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신은 인간을 죄다 쓸어버리기로 결심한다. 다만 정직하고 신앙심 깊은 노아와 아내, 네 아들 부부만은 구하기로 하고 노아에게 3층짜리 방주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노아는 지시대로 방주를 만들어 목숨을 구하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암수 한 쌍씩 살아남는다. 홍수가 끝나자 방주에서 내려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한때 지폐 조판공으로 일하다가 대영박물관에서 일하게 된 조지 스미스는 점토판에 흥미를 느끼고 또 다른 점토판을 찾아 읽어봤다. 점토판의 전체 줄거리는 구약성서에 기록돼 있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스미스는 누락된 부분이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발굴지인 니네베를 직접 방문하기 위해 호소문을 발표한다. 연구비가 모이자 니네베를 방문하는데 다행히도 그곳에서 다른 점토판을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이 유명한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서사시로, 무려 3,000행에 이른다. 수메르 왕명표에는 길가메시가 홍수 뒤에 도시국가 우루크를 다스린 고대 수메르인들의 전설적인 왕으로 기록돼 있는데 3분의 2는 신이고 3분의 1은 인간으로 묘사된다.
이 작품은 아슈르바니팔 왕의 장서용으로 제작되었는데 지금 대영박물관에 보관돼 있는 것 말고도 아시리아본과 히타이트어본, 호리어본 등이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옛날에 에레크라는 도시에 길가메시라는 용감하고 무서운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3분의 2가 신이고 3분의 1이 사람이었다. 동방을 통틀어 제일가는 전사였던 까닭에 그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는 철권을 휘둘러 사람들을 지배했으며 젊은이들을 붙잡아 혹사시켰고 마음에 드는 젊은 처녀들은 아무나 데려다 자기 소유로 삼았다. 사람들이 견디다 견디다 못해 하늘을 우러러 구원을 청했고 신은 기원을 듣고 아루르 여신을 불렀다.
“가서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되 폭군에게 지지 않을 힘센 자를 하나 만들어 길가메시와 싸우게 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이다.”
여신은 손에 물을 적셔 지상에서 가져온 진흙을 반죽해 무서운 생물을 만들어 ‘엔키두’라고 이름을 붙였다. 엔키두는 전쟁의 신처럼 용맹스러웠고 온몸은 털투성이였다. 그는 짐승들과 어울려 다녔으며 짐승들처럼 풀을 뜯어먹고 개천물을 마시면서 강하고 용감한 남자로 성장했다.
(중략)
엔키두 소식을 들은 길가메시는 한 가지 꾀를 냈다. 엔키두가 야수들과 같이 자랐으니 여자를 모를 것이므로 엔키두가 여자에 빠지게 하면 할 일을 잊을 것이라며 아름다운 여자를 숲으로 보냈다. 길가메시의 계략은 성공해 엔키두가 미녀의 유혹에 빠지자 신들은 엔키두가 제정신을 차리도록 했다. 정신을 차린 엔키두는 미녀를 떨치고 길가메시를 혼내주기 위해 우루크로 향했다. 엔키두가 우루크에 도착했을 때 마침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엔키두는 길가메시에게 도전했다. 길가메시도 도전을 쾌히 승낙해 대결을 벌이는데 두 사람은 막상막하였다. 길가메시는 비로소 자신이 호적수를 만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편 엔키두도 예의를 갖출 줄 아는 의협심 있는 사나이였다. 엔키두는 길가메시가 허세만 부리는 폭군이 아니고 기백 있고 호탕한 전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가 되자고 제안했다.
싸움 끝에 서로 친구가 된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태양신을 받들고 있다.
ⓒ 북카라반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후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서로 힘을 합해 갖가지 모험을 했다. 두 사람이 협동해 괴물을 처치하고 사랑의 여신 이시타르에게 유혹당하지만 그녀를 매정하게 거절하는 배짱도 부린다. 그러나 그들의 모험은 점점 더 과격해져서 이시타르 여신의 황소를 죽이게 돠었고, 결국 이 일로 신들의 노여움을 산 엔키두가 죽는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영웅으로 널리 알려졌던 길가메시의 활약상을 표현한 부조
ⓒ 북카라반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엔키두가 죽자 길가메시는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러다 우트나피쉬팀이 영생을 얻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 길을 떠난다. 중도에서 만난 술집 여인은 길가메시에게 영생을 얻으려는 생각은 헛된 욕심이며 인간은 꼭 죽는다는 운명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하면 수메르인들이 다른 지역과 달리 내세보다 현실 문제를 중시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들이 각처에 신전을 건설해 수호신을 섬긴 것도 내세의 행복이 아니라 현세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려준다.
그러나 영생을 얻으려는 욕망으로 계속해서 우트나피쉬팀을 찾아다니던 길가메시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그를 만난다. 우트나피쉬팀은 길가메시에게 자신이 대홍수 때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밤 우트나피쉬팀이 자고 있는데 에아신이 그의 집을 뚫고 들어와서 조용히 말했다. 바빌론 최고의 신 엔릴이 타락한 인간들을 응징하기 위해 대홍수를 일으킬 것이라는 경고였다.
집을 부숴 배를 만들어라. 부를 버리고 목숨을 지켜라. 네 생명을 구하려면 불필요한 것을 모두 버려라. 배에는 생명의 씨앗을 실어라. 배는 길이와 폭을 같게 해라. 배가 완성되면 바다에 띄워라.
그는 도시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러나 아무도 상대하려고 하지 않자 친족과 친구들만의 힘으로 집을 부숴서 6층이나 되는 거대한 방주를 만들고 송진과 역청을 발라 물이 새지 않게 했다. 그는 자기 가족과 하인들을 방주에 태우고 금과 은과 ‘모든 살아 있는 것의 씨앗’을 실었다.
드디어 6일 밤낮에 걸쳐 비가 쏟아지고 인간은 모두 죽었다. 방주는 니시르라는 산에 닿았다. 우트나피쉬팀은 땅에서 물이 빠졌는지 확인하기 위해 들창을 열고 비둘기와 참새, 큰 까마귀를 날려 보냈다. 육지가 드러났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큰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홍수가 끝난 것을 알고 배에서 내려 제일 먼저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고 헌주를 부었다.
우트나피쉬팀이 홍수를 일으킨 신들을 원망하지 않고 공경하는 것에 감명받은 신들은 홍수의 결과에 관해 토론했다. 결론은 두 번 다시 홍수를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며, 우트나피쉬팀에게는 보상으로 영생을 줬다.
이 이야기를 들은 길가메시가 자신에게도 영생의 비법을 가르쳐달라고 조르자 우트나피쉬팀은 영생을 줄 수는 없지만 회춘하는 비결은 가르쳐주겠다고 한다. 바로 강 밑으로 잠수해 들어가서 특수 약초를 찾아내라는 것이었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의 말대로 잠수해 회춘하는 약초를 손에 넣었다. 그는 약초를 에레크 사람들과 나눠 먹겠다며 에레크로 돌아갔다. 길가메시는 도중에 차가운 물이 솟는 샘을 발견하고 목욕한다. 이때 뱀 한 마리가 재빨리 약초를 물어가고 말았다. 뱀은 약초를 먹자마자 허물을 벗고 젊음을 되찾았다.
귀중한 약초가 영원히 사라진 것을 알게 된 길가메시는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울었다. 그러나 그는 바로 일어났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모든 인류의 운명이라고 단념하고 길가메시는 우루크로 되돌아간다.
다소 비극적인 결말이지만 기원전 2700여 년 전 이야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줄거리가 탄탄하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상상으로 꾸며낸 것이 아니라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기록으로 보인다. 그런데 구약성서와 「길가메시 서사시」 내용이 같다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셈족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며, 성경이 순수한 계시로 간주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1946년 서판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새뮤얼 크리머는 「길가메시 서사시」의 결론 부분을 발견한다. 영생하는 인간이 되고자 한 길가메시는 결국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그러나 신들의 아버지 엔릴은 그를 이승의 지배자로 임명한다. 길가메시는 자신이 두려워한 것을 지배하면서 두려움을 극복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서사시가 이끌어낸 결론을 보면 당시 이미 상당한 지적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다.