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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 2565년 9월 넷째 주 일요법회
법문: 혜담 스님, 사회: 혜안, 인례: 자광, 헌향: 명문, 헌다: 명조, 연오행, 현안보고: 법회장, 촬영: 원광, 음악: 지휘자, 반주자, 발원문:송파25구 명등 자성인, 취재: 미디어팀 2명, 데스크 안내: 2명, 법회 방역 및 안내: 대원 3구, 법회팀, 떡 및 생수 보시 : 송파 10, 11, 12, 13구법회.
한결, 가을 빛이 역력해진 불광사 주변 석촌호수 풍경은, 마치 불광 형제들에게, 여러 여건들이 힘든 상황일지라도 힘내어 정진하라는 듯, 너무도 평화롭고 아름답습니다. 요즈음 하늘은 어찌 저리도 청량한지요? 하늘을 지나는 구름 한 조각, 품어 오르는 분수 사이에 피어오른 일곱 빛깔 무지개, 단풍을 준비하는 늘어진 나뭇가지, 일렁이는 물결 사이 유유히 떠있는 여여한 저 오리들은 스스로를 내 보이며 마하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있습니다. 불광 형제들이여! 마하반야바라밀 사상을 지켜냅시다.
안내 데스크에서 방명록 작성 및 떡과 생수를 나누어 주시며 봉사하시는 법회팀 보살님들과 법회 안내팀 보살님들. 오늘은 보광당 문을 닫고 법회 방해하는 종무실장을 막아보려 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혜안 사회자님께서 자리하시고, 타종 및 법회 집전을 준비하시는 자광 거사님, 헌향, 헌다,를 올리는 보살님들, 원광 거사님이 영상을 찍으시니, 9월 마지막 주 일요 법회가 시작됩니다. 보현행자의 서원 : 찬양분
종교단체 대면 법회 참석 인원에 의거한 인원만이 보광당에 거리를 두어 앉아 법문을 듣습니다.
종무원들에 대한 경고문
법회진행을 방해하는 종무원들에게 알립니다.
불광법회, 불광사의 일요 정기법회는 1975년 10월 16일 불광법회가 창립된 이래 면면히 이어져오는 불광법회, 불광사의 대표적인 종교활동으로서 코로나 방역수칙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는 송파구청 등 관계기관에서도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미 서울동부지방법원은 2020년 4월 14일자 가처분결정 및 2020년 9월 1일자 간접강제결정에서 회주스님과 주지스님이 직접 또는 종무원 등 제 3자를 통하여 법회장이 주관하는 일요 정기법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였고, 이를 위반하면 하루 500만원의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종교활동을 사적모임이라는 궤변으로 억지를 부리면서 적법한 법회활동을 방해하는 종무원들은 즉시 보광당에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엄연한 사실에도 법회 시작 시점에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핸드마이크로 법회를 방해하는 종무실장과 종무원들.
금주의 법문 : 혜담 스님
금주의 법어: 살타파륜(薩陀波崙)보살의 구도심(求道心)
존경하는 불광 법회 법등 가족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오늘도 변함없이 유튜브 법회를 통해서 오늘 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형제여러분의 가정에 부처님의 자비 위신력이 항상 하고 형제여러분의 마음이 청안하시기를 축원해 마지않습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주보에 나와 있는 것처럼 ‘살타파륜(薩陀波崙)보살의 구도심(求道心)’이라고 되어있습니다만, 이 말씀을 드리기 전에 잠시 다른 말씀을 좀 드리겠습니다.
지난 24일 동부지원에 불광 법회와 불광사 소임 스님들 간에 법정 소송에 증언을 가기위해 갔었는데 그 전날 잠들기 전에 앉아서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고 있는데 그때, 비몽사몽간에 큰 스님께서 불광 법회를 창립하기 전에 저한테 하신 말씀과 82년도 불광사에 올라오기 전에, 스님께서 경봉 스님의 6재 참석하기 위해 김해공항에서 스님모시고 극락암을 가고 거기에서 다시 부산 역까지 가는 3시간 동안 제게 하셨던 여러 말씀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에 남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형제 여러분들께 드리지 못한 말씀이 불현 듯 생각이 났습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불상과 경전을 보내왔다는 것이 시초가 되었다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1972년도가 불교가 전해진지 16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해에 큰 스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이 “불교전래 1600주년인데 당신이 충무원장 직무대행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 때문에 1600년 행사를 하지 못했다. 이 얼마나 불조와 부처님과 조사스님께 죄송한 일이냐? 당신의 생애에서 이렇게 회한에 젖은 일이 없었다.”는 말씀을 상좌인 제게 하셨습니다. 최초로 종단 구성원에 대한, 스님들에 대한, 실망과 종단여건 때문에 불교 전래 1600년 행사를 하지 못한 것에 죄송스러운 마음이 함께 묻어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그 때 큰 스님께서 총무부장으로 계시다가 청담스님이 갑작스럽게 돌아가셔서 총무원장 직무대행이 되었지마는 종단의 여러 사정들이 너무나 혼란스럽고 스님들의 의식구조가 불교전래 1600년을 맞이할 수 있는 여건이나 생각들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큰 스님께서는 자책하시며 “나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불교의 문제다. 한국불교가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불광 법회를 창건하신 것입니다. 큰 스님의 생각은 한국불교가 이런 상태 속에서, 이런 구성원을 가지고, 이런 사상 속에서는 한국불교에는 미래가 없다. 그래서 불광 법회를 창립하시고 독자적으로 불교의 새로운 사상혁명을 정비하신 것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82년 스님 모시고 3시간을 차 안에서 이야기하시는데 구구절절 한국불교를 이런 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 지금 불광사를 짓고 있는데 스님들이 없다. 그렇다면 네가 올라올 수밖에 없다는 그 말씀을 거역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로 올라와서 보니 저 역시 올라오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들어 그해 9월, 기장에 있는 절에서 경전공부를 하고 있다가 부처님의 기도를 접어두고 불광사에 올라왔던, 그런 생각들이 비몽사몽간에 떠올랐습니다. 큰 스님께서 언젠가 제게 말씀하셨던 “내가 혜담이 너는 상좌처럼, 도반처럼 생각하는데 네가 불광사를 떠나면 되겠느냐?” 그렇게 하신 말씀도 떠올랐습니다.
아마 스님들 가운데 자신의 은사스님으로부터 ‘상좌처럼, 도반처럼’ 이런 말을 들어 보신 스님은 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씀을 주신 은사스님께 은혜를 갚아야 되겠다고 생각하여 불교 전래 1700주년 행사도 하지 못하고 지나버리는 창피한 후손들이 또 다시 되지 않기 위해서는 늦었지만 불광 법회를 상기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해가 1649년 입니다. 이제 다시 1700주년이 되려면 50여년이 더 가야 하지만 여기 계신 우리 형제들은 살아계실 분이 많지 않겠지만 우리의 후손이라도 불교 전래 1700주년을 증대할 할 수 있는 그 기틀은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날의 스님들의 의식으로는 1700년 행사도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우리 불광 법회 형제들이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법원에 가서 2시간 반을 증언했습니다. 저는 광덕스님 상좌 14~5명 가운데서 거의 절반이 저를 향해서 배신자라느니, 왜 스님이 스님 편을 안 드느냐고 비난하는 소리도 알고 있지만, 그러나 제 나름대로 말로서는 꽤 싸움을 잘 합니다. 저는 제 사상이 큰 스님의 사상을 잇는 것이 불법을 살리는 그 길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는 물러날 생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옛날 종단 일을 할 때에는 부장도, 총무원장도 제 편이 하나도 아니었지만, 저 혼자 전부 옳은 일을 해나가면서 모두 해 내었습니다. 해인사 승가대학을 폐기시킨 것도 원만하게 되게 했고, 종정이셨던 혜암스님을 쫓아내는 그 무례한 일도 있었지만 혜암스님을 다시 해인사로 모시어 마침내 종정을 하시게 하는 일도 해 내었습니다. 누구 한 사람도 도움 주지 않아도 해 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불광 법회장을 비롯한 정수위 위원들 회장단, 명등 보살, 형제여러분들이 든든하게 저의 깃대가 되기 때문에 저는 자신이 있습니다. 반드시 이것은, 불광 법회를 바로 세우는 그날이 빠른 시일 내에 온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희망을 잃지 말고 곧 성취되었다는 그런 속에서 기도를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의 사설은 이 정도로 하고 오늘 법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반야경의 신앙’이라는 책은 제 석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살타파륜(薩陀波崙)보살과 담무갈(曇無竭)보살품에 대해서 같이 붙여서 처음으로 낸 책입니다. 즉 우리들은 관세음보살 신앙을 하든, 지장보살 신앙을 하든, 경전에 의거한 것이지만, 그러나 반야경의 신앙은 어느 것이다, 화엄경의 신앙은 어느 것이다, 하는 것은 없는 것이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화엄경은 신앙적 사상이 잘 들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반야경도 마찬가지로 주로 반야심경과 금강경을 이루고 있지만 특별하게 신앙적인 것을 골라서 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품반야경을 가지고 ‘반야경의 신앙’이라는 책을 썼는데 여기서 제일 많이 나오는 것이 ‘살타파륜(薩陀波崙)보살의 구도심(求道心)과 담무갈(曇無竭)보살의 법문 내용’입니다.
살타파륜(薩陀波崙)보살이 어느 날 반야바라밀을 구하기 위해서 산 속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반야바라밀을 구하기 위해서 불교를 믿지만, 스님들은 그것을 구하기 위해 출가해서 수행을 합니다. 살타파륜 보살은 드물게 보는 구도심으로 신체나 생명을 돌보지 않고 반야바라밀의 가르침을 추구하는데, 한적한 산속에서 수행하고 있는 어느 날 공중의 소리가 ‘동쪽으로 가라’고 하는 것을 듣는다. 더욱이 눈앞에 여래의 모습이 나타나 중향성(衆香城)에 가서 담무갈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설하고 있다. 거기 가서 법문을 들으면 반야바라밀을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 살타파륜보살은 무한의 환희심을 가지고 마침내 중향성을 향해 출발하고 수 십일에 걸려서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 중향성(衆香城)에 도착한다. 그때, 담무갈 보살이 법을 들으러 가는데 그냥 가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법을 들으면 보시를 해야 하는데 내가 가진 것은 몸뚱이 밖에 없다는 생각했다. 사방을 향해 자신의 몸을 살 사람이 없느냐고 소리를 친다. 그 때 악마가 모든 사람의 귀를 막아 놓아 아무도 듣지 못하게 했다.
가끔 경에 보면 악마가 귀를 막는다는 그런 말이 있으나 그것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제가 지금 악마가 귀를 막아 오늘날 불광이 이렇게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각회 이사를 4년하고 어떤 스님이 저를 대각회 이사를 못하게 하기위해서 정관을 바꾸고 물러나게 되면서 다른 문도스님을 추천해야하는데 그 때 제가 생각한 것이 지홍스님 이었습니다. 그런데 정관 바꾼 스님이 다른 사람이 있다고 말을 했는데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 귀에 들리지 않고 지홍스님을 추천하고 난 후에 그 스님이 지환스님이 있지 않았냐고 말을 해서야 지환스님이 대각회에 등록을 했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을 돌아보면 ‘아~ 이것이 악마가 귀를 막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살타파륜 보살의 몸을 팔겠다는 소리를 모든 사람들이 듣지 못하게 귀를 막아버려 살 사람이 없었다.
그럴 때 제석천이 몸을 바꿔 이 살타파륜보살을 시험하기 위해서 나타났다. ‘나는 자네 몸 전체는 필요가 없고 심장만 필요하니 심장만 팔라고 말을 한다. 심장을 팔면 네게 공양 올릴 온갖 공양물을 주어 담무갈 보살에게 공양 올리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 때 살타파륜보살은 심장을 팔기위해 자신의 몸에서 모든 피를 빼 내는 모습을 본, 복을 많이 지은 부호의 딸이 그 이유를 물어보러 갑니다. 공양물을 얻기 위해 몸을 팔겠다고 하였으나 아무도 몸을 살 사람이 없고 이 바라문이 내 심장을 빼 주면 공양물을 주겠다고 하여 심장을 팔려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여인은 “제가 공양물을 준비해 드릴 터이니 그것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담무갈 보살이 그렇게 위대한 분이라면 저도 함께 가서 법문을 듣겠습니다.“ 살타파륜보살은 그 제안을 받아드리고 바라문에게 전달하고 허락된다면 제 몸을 정상으로 돌리기를 청하니 바로 정상이 되었습니다. 이 책을 낼 때 큰 스님께서는 “나는 살타파륜 보살이 심장을 파내는 잔인한 고행이 참 보기가 싫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침내 살타파륜보살은 부호의 딸과 더불어서 많은 재물과 꽃을 가지고 중향성에 도착을 합니다. 담무갈 보살이 계신곳에 가니 큰 산이 있고 산 안에 금으로 된 상자가 있고, 그 상자위에 ‘마하반야바라밀‘ 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보고 살타파륜 보살은 환희심을 내고, 저는 반야바라밀을 배우러 왔습니다. 오면서 많은 여래들을 보았습니다. 그 여래들은 왔다가 사라지는데 그 여래들은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담무갈 보살은 대답한다.
“선남자여, 여러 부처님은 어디로부터 온다는 것도 없고 또한 어디로 간다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모든 것[諸法]의 진실 된 모습[如]은 동요하지 않는 모양[不動相]이고, 모든 것의 진실 된 모습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선남자여, 나지 않는 것은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니, 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소멸하지 않는 것은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니, 소멸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실상[實際]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니, 참된 실상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공(空)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니, 공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다.
선남자여, 물듦이 없는 것[無染]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니, 물듦이 없는 것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다. 영원한 평안[寂滅]은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니, 영원한 평안이야말로 부처님 바로 그것이다. 만약 모든 것에 관해서 온다든가 간다든가, 생긴다든가 소멸한다든가 하는 생각을 전혀 일으키지 않는다면, 곧 능히 부처님께서 설하시는 제법의 실상[諸法實相]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반야바라밀을 행하고 있는 것이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며, 이야말로 참된 불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여기에 담무갈 보살이 법문한 내용이 바로 반야심경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불교의 근본입니다. 부처라 하는 것 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닌 바로 그것이 부처님입니다. 여기에 많은 비유가 나오지만 통틀어 공(空)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핵심은 공(空)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유튜브 법문을 많이 하시는, 봉화 각화사 스님 말씀이 제일 중요한 것이 ‘무아를 깨달아야 하고 공을 봐야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 생명이 공(空)이라는 것에 눈을 떠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불교에서 스님들까지도 반야심경을 매일 외우면서 이 공(空)에 대해서 거의 생각 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공(空)사상이야말로 부처님 자체이기 때문에 여기에 눈을 떠야합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가야하는 것입니다. 일체는 없다. 그러나 없는 것 속에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그것이 진리의 실상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두 번에 걸쳐서 ‘디바인 매트리스’ 대해서 말씀을 드렸고, 책까지 나누어 드리고,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은 여기에 나오는 홀로그램, 양자장이야기. 이것을 보면 부처님의 공(空)사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혹은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은 공(空)이라는 것은 무조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분명하게 반야심경에서는 공(空)이라는 것은 텅 빈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 그 공간은,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닌 즉, 영원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은, 절대 청정한 자리이고, 늘지도 줄지도 않는 모든 것이 갖추어진 자리이라는 것을 공(空)에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없는 것이 아니고 꽉 차있는 것이다.
이것을 ‘디바인 매트릭스‘에서는 ’양자장‘이라고 설명하고 화엄경의 ’인드라망‘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부처님 가지신 육신통(六神通)이 그야말로 신통을 부려서 알 수 있는 것인 줄 알았었는데 그런데 이 책을 보면서 아하, 홀로그램처럼 내 생명자체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지금 전파를 통해서 미국의 사항을 알 수 있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십리, 이십리, 천리, 만리에 벌어져 있는 사항을 부처님이 보는 것은 그 생명이 내생명이라 그냥 보는 것이구나. 이 기본을 모르면 거기 가야만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일체가 같은 생명이고 홀로그램이다.‘ 라고 했을 때는 사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바로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양자물리학에서도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으면서 그 연결된 것이 다 인연 따라 태어나는 것이라 합니다. 부처님 인연법이 그대로 양자물리학에 나오는 것을 보고 부처님 말씀을 이렇게 정확하게 21세기에 이야기 하고 있으니 부처님 말씀을 믿지 않을래야 믿지 않을 수가 없게 되어 있구나. 이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그래서 법문도 두 번씩이나 하고 책 보시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空)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에 스님들까지도 흥미를 못 느껴요. 공(空)과 양자물리학의 양자장 도리를 매치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空)에 들어가고 공(空)을 보게 되면 양자장이라는 것이 공(空),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가 이해가 오는 것입니다.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있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째서 부처님과 같은 생명인가? 양자장에서 보니까 부처님과 내 생명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일체 모든 생명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는 것은 지어낸 것이 아니라 큰 스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어서 그 도리를 말씀하셨겠지만, 깨닫지 못한 우리들로서는 큰 스님말씀을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를 현대 물리학이 그것을 밝힌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홀로그램 속의 한 몸이다. 부처님과 나, 너와 나도 그리고 우리 조상님과 우리 후손들도 시공을 초월한 한 몸이다. 그럴 때 우리들은 진심을 가지고 기도가 나오는 것입니다. 다른 과학자들과 다르게 이 ‘디바인 매트릭스’에서는 기도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합니다. 내가 지금 기도에서 원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우주에 가득 차 있으니 우주에서 안 이루어질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뉴톤 물리학에서는 기도 성취가 없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나 양자물리학에서는 과거, 현재가, 미래가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서 그것이 우주에 꽉 차 있으므로 같은 생명이므로 내가 마음을 있는 곳은 진실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들이 알 때 주보에 나오는 실제[實際]가, 공(空)이 바로 부처님이다. 라는 것입니다.
거래가 없는, 가는 것도 오는 것도 아닌, 본래 있는 여기가 부처님 자리이다. 물론 석가모니 부처님도 부처님이지만 그것은 형상적인 부처님이고 본래 부처님은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공(空)자체가 부처님이다. 이것에 눈을 뜰 때 이것을 현실적으로 우리 앞에는 창조적인 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큰 스님 말씀 가운데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은 ‘우리는 창조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중생이 아니라 창조자다. 내 생명은 부처님과 같은 생명이므로 부처님께서 창조한 모든 것을 내가 창조한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이점을 놓지 않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피조물이 아닌 창조자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미력하나마 불광 법회를 지켜야 되겠다, 불광 법회를 가지고 한국불교를 일으켜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 바로 이 도리입니다. 나는 창조자이기 때문에 이 창조성을 모든 형제들에게 알려주고 전부가 창조자로서의 행복을 누리게 하겠다는 그것입니다. 다행히 불광 법회 형제여러분들이 저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고 여러분들이 주축이 되어 이것을 해 나아갈 때 이것은 성취되게 되어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걸릴 뿐입니다. 이미 성취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들에게는 창조자로서의 어떤 삶이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자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그저 신(神)이 던져주는 것만 받을 수 있는 그런 삶입니다. 그 종교에서는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절대 죄인이 아닙니다. 언 듯 보면 업력에 끄달려 가는 중생으로 보이지만 그 중생 삶 한 꺼풀 벗고 나면 우리는 위대한 창조주로서의 자질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이 생각을 가질 때 우리들은 무한한 희망이 있는 것이고 이것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칠 때 여러분들의 자녀가, 이웃이, 바로 똑같은 창조자가 되는 것이고 그럴 때 우리 모두는 같은 창조자로서의 삶을 살아서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불행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대구에 계신 도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스님이 잘 아는 보살님이 상주의 보건소장인데 코로나 확진자와 30분 동안 밥을 같이 먹은 것을 알고 급히 실려 가서 검사를 받았으나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그 사찰 순례법회를 가는데 보살이 차에 타려고 하니 주지 스님이 “보살은 내려. 타지마.“ 해서 차에서 내리는 꿈’을 꾼 뒤에 그 분과 밥을 먹었는데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것은 스님의 큰 은혜라고 전화해서 말 하더랍니다.
코로나 걸린 사람과 앉아있어도 이렇게 신심이 깊은 반야바라밀 행동하는 사람은 안 걸릴 수가 있으니, 우리는 이것을 믿고 매사에 우리가 창조해내서 코로나도 물러가고 나는 창조주로서의 무한한 기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우리 좀 더 노력하면서 불광 정상화를 위해서 노력해야겠습니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찬탄곡은 마하보디 동영상으로 올립니다.
♬ 찬탄곡 : 내가 없는 이름의 노래 ( 대행스님 작시, 김동환 작곡) ♬
1.내가 없는 허공 길에 봄이 왔건만 수많은 공심들은 공체로서
봄이 온 줄 모르는가 나뭇가지 뿌리마다 육통안을 벗어나서
온갖 중생 연결되어 끊임없이 화하는데 고정된 게 하나 없이
찰라찰라 나투면서 여래의 한 생각이 우리들의 마음하고 연결되니
여래의 공심으로 한손 튀기는데 온갖 중생 공기자루 안을 벗어나
자유권을 얻으리라.
2.내가 없는 허공 길에 봄이 왔건만 수많은 공체 몸은 공용으로
여여 한 줄 모르는가 제나무에 제뿌리가 둘아니게 벗어나서
우주삼세 만물만생 근본마다 집결되어 서로서로 통신되니
찰라찰라 나투면서 공심에 한 생각이 앞뒤없이 둘아니게 돌아가고
한 겨울 나뭇가지 봄을 기다리며 한 마음 같이 공체로서
자유권을 얻으리라.
혜담 스님께서 학업성취 발원문을 해주시고, 송파 25구 명등 자성인 보살님께서 정상화 기도 발원문은 낭독하고 계십니다.
법회장님의 현안 보고
오늘도 금강경 독송은 현진 거사님, 자성인 보살님 집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우 리 는 횃 불 이 다. 스 스 로 타 오 르 며 역 사 를 밝 힌 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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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내년에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혜담스님과 문도스님 모두 모시고 한국불교전래 1650주년을 불광법회에서 크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수고하신 마음님 감사합니다..()..
매번의 법문 내용중 광덕 큰스님과의 일화가 크게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리운 큰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연합니다.
마음님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마하반야바라밀
여기가 거기일 때
ㅅㅎ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