지가 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어느 폴더엔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독백 비슷한 내용이었는데, 지금 읽어봐도 당시의 상황과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 옵니다만,
영원히 부치지 못할 편지가 될 것입니다.
...
국장님!
언제 수원 쪽 지날 일 있으면 꼭 들르세요. 가급적 저녁때.. ^^
이세상은 많은 사람이 바꾸거나 어떤 특정인이 바꾸는것이 아니라 생각함니다
그리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건 절대 아니겠지요
하지만 이사회가 내생각과 내이상과 다르다고 거부할수는 없겠지요
전 그저 있는그대로 최선다해 살아가고 있슴니다
돈이 없어도 불행하다고 생각 해본적 없고요
나와 가족이 건강하게 잘살고 있기에...
기회만되면 막노동부터 용접 집짓는일 논이나 밭 보일러도 놓고 전기공사 등등
어떤일이든지 하고 몇푼 벌어서 살아감니다
많이 안쓰니 부족함도 없네요...
건강하세요
사람 사는게 다 그렇죠.....^^
부모에게 여태 해 놓은게 뭐냐고 한소리 듣다가.......
이렇게 살거면 나가 살으란 말까지 듣고는 빽~해서
그러겠다고 하고는 어색한 밤 티비를 보다가 잠들었는데......^^
아침에 밥먹으라고 깨우더군요.....ㅠ.ㅠ
사는게 다 이런거 같습니다.......
어제의 사단은......
퇴직으로 생긴 돈이 조금 있는데......
그거 가지고 있으면서 스고 댕기는거 아니냐.......
집대출금이라도 갚아라 이겁니다..........
이걸 어떻게 활용해서 더 큰 부가가치를 만들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는데...대출상환이라니요..........
오히려 대출을 더 해야할 상황을 어떻게라도 안하고 해볼려고 꼼수쓰는데...
그래선지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들을 어제 엄니랑 하곤 후회가 되었지만......
왜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들을 그리 서슴없이 하는지 모르겠읍니다.......
차 지나가고 난후에 빵~ 하는 왜? 이런 느낌? 안해도 될것들을 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면 좋겠지만.......
푸는사람 따로고 받는 사람 따로면........누가 누구를 배려해야 할까요?
사는거 답 없읍니다....돈 많이 벌어서 마니 쓰면 다들 좋아라 합니다.
돈이 사람의 척도가 되어버린지가 오래라........답답하지만......
그렇게 평가하고 진단하니 안할 도리가 없읍니다.......
해서 전 할거 해주자 입니다만 능력치가 안되어 고만고만하니...
너이만먹고 답이 없더군요....^^
못부친 편지는 없지만.......
예전에 비해서 많이 참던게 없어진것 같습니다......
조금만 자존심 상하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발끈해지는걸 보니.......
이렇게 쉴때 여행이라도 가자 했는데..결국 돈이 발목을 잡으니...여행은 무슨.....ㅎㅎㅎ
이리 되네요......
친구랑 구상하는 사업이 있는데.......
이거 심취하기전에 여행 함 가볼까 해요....
텐트에 코펠들고.....
전라도 여행...........^^
사회의 진보는 참으로 더디고 힘들게 진행되는 게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잠시 동안 좋은 시절이 있었어도 그 시절엔 그게 좋은 줄은 저 또한 생각 안하고 살았었지요. 잃어봐야 소중한 걸 안달까요.
현재 한국사회, 한마디로 답 없지요.
최근에 원전관련 이야기를 보다보니 또 가슴이 미어지더군요.
솔직히, 자식을 위해서라도 가능하다면 나가서 사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조국을 버린다는 죄책감 같은게 걸림이 될수도 있지만.. 통신환경과 재외국민 투표권도 이젠 있으니 어느정도 그 부담은 덜 수 있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네,,, 화이팅 ~~~!!!
정말 이막수님 처럼 생각하고 행동할수 있는 사람이 10에 1~2명정도만 되도, 이사회는 막장사회가 될수 없었을 텐데요,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우리 스사모 회원들은 물론 대부분 님의 생각과 태도를 100% 이해하고 또 실천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한국사회 굿데이님 말씀처럼 한마디로 답 없지요.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쓰레기들을 모아놓은 나라가
우리나라가 아닐까! 생각해도 지나치지 않을것입니다.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바로 잡을수 있을까요?
저는 예전부터 극일을 얘기할때 우리나라가 일본보다 도덕적으로 더 우위에 있어야 된다고 말을 해왔습니다.
진정으로 행복을 논할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님과함께 빌어봅니다.
1년 동안 아니 4년 동안 모국어로 쓰여진 소설 한 권, 시집 한 권 읽지 않는 대학생들이 죽어라 영어 공부를 하고, 그 영어 공부와 암기 위주의 상식 공부 등이 입사시험에서의 평가 기준이 되는 사회 현실의 병신스러움 역시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이 글귀 상당히 공감가네요.. ㅠㅠ 대한민국..... 참 살기 어렵고도 힘든 곳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된 우리사회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여기 이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 아닐까요?
나는 아니다 라는 생각 그런말 하지마시기 바람니다
어느누구도 벗어날수는 없는것 아닐까요..?여기 이땅에 살고 있는한...
모두다 공동 책임이라 생각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