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사박물관 관장 '천하무적 수집광 최봉권'
귀한 건 다들 수집하지만 흔한 물건은 금방 사라져
안타까운 마음에 근현대 생활용품 수집
30년간 모은 7만여 점 지난 5월 헤이리에 오픈
올 초까지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인마을 한쪽에는 텅 빈 회색 건물이 하나 있었다. 3년째 비어 있었다. 앞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잊으셨나요? 무명치마, 흰 저고리 입은 지 얼마나 됐다고…."
지난 5월 정체가 드러났다. 이름하여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다. 원래는 지금 신도시로 변한 교하에 있었는데, 이러구러한 사연으로 5년 동안 사라졌다가 헤이리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물관을 지은 사람은 최봉권. 올해 쉰다섯 살 된 사업가다. 헤이리로 오기까지, 참 지긋지긋한 경로를 거쳤다.
최봉권은 지난 30년 동안 대략 이런 물건들을 모았다. 진로소주병, 놋요강, 이발소 그림, 엿장수 가위, 고동색 유약이 드문드문 칠해진 1970년대 다방 엽차잔, 경찰서 유치장 철창문, 일본강점기 때 소방마차, 다리 네개 달린 흑백텔레비전, 기름 짜는 틀, 석유 판매점 깔때기, 시골집 벽에 걸렸던 가족사진 액자 기타 등등.
젊은 날 최봉권은 한 제지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지방 출장이 잦았다. 출장 업무가 끝나면 포니 승용차를 몰고 무작정 오지로 들어가곤 했다. 오지에서 무조건 고물을 끌어다 모았다. 그리고 서른 갓 넘긴 어느 해 회사를 때려치우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특별한 종이를 만드는 특수제지 회사다. 돈은 잘 벌렸고, 물건 놔둘 창고도 생겼겠다, 이제 제대로 고물(古物) 수집 시작이다.
- ▲ 간첩에 미친놈 소리 들으며 고물(古物)을 모았다. 돈도 안 되는 이 짓 한 지가 30년이 넘었다. 최봉권이 말했다.“ 이거 다 사라지면 누가 언제 기억하나?”
- ▲ 최봉권의 박물관 풍경 하나. 전형적인 1970년대 골목 풍경을 감쪽같이 재현했다.
사업한다고 지방 출장 잦은 남편 뒷바라지하던 아내,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파트 구석구석이 온통 귀신 나올 듯한 잡동사니 천지가 아닌가. 썩고 냄새 나는 오만 잡동사니들. 물건이 쫓겨나거나 남편이 쫓겨나거나 둘 중 한 사건이 수시로 터졌다.
최씨 고집, 못 말린다. 아예 1t 트럭을 사서 회사 직원과 함께 전국을 누볐다. 서울에서 요강 사러 왔다며 진을 치고 앉아 있는 청년에게 한 노인이 말했다. "멀쩡한 젊은인데, 이런 거 줍고 다니지 말고 다른 일 해서 돈 벌어."
고물 끌어안고 희희낙락하는 젊은이를 보고 지나가던 마을 주민들이 귓속말로 수군댔다. '간첩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오만 쓰레기로 뒤덮인 트럭을 수색하다가 저절로 혼잣말을 하곤 했다. "간첩 웃기고 자빠졌네. 미친놈이다."
잦은 객지 생활에 체력이 달렸다. 그래서 헬스클럽을 다녔다. 우물에 빠지고 지붕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다. 그래서 낙법을 배웠다. 수십년 된 먼지구덩이 속에서 발굴을 하면 먼지가 몸속까지 파고들었다. 그래서 트럭에 막걸리와 소주를 가지고 다니며 목에 낀 먼지를 훑어내곤 했다.
물건을 가져오면 가족들은 귀신 붙었다고 굿을 하곤 했다. 본인도 가끔 무섭다. 하지만 그 오만 잡귀신들과 30년 같이 논 끝에 "내가 귀신이 됐다"고 했다. "최봉권이 힘이 세니까, 다른 귀신들 다 이깁니다요." 친구들은 "저놈, 아직도 미친 짓하고 있네"하고 놀렸다. 가족들은 포기했다.
도대체 왜? 처음에는 오로지 재미였다. "고등학교 때 김종규라는 선생님이 백제 역사에 해박하셨다. 그분 따라서 기왓장도 주워 보고, 절도 많이 다녔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다 사라져 버리면 어떡하지?"
"귀한 거는 사람들이 모으지 않는가. 그런데 흔해빠진 물건은 흔해서 금방 없어져 버린다." 그래서 그는 이 짓을 계속했다. 폐가 문짝을 뜯어냈다가 십리를 쫓아온 주인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멀쩡하게 사람 사는 집 함석지붕 팔라고 했다가 또 한 소리 듣기도 했다. "이 미친놈아."
30년 모은 생활용품이 자그마치 7만점이다. 회사 창고는 그 귀신 붙은 물건들로 가득했다. 창고가 흘러넘쳐 회사 마당에 비닐을 깔고 거기에 물건을 부려놓기도 했다. 그리고 2005년 그 가운데 4만점을 골라 파주 교하 땅에 박물관을 지었다. 한국근현대사박물관이다. 하도 돈이 많이 들어 집에서는 "생활비만이라도 달라"고 했다. 친구들은 "미친 짓 하더니 결국 원을 풀었구나"하고 축하해 마지않았다. 그런데 공사 도중에 교하 신도시 건설용 부지로 수용된 것이다.
소장품 포장이랑 운반 비용, 박물관 내부 재건축비 등을 박물관 시공업체에 의뢰해보니 모두 40억원이었다. 문제는 소장품 자체. "이 물건들, 다 싸구려니까. 14억원에 땅이랑 모두 보상해 주겠다더라." 나라에서는 종류에 상관없이 5t 트럭 한 대분당 14만원씩 보상해주겠다고 했다. 최봉권이 대답했다. "그냥 태워 버리겠다." 결국 2005년 12월 31일 개관 1년 만에 박물관은 문을 닫았고 물건들은 모조리 회사 창고로 들어갔다.
몇 달이 지나고 최봉권은 책상머리에 앉아서 또 다른 음모를 꾸몄다. 이듬해, 보상받은 돈으로 헤이리에 땅을 샀다. 도면을 그리고, 건물이 뼈대를 잡으면서 소장품을 헤이리 건물 창고로 옮겼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지난 5월 마침내 '미친놈'의 '미친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외곽에 세워놓은 빨간 포니 포터 승용차, 소방차를 스쳐 안으로 들어가면 아예 마을 하나가 들어서 있다.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옛 물건들이 골목골목 숨어서 사람들을 기다린다. 몇 번씩 반복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고, 아이들을 끌고 와서 직접 학예사처럼 설명을 하는 어른들도 있다. 어찌나 정교한지, 하숙집 옆 부엌 물 새는 바닥 질감까지 재현해놨다. 사람들은 꾸역꾸역 밀려오는데, 정작 최봉권 본인네 가족들은 개관식 때 빼고는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다고 했다. 그가 말했다. "남편 뺏은 물건들 뭐가 예뻐서 오겠누. 또 아빠라고 어디 같이 놀러 가면 고물 뒤지고, 공자왈 맹자왈 해댔으니 지긋지긋하겠지."
박물관 홈페이지는 www.kmhm.or.kr, 전화번호는 (031)957-1125다. 개방시간은 09:00~ 18: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주중 5000원, 주말 7000원. 자유로 성동IC에서 나와 이정표 따라 헤이리마을 4번 게이트로 들어가면 된다. 내비게이션은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1652’를 치면 된다.
첫댓글 세상에 나와 의미있는 일을 하신 최봉권님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좋은 정보 감사
무슨 일이든지 미쳐야![쩐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_45.gif)
성공하는 것이 아닌감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59.gif)
1970년대 골목 풍경 한 번 구경하면 재밌을 것 같군요. 좋은 정보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