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7일 금요일 묵상
<17:16>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17: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7:18>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17:19>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17:20>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17:21>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17:22>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17:23>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17:27>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17: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17:31>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
<17:32> 「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듣고 어떤 사람은 조롱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이 일에 대하여 네 말을 다시 듣겠다 하니」
<17:33> 「이에 바울이 그들 가운데서 떠나매」
<17:34> 「몇 사람이 그를 가까이하여 믿으니 그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
(본문 해석)
6월 7일 금요일 사도행전 17:16~34
16~21절
16절 바울은 아덴에서 실라와 디모데를 기다리며 복음을 전한다. 바울이 아덴을 둘러보고 느낀 감정은 헤아릴 수 없는 우상들로 인한 안타까움과 분노였다. 당대 최고의 지성과 철학을 보유한 아덴이 우상들로 넘쳤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17절 회당에서는 바울이 경건한 유대인들과 유대교에 호감이 있는 헬라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아고라(장터)에서 만나는 헬라인들을 붙들고 그들이 좋아하는 질문과 답변 식의 변론으로 복음 전하는 게 그의 일과였다.
18절 그중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의 쟁론은 특별했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말쟁이로 여겨 무슨 말로 자신들의 귀를 즐겁게 해줄지 기대했다. 말쟁이라는 말은 새가 모이를 주워 먹듯이 이야깃거리를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또는 자기도 모르는 말들을 떠들어대는 웅변가를 가리킨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예수라는 새로운 종교를 설파하는 전도자로 생각하기도 했다.
19절 철학자들은 바울을 아레오바고로 이끌며 새 가르침을 좀 더 듣기 원했다. 아레오바고는 평의회나 법정 같은 공적 의결 기구였을 것이다. 외부인이 전하는 새로운 신에 대한 관심이 공적으로 확장될 기회였다.
20절 그들은 바울의 이야기를 이상한 것으로 이해했다. 이는 아테네인들의 지적 호기심과 탐구심을 다소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21절 아테네 사람들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바울의 설교에 단순한 호기심 차원을 넘어 탐닉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22~31절
22절 바울이 아레오바고 중간에 선다. 그리고 아덴 사람들과 아덴에 대한 개인적 느낌과 경험으로 연설을 시작한다. 아덴 사람들의 남다른 종교심을 먼저 언급한다.
23절 바울은 두루 다니며 그들의 열성적 종교심을, 도처에 널린 우상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까지 봤던 경험을 소개한다. 신을 모르면서도 신 중심으로 살아가는 아덴인들의 종교적 모순을 지적한다. 그리고서 자신이 신에 대해서 알려 주겠다고 선포한다.
24절 우주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재라고 소개한다. 그분은 우상이 아니시고 사람이 손으로 지은 전에 갇히지 않으신다.
25절 하나님은 사람의 섬김을 받아야 충만해지는 신이 아니다. 우상들은 끊임없이 섬김을 강요하는데, 그것은 그들이 부족한 신임을 스스로 증명한 것이다. 하나님은 홀로 충만하시며 만물에 생명과 호흡을 공급해 주심으로 만물을 지탱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존재를 위해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분이 아니시다. 스스로 계시며 생명으로 충만한 분이시다.
26절 또 온 인류를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신다. 인간의 기원인 한 사람은 아담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계절과 경계와 민족을 만드시고 정하실 수 있는 유일신이다.
27절 모든 창조 질서에는 하나님을 알 만한 지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인간은 무지해 더듬어 찾을 수밖에 없다.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는, 스토아학파의 내세 신론을 인용한 것이다.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가까이 계신다.
28절 우리가 살아 기동하는 것도 전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덴 사람들에게 익숙한 시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는 말을 인용한다. 하지만 문제는 찾는 자가 무지해 지혜를 동원해도 하나님을 찾을 수 없다. 가장 지혜롭다고 여기는 청중을 향해, 바울은 그들의 무지를 지적한다.
29절 바울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하나님을 금, 은, 돌에 사람의 수공으로 새긴 우상처럼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고 한다.
30절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무지한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간과하셨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알 만한 방법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먼저 인간은 자신의 무지를 회개해야 한다.
31절 회개의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실 날을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고 믿어 그분의 의에 합당할 때 심판을 면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심판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 사람으로 말미암는다고 선언한다. 명확하게 예수라고 말하지 않지만 이미 청중은,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연결했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모두가 그를 심판주로 믿게 하셨다는 선언을 통해 설교의 방점을 찍는다.
32~34절
32절 바울의 설교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대부분의 헬라인은 죽은 자가 다시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혹 사후를 믿는다 하더라도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에 바탕을 둔 영혼에 제한된 불멸이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을 조롱하며 비웃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좀 더 듣고 싶어 했다.
33절 이에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떠난다.
34절 바울의 설교를 듣고 일부가 바울을 따르며 복음을 믿게 된다. 그들 중에는 아레오바고 관리 디오누시오를 비롯해 다마리라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여기서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디오누시오는 후일 최초의 아덴 감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