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을 사야 할 때이다.
새해는 꿈을 꾸는 때입니다. 그런데 작금 우리의 상황은 우리에게 꿈을 주기보다는 우리의 꿈을 빼앗고 짓밟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꿈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꿈을 사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위대성을 그 사람이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측정해 볼 수가 있습니다. 희망과 꿈이 고상하고 큰 사람은 그만큼 위대한 사람이요 꿈이 천한 사람은 그만큼 천박한 사람이요 꿈이 없는 사람은 희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평범과 비범의 차이는 오직 꿈의 차이일 뿐입니다. 역사상 위대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신념있게 살아간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지식이나 지혜가 월등하게 뛰어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신 까닭은 그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않는 꿈과 환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이나 집단이나 사회를 축복하시려고 할 때에는 먼저 마음속에 꿈을 갖게 하고 그리고 그 꿈을 버리지 않을 때 그 꿈을 따라 축복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신앙의 위인들은 거의다 꿈의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 즉 꿈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에 "내가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했습니다. 예언, 환상, 꿈이란 말이 나옵니다만 모두 같은 뜻입니다. 같은 뜻의 말을 세 번씩이나 반복함으로 강한 강조를 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꿈꾸는 사람입니다.
예수는 인류의 꿈입니다. 교회는 꿈파는 가게입니다. 성령은 꿈을 주는 영입니다. 그러나 악령은 모든 꿈을 부셔 버리는 절망의 영입니다. 교회는 젊은이나 늙은이나, 가난한 이나 부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자나, 누구에게나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곳입니다. 만약에 여기 와서 꿈을 사지 못한다면 교회는 생명력을 잃은 것입니다. 목사의 설교가 교인들의 가슴에 영롱한 꿈을 심지 않는다면 그 설교는 죽은 것입니다.
독일의 실천 신학자 루돌프 보렌은 "설교는 환상을 주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한해동안 우리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의 성품과 비전, 신령한 꿈을 나누어 갖는 복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병든 사람은 건강한 꿈을, 실패한 사람은 성공하는 꿈을, 가난한 이는 부요의 꿈을, 불행한 사람은 행복의 꿈을 가슴에 심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축복을 받으려면 축복이 임하는 복된 꿈을 마음속에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일평생 꿈을 먹고산 대표적인 인물을 들라고 하면 아무래도 요셉이라는 사람입니다.
II. 멋진 꿈일수록 시련에 부딪힌다.
요셉의 일생은 파란만장하고, 흥미진진하고, 스릴있는 하나의 드라마입니다. 요셉은 꿈을 먹고 산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과 똑같은 일과가 반복되는 나날을 보내면서도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요셉은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번째로 태어났지요. 물론 야곱이 사랑하는 아내 라헬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옷을 입히고 특별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이토록 부모의 사랑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한몸에 지닌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고, 그것이 바로 형들에게 미움과 질투를 당한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 그 첫째, 형들이 아버지의 양떼를 몰다가 장사꾼들이 오면 양을 몰래 팔아 먹으려 했던 것 같애요. 그런데 요셉은 형들이 하는 일에 가담치 않고 언제나 정당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형들이 요셉을 미워한 원인의 하나였고, 둘째로는, 요셉이 꿈을 꾸어 그 꿈꾼 이야기를 형들에게 합니다. 추수를 하는데 형들의 나락단이 나의 나락단을 보고서 절을 하더라. 형들의 별이 내 별을 보고서 절을 하더라고 하니 형들이 좋아할 리가 있겠어요? 아무리 못나도 형은 형인데 체면이 있지. 그래서 동생을 몹시 질투하고 미워하고 결국 동생을 죽이는 모의를 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 비전 때문에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당하고 이방나라에 가서 얼마나 괴롭고 답답한 일을 당했는지 우리는 잘 압니다. 언제나 진리와 정의는 중상과 모략의 산을 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남에게 미움을 당하고 질투를 당하고 여러가지 어려운 시험과 환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정직하게 살기 위해서, 세상에 너저분하게 널려있는 거짓의 타협자가 되지 아니하려고 하다가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면 그것은 오히려 긍지와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 때문에, 또한 부정적이나 태만과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다가 미움을 당해서 죽음의 대상이 된 것이 요셉의 시험과 고생의 시작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가졌던 신앙입니다. 아니 오늘 우리의 간증이올시다. "네가 죄를 짓다가 거짓말을 하다가 고생을 당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나 선을 행하다가, 바로 살려고 하다가 고생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값진 일이니라"
비전가와 몽상가는 다릅니다. 비전가는 고난과 한계 앞에서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몽상가는 막연하게 꿈을 꾸다가 가는 길이 힘들면 금방 포기해 버립니다.
1월 15일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이요 미국의 국경일입니다. 미국에서 개인의 생일이 국가의 경축일이 된 것은 초대 대통령 죠지 워싱턴 이후 두 번째입니다.
마르틴 루터 킹은 어린 시절에 백인 친구와 함께 놀다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노는 것도 거절당하는 서러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이후로 가슴에 설레이는 꿈을 안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남부 알라바마주 몽고메리에 있는 덱스트(침례)교회 목사로서 흑인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한 위인의 생애를 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유명한 워싱턴 대행진에서 행한 연설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는 꿈꾸노라. 언제인가 나의 네 아이들이 피부의 색깔이 아닌 그 인격의 내용에 따라 평가되는 나라에서 사는 날이 올 것을... 오늘 나는 꿈 꾸노라. 언제인가 알라바마주에서 흑인의 소년 소녀가 백인의 소년 소녀들의 손을 잡고 형제와 자매로서 같이 지내는 날이 올 것을 나는 꿈꾸노라. 골짜기가 메워지며, 언덕이 낮아지며,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인간이 그것을 우러러 보는 날이 올 것이다. 아메리카가 위대한 나라가 되기 위하여 이 꿈은 이루어져야 한다. 자유의 꿈을 울리게 하라"고 외칠 때 백만이 넘는 군중은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We shell overcome. 어린 시절 자유의 꿈은 그에게 미국의 꿈으로 키웠고, 그 꿈은 세계를 감동시켰고, 마침내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미국 땅에 이 꿈이 이뤄지기까지 킹 목사는 수많은 협박에 시달렸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마침내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야 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물고 늘어지는 것이 곧 천재성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신앙, 끈질기게 매달려 기도하는 사람, 큰 꿈을 꾸고 크게 기도하는 사람이 꿈의 천재들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보면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했습니다. 입을 열지 않는데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전을 가지고 믿음의 입을 넓게 열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꿈과 믿음대로 채워주십니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사람은 육신은 살았으나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늙어도 젊은이요 꿈을 갖지 못한 사람은 젊어도 늙은이입니다. 성도들은 꿈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꿈이 있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신앙생활에 꿈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도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이 없는 교회는 맥이 없는 교회, 생기가 없는 교회입니다.
성경과 기독교 역사에 나타나는 꿈의 사람들을 살펴보면-
1. 화려하게 출발하는 화려한 꿈은 없습니다. 여러분의 지금 상황이, 지금의 출발이 좋지 않아도 그 꿈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2. 멋진 꿈일수록 때로 절망적 상황에 부딪히곤 합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어렵다고 그 꿈이 좌절된 것은 아닙니다. 높이 올라가는 꿈일수록 깊은 구덩이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3. 고상한 꿈일수록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요셉도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 23년이란 시간이 걸렸습니다.
III. 하나님은 꿈꾸는 자와 함께 하신다
요셉을 보십시다. 어린마음에 형들이 일하는 광경을 보리라는 부푼 꿈을 가지고 어깨에는 보리떡을 메고 형들에게 위문을 갔지만 일은 뒤집혀 요셉이 가져간 떡은 빼앗기고 손발은 결박당했습니다. 채색옷은 찢기어 피가 묻었고, 물없는 우물에서 죽임을 당하는 찰라, 미디안 장사꾼에게 팔리게 되지요. 그리하여 애굽의 노예가 된 요셉은 말이 통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나라 보디발의 집에서 몸종 노릇을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창세기 39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하는 말이 무려 5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형들은 요셉을 자기 조국에서 추방했지만 하나님의 품에서까지 추방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부모에게 사랑받는 것이 눈에 거슬려 부모의 사랑줄을 끊기 위해 채색옷을 찢고 피를 묻혀 이방나라로 팔아버렸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와 정직한 비전을 장사꾼에게 팔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이 입고 있던 채색옷에는 피가 묻고 갈기갈기 찢겨졌지만 요셉이 간직한 꿈과 믿음에는 피를 묻힐 수도 찢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사랑하는 부모곁을 떠나 조국에서 추방당하고 의복은 노예옷을 입고 이름은 노예라는 이름을 가지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언제 풀릴지도 모르는 몸종이 되어서 고생하지만, 성경에 분명하고도 똑똑하게 반복되어 나오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더라」는 이 말이야말로 요셉을 표현하는 유일의 형용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을 통하여 보디발의 집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믿지 않는 보디발까지도 요셉을 자기집 총무로 삼아 열쇠를 맡기고 도장을 맡기며 모든 권리를 그에게 위임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짓밟고 찢고 추방하고 멸시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축복을 주어 그를 높이고 그에게 권력을 주고 그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던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그 축복을 형들이 빼앗을 수 있으며, 아니 세상의 그 누구가 막을 수 있으며 어떤 힘센자가 찢을 수 있으며 추방할 수 있겠습니까?
이 시간 간절히 바라기는 인간의 약은 꾀로 감투를 얻고 인간의 간사한 타협으로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시므로 인하여 성공하며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는 곳에 높음이 있고, 영화롭게 해 주시는 곳에 영광이 있는 줄로 알 때에, 문제는 주님께서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하시느냐가 문제입니다. 아니 더 큰 문제는 내가 지금 하나님 곁에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는 실패같은 성공이 있으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그곳에는 성공같은 실패가 연속될 따름입니다.
IV. 어릴 때 내 가슴속에 있던 꿈
부족한 종은 어릴 때에 교회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때에 저희집 옆에 큰 집을 짓는 목수들이 있습니다. 제가 물었지요. "아저씨 아저씨, 이 집에는 누가 살아요?" "이 집에는 하나님이 사신 단다." 그래서 하나님은 굉장히 크고 위대하시고 큰 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하고 함께 살아봤으면 좋겠다.' 그것이 나중에 예배당이요 교회인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때부터 내 가슴속에는 건강한 교회, 행복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에 대한 꿈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프랑스에 한 병사가 유탄에 맞아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집도하던 의사가 말합니다. "조금만 더 깊이 박혔으면 큰일날 뻔 했습니다." 이 병사는 빙그레 웃으며 "내 가슴을 조금만 더 깊이 파 보았으면 내 심장 중심에 내 조국 프랑스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셨을 것입니다." 어릴때부터 류목사의 가슴을 쪼개고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내 가슴속에는 행복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에 대한 꿈이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에 목사가 되기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내 생애를 내 몸을 하나님 앞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 설교를 하고 나면, 부흥사님들이 와서 설교를 하고 나면 뒷동산에 올라가서 설교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솔잎가지를 꺾어서 세워놓고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주워다 놓고 솔방울을 주워 세워놓고 그것이 미래에 내 교인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연습했습니다. 목회를 한다는게 무엇인가? 목사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가? 저는 설교하는게 좋아서 어릴때부터 설교하는 연습을 하며 자랐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는 꿈과 비전을 가슴에 안고 살아갔습니다.
내 아버지는 인천상륙작전에 소대장으로 출전하셨다가 적탄에 맞아서 북녘땅에서 피흘리고 돌아가셨습니다. 때문에 '나는 복음을 위하여 예수를 위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릴 것이다' 어릴때부터 다짐하곤 했습니다. 누군가 내 심장을 쪼개서 들여다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내심장 중심에는 내조국 한민족이 한반도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한국 땅을 바라보면 나는 언제나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언제나 내 피가 거꾸로 용솟음치는 열정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한반도 지도를 보면 내가슴은 언제나 눈물로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난 것 분명한 하나님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내민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는 분명한 계획이 있을 것이다. 이민족을 향한 원대한 비전을 품고 어릴때부터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개인의 꿈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꿈은 언제나 그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남미와 북미의 차이를 아십니까? 북미는 부자로 잘 삽니다. 그런데 남미의 국가들은 비교적 가난하게 살고 있습니다. 유럽 이민자들이 처음 정착한 땅은 오히려 남미였습니다. 지하자원이 더욱 풍성한 땅도 남미임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북미는 부자로 잘 살고 남미는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입니까? 남미는 스페인 사람들이 황금을 구하러 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북미는 청교도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떠난 땅이었습니다. 신앙의 영광을 잃지 않기 위하여 찾아갔던 땅이었습니다. 고상한 꿈이 고상한 미래를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V. 요셉의 꿈은 온세상으로부터 절받는 꿈이었다.
요셉의 꿈이 무엇이었습니까? 요셉의 꿈은 단순히 내가 성공하고 출세하는 꿈이 아니었습니다. 절 받는 사람 - 감동을 주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이 꾼 꿈은 해 같은 아버지, 달 같은 어머니, 열 한 별인 형제들로부터 절을 받고 군림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주는 꿈이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가정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고 인류를 구원하는 꿈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업무적으로 사원들이 사장에게 절을 합니다. 그런데 회사원 가운데 성실하고 진실하고 그 마음이 아름다울 때 사장은 감동을 받고 속으로 절을 합니다. '그대는 참 위대하다'. 제가 설교하는 목사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절을 합니다. 그러나 제가 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인들 가운데에서 저를 감동시키고 있는 교인을 보면 저는 마음으로 절을 합니다.
여러분은 이 땅에 살면서 꿈을 갖되, 자기의 부모마져 감동시켜 우러러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는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부자 되는 꿈도 가져야 되고 잘되는 꿈도 가져야 되지만, 최고의 꿈은 모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꿈입니다. 온땅이 내게 절하는 꿈! 말입니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높은 지위에 올라야 합니까? 전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대통령이 되었다고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닙니다. 사장이 되었다고 우러러 보는 것이 아닙니다. 지위의 높고 낮음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의 성품과 마음을 담으면 그가 어떤 자리에서 무엇을 하든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절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존재가 되는 것이 바로 위대한 꿈입니다. 저는 성도들이 그런 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성품과 비전을 받아 누리는 사람 말입니다.
부자가 되었다 합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존경은커녕 인정 없는 수전노라고 손가락질을 받는다면 그 애써 모은 재물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회사에서 남을 제치고 올라갔다 합시다. 그러나 동료들에게 남을 생각할 줄 모르고 자기 이속만 챙기는 사람이라고 따돌림을 당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는 지위가 높아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신다면 한참 낮아진 것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가 되어도 하나님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면 부러움을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존경을 받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여기 요셉에게 절한 해와 달과 열한 별을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해와 달과 별은 전 세계를 가르킵니다. 해, 달, 별은 온 땅을 비추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전 세계가 요셉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무릎을 꿇는 다는 것은 힘으로 굴복 당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인격에 감동이 되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표시한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바다같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자기를 죽이려 했던 형들, 자기를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아 버렸던 형들을 진심으로 용서해 주었습니다. 이만하면 전 세계가 무릎 꿇을만 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진정한 비전, 크고 놀라운 꿈은 온세상을 살리는 꿈입니다. 인간을 구원하는 꿈입니다. 세계 열방을 구속하는 꿈입니다. 온땅에 하나님 나라를 펼치는 비전입니다.
요셉은 집에 있을 때 아들 중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아들이었습니다. 그가 보디발 장군의 집에 가서 종노릇을 할 때도 종들 중에서 우뚝 솟았습니다. 요셉은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절을 합니다. 요셉은 절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해도 절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도 죄수들에게 절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의 신하가 되어도 왕에게서 절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위대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절받는 존재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절받는 사람이 되려는 꿈은 좋은 꿈입니다. 그 꿈은 하나님 앞에서 면류관 쓰는 꿈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가정이 있지 않습니까? 아내에게 절받는 남편이 되십시요. 자녀에게 절받는 아버지가 되십시요. 그 어느 곳에서든지 그 자리에서 만인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십시요. 절대로 욕먹는 존재가 되지 마십시요. 회사에 들어가도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비웃음을 사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요. 자기 신성한 자존심을 가지고 만민이 우러러보는 존재가 되려는 꿈을 가지십시요. 꿈을 가지면 됩니다. 인물 잘난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많이 했다고 절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요셉과 같이 그 마음가짐이 높고 위대하면 어떤 사람도 거기에 절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성품을 받아 남을 사랑할 때 사람들이 내게 절을 하게 됩니다.
진심으로 절하고 싶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목사가 절하고 싶은 교인, 교회의 교우들이 절하고 싶은 사람이 그립습니다. 우리 모두 새해엔 어디가나 존경받고 절받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VI. 맺으며
전라남도 어느 조그마한 시골에서 태어난 영석이라고 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제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저는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면 구체적으로 이런 일을 하면서 살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이렇게 영광돌리며 살겠습니다." 예배당 앞에 엎드려 눈물을 먹삼아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고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전상서!」 열정을 담아서 구체적으로 간절하게 피를 찍어서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붙들고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은 가난해서 중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제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면 내가 이런 인물이 되겠습니다. 이런 사람이 되겠습니다." 편지를 보냈는데 우체국 직원이 그 편지를 보고 전해줄 곳이 없었습니다. 버릴 수는 더욱 없었습니다. 어찌할까 생각하다가 그 지역에 있는 조그마한 농촌교회에 이준묵 목사님이 목회하는 시골교회에 이 편지를 배달했습니다.
목사님께서 편지를 보니 간절한 내용이었습니다. 불덩어리를 만지는 것처럼 가슴이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구체적으로 하나님앞에 기도가 담겨져 있는지 이 편지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이 아이를 불러다 중학교를 보내고 고등학교를 보내고 그가 신학대학교에 들어가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스위스 바잘대학에 들어가서 마침내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모 신학교에 조직신학교수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꿈! 꿈이 문제입니다. 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전상서! 여러분 기도를 한번 올려보지 않겠습니까? 새해 첫주일 새해 나는 이런 사역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존경받는 인물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를 이렇게 축복해 주시면 하나님 앞에 쓰임받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나님 앞에 꿈을 한번 올려보지 않겠습니까? 성령의 바람을 타고 그 꿈은 하늘에 상달되어져서 이 한해동안 살아가는 동안에 하늘문이 활짝 열려지고 하나님께서 그 꿈을 갚아주시고 여러분이 엎드려 기도할 때에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살아나고,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고, 우리교회가 살아나고, 이 지역사회가 살아나고, 한국교회가 살아나고, 한민족이 살아나는 위대한 한 해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